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했습니다 - 2부 2장

강의는 순조롭게 진행이됐다. 처음에는 70명정도가 신청을 해서 100명이 들어오는 전산실이 제법 여유가 있었는데 1주일쯤 지나자 청강생들로 빈자리가 모두 메워졌고, 몇몇은 자리가 없어 노트북으로 수업을 들을정도로 강의는 인기를 끌었다.

주희는 항상 가장 먼저와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주희도 수업시간에는 우리관계를 티를 내지않을 정도의 분별은 있어서 그냥 열심히 수업듣는 학생정도로 보였다.

물론 수업후에는 돌변해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데이트하자고 덤벼들긴 했지만...



"저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왠 여자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뒤로 돌아보자 30대초중반으로 보이는 세련된 여자가 책을 몇권 안아들고 서있다. 처음보는 여자다.

"저 말이신가요?"

"예."

"무슨 일이신지.."

"혹시... 민수림씨라고 아세요?"

어라? 이 여자가 어떻게 형수를 알지?

"예. 제 형수님이신데.. 어떻게.."

"아~ 역시.. 한 15년쯤 전에 이 학교에 오신적 있으시죠?"

어라라? 이 여자 무슨 점쟁인가? 도를 아십니까아냐?

"그걸 어떻게.."

"맞구나.. 저 모르시겠죠?"

당연히 모르지..ㅡㅡ 내 인생에 여자가 몇명이나 된다고 이런 미녀를 기억못하겠나.

"훗~ 하긴 모르는게 당연하지"

이 여자 모야...ㅡㅡ;

"전 회화과 부교수로 있는 최유진이라고해요. 수림이랑 동기예요"

"아~ 그럼"

그제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15년전에 형수와 한번 학교에 왔을때 본 형, 누나들 중 한명인가보다.

"예~ 안녕하세요~ 어떻게 절 알아보셨네요"

"호호~ 전 딴건몰라도 잘생긴 남자는 잘 기억하거든요~"

"하하;"

"사실 그때 그림이 워낙 인상적이었고.. 수림이 장례식때....."

"아.... 그러셨구나. 그때도 오셨었나보네요. 제가 그때 워낙 정신이 없어서"

"네. 이해해요.. 저도 그소식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사실 수림이랑 그렇게 사이가 좋은편은 아니었지만, 그애가 그렇게 갔다는 소릴 들었을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참 좋은애였는데.."

"네...."

갑자기 형수생각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15년전에 겨우 두번봤는데 용케 알아보셨네요~ 기억력 진짜 좋으시다~"

"호호~ 잘생긴 남자는 기억한다니까요~"

"그럼 저도 누님 안잊어먹겠네요~ 이렇게 미인이시니~"

"호호호~ 누님? 그때는 부끄러워서 어쩔줄 모르더니 넉살이 많이 늘었네~ 뭐 기분 나쁘지 않네요"

말뿐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 기분이 좋은듯했다.

그러다가 시계를 보더니

"아~ 나도 수업시간이 다되서.. 다음에 식사라도 한번해요~^^"

"예. 그럼 다음에 뵙죠"

그녀가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간다. 형수랑 동갑이면 30중반을 훌쩍 넘었을텐데 아직 야리야리한 몸매와 날씬한 각선미가 돋보인다. 결혼은 했나?

"뭐해요?"

허걱. 깜짝이야~

어느새 주희가 새초롬한 눈을하고 옆에서있다.

"언제왔어?"

"칫.. 역시 바람둥이였어.. 벌써 최교수님 꼬신거예요?"

"얘가 생사람 잡겠네~ 누가 바람둥이야"

"피피피~~ 최교수님 유부녀거든요~ 잘못하면 잡혀가요~"

"임마~ 예전에 알던분이야~ 우연히 앞에서 마주친거뿐이야"

"흠~~ 진짤까나~~~"

요녀석 은근히 집요하네.



수업시작후 열흘쯤 지났을때 생각지도 않은 일이 터졌다.

학생들이 저녁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근처 고기집에서 회식을 하는데 주희와 한 남학생이 싸움이 났다. 주희가 내옆에 앉아서 고기도 집어주고 술도 따라주고 하는걸 첫날 수업때 지랄을 하던 그 싸가지가 상당히 불만섞인 눈으로 바라보더니 술이 어느정도 들어가자 주접을 떨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기옆에 앉으라는 정도였는데 주희가 계속 거부를 하자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급기야 욕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야~ 그래~ 내가 바람 좀 폈다~ 그러는 너는 존나 깨끗하냐? 어?"



뭐라 대꾸하려던 주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 먼저 가볼께요.."

"야~ 이 걸레같은 년아~ 가긴 어딜가~"

순간 테이블 전체가 경직이 됐고, 주희도 당황하고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리 술이 됐어도 이건 아니다.

"이봐, 아무리 취중이라도 말좀 가려서해야지"



"씨발..조까고... 별 시덥잖은 시간강사주제에.."

