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선녀열전(仙女列傳) - 5부

선녀열전(仙女列傳)




5부


“저희는 피곤해서 먼저 잠을 자야겠습니다.”

“아 네 그래요”

밤이 깊어지자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가 머리에 베개를 베면서 말을 하자 뜻밖에 자기 집에 딸과 함께
찾아 온 이들이 약간은 수상쩍었지만 지금 경화 엄마의 마음에는 그런 것들이 들어올 리가 없는지라 그냥
그러라고 대답을 했다.

오로지 경화 엄마의 마음은 이제 날이 새면 그 짐승 같은 박첨지에게 온갖 수모(受侮)를 당할 것을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졌다.

“엄마! 절대로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돼요.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옆에서 딸 경화가 무슨 큰 요행수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자 하도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그래 너는 산속에서 어떤 아가씨를 만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지금 우리가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는데 너는 아무 걱정이 안 되니?”

“엄마는 그 분을 만나보지 않아서 그래요 나는 그 분을 정말 믿어요.”

경화가 자기 엄마에게 끝까지 용기를 가지라고 설득을 하고 있었다.

“글쎄 너는 그 아가씨를 믿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그런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냥 네가 목숨을 끊어 죽으려고 하니까 그 아가씨가 너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처럼 밖에 들리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박첨지의 말대로 가마를 타고 그 집에 가서 혼인예식을 올리라는 것 아니냐?
그러면 일단은 자결을 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 엄마는 그 분을 직접 보지를 않아서 그래요 나는 그 분에게서 분명히 보았어요. 이 세상 사람에게는 없는
놀라운 기품(氣品)과 능력(能力)이 그 분에게는 있었어요.”

“그래 너는 그렇게라도 위로를 가져라 나는 내일 박첨지 댁 혼인예식 자리에서 네 오빠를 풀어주라 하고서
너의 아버지를 따라서 갈란다.”

“아이 엄마는 자꾸 약한 마음을 갖지 말라니까요”

두 모녀가 이렇게 서로 상반된 마음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날이 밝아지자 일찍 잠을 잔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가 일찍 일어나 새벽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든 두 모녀를
위하여 아침밥을 짓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다.

해가 동녘에서 환하게 떠올라 올 때에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는 잠을 자고 있는 두 모녀를 깨우고 아침을
먹게 하였다.

그리고 두 모녀를 곱게 단장(丹粧)을 시키고 박첨지 댁에서 이들을 태우고 갈 가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박첨지 댁에서 보낸 가마가 집 앞에 당도를 하자 조심스럽게 두 모녀를 가마에 태워 보낸
미주 낭자와 옥자 낭자는 한 걸음에 선아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박첨지는 자기 집 마당에서 하인들이 혼인 잔치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자기의 두 번째
마누라로 맞이하게 될 예쁜 청주 댁을 머 리 속으로 떠올리며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동안 먼발치에서 예쁜 청주 댁을 볼 때마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는데 이제야
자기의 그 소원을 시원하게 풀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시기심이 많은 자기의 본처는 불평스런 말을 끄집어내었지만 서슬이 시퍼런 박첨지가 으름장을 놓는 소리에
끽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조용해 졌다.

이런 여자들이 본래 남편의 말에는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를 못하고 그저 남편의 말에 오로지 순종이다.

박첨지의 하는 꼴을 보니 이제 순서가 뒤 바뀌어 청주 댁이 본처가 되고 자기 아들과 결혼을 하는 경화라는
어린 계집년이 온 집안에 귀여움을 독차지를 할 지경이다.

속으로는 불이 붙어서 미치고 환장을 할 노릇이지만 그 동안 남편과 한통속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한 처지에
이제야 자기 위치를 찾으려고 하니 그게 통할 리가 없다.

자기 아들 대수조차도 자기 엄마의 이런 심정은 조금도 헤아려 주는 것도 없이 오로지 자기 아내로 맞이하게
될 경화라는 어린 계집에게 홀랑 빠져 있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더니”

혼자서 방안을 서성거리며 중얼거려보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자기를 위해서 위로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꽃가마가 집안에 도착을 하고 예쁘게 단장을 한 두 신부(新婦)가 박첨지 댁의 하녀들에게 이끌려 가마에서
내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박첨지 댁에 모여 오늘 일어나는 이상(異常)한 결혼식을 저마다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어찌 박첨지가 사람으로서 이런 인륜(人倫)에서 벗어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 마땅했지만 그러나 정작 누구 한 사람 이런 것에 대해서 바른말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전에 이 동네에서 살던 제 문호(諸文鎬)라는 사람이 큰 황소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이 황소가
욕심(慾心)이 난 박첨지는 제 문호를 자기 집에 불러서 자기 집에 있는 황소와 바꾸자고 제의를 했다.

