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충실하기 - 9부

대입 본고사를 치르던 날 난 친구들과 어울려 동인천역 앞 용동을 헤매고 다녔다.

오랜만에 해방감으로 튀김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 같은 수험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서 용동 큰 우물 튀김골목은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장발과 포크송 청바지가 젊음의 심벌이던 시절, 난 기른지 얼마 안 된 상고머리에 혜자아줌마에게 선물 받은 미제 가죽점퍼와 새로 장만한 리 청바지를 입고 한껏 우쭐대고 그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사실 너도나도 없는 시절이어서 고삐리의 마지막 딱지를 떼는 행사는 각자의 자금사정에 따라 유동적이었지만 그래봐야 다 거기서 거기로 결국 끝에는 짬뽕 술에 취해 길가에 토악질을 한다던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괜히 시비가 붙어 싸움질로 파출소 신세를 지는 게 보통이었다. 하여간 그 시절 다운타운가에 가장 난폭하고 개념 없는 인물들은 고삐리 졸업생과 첫휴가 나온 군바리였으니 웬만큼 눈치를 아는 사람들은 그들을 변 보듯 피하기도 하였다.

우리 일행은 튀김골목 맨 안쪽에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그땐 튀김집마다 디제이박스가 있어 장발에 뭔가 우수에 젓은 듯한 표정으로 LP판을 고르던 디제이가 제법 인기를 모으고 있던 때다. 홀에 조금 있는 공간은 흥이 난 취객들의 후로링으로도 활용되곤 하였다.

그 집은 들어가자 여느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보통은 시끄럽고 신나는 댄스팝과 포크송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 집은 마침 그때만 그랬는지 무디부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계속 지켜봤는데 손님들도 분위기 때문인지 차분하게 담소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멜랑코리맨, 솔리타리맨 등 나오는 음악도 그렇고 뭐 고독과 싸우는 청춘들이 모인 곳 같았다. 아마 술집마다 컨샙을 달리 해서 손님을 끄는 것 같았다.

난 리퀘스트 쪽지에 마시모 라니엘리의 노래를 조영남이 번안한 내 생애 단 한번만을 적어 냈다. 한참 후에 디제이의 멘트가 먼저 나오는데



‘ 16번 테이블의 신청곡입니다. 조영남의 내 생애 단 한번만, 후후 예쁘게 생긴 남자 분들인데 아직 그런 사랑은 못해보신 모양이죠? 음 ~~ 내 눈이 정확하다면 오늘 대입 치르신 학생들 맞죠? 호호 ’



디제이가 여자였다. 그땐 개나 소나 다 머리를 길러 어두운데 선 남녀 구분을 못하기 일쑤 여서 나도 으레 남자겠거니 여겼는데 목소리를 듣고 다시 바라보니 긴 생머리의 여자디제이였다. 여자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 계속 말을 붙인다.



‘ 맞아요? 네? 후후 거기 가죽잠바의 핸섬가이 ... 네?’



나를 지목하는 소리에 난 당황스러워 괜히 옆자리를 둘러보는 척 했지만 친구 녀석들이 다그치며 대답을 성원하길래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시험 잘 봤어요? 네 망쳤다구요? 호호 에이 공부 잘할 거 같은데 뭐, 총각! 실례 안 되면 어느 학교 봤어요? 응? 어느 학교?’



난 무척 당황스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리 늙은 식모와 혜자아줌마의 보지를 섭렵한 경력이 있다지만 밖에선 어쩔 수 없이 숙맥인 고삐리 아닌가.

난 모기소리마냥 조그맣게 대답했다.



‘ 으응, 어디? 인x대 ? 어머, 거 봐 공부 잘하잖아요. 무슨 과? ’



이건 술 먹으러 왔다가 면접을 보는 건지 계속 말을 이어 붙이는데 쪽팔려서 뒤통수가 뜨거웠다.



