혼돈을 거니는 천사 - 단편

- 혼돈을 거니는 천사 -



처음에 그들은 하늘이 갈라진 줄 알았다. 비라도 내릴 듯이 짙게 깔린 구름 사이로 구름보다 더 새하얀 빛이 거꾸로 된 우물 비슷한 걸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정확히 볼 수 있었던 자는 몇 안될 만큼 짧은 순간, 거의 곧바로 그 하얀 우물에서 거대한 낙뢰가 떨어져 내려 레하 평원을 강타했다.

콰콰쾅!

병사들의 경악은 그 위력에 대한 순수한 경악이었다. 수십 명이 순식간에 뼈도 남기지 않고 ‘증발’하듯 타버리는 모습은 마치 이계로 들어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전쟁 초반에 있었던 다른 의미의 경악에 대해선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현재로선 그저 눈앞에 펼쳐져 있는 높고 넓은 성벽 위의 적들을 돌파해야 한다는 공동적인 목표로 휘감겨있었다.

주변의 남들을 따라 자신의 의지와는 거의 상관 없이 본능적으로 이 순간을 전진하는 세이렌에게 있어서도, 그런 다른 의미의 경악을 일찍이 날려버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세이렌의 머리 한구석에선 과거의 경악을 미약하게나마 전제해 두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적. 그 적이 다름 아닌 엘프라는 사실과, 그런 엘프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시나 엘프들의 필수불가결한 상황 대처 외에는 철저히 상대에게 직접 공격해 들어가는 일이 없는, ‘방어만의 전쟁’을 고수하고 있음으로써 ‘보통 전쟁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엘프 마법사가 불러일으킨 낙뢰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덩이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게 되자, 세이렌은 그 구덩이를 빙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장검의 일종인 그의 크샨 소드는 검집에서 뽑힌 채 한 손에 들려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엘프를 직접 베어본 적이 없었다. 오만하리만큼 견고하게 펼쳐진 레하 평원 성벽은 인간들의 접근을 거의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물론 곳곳에서 용력을 발휘해 성벽을 올라가 몇 엘프를 처치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있었어도, 거의 대부분은 성벽 가까이 접근조차 못하는 상황이었다. 성문을 두들기던 충차는 완전히 망가졌고, 엘프들과 다크 엘프들의 연합군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검놀림에 그나마 접근했던 병사들은 피를 흩뿌리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오늘 하루 피의 종료를 알리는 듯, 구름이 걷히며 저녁놀이 붉게 물들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한차례 강하게 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인간 자신들이 그 자신들도 모르게 마구 짓밟으며 지나간 한 슬로건이 적힌 깃발을 공중에 들춰 올렸다. 그 천조각은 마치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흐늘거리며, 하지만 어느 정도 글씨는 읽을 수 있게 똑바로 펼쳐져 공중을 한번 비산했다.

- 인간을 침략하기 시작한 엘프들로부터 이 땅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임을 맹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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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더럽군.”

누군가가 대부분의 병사들 심경을 대변하는 짧은 한마디를 토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상당수의 침묵이란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병사들의 스트레스는 곳곳의 저녁밥 짓는 연기마냥 스멀스멀 피어올라가는 중이었다. 엘프와 인간이 접전하게 된 하포 전쟁은 벌써 5개월이 넘어가고 있었고, 그중 절반이 이 레하 평원에서 죽치게 된 사실이 그들을 언짢게 했다. 진전이 보이지 않는 건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출할 수 없는, 그러니까 장군의 지휘에 따라야 하는 병사들에게 있어서도 답답함을 안겨주는 건 마찬가지였다.