그러나 이 황소를 자기 자식처럼 끔찍이 아끼는 제 문호는 웃돈을 더 얹어서 준다고 해도 자기 집의 황소와
박첨지 댁의 황소와는 바꿀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이지만 박첨지 댁의 황소는 누가 보더러도 비루먹어서 제 문호 집의 황소와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박첨지는 자기 마누라와 머리를 맞대고 악한 꾀를 내어서 자기 집에서 데리고 있는 떠돌이 불량배
들을 시켜서 밤중에 제 순호 집의 황소를 몰래 훔쳐서 오게 하고 그 집의 식구들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집에
불을 질러서 모두를 죽게 하였다.

그리고는 제 순호 가족이 갑작스런 화재(火災)로 인하여 온 가족이 다 죽었다고 관가(官家)에다 보고를 하였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런 박첨지의 악행(惡行)을 다 알고 있었지만 서로가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정 동영(鄭東榮)이라는 사람이 술이 취하여 주막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고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억울하게 죽은 제 문호의 귀신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작 박첨지는 모르고 있더라고?
그리고 훔쳐간 제문호의 황소가 박첨지 마구칸의 기둥에 고삐를 칭칭 감아서 죽었는데 그 얼마나 원한(怨恨)이
깊을까?”

물론 술이 취해서 정동영이가 자기도 모르게 해 버린 말이었지만 이 말이 박 첨지의 귀에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박첨지는 또다시 자기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악한 꾀를 내어서 정동영이가 술이 취해 돌아오는 길목에
자기 집에서 데리고 있던 불량배들을 숨기고 있다가 강도(强盜)를 만난 것처럼 위장을 하여 죽였다.

이 사건도 정동영이가 술이 취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나서 살해(殺害)를 당했다고 박첨지는 관가에
허위(虛僞) 보고를 하였다.

관가에서도 평소에 박첨지에게 자주 뇌물을 먹는지라 포졸들을 보내어 대충 마무리를 하였다.

이러다 보니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박첨지가 하는 일에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박첨지가 하는 모든 일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협조를 하고 있다가 보니 정 경화네 집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느 누구 한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비단옷을 휘감고 거만한 웃음을 띠우며 박첨지와 그의 아들 박대수가 신부들을 맞이하기 위해 화려하게 꾸며진
혼인(婚姻) 잔치 자리로 나왔다.

꼭두각시처럼 동네 이장(里長)을 맞아서 보는 곽 용태(郭龍泰)가 오늘 이들의 결혼 주례를 맞아서 진행을 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넓은 마당에 차일(遮日)이 쳐서 있고 병풍(屛風)과 결혼 예식상이 차려져 있는 앞에는 수탉과 암탉이
나란히 묶여져 있었다.

“신랑들은 입장을 하십시오!”

그러자 박첨지와 그의 아들 박대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예식 상(床) 앞으로 걸어서 나왔다.

“이제는 신부들이 나란히 입장을 하시오!”

그러자 박첨지 댁 하녀들에게 이끌려 청주 댁과 그녀의 딸 경화가 신부의 예복을 입고 입장을 하자 모두들
가까이로 몰려서 들었다.

사람들이 청주 댁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 예쁜 얼굴이 오늘따라 창백하게 굳어져 있었다.

“자 이제 신랑들과 신부들은 서로 마주 보고서 절을 올리도록 하시오!”

마을 이장인 곽 용태가 막 이 말을 하는 순간에 이 말을 들은 청주 댁과 그녀의 딸 경화는 마음속으로 행여나
하고 기다리던 일이 지금까지 전혀 일어나지를 않자 그만 낙심천만한 마음이 되어 차라리 일찍 자결을 하지
못한 후회스러움이 불현 듯 일어났다.

‘왜 일찍 자결을 하지 못하고 이런 수치와 수모를 당하는 가’

‘정말 어제 숲속에서 만난 그 아가씨는 그저 말로만 나를 위로를 하고 가 버렸는가?’

그러고 보니 자기 집에 따라왔던 두 여자도 아침 일찍 자기 모녀를 가마에 태워서 보내고 바람같이 사라진 것이
정말로 이상하였다.

두 모녀는 순간 똑 같이 비참한 현실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박첨지 댁 하녀들이 억지로 두 여자를 박첨지와 그의 아들 박대수와 마주 보게 하고 절을 막 시키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에서 아름다운 피리소리가 들려서 왔다.

갑자기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사람들이 놀라 멍하게 있는데 갑자기 지붕 위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한 여자가
큰 창(槍)을 잡은 채 사뿐히 날아서 내려왔다.

이런 모습을 보자 마을 사람들은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갑자기 일어났다.