‘ 기계과, 오호, 개과, 까르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저 학생 순진무식한 공대생이네요 그것도 그 유명한 개과 흐흐, 그 학교 공대의 신입식 알죠? 그 옆 동네 학익동 흐흐, ’



아마 내가 지원한 학교 옆에 학익동이라는 집창촌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신입생 환영파티에 단골로 애용되는 장소로 알고 있다. 당시 공대는 거의가 남자들이었고 더군다나 기계과는 경향각지의 단순무지한 머슴애들이 지원하는 경향이 짙어 연애라고는 별 재주가 없던 위인들이 많아서 신입생 환영회 때 몰아서 총각딱지를 떼어주는 게 당시 선배들이 베푸는 큰 시혜로 통하던 시절인 거였다. 그나저나 난 아직 그 학교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주목의 대상이 되니 슬그머니 놀림을 당하는 기분도 들고 족팔리기도 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 호호 기분 안 나쁘죠? 핸섬가이, 실은 이 누나도 그 학교 다녀요, 다시 말해서 선배란 말이시, 흐흐, 암튼 꼭 학교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며 신청한 곡 띄워드릴게요.’



여자는 긴 생머리를 어깨 밑까지 늘어뜨리고 칼라가 넓고 버튼이 많이 달린 남방에 스님들 묵주 같은 긴 목걸이를 패용하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화장기 없는 쌩얼이었다.

난 조금 전 까지의 여러 시선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선망의 대상인 여자디제이의 눈도장을 받은 거 같아서 아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소주와 맥주를 합해 마시고 적당히 취기가 오를 즘 아까의 그 여자디제이가 우리의 자리로 왔다.



‘ 교대했어요, 음 나 잠깐 앉아도 돼요?’



여자는 우리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의자 하나를 빼내어 앉는다.

나는 술 한 잔을 따라 주며 괜히 물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 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에요?’



청바지에 어울리지 않는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그녀는 상에 놓였던 담배를 한 개비 빼어 문다. 우리 일행은 도발적인 그녀의 접근에 기가 눌려 서로 눈치를 보았지만 다들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게 웬 떡인가 하고 군침을 흘리고 있었으리라.

여자는 내게 각별히 그 학교에 대한 정보며 캠퍼스생활 내지는 주변 잡담까지 해주었는데 난 친구 녀석들의 눈총도 아랑곳없이 진지하게 그녀의 입술 근처에 내 시선을 고정하고 경청하였다. 그렇게 술이 오거니 가거니 일행은 취해갔다.

어느 덧 폐점이 가까운 시간, 대취한 우리는 밖으로 나왔는데 친구 녀석들과 큰길가 택시 승강장 근처에서 우왕좌왕하던 기억만 어릿할 뿐 난 그만 필름이 끊어지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난 골이 패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겨우 떴는데 낯선 곳이다.

여관이라도 들어 온 걸까, 사방을 들러보니 여관 같지는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방구석엔 책상 하나 그 옆으로 비키니장 하나 그리고 이불을 쌓아 놓은 작은 수납장이 있었다.

난 웃옷만 벗고 자고 있었는데 베갯머리엔 물주전자가 있다.

난 주전자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갈증을 풀고 잠시 어젯밤을 기억해 보았지만 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기는 어디지? 친구놈 집도 아닌 것 같은 데



‘ 깼어? 머리가 아플 텐데 괜찮어?’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여자가 들어온다. 어젯밤 튀김집의 그 여자디제이다.



‘ 놀랬지, 흐흐 술이 떡이 되어 가게로 되들어온 거 기억해? 나보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쓴 거두, 학교선배 대접 톡톡히 하더군, ㅎㅎ ’

‘ 아 그랬군요, ,,, 미안합니다. 근데 여긴? ’

‘여긴 내 자취방이야, 이고오느라 무거워 죽을 뻔 했어, 좀 더 잘래?’ ‘ ’ 아뇨, 일어나야죠, 근데 선배는 어디서? ’

‘ 응, 옆방 친구방이야, 네가 누구냐고 난리가 났어, 흐흐 아참 그리구, 우리 아직 통성명도 안했지, 난 유혜선이야 영문과 3학년 이젠 졸업반 되지.’

‘ 이거 초면에 너무 큰 실례를 했네요 미안합니다. ’

‘ 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맘에 없으면 것두 받아들였겠어? 근데 이름은 말 안 해줄 거야?’

‘ 아참, 호진이라 합니다. 정호진 ’



혜선은 잠시 나가더니 커피를 한잔 내온다. 치마 속을 감추느라 다소곳이 잔을 내려놓는 폼이 엇저녁과는 사뭇 생소하다.