레하 평원 성벽에서 한참이나 멀어진 곳에 진지를 만들고 막사를 쳐놓은 병사들은 이제 내일의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열악한 조건에서 밥 짓는 데 이미 전문이 된 그들은 식사 후에도 꽤 많은 여유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여유 시간에 찾아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락거리를 만들었다. 동전을 갖고 작은 도박판을 벌린다든가, 자갈들을 쌓아 표적을 만들어 돌을 던져 맞추기 내기를 한다든가, 바위에 기대서 농담 따먹기를 한다든가 하는 시시껄렁한 일들이 대부분. 그러나 그 시시껄렁함 속에서도 찾아드는 미묘한 재미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 저건 엘프 아냐?”

돌로 표적 맞추기 놀이를 하던 세이렌도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근위병 한 명이 한 손에는 창대, 다른 한 손에는 여자 엘프의 손을 뒤로 묶은 밧줄을 쥐고 있었다. 그는 막사들이 서 있는 진지 중앙으로 그 엘프를 떠밀 듯 끌고 나오더니 적당한 공터에 다다르자 발로 등을 걷어찼다.

여자 엘프는 이미 여러 번 심하게 구타당한 듯 힘없이 털썩 앞으로 쓰러졌다. 근위병은 별 말 없이 돌아서서 장군이 있는 막사 쪽으로 걸어가버렸다. 엘프 주위로 병사들이 몰려들었고, 거기에는 물론 일개 병사인 세이렌도 끼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여자 엘프는 무장이 모두 해제된 채 지금은 너덜너덜해진 겉옷만 걸치고 있었다. 세이렌은 아마도 오늘 전투에서 잡혔던 여자 엘프가 레하 성 내부의 정보를 불지 않자 마구 고문했고, 진전이 없다는 걸 안 장군과 군단장들이 ‘다른 의미’로 전력에 고무적인 현상을 줄 방안을 첨가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병사들의 스트레스를 풀’ 꽤나 색다른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었으리라.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여자 엘프를 가련하게 보는 병사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엘프는 적이라는 현 상황에 맞추어서 그런 가련함 따윈 이미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이미 전쟁이 있기 전부터 성욕 노리개로 인식이 된 사람들 머릿속에는 그저 달콤한 정사 장면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사고 회로가 전이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상처 입고 군데군데 옷이 찢어져 하얀 속살을 내비치는 아름다운 여자 엘프를 내려다본 순간 세이렌도 왠지 모를 위험한 생각이 떠올라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생각보다 본능에 따른 행동을 중시하는 병사도 상당수 있었고, 그런 부문에서 우월한 한 병사가 먼저 이죽거리듯 중얼거리며 허겁지겁 바지를 벗었다.

“하-! 이거 오늘 재수가 없는 것만은 아니구먼. 식후 디저트를 한번 든든히 채워 볼까?”

“이봐, 나부터야!”

물론 남이 선도하는 행동을 가로채는 데 우월한 병사 또한 존재했기에, 처음 바지를 벗어들었던 병사는 자기 먼저라고 외친 다른 병사를 으르렁거리듯 노려보았다. 여자 엘프는 이미 체념한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들의 선처를 기다리듯 옆으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 또한 얼마 가지 않았다.

행동이 재빠른 병사 하나가 앞서 신경전을 벌이던 두 병사를 제치고 먼저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의 두 다리를 손으로 붙잡아 벌리었다. 이미 다 찢어져 넝마조각이 된 엘프의 치마 사이로 뻗어나온 길고 미려한 다리가 그의 의도대로 한껏 양쪽으로 벌려졌다. 앞서 신경전을 벌이던 두 병사가 분노를 표출하며 그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히죽 웃으며 자신이 벌린 여자 엘프의 다리 사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얗고 얇은 팬티가 여자 엘프의 보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각종 무늬를 섬세하게 새겨 넣은, 레이스가 촘촘히 달린 조그마한 팬티를 보는 순간 그곳에 있던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 엘프의 다리를 벌린 병사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들에게 보충 설명을 첨언했다.