누가 보아도 검은 옷을 입고 긴 창을 꼬나 든 채 살기(殺氣)가 등등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난 여자는
틀림이 없는 저승의 사자였다.

결혼 주례를 보던 마을 이장 곽 용태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오줌이 마렵고 금방 뒤로 자빠질 것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마당가에 서 있는 큰 대추나무 위에서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큰 칼을 들고는 서 있다가 사뿐히 뛰어서 내렸다.

이건 누가 보아도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형용이었다.

모두들 두 눈을 비비며 믿지 못할 광경에 정신이 빠져서 있는데 이번에는 높은 지붕위에서 오색찬란한 옷을 입은
여섯 명의 여자들이 제 각기 칼을 들고서 사뿐 사뿐 날아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이런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오금이 저리고 혼비백산하여 모두들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또 지붕위에서 피리소리가 들려서 오더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여자가 피리를 불고 있는 그 가운데
이 땅에서는 도저히 볼 수가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선녀(仙女)가 부채를 든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리를 불던 두 여자가 피리 불기를 멈추자 아름다운 선녀는 조금 전에 마당으로 내려선 여덟 명의 여자들에게
명령을 하였다.

“나는 지금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명을 받고 이 땅에 내려 온 옥녀(玉女)이다. 지금까지 박첨지의 온갖 추악한
행위가 하늘에까지 치솟아 내 오늘 너를 징치(懲治) 하러 왔노라! 거기에 서 있는 여덟 명의 사자(使者)들은
저 악한 박첨지와 그의 아들을 죽이도록 해라! 그리고 박첨지를 도와 지금까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온 불량배
들도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다 죽이도록 하여라!”

이 엄청난 말이 아름다운 선녀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검은 옷을 입은 여자의 날카로운 창이 번개같이 번뜩하더니
박첨지의 목이 뎅강 잘라져 나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겁에 잔뜩 질려서 떨고 있던 박대수도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바람같이 큰 칼을 휘두르니
목이 잘라져 나갔다.

그리고 오늘 잔치에 기분이 좋게 술을 마시며 취해 있던 불량 건달패들도 정신이 혼미하여 여섯 명의 여자들에게
감히 덤벼들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고 도망을 치려다가 모조리 그녀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결혼식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 혼비백산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제각기 도망을
쳤다.

그리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도망을 가서 문을 꼭꼭 걸어서 잠그고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를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도망을 치는 가운데 청주 댁과 그의 딸 경화도 덜컥 겁이나 재빨리 자기 집으로 달려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가 자기 집 방문 앞에 서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 문 좀 열어 주세요! 저 경수입니다.”

놀란 마음에 선뜻 잠근 방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계속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아들 경수입니다. 놀라지 말고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엄마! 오빠의 음성이 틀림이 없는데 문을 열어 볼까요?”

부르는 소리에 자세히 귀를 대고 듣고 있던 경화가 자기 엄마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기 아들인 경수의 목소리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마음을 굳게 먹은 경화가 방문을 열어서 보니 정말 자기 오빠가 마루 끝에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죽고 없는 박첨지 댁 며느리도 자기 오빠와 함께 서 있었다.

“아이고! 정말 경수 네가 살아서 돌아 왔구나!”

비로소 청주 댁은 정신을 차리고 달려 나가서 자기의 아들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댔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온 동네에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더니 집이 불타는 소리가 났다.

또 다시 놀란 마음에 경화네 식구들이 겁에 질려서 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와 보니 박첨지의
고래등 같이 큰 기와집이 벌건 불기둥에 쌓여 불에 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박첨지의 집은 밤이 늦도록 불에 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 어느 누구하나 박첨지의 집으로 불을 끄러 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홀로 외톨이가 된 박첨지의 며느리를 자기의 아내를 삼겠다고 경수가 말을 하자 청주 댁은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저 불쌍한 여자를 네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니 나는 허락을 할 수 밖에 없구나!
그 동안 둘이서 곳간에 갇혀서 이루 말 못할 고생을 했으니 이것도 너희들의 팔자라면 팔자지”

그러자 박첨지의 며느리는 청주 댁에게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어머니! 절 받으세요.”

“그래 오냐”

청주 댁도 이제는 자기의 며느리가 된 박첨지 며느리의 절을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다.

얼마 뒤에 관가에서 사람들이 나와 마을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죽은 박첨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날 사건의 현장에서 결혼식 주례를 보았던 이장인 곽 용태의 말이 가관 (可觀)이었다.

“그날은 정말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옥녀(玉女)라는 선녀(仙女)가 내려와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온 천상(天上)의 사자(使者)들에게 명령하여
박첨지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들을 도와서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불량배들을 인정사정 두지 않고
모조리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다 박첨지의 집에서 몰아내고 불을 질러서 깨끗이 태우고는
홀연히 하늘로 다 올라갔습니다.”