‘ 어떻게 생각하던 내방에 남자는 첨이야. 후후 이상하지? 난 생전 이런 일이 있을지 몰랐는데,



난 이것저것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왠지 설레발 같아서 그만 두었다.

디제이 알바를 하는 영문과 자취생 그리고 처음 만난 날 여자의 집에서 자게 된 기분 뭐 삼류드라마 속 각본 같은 경우지만 싫지는 않다.

치마 밑으로 나와 가지런히 옆으로 접혀진 혜선의 종아리를 보니 또 욱하고 좆이 화를 낸다. 시도 때도 없이 서는 음란한 좆이 얄밉다. 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혜선의 종아리만 응시하였다. 혜선도 그걸 의식했는지 다리를 고쳐 앉는다.

괜히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더 계면쩍다.



‘ 후후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왜 여자가 첨부터 집으로 끌어드리니 이상하지? ’

‘ 아뇨 그게 아니구 ,’

‘ 후후 그냥 맘대로 생각해 호진이가 상상하는 거 다 틀린 건 아닐 거야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난 그냥 호의만 보이고 싶어 우리 학교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데 대한 호의, 그리고 첫인상이 내 맘에 드는 것에 대한 호의, 그리고 기타 등등 뭐 그쯤의 호의 호호 혹 모르지 우리가 애인관계로 발전할지는 ’



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혜선의 옆얼굴을 보며 순간적으로 여러 궁리를 했다. 지금 이 순간 확 덮치면 저 여자가 받아 줄까, 아니면 호통 치며 따귀라도 후려칠까, 그도 저도 아니면 못이기는 척 겨우겨우 한 번 주지도 않을까, 그저 한 마리 짐승처럼 빠구리에만 집착하는 내가 스스로 얄밉기도 했지만 그런 분위기 그런 정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다시 혜선의 발을 주시했다 달리 눈을 둘만한 곳도 없었거니와 내 눈을 의식한 듯 자꾸 자세를 고치는 혜선에게서 은근히 장난기도 발동했던 것이다.



‘ 너 자꾸 뭘 보니? 민망하게 이제보니 너 좀 응큼맨이구나. 후후 ]

‘ 발이 예뻐서요, 난 어릴 적부터 여자의 발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실이었다. 어릴 적부터 여자의 발뒤꿈치를 보면 묘한 상상이 생겼다. 특히 샌들을 신은 여자의 발뒤꿈치를 보면 욕정이 절로 생기곤 했다.



‘ 자자 실컷 봐라 내발 못생겼어 얘, ’



혜선은 내 앞으로 감추기만 했던 발을 쑥 내민다. 엄지발가락이 앙증맞게 동그랗다.

내 관심사항인 발뒤꿈치는 역시 갸름한 초롱꽃잎처럼 바르르 떨며 날 자극한다.

난 그 발을 손으로 잡아채듯 끌어당겼다. 그리곤 재빨리 입으로 엄지발가락을 물었다.



‘ 어머, 어머, 얘 얘 이거 놔 왜 그래.’



혜선이 발을 움츠렸지만 난 입에 문 그녀의 엄지발가락을 놓지 않았다.



‘ 얘 얘 간지러 어머 어머 간지러워 얘 흐흑,’



혜선이 심하게 몸을 비틀며 발을 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난 그녀의 양발을 더 힘껏 움켜쥐고 엄지발가락을 혀로 돌려가며 빨았다. 혜선은 정말 간지러운 듯 몸을 배배꼬며 내 머리를 밀친다.



‘ 아흑 정말 안 돼 아아 ~~’



난 그녀의 종아리까지 입으로 핥았다. 매끄러운 종아리의 감촉이 더 내 혀를 자극한다.



‘ 아흑 , 정말 왜 그래 잠깐잠깐 잠깐만 놔봐 얘기 좀 하고 응 , ’



혜선이 거의 애원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지만 한 번 돌아버린 내 이성은 쉽게 혜선의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 혀는 점점 더 위로 북상해서 그녀의 치마 속으로 까지 올라갔다.

그녀의 넓적다리 부근 하얀 속살이 보물섬처럼 짜잔하고 나타나자 난 더 흥분되어 이미 좆은 분기탱천하였다. 난 마구 넓적다리에 침을 묻히며 난폭하게 입술을 비볐다.