지딴에는 혼잣말처럼 한거같았지만, 주위사람들에게 대부분 들릴정도의 톤이었다.

순간 울컥하긴 했지만, 술처먹고 지랄하는놈이랑 싸울 정도로 호전적이진 않다. 그냥 대충 타일르려고 하는데



"철썩!!!"

어라? 그녀석의 면상이 정확하게 90도 돌아가있었고, 그 앞에는 분노한 주희가 입을 앙다물고 서있었다.

순간적으로 식당안이 고요해졌다.

그 침묵을 깬것은 그놈이었다.

"이런 씨발년이!! 야이 걸레같은년아! 저 새끼가 니 기둥서방이라고 지금 편드는거냐? 그래~ 저새끼가 존나 잘박아줬나보지? 씨발 존나 좋디? 어? 얼마전까지 내 자지 존나 맛있게 빨던 년이 이제 딴"



"퍽!!"



"쿠당탕탕!!"



"꺅~~!"

그제서야 개소리가 멈췄다.

그놈은 반대쪽 테이블에 처박혀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체력관리 하느라 10년전부터 복싱을 해왔었지만 누군가를 때려본건 처음이다.

여학생들은 놀란 토끼들처럼 겁에질려 있었고, 남학생들도 순간적으로 일어난일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이런 씨발새끼.. 너 죽었어.."

한참을 허우적대던 그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옆에서 뒹굴고있는 맥주병을 집어든다. 완전 쌩양아치같은놈..

맥주병 하나 들었다고 자신감이 넘치는건지 그놈이 건들거리며 다가온다.

"그만해!!"

갑자기 주희가 앞을 가로막고 섰다.



"ㅋㅋ 씨발년 너 아주 저새끼 자지맛에 푹 빠졌나보다. 너같은 걸레도 순애보가 있냐? 어? 어이~ 이년이 지금까지 몇놈이랑 빠구리 떴는지 아냐? 가르쳐줄까?ㅋㅋㅋ"

주희가 뒤돌아 서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노와 창피함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는건 분명히 알수 있었다.

주희의 허리를 살짝 감아서 옆으로 밀쳐놨다.

"선생님.. 하지마세요.. 전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잠깐 저쪽에 있어.."



"씨발 늬들 지금 영화찍냐? 어?"

"잠깐만 아가리 좀 다물고있어라. 금방 죽여줄테니까.."

내 싸늘한 말과 눈빛에 그놈이 순간 경직되는가 싶더니 손에든 맥주병을 한번 보더니 다시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ㅋㅋ 주먹좀 쓰냐? 씨바 샌님같이 생긴.."



그말이 채 끝나기 전에 난 성큼 그놈에게 다가섰다. 그놈이 움찔하더니 맥주병을 들어올린다. 다시 한걸음 다가섰다.

"씨발.. 한걸음만 더오면 찍어버린다.."

무시하고 계속 걸어갔다.

"이 씨발새끼"

"붕~"하는 소리와 함께 맥주병이 내 머리를 향해 내려오는게 보인다.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여 살짝 피하고 왼손으로 그놈의 오른손을 움켜잡았다. 그놈의 놀란 얼굴이 눈앞에 보인다. 역겹다..



"쩍!!"

콧잔등에 정확하게 오른주먹을 꽂아넣었다. 순식간에 그놈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됐다. 그와중에도 그놈은 자유로운 왼손을 무작정 휘두르며 반항해온다. 그런거에 맞아줄정도로 난 쓰레기에게 자비롭지 않다.

오른손으로 가볍게 날아오는 그놈의 손을 아래로 떨궈버리고 다시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크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놈의 몸이 반으로 접혀져서 무너져내린다.. 아마 숨통이 턱하고 막혔을것이다. 하지만, 한번 피를 본 내 야성이 멈추려하지 않는다. 그놈의 오른팔을 쥐고있던 왼손으로 그놈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끌어올렸다. 피,눈물,콧물,침, 그리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공포에 가득한 비굴한 눈깔이 보인다. 짜증이 난다. 다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제발요!!"

주희가 애원하듯 내 팔에 매달리며 말린다. 그제서야 이성이 돌아오고 주변이 보였다. 학생들은 완전히 얼어붙어있었고 주변 손님들은 멀찌기 떨어져 역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순찰차의 싸이렌소리가 들리더니 경찰 세명이 가게로 들어온다. 주인이 뭐라뭐라 설명을 하자 경찰 둘이 나에게 다가와 폭행현행범으로 경찰서로 동행하겠단다.



수갑이 채워져서 경찰차에 탔다. 주희가 걱정스럽게 따라오려했지만, 경찰이 말린다.

"걱정하지말고 집으로 돌아가. 별일없을꺼야. 얘들도 보내고.."

"선생님..."

주희가 울먹인다.



"왜 때렸어요?"

경찰서 조사계에서 담당형사가 사무조로 묻는다.