이장인 곽 용태의 말에 관가에서 조사를 하러 나온 관원(官員)들은 불타버린 박첨지의 집터를 둘러보고는
관아로 돌아가 이장인 곽 용태에게 들은 말대로 그대로 보고를 하였다.

고을 사또도 이런 놀라운 보고를 받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앞으로 모두가 바르게 살고 박첨지의 집과 같이
화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을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리하여 박첨지 며느리와 결혼을 한 정 경화의 오빠인 경수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며 경화도 모처럼 아무
염려가 없는 행복한 처녀의 시절을 다시 보내게 되었다.

그 동안 근심에 쌓여있던 청주 댁도 좋은 며느리의 정성스런 섬김에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후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정 경화네 집을 가리켜서 하늘에 계시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시는 집이라고 하여서 해 마다 쌀과 보리를 거두어 갖다 바쳤다.

그리고 정 경화가 나무에 목을 매었던 그 숲을 가리켜 선녀의 숲이라고 하였으며 선아 아가씨가 부채를 들고
기대어 생각에 잠겨서 있던 큰 소나무는 선녀의 나무라고 온 동네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가지를 못했다.

그리고 선아 아가씨와 여덟 명의 여자들이 솥을 걸고 밥을 지어서 먹었던 자리는 선녀들이 이 땅에 내려와 밥을
지어서 먹었던 성스러운 자리라고 하여 여자들이 그곳에 가서 밥을 지어서 먹으면 애를 잘 낳는다고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 나갔다.

그러자 전국 각지에서 여자들이 몰려들어 그곳에서 밥을 지어서 먹고 가서 정말로 애를 쑥쑥 잘 나았다.

하도 그곳에 여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서 들자 혹시나 선녀의 숲에 불이 날까 봐 고을 사또는 그 곳에 관리원을
두어 잘 지키게 하고 산불 조심을 철저하게 하게 하였다.

박첨지의 많은 논과 밭을 집안 문중 사람들이 하늘에 계시는 옥황상제님께 벌을 받은 집안의 땅이라고 아무도
겁이 나서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지라 할 수 없이 문중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의논을 한 끝에 경수의
아내가 된 박첨지 며느리에게 모두 주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졸지에 정경화의 집은 그 지역에서 제일 논과 밭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되었다.

그 전에 박첨지에게 붙어서 살던 머슴들과 하녀들이 경화네 집으로 다시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부잣집 마나님이 된 경화의 어머니 청주 댁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한참 동안을 분별을 못하다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기의 며느리와 함께 지혜롭게 집안 살림을 잘 꾸려서 나갔다.


“맹녀님! 이제 완전히 충청도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선아 아가씨를 가까이 모시고 가던 정희(貞喜)가 말했다.

“그렇구나! 이제 개성도 얼마 남지를 않은 것 같네”

선아 아가씨가 고운 음성으로 대답을 했다.

“이제 경화네 집도 아무 걱정이 없이 잘 살겠지요?”

함께 걸어가던 문숙 낭자가 선아 아가씨에게 물었다.

“그렇겠지 이제 경화도 행복하게 잘 살겠지”

선아 아가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날 박첨지의 지붕에서 검은 옷을 입고 뛰어내린 여자는 바로 미주였고 큰 대추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붉은
옷을 입은 여자는 옥자였다.

이들이 두 모녀를 가마에 태워서 보내고 숲으로 달려오자 짐 속에 가지고 다니는 검은 옷과 붉은 옷을 입게 하고
나머지 여자들도 오색찬란한 옷을 입게 하였다.

그리고 선아 아가씨의 앞에서 피리를 불던 여자들은 바로 순례와 정순 이였다.

또한 미리 수빈(樹彬)이와 서진이를 인근 마을로 몰래 보내어 그 동안 이곳에 일어난 박첨지의 추악한 행동에
대하여 낱낱이 알아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선아 아가씨는 박첨지야말로 정말 이 마을에서 없어져야 할 인간이라고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무능한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는 박첨지의 그 엄청난 세도를 절대로 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선아 아가씨는 자각을
하고 정말로 하늘에서 박첨지와 그의 아들을 징계를 한 것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모처럼 그런 연극
(演劇)을 하였던 것이다.

“순례와 정순이 두 사람 정말 피리를 잘 불던데”

미주가 두 사람을 향하여 말을 하자 순례가 미주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다음번에는 미주 언니가 피리를 한 번 불어 봐 힘이 세어서 피리 소리가 한양(漢陽)까지 들릴 테니까”

“정말 그럴까나?”

미주도 이 말을 하고는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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