‘ 아흑, 안돼 정말 안 된단 말야, 오늘은 ’



내 머리를 움켜쥐었던 혜선의 손에 힘이 풀리며 그녀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몸을 떤다.

난 오늘은 안 된다는 말이 뭘 뜻하는 건지 궁금하여 잠시 입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 호진아 오늘은 안 돼 정말 다음날 다음날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 .’



난 잠시 의아하여 그녀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안 되고 다음엔 된다는 뜻인가 아님 이 순간을 모면해보자는 임시방편적인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괜히 어설프게 이렇게 끝을 내다간 어떤 반격을 받을지도 몰라 , 난 다시 그녀의 넓적다리에 입을 가져갔다. 그리곤 더 힘을 주어 한 움큼씩 물고 빨아대었다.



‘ 아흑 정말 얘가 왜 이래 정말 오늘은 아흑, ’



내가 그녀의 팬티위로 손을 가져가자 더 놀란 혜선은 내손을 잡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치고 혜선의 보지둔덕에 손을 얹었다. 근데 이상하다. 팬티 속으로 무언가 물컹 잡힌다. 생리대였다. 혜선은 멘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늘은 안 된다고 했구나. 난 혜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바로 정색하기가 더 민망해서 그냥 보지둔덕을 가볍게 문지르며 그녀의 눈을 찾았다. 혜선은 부끄러운지 눈을 감고

내 손을 슬그머니 밀어낸다. 난 다시 그녀의 팬티를 슬쩍 걷어 속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여자의 생리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다. 생리대 겉으로 피멍울이 맺힌 게 보인다.



‘ 아 ~~ 얘가 정말 , 그걸 드럽게 왜 보니? ’



혜선이 다시 기겁을 하며 손을 치고 눈을 부릅뜬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지만 혜선의 눈동자에서 난 복합적인 언어를 발견해 낸다. 분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또는 애원하는 듯한,...

난 멋쩍게 자세를 고쳤다. 좆이 완전히 수그러진 건 아니지만 조금은 가라앉아서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두기엔 이 자리가 너무 거북스러워 난 다시 그녀의 목을 살그머니 잡고 키스를 시도했다. 이번엔 혜선의 반응이 다소곳하다. 입 속으로 혀들이 서로 얹혀질 때 오히려 그녀의 손에 힘이 더해져 내 목을 끌어 앉는다. 우린 진한 키스를 했다.



‘ 후후 , 너 이제보니 아주 선수구나, 난 순진한 고삐리인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잘 참아줘 고맙다. 그리고 첫날부터 이렇게 덤벼드는 게 어딨니? 선배한테 너 까닥 잘못하면 앞으로 학교생활이 고달플 수 있어.응 ? ’

‘ 내가 그 학교 들어갈지 어떻게 알아요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

‘ 내가 엊저녁에 니 친구들한테 들었어 뭐 니 실력이면 합격은 따논 당상이라던데, 왜? 그 학교가 싫으니? 혹 너 나 땜에 그 학교 못 다닌다는 거 아냐? 후후’

‘ 아녜요 그 반대에요. 떨어지면 재수해서라도 그 학교 들어가야죠, 선배 때문이래도 .’

‘ 훟 얘 너 재수하면 나 졸업하고 만다. ’

‘ 아 그런가요? 그럼 올해 꼭 들어가야죠.’

‘ 뭐야 너 나한테 필이 꽂힌 거야? ’

‘ 네 선배를 정말 좋아할 거 같애요.’

‘ 크크 너 괜히 한 번 따먹을려고 입발린 소리 하는 거지? ’

‘ 아녜요, 정말, 난 ......’



혜선은 옷을 추스르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댕기고 내게 준다.



‘ 얘 호진아 이제 그만 가봐라 여기 너 선배들 많이 살어 ,나중에 학교에서 마주치면 뭐랄래? 그리고 나도 할 일이 있고, ’



난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일어났다. 좆이 다 죽은 건 아니어서 바지 위가 조금 더부룩하다. 그걸 본 혜선이 손으로 거길 툭 치며 자식 하고 씩 웃는다. 역시 선배라는 건 하시라도 위용을 과시해야 하는 그런 지분이 있다.

난 그녀의 집을 나서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 근데요 선배 아까 그 말 믿어도 되죠? ’

‘ 응 아까 뭐 무슨 말?’