“이것 봐. 청순한 숲의 요정 같이 보여도, 팬티는 이렇게 더럽게 야한 걸 입고 있잖아. 그리고 늘상 늘씬한 몸매에 짧은 치마를 입고 인간들이 사는 마을을 왔다갔다 했으니 자기 보고 덮쳐달라는 무언의 요구밖에 더 돼? 따지고 보면 지들이 유혹해놓고 이젠 발을 빼겠다고 엘프 해방 전선 같은 걸 펼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시추에이션 아니냐?”

신경전을 벌이던 두 명의 병사를 비롯해서, 모여있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그의 발언에 최면이 걸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음은 이미 여자 엘프를 범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을 터였다. 세이렌도 문득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는 어쩐지 그들의 모습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인간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쓸데없는 접전이라 여기고 있는 터였다. 정부의 강제 징병만 없었으면 하등 비난을 받든 절대로 참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아름다운 여자 엘프를 보는 순간 어쩐지 자신도 본능에 따라 그녀를 범하고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듦으로써, 그것을 실행해버리기 전에 얼른 고개를 돌려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 엘프의 다리를 붙잡던 병사는 계속해서 킥킥 웃으면서 자신의 바지를 벗어제꼈다. 그리고는 거대한 자지를 빼어들었다.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오랜 시간 여자 맛을 못 본 자지가 여자 엘프의 보지 앞에서 그야말로 몸부림치듯 벌떡벌떡 솟아오르는 중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병사는 여자 엘프의 팬티를 부욱 찢어내었다. 그녀의 빛이 바랜 흐트러진 금발 머릿결과는 대조되게 보지는 아직 온전하게 살아 숨쉬는 듯했다. 여자 엘프 특유의 금빛 보지털들이 난데없는 세상 빛을 보게 된 데 놀란 듯 살결들과 함께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사는 불끈불끈 핏대를 세우며 치솟는 자신의 자지 끝을 그녀의 보지 구멍에 맞춘 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 세상살이 모르는 얄팍한 치기가 얼마나 쓸데 없는 짓이었는지 가르쳐주지.”

그리고는 단숨에 그녀의 보지 속으로 자지를 쑤욱 밀어 박았다.

퍼억!

“흐아…… 악……!”

여자 엘프는 하반신으로부터 전해지는 깊숙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군단장 막사에서 고문을 당할 때 느꼈던 외부적인 타격감과는 다른 느낌의 고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가 유린당하는 느낌을 맛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 한번 더!”

병사의 허리가 거세게 여자 엘프 보지 앞으로 밀착했다. 퍼억!

“끄읏…. 응…….”

여자 엘프의 가느다란 신음이 또다시 흘러나왔다. 병사는 이제 사정없이 허리를 흔들어대며 여자 엘프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대기 시작했다. 쑤욱, 퍼억! 쑤욱, 퍼억! 쑤욱, 퍼억!

“아으… 아… 앗… 끄으읏……. 아아… 앙…….”

“자, 이제 좀 반성이 되나? 엘프 아가씨. 핫핫핫핫!”

그 엘프가 병사의 말마따나 인간을 유혹한다거나 직접 전쟁을 일으켰다거나 하기는커녕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왔던 적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었지만, 병사는 마치 그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투로 지껄이며 자지를 쑤셔박고 있었다. 철퍽, 철퍽, 철퍽, 퍼억, 퍼억!

분위기가 무르익자 다른 병사도 그 행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앞서 신경전을 벌이던 병사 둘 중 한 명인, 그러니까 따라서 옷을 벗던 병사는 누워있는 여자 엘프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앞가슴 쪽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힘을 주어 그녀의 상의를 양쪽으로 찢어내었다. 이미 어둑해진 주변이었지만 여자 엘프의 새하얗고 탐스러운 상체가 눈부시게 드러났다. 그녀의 가느다란 팔과 허리와는 대조될 정도로 거대한 젖가슴이, 피스톤 운동을 하는 병사의 허리놀림에 맞추어 위아래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여자 엘프 특유의 탄력 있는 풍만한 젖가슴을 보자 병사는 참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그녀의 젖가슴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그녀의 다른 쪽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커다란 그의 손으로도 제대로 쥐기 어려울 만큼 여자 엘프의 가슴은 컸고, 그것이 더 그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는 입을 벌려 젖꼭지를 살며시 깨물었다.