"그냥.. 기분이 나빠서요.."

"그냥 기분이 나빠서? 이 양반이~ 아니 대학강사라는 사람이 기분나쁘다고 학생을 두들겨패요?"



"...."



"어이구~ 이봐요~ 지금 그 학생이 당신 고발한다고 난리야. 얼마나 빵빵한 집안인지 벌써 변호사오고, 윗선에서도 압력넣고 있다고~"



"..."



"당신 이거 합의 못보면 콩밥먹어야돼~ 알어? 정상참작이라도 될려면 변명이라도 해야지 이사람아~"



"... 별로 할말이 없습니다."



"이보쇼.. 내가 주인이랑 학생들한테 들은얘기가 있어서 묻는거요. 왜 그말을 안해?"



"... 됐으니까 그냥 폭행으로 처리해주세요.."



"허~참~ 진짜 별난 양반일세~ 정 말하기 싫으면 마쇼~ 원하는대로 해주지~"

형사는 더이상 묻지않고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된 마당에 굳이 주희까지 끌어들이고 싶지않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주희가 나타났다. 택시타고 쫓아왔나보다..



"선생님..."



"왜 왔어."



형사가 주희를 아래위로 힐끗본다.

"혹시 아가씨가 그 아가씨요?"

"?"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빨리 끝냅시다."

형사의 오지랍에 짜증이나기 시작했다.



"아따~ 도와줄래도 싫다네~ 맘대로하쇼~"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타이핑을 하기 시작한다.



"넌 빨리 집에 가!!"

"혹시.. 왜 때렸는지 얘기 안하셨어요? 예?"

"됐으니까 빨리 돌아가"



그때 또다시 문이 열리면서 검은 슈트를 입은 제법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들어오더니 곧바로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오지훈씨 폭행사건 담당자시죠?"

형사가 제법 빠른 동작으로 일어난다.

"아~ 예! 변호사님이신가요?"

"예~ 오지훈씨 변호삽니다. 이사람입니까?"

"아~예"

그러면서 넌이제 좆됐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이거 고발장이랑 진단섭니다. 진단은 8주가 나왔고, 합의볼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빨리 처리해서 검찰로 넘겨주세요"

"8주요? 아니 그렇게 많이 나올거같진.."

"이봐요~ 형사님~ 그건 의사가 하는거지 당신들이 알바 아니잖소~ 빨리빨리 처리해서 넘겨요~"



형사는 찍소리 못하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8주.. 내 주먹이 그렇게 센가?ㅎㅎ



"당신 사람 잘못건드렸어~"

그새끼는 변호사도 재수없네..



"당신이 오지훈이 변호사예요?"

갑자기 주희가 묻는다.

"..."

그놈은 대꾸도 안하고 주희를 한번 슥 쳐다본다.

"당장 오지훈이한테 전화해서 고소 취하하라고 하세요"

"하하하하~ 이 아가씨가 뭘 잘못먹었나~ 아가씨 제정신이야?"

"그 고소 취하안하면 저도 오지훈이 성희롱으로 고발할거예요"

"하하하~ 이 아가씨 당돌하네~ 증거있어? 어디 해볼라면 해보시지~"

"그래요?"



"주희야, 넌 그냥 빠져"

"선생님.. 그냥 저한테 맡겨두세요"



그러더니 주희가 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그때까지도 변호사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뿐이다.



"여보세요? 김변호사님? 저 주희예요"

변호사? 주희에게 바로 연결될 아는 변호사가 있었나?

"예. 부탁드릴게 좀 있어서요. 여기 마포경찰서거든요. 이쪽으로 지금 좀 와주실수 있으세요? 예. 얼마나 걸릴까요? 30분요? 예 알았어요. 빨리좀 와주세요."

30분? 개인변호사가 아닌이상 이시간에 오란다고 30분만에 달려올리가 없을텐데.

전화를 끊자마자 주희는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모부? 저예요~ 주희. 예~ 안녕하셨어요~ 많이바쁘시죠~ 호호. 저야 뭐 항상글쵸~ 참 이모부. 사회부쪽 기자분 한명 마포경찰서 조사계로 좀 보내주시면 안되요? 재밌는 사건이 하나있는데~ 아잉~~ 국이 달라도 명색이 국장님이신데 그정도는 해주실수 있잖아요~ 예~~ 진짜 재밌는거라니까요~ 예~ 빨리 보내주세요~ 30분안에 안오면 방송국에 있는 형부한테 연락할꺼예요~ 호호~ 예~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께요~ 예~"



그제서야 그 싸가지 변호사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짐작했는지 폰을 들고 급하게 밖으로 나간다. 아마 그 개싸가지에게 연락하려는거겠지.

그건 그렇고 주희의 정체는 도대체 뭐야?

나도 그렇고 형사도 뻥진 표정으로 주희를 쳐다봤다.



잠시후 그 변호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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