‘ 아까 내게 그랬잖아요 다음날 만나서 ......’

‘ 흐흑 요거 그 말을 믿니? ’

‘ 그럼 아니란 말에요? 이젠 못 만나는 거예요?’

‘ 흐흐, 글쎄 모르겠어요 후배님 ,후후 ’

‘ 나 여기 다시 와도 돼요? ’

‘ 안 돼.’

‘그럼요? ’

너 기계과라고 그랬지? 내가 함 생각나면 연락할게 응 ? ‘



혜선의 집을 나와 골목을 벗어나니 인X대의 뒷담이 보인다. 바로 학교 근처였던 것이다.



다음다음날 집으로 박기사 색시가 찾아왔다.

장례식장에서 본 게 벌써 한 달여를 지났나 보다. 집에 보관되있던 박기사의 물건, 옷가지며 손목시계 신발 따위 유품이랄 것도 없는 잡동사니 몇 점을 가지러 온 거였다.

엄마가 김장김치 몇 포기며 생선 몇 가지, 애기옷등을 준비해놓고 박기사색시를 부른 모양이었다. 장례식 때 보다는 많이 기력이 회복된 듯 보였다. 발인하는 날 아침 난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왔었다. 시신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뭐하기도 하고 속도 쓰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둥지둥 나오면서 문밖에 다다를 즘 뒤돌아보니 박기사색시가 내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서지만 눈이 마주치자 난 소름 비슷한 전율을 느꼈다.

박기사색시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랜 듯 고개를 돌렸다.

이럴 바엔 인사라도 하고 나올 걸 괜히 도둑처럼 뒷걸음치다 딱 걸린 모양새가 되었다.

다시 들어가 가겠다고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미 나와 눈이 마주친 형국에 쑥스럽고 멋쩍은 건 다 치러진 상황인데 다시 들어간다는 게 더 이상할 거 같았다.

그때 나와 마주친 박기사 색시의 눈빛은 좀처럼 지우기 힘든 거시기한 호소가 있었다.

난 몇 날을 자책감에 시달렸다. 딱히 뭐랄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박기사색시는 애기를 포대기에 싸 업고 왔다. 제법 추운 날씨라 아기에게 모자를 씌우고 그 위에 담요를 덮었다. 엄마가 근황을 물으니 그냥 실웃음 비슷하게 그럭저럭 살아요 라고 대답한다. 엄마가 애기를 받아 아랫목에 눕히고 밥상을 차려내 나왔다. 엄마는 내 밥도 챙겨왔지만 왠지 난 겸상하기가 내키지 않아 자리를 피하려는데 박기사색시가 날 바라보는 눈빛에서 예전 장례식장에서 도망치듯 나오다 마주쳐진 그때의 모습이 연상돼 다시 엉거주춤 밥상 앞으로 엉덩이를 갖다 댈 수밖에 없었다. 밥상을 물리고 차 한 잔을 나누는 동안 박기사색시는 별 말이 없었다. 엄마가 이것저것 씨잘데 없는 말을 붙이면 그저 건성으로 마지못해 대답하는 투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고 박기사색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엄마가 내게 박기사 집까지 바래다주라고 말한다. 애기를 업고 양손에 짐을 들고 간다는 것도 그렇고 또 혼자 들기에는 짐이 너무 많았다. 난 두말없이 그러마고 먼저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박기사의 집은 버스를 내리고도 한참을 꼭대기로 올라가는 산동네였다. 수도국 탱크가 있어 수도국산이라 불리던 산기슭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그런 동네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아 좁은 언덕길엔 연탄재 투성이었는데 여간 위험스럽지가 않았다.



‘ 어휴, 여기 애기 데리고 다니려면 조심해야 겠어요.’



둘이 같이 우리 집을 나선 후 처음으로 내가 말을 열었다. 뒤에 오던 박기사색시는 내 말에 그냥 조그만 목소리로 그렇지요? 라고 답했다.