“아… 아흣……!”

여자 엘프는 하반신에서 전해지는 느낌과는 또 다른 자극에 깊은 신음을 흘렸다. 젖가슴에 얼굴을 묻은 병사는 젖꼭지의 주변을 살살 돌아가며 깨물다가 쭈욱 빨아 당겼다. 여자 엘프의 신선한 모유가 쭈욱 쭉 흘러나왔고, 병사는 그것이 마치 굉장히 달콤한 음료라도 되는 양 정신없이 꿀꺽꿀꺽 마셔대었다. 또 다른 병사가 달려들어 이번엔 그녀의 입 속으로 자지를 쑤셔넣었고, 그녀의 얼굴 바로 위쪽에 닿을 듯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길고 거대한 자지를 사정없이 들이밀었다. 여자 엘프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의 자지를 고스란히 목구멍 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다른 병사도 하나 둘 달려들어 자지를 뽑아들곤 여자 엘프 몸 곳곳에다 정신없이 비벼대었다. 한 병사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서 겨드랑이 사이에다가 자지를 끼워넣고는 다시 꽉 맞붙게 해 비벼대며 쾌감을 느꼈고, 다른 병사는 그녀의 묶여 있는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덮어 잡아서 자지를 쥐게 하고는 자위하듯이 문질러대었다. 또 다른 병사는 한껏 뻗어져있는 그녀의 허벅지에다 귀두를 문질러서 매끈한 여자 엘프의 살결을 느껴가며 쾌락의 신음을 흘렸다. 그의 뒤쪽으로는 여자 엘프의 신발을 벗겨내곤, 발가락 사이에다 자지를 끼워 상하로 움직이며 좆대를 마찰시켰다.

가장 먼저 바지를 벗어제꼈던 사내는 여자 엘프의 너덜너덜하게 찢겨진 팬티를 주워들고 얼굴로 가져가 깊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체취를 코로 느끼며 상상하는 지적 흥분에 도취되었는지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그것을 맡아대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자기 자지를 잡아 위아래로 문지르며 자위행위를 해대었다.

“큭큭큭큭, 하하하… 하하하하핫!”

맨 처음 여자 엘프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댔던 병사는 여전히 그녀의 보지 속에 피스톤 운동을 하며 환희에 찬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의 사나운 웃음소리가 높아질수록 여자 엘프 곳곳에 자지를 들이민 사내들도 음흉한 미소를 소리 높여 토해내기 시작했다.

“큭큭큭큭큭큭…….”

“킥킥킥킥….”

“흐흐……. 아하하, 아하하하….”

찔걱… 찔걱…

쑤욱, 퍽! 쑤욱, 퍽! 쑤욱, 퍽!

부직, 부직… 철퍽. 찌걱, 찌걱…….

제각기 여자 엘프로부터 자신의 성욕을 채우면서 그 쾌감에 완전히 젖어들었고, 밤이 깊어지도록 행위를 반복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한 엘프를 갖고 돌아가면서 참여하고 구경하고, 또다시 참여하기를 반복했다. 여자 엘프의 보지에는 수많은 남자의 자지가 쉴새 없이 교대로 들락날락했다. 싸고 하고 싸고 하고, 한 명의 병사가 여러 번 그 안에 사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의 보지에는 정액과 좆물이 넘쳐흘렀고, 질질거리며 쏟아져 나온 씹물들이 누워 있는 그녀의 엉덩이 밑에 흥건하게 고였다. 여자 엘프는 이제 신음조차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흐흑… 끅……. 끄흑…… 흐윽…….”