박기사의 집은 산꼭대기 바로 밑에 있었다.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손바닥만한 마당이 있고 마당 한켠에 변소가 있는 전형적인 산동네 집이었다. 그래도 담벼락은 세워져있으니 방문 밖이 바로 길인 벌집들 보다는 훨씬 나았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마루에 걸터앉으니 박기사색시가 추운데 방으로 들어와 몸 좀 녹이고 가란다. 오자마자 바로 가는 것도 그래서 난 방으로 들어갔다. 두어 평쯤 한 안방은 아랫목에 이불이 깔려져있다. 박기사색시는 이불 한켠을 걷어 올리고 나를 아랫목에 앉혔다. 애기를 내려놓는데 애기가 울기 시작한다. 그냥 칭얼대는 게 아니었다. 박기사색시가 얼추 달래면서 나를 보고 옅은 웃음을 짓는다.



‘ 애가 배고픈 모양이에요.’

‘ 어, 그러면 어떡해... 뭘 먹어야죠, 우유를 ......,’

‘ 얜 젖을 먹였어요, 그래서 어디 맡기기도 힘들어요, 먼저 번엔 마침 옆집 아줌마도 젖을 맥이는 애가 있어서 맡길 수 있었는데, ’

‘ 아, 네, 그럼,... ? ’



박기사색시는 잠시 망설이더니 애를 안고 돌아앉아 윗도리를 살짝 열고 젖을 꺼내 아이의 입에 물린다. 내겐 젖통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그 자리가 거북해졌다.



‘ 그럼, 난 그만 가볼까 봐요, 애기 식사하는데도 방해가 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시늉도 하기 전에 박기사 색시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斜視인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 보인다.



‘ 좀 더 있다 가면 안돼요? 이 모습이 보기 흉해서요? ’

‘ 아뇨 아뇨 전혀 그런 건 아니구여, 난 그냥 내가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

‘ 조금 더 있다 가세요 이왕 여기까지 온 손님인데 이따 저녁이라도 들고 가세요.’



난 다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다시 십여 분의 침묵이 흐르고



‘ 애아빠는 충주 산에 뿌렸어요. 거기가 애아빠 고향이거든요. 그냥 송도 앞바다에 뿌릴까 하다가 왠지 애아빠가 바다를 싫어할 거 같아서... 난 죽으면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었거든요,’

‘ 아, 네, 그럼 아주머니도 고향이 충주세요? ’

‘ 아뇨 난 서울이에요, 뚝섬, ’

‘ 아, 네, 그럼 아저씨와는 어떻게? ’

‘ 흠 ~~ 그건 사연이 길어요 ’

‘ 아, 네, ...’



그 사연이 뭘까, 난 박기사의 그 우람했던 자지를 떠올리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본다. 저 가냘픈 여인이 박기사의 그 큰 자지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전혀 색기가 있어 보이진 않는데, 아냐 내숭일지도 몰라 오히려 저런 여자가 더 색을 밝힐지도 모르지, 난 박기사의 좆질 에 죽어나가던 엄마의 모습에 박기사색시를 오버랩 시켰다.



‘ 근데 아주머닌 지금 나이가 ? ’

‘ 훗 스물넷이에요.’

‘ 네? 그럼 아저씨랑은 몇 살이? ’

‘ 나랑 애아빠랑 띠동갑이에요 ’



열두 살 차이, 난 박기사가 그것보다도 서너 살은 더 먹었으리라 생각했었다.

박기사색시를 병원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스물 대여섯은 됐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저씨라고는 이상하고 총각이라고도 뭐하고, 학생도 그렇고,’

‘ 그냥 호진이라고 부르세요, 정호진이에요,’

‘네 그럼 호진씨가 낫겠네요.’



호진씨 ? 것두 나쁘진 않네 하긴 나와 몇 살 차이도 아닌데 흐~~



‘ 애기 이름이 ?... ]

‘ 명석이에요, 박명석 내 이름은 최재금이구요.’

‘ 아, 네, ’



내가 이름까지 물어 본 격이 되었다.



‘ 애아빠는 내 형부였어요,’

‘ 네 ? ’

‘ 애아빠는 우리 집 사환이었어요 아버지가 조그만 인쇄소를 했었거든요 성수동에서,

근데 그게 그만 불이나 다 타버렸어요, 쫄딱 망한 거죠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도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

‘ 아, 네 그럼 언니는 ? ‘

‘ 언니는 식도 안올리고 애아빠와 사는 꼴이 되었죠 우린 자매뿐이었거든요, 그때 언니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었어요, 말이 결혼이지 반강제적으로 데리고 살 은거죠, ’

‘ 아, 네, 그런데 언니는 지금 ? ’

‘ 언니도 죽었어요. 6년 전에 애 아빠가 사람을 패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때 농약을 마셔버렸어요.’