“이것 봐. 수백 번도 더 쑤셔 박은 거 같은데 아직도 조임이 아주 죽여주잖아? 누가 엘프 아니랄까봐. 보지도 정말 더럽게 왕성하다니깐. 여자 엘프를 마누라로 받으면 남편은 감당하지 못하겠는데 말야. 하하핫!”

“인간도 아닌 엘프 따위를 마누라로? 농담이 지나치구먼. 크하하….”

근처 나무 둥치에 등을 기대곤 담배를 태워올리던 병사가, 현재 삽입 중인 병사의 말에 짓궂게 웃으며 응수했다. 그는 앞서 몇 차례 여자 엘프 보지 속에다 사정하곤, 빼어든 자지를 넣을 생각도 않은 채 지금은 한가롭게 관찰하는 중이었다. 여자 엘프는 몸 곳곳이 온통 허옇게 정액투성이가 된 채 알몸으로 남자들이 진행하는 성행위를 모조리,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야, 이년. 아직도 눈물 흘릴 기운은 남아있나 보네?”

“다 쑤셔 넣어. 집어 넣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갖고 놀아. 내일도 갖고 놀아야 하니까. 하하하핫!”

“비켜! 난 아직도 멀었어!”

두 손이 여전히 뒤로 묶여진 채 끝날 줄 모르는 사내들의 강간을 온몸으로 받으며 처절하게 뒤트는 여자 엘프. 그런 공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세이렌은 막사 기둥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몇 시간째 같은 자세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한 시선으로 유린의 축제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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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뒤흔들던 마법 시전 소리와 함성 소리, 무기끼리 부딪히는 소리 등등 그 모든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한밤중. 자신에게 가해진 악마들의 축제 소리가 추가됐을 그 누군가인 여자 엘프는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알몸 그대로 공터에 버려진 것처럼 쓰러져있었다. 한 때는 엘프의 고귀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윤기를 발했을 기다란 머리카락은 지금에 와서는 그저 뺨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쓸어내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을 자던 여자 엘프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 들어올리는 느낌을 받고는 눈을 떴다. 뒤로 묶여 있는 손이었기에 그녀는 얼른 그 손길의 주인을 살펴보지 못했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불침번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건 말 그대로 몇 발자국 밖이었기에 그녀를 끌어올린 건 그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모습이다. 여자 엘프는 고개를 좀 더 들어올렸고, 곧 조금은 퉁퉁해 보이는 사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 엘프의 눈이 불안과 의심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퉁퉁한 그 병사는 반대로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툭 말했다.

“잠을 자다 중간에 깨었는데, 니 생각이 나서 말이지. 도저히 그냥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없겠더라고.”

다시 한바탕 하자는 얘기임을 짐작한 여자 엘프는 체념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사내는 우악스럽게 그녀를 일으켜세웠고, 곧 여자 엘프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힘겹게 섰다. 불침번의 얼굴이 무료한 시간에 즐거운 광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으로 차올랐고, 사내의 얼굴에서도 일대 일로 여자 엘프를 따먹을 수 있게 됐다는 기분 좋음이 표출됐다.

그러나 그 두 명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퍼억-!

“아윽…!”

비명 소리는 여자 엘프의 음성이 아니었기에 - 또한 방향이 달랐기에 - 퉁퉁한 사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곤 기쁨어린 표정이 의아함으로 돌변했다. 웬 다른 병사가 불침번을 서던 병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한 것이다. 그 상황에 미루어봐서 근무 교대를 하러 온 것은 아니었음을 깨달은 퉁퉁한 병사는 재빨리 자신도 방어 자세를 취했다.

타격도 타격이었지만 너무나 의외의 공격을 당한 듯 불침번은 그대로 쓰러져 일어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이렌은 그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번엔 퉁퉁한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서있는 여자 엘프도. 둘 다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세이렌은 충분히 그 이유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가차없이 연속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먼저 그는 퉁퉁한 사내의 턱을 차올랐고, 발악하듯 뻗은 그의 손을 슬쩍 피하면서 팔꿈치로 뒤통수를 가격했다. 사전 예고도 없던 그들과는 달리 세이렌의 입장에선 철저히 움직임을 파악하고 들어간 공격이었기에, 퉁퉁한 사내도 지금 자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반쯤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꽈당 쓰러졌다. 저녁 때 뒤엉키듯 놀아났던 공터의 먼지가 조금 일었을 뿐,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

“저… 저기…….”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는 여자 엘프. 그녀가 더듬거리는 사이 세이렌은 얼른 여자 엘프의 뒤에 묶여진 밧줄을 끌러 내리면서 불침번의 상태를 눈으로 가늠해보았다. 그리곤 부들거리며 한쪽 손을 땅에 짚고 일어서려는 그의 모습에 이번엔 제대로 기절시켜야겠다 마음먹고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세이렌은 곧바로 그 생각을 철수했다. 그가 검을 뽑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렌은 그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얼른 그 자리를 뜨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는 여자 엘프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막사 진영 바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젠장할…. 잡아!”

대부분 잠에 빠져있는 시간이라 그들이 도망을 쳐도 추격하라는 고함 소리는 상당히 뒤늦게 울려퍼졌다. 세이렌은 여자 엘프가 제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어쩔까 하는 일말의 염려가 있었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통통 뛰듯 의외로 잘 따라오고 있었다. 단지 그녀는 왜 세이렌이 자신을 데리고 도망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 가득한 시선만 무수히 보낼 뿐이었다.

간신히 막사 진영 바깥으로 빠져나온 세이렌은 도망의 근거지를 숲 속으로 타깃 삼았다. 숲 속이 여러 방면에서 추격자 시야를 어지럽힐 수 있고, 유사시 기습하기도 좋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정찰 나온 엘프의 동족을 발견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았다. 그는 거의 나는 듯이 한달음에 숲 속으로 달려나갔고, 길게 자란 풀들을 헤치며 무작정 앞으로 전진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수선해진 막사 진영의 고함 소리가 멀어지자, 굉장히 다급한 순간은 일단 넘겼다고 생각이 든 세이렌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두 다리를 멈춰섰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차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일단 막사를 빠져나오는 것까진 성공했으나, 그럴 기회와 계획의 치밀함은 딱 그 정도 선까지밖에 계산을 안 해둔 터였다. 그 후에는 이 여자 엘프를 데리고 레하 평원 성 쪽으로 데려갈 예정이었으나 어두컴컴한 숲으로 들어오자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잘못하다간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잡힐 지도 모른다.

세이렌은 혹시 여자 엘프가 특유의 감각 같은 걸로 방향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여자 엘프는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히 세이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짧지만 세이렌 또한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면서 엉뚱한 기분을 느꼈다. 깊고 짙은 파란 눈동자가 아름답게 세이렌을 비춰보고 있었다. 갑자기 세이렌은 눈앞의 여자 엘프를 끌어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여자 엘프의 상처입은 몸을 감쌌다. 그녀는 그의 손길을 마치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시선을 따라서 움직이다가 다시 세이렌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가 고개를 돌리려 할 즈음에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주위 자체가 고요했기에 세이렌은 그녀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없었어요.”

“…….”

‘그 자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세이렌은 역시 한마디도 그녀에게 하지 않음으로써 무언의 긍정을 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여자 엘프는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랬죠?”