난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놈의 집안 꼴이 저렇단 말인가. 부모가 죽고 남겨진 자매가 한 남자와 차례로 아내가 되고, 난 머리가 복잡해졌다. 무슨 말을 이어갈지 몰랐다.



‘ 언니는 그 전에도 정신 병력이 있었어요. 두어 번 병원에 입원도 했었구요, ’

‘ 아, 네, 그런데 아주머니는 어떻게 아저씨와 ..?

“ 살게 됐냐구요? 후후 그게 좀 그래요 ‘



재금이 한숨을 내쉬며 방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 아, 뭐 꼭 듣고 싶은 건 아녜요, 말하지 않으셔도 되요 괜히 내가 아픈 곳을 찌른 턱이 돼 버렸네요 ,’

“ 후 ~~ 그래요 그건 내가 지금 호진씨 한테 말하긴 뭐 하네요. 우리 그만 딴 얘기해요 ‘



재금은 아이가 물고 있던 젖을 빼고 바닥에 눕힌다, 옷매무새를 미처 다듬지 못해서 젖무덤이 살짝 보이는데 하얀 속살의 젖이 잠깐 출렁거린다.

잠시 뒤 밖으로 나간 재금이 부엌에서 한참을 있더니 저녁상을 내온다.

점심을 건성으로 먹었던 터라 난 시장기를 느껴 사양하지도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엄마가 보내 준 김치를 썰어 내왔는데 그만 꿀맛이다.

이제 스물네 살의 젊은 처자의 살림맵시가 예사롭지 않다.



‘ 애아빠 보상금으로 조그만 분식집이라도 해 볼 참인데 저 녀석 때문에 고민이에요 .’

‘ 아, 네 , 그렇겠네요, 정말 이제 아주머니도 어떻게든 생활전선에 뛰어야 할 판이죠? 근데 애기는 맡길 때가 전혀 없으세요? ’

‘ 원래 아버지 엄마가 다 이북 분이세요 전쟁 통에 내려오셔서 일가붙이도 없어요.

‘ 아저씨 쪽은 ? ’

‘ 애아빠는 고아원 출신이에요 아버지가 애아빠 열아홉 살 떠거머리 때 데려다 일을 가르쳤죠.’

‘ 아 네, ’

얘기를 들을수록 사연은 점점 더 기구해진다.

밥상을 마주하고 있자니 재금의 표정은 조금 밝아진 듯하고 간간이 눈웃은을 보이는데 알아챌 듯 모를 듯한 사시가 묘하게 나를 끈다.

그렇게 저녁상을 물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밖은 깜깜해졌다.

버스를 타려면 여기서도 한참을 내려가야 하고 버스시간도 걱정이 된 나는 아쉽지만 슬슬 일어날 채비를 하며 재금의 눈치를 보았다. 오고가는 말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말꼬리는 길어서 우리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갔다.



‘ 어유 벌써 열한시가 다 되가네 나 이만 일어나야겠어요. 아주머닌 그냥 계세요 나오시지 말구요 ’



내가 궁둥이를 들자 재금은 잠시 머뭇대다가 따라 일어선다.



‘ 아니, 일어서지 마시라니까요 번거롭게 그냥 계세요 나 혼자 갈 테니까 ’

‘ 마루에 불좀 키구요, 잘 안보일 거에요. ’



먼저 마루로 나온 재금이 전등불을 켰다. 난 신발을 신으며 재금에게



‘ 오늘 저녁밥 정말 맛있게 얻어먹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 얘기도 참 고마웠구요. 언제 기회가 다면 다시 뵙죠.. ’

‘ 저저, 저기요, ’

‘ 네 아주머니 ’



재금의 한쪽 손이 잠간 내 몸에 닿듯 하더니 다시 내려간다.



‘ 저, 호진씨 오늘 여기 윗방에서 주무시고 가시면 안 되나요? 나 솔직히 오늘 좀 무서워요.

그냥 조금만 제 말동무하다가 저 윗방에서 주무시고 가시면 안 되나요?‘



재금의 눈이 어느새 젖어있다. 전등불에 어우러진 재금의 눈매 그 사시의 모습이 내게 조그만 알전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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