꽤나 많은 것을 함축한 물음이었기에 세이렌은 잠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머릿속으로 추리하고 찾아내느라 약간 애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막사에서 멀어졌다곤 해도 여전히 위험한 이 순간에 침착한 정답을 떠올리기란 여의치 않았고, 그래서 세이렌은 자신이 가진 모든 생각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어… 그러니까 제 말은 왜 당신을 유린하는 데 동조하지 않았냐는 것인지 왜 지금 당신을 구하려 하는 것인지 왜 동료들을 저버리고 불투명한 앞길을 걷는 건지 의미를 모르겠단 겁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죠. 저라고 엘프한테 성욕을 안 느끼는 건 아닙니다. 아니, 전 아직 이십 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남자인 만큼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덮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순간의 치기 어린 동정심이 들어서 당신을 구하고 싶었다고 토로하며 동료들에게 사죄하러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앞에서 보란 듯이 당신을 범하면 오늘 아침은 아무 일 없이 축복어린 햇살을 내게 내리쬐리란 걸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단 걸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편하니까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람? 세이렌은 되는 대로 마음속 말들을 끄집어내는 걸 단 한마디도 빠짐없이 경청하고 있는 눈앞의 엘프가 되려 신경쓰였다. 그래서 앞의 말들을 모조리 취소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조금 떨구었다.

이윽고, 침묵 속에 못다한 말들을 끊어서 맺어버리듯 툭 튀어나오는 그의 목소리.

“……모르겠습니다. 모든 상황은 제게 불리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명령하는… 제 가슴에다 명령하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저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더군요. 잠조차도 잘 수 없을 정도로 저를 괴롭혔기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 엘프는 세이렌이 덮어준 옷자락을 붙잡은 채 그 커다랗고 아름다운 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묘하면서도, 부드럽게.

“…어떤 천사가 생각나네요.”

천사?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웬 천사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여자 엘프는 그런 그의 심경을 억누르듯 연이어서 말했다.

“그냥… 오래 전에 들었던 얘기에요. 그는 여타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날개 달린 천사에요. 천사는 대부분 신의 명령을 수행하면 그만인 존재로 태어났죠. 그러나 그 천사는 자신이 누군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신은 답을 내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거친 혼돈 속을 계속해서 걸어야 했죠. 그러다 그는 곧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는 걸 존재의 가치로 삼았죠. 그것이 설령 자신을 파멸로 이끌더라도… 가엽게도…….”

가엽다고? 인간들에게 처절하게 유린 당한 자에게서 듣는 아이러니하기까지 한 표현이다. 하지만 세이렌은 반박하지 않은 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세이렌은 여자 엘프가 끝맺듯 건네는 다음 말에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기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천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값어치 있는 게 무엇인지 아는 법이죠. …아름다운 천사예요.”

다음 순간, 여자 엘프는 웃었다. 조금은 쓸쓸해보이기까지 한 무표정을 일관하던 그녀가 살포시 미소지었던 것이다. 세이렌은 어쩐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그 무언가를 목격한다는 짐작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정지한 듯 그런 그녀의 얼굴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어쩌면 그녀의 이런 미소를 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생각을 떠올리던 세이렌의 귓가에 문득 퍼득거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차적으로 크게 들려왔다. 추격자의 소리가 아님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세이렌은 그 소리가 자신들을 발견하고 오는 것임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다.

“어라? 엘프…? 모습을 보아하니 인간들에게 잡혀갔던 엘프인가 보군.”

요염한 목소리. 세이렌이 고개를 돌렸을 땐 웬 낯선 여성이 여자 엘프 못지 않은 눈부신 몸매를 드러낸 채 검은 날개를 퍼득거리며 공중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어두운 가죽 끈 같은 옷으로 중요한 부분만 살짝 가린 채 기다란 창을 들고 있는, 세이렌에게 있어선 말로만 듣던 난생 처음 보는 서큐버스였다. 하지만 여자 엘프는 그 서큐버스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똑바로 불렀다.

“캐시아 님….”

“운이 좋군. 야간 정찰을 마치고 돌아가는 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말이지. 이 인간은 같은 편인가?”

여자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엘프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지만 상황으로 봐서도 캐시아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창을 등에 걸쳐 매곤 인간을 바라보며, 정확히는 세이렌을 바라보며 조금 유감이라는 듯이 살짝 사이를 두고는 말을 건넸다.

“추격자들이 근방에서 포위해 오고 있다. 나는 한 사람밖에 데리고 날지 못하고, 더군다나 정찰 임무라 전투면에서도 너를 도와주기 어려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엘프를 데리고 떠나십시오.”

목숨이 위험한 사람에게 꽤나 가볍게 보고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서,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는 차원이 다른 종족이란 걸 느낀 세이렌은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꽤나 마음에 든다는 듯 서큐버스 캐시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꺾어보였다.

“…네가 누구처럼 세리에나 같은 엘프를 일찍이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세리에나? 저 엘프의 이름이 세리에나인가? 하지만 전혀 동요 없이 쓸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 엘프의 모습에서 그는 캐시아가 말한 이름이 그녀를 지칭한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미를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서큐버스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여자 엘프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여자 엘프가 혹 자신에게 무슨 전언이라도 하지 않을까 올려다보던 세이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에 집중해야 했다. 나뭇가지들과 풀숲을 헤치며 이쪽으로 접근해오는 사람들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묘하게도 한쪽 하늘에 어슴푸레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시야의 감각과 어우러졌다. 몇 명이지? 지금 내게 거의 동일한 간격으로 접근해오는 병사들을 따지면… 세 명. 아니, 네 명쯤…….

세이렌은 자신에게 입혀져 있는 하드 레더의 상태를 단단히 점검하고는 허리의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소리를 잠에서 깨어나듯 울리며 새벽빛을 받은 크샨 소드가 허공에 반짝였다. 자신에게 있어선 조금 사치스럽다 생각될 정도로 귀족 같은 문양이 검자루 부분에 새겨져 있는 그 장검을 본 세이렌은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미소지었다. 엘프를 한번도 베어본 적이 없는 이 검은 이제, 같은 인간을 향할 찰나였다.

“서큐버스… 엘프족에 들러붙은 빌어먹을 년이 그 여자 엘프를 데리고 도망간다!”

“누구 활 없어? 쏴서 맞추란 말야! 이런 젠장할!”

세이렌은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을 보고는 실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몇 초 후면 자신을 발견할 것인데, 지금 그들은 이미 활 사정거리도 안 닿을 거리까지 올라간 캐시아를 보며 분노의 타깃을 그쪽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렌은 마치 그들의 주의를 쥐고 있는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면서 나지막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어이, 친구들. 닿을 수 없는 새를 쫓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을 잡는 게 지금으로썬 더 포상의 효과가 클 텐데?”

자신을 새로 비유한 세이렌의 말을 캐시아 본인이 들었다면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최소한 지금 이 자리에 선 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문제가 별 중요한 논의거리로 작용하진 못하는 듯하다. 사내들은 제각기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다시 그것을 분노로 뒤바꾸며 제각기 검을 뽑아들었다.

“이 애송이가 형님들 일에 주제넘게 끼어들어 설치긴.”

“애초에 도도한 척 건방을 떨더니, 결국은 죽음을 각오한 꼬락서니란 건가? 하하핫.”

“제대로 인생공부가 되었는지 모르겠군. 니가 뭔 신념을 지녔던 간에 현실은 네 종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놓친 엘프를 뒤로한 채 그들은 이죽거리며 제각기 한마디씩 해대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은은한 밝아짐이 더욱 정신을 말끔하게 했던 것일까. 세이렌은 모든 분노를 뒤집어쓸 도마 위에 올려지게 된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는 뼛속까지 떨리는 기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등줄기와 손목에 베이는 식은 땀을 느끼면서도 실소를 머금은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어젯밤의 즐거웠던 환락만큼이나 피의 축제를 펼쳐보도록 하지. 어때?”

크샨 소드의 검끝이 시니컬한 그의 목소리를 신호로 예리하게 공중에 들어올려졌다. 사내들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고, 곧 그들은 봐주지 않겠다는 살기를 뿜어대며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렌의 미소는 포위한 그 네 명의 사내들에게 사력을 다해 돌진해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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