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 2부 1장

[ 2부 대안학교(代案學校) ] – 1장 –



G읍이 내려다 보이는 병풍산(屛風山)아래의 전원풍 건물 3개동이 있었다.

정면의 2층 건물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정면의 건물보다 조금 작은 3층의 건물이, 우측엔 돔형 체육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 대치 대안학교(大治 代案學校) ]



교문의 기둥에 붙은 현판의 이름이었다.



[…으응! 그게..나, 시아버지되는 분이 재단의 이사장겸…교장이셔!..]



언니인 지수가 자신의 직장인 대안학교에 대해서 설명했을 때 시아버지의 이름이 ‘박대치(朴大治)’라고 했던 것을 은수는 기억해냈다.

그리고, 언니 지수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구구절절 듣지는 못했지만 형부가 2년전 뇌 수술로 인한 반신불구가 되었다는 그 말 한마디에 은수는 지수가 꽤 힘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불과 3년전이었다…

지수의 결혼식은 참 행복해 보였었다. 자주 만났지는 못했어도 형부였던 박대길의 모습은 당당했고, 매사에 언니 지수를 위하는 것에 은수는 속으로 부러웠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형부가 교통사고로 반신불구는 물론 정신연령까지 낮아 졌다는 현실에 앞으로의 언니 지수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만 않을 것임을 상상 할 수 있었다.



그랬다…

은수의 짐작으론, 언니인 지수가 자신을 이런 시골 대안학교로 불러들인 이유를 세세히 말해 주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짐작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수의 외로움 때문 이라고 생각되었다. 피 붙이라곤 자신의 어머니인 이모와 그녀 뿐이었던 것이다.



‘…대~치??..크게 다스린다는 뜻인데….’



은수는 학교의 이름을 다시 한번 읽어본뒤 대치(大治)란 이름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새겨보며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건물들이…이뻐!....”



은수는 눈에 들어오는 3개동의 건물이 참 정답게 느껴졌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유럽식 전원풍으로 돌과 통나무로 지어져 아름다운 한폭의 유화를 보는듯 했던 것이다.



“체육..시간..인가?”



한쪽 농구코트에서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농구를 하고 있는 풍경은 도시의 어느 고교에서 흔히 볼수있는 광경이어서 은수는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자고로…교사란 학교에서 살아야 하는 법이 아닌가!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가는 애들과 부딪치고 깨지면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옳바른 길을 터주는게 바로 교사의 임무인 것을…



“……………………..!!”



교문을 들어서며 담시 멈췄던 은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중앙에 건물속에 있다는 교무실를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사실은 그랬다…

G읍으로 온뒤 지난 10일 동안에 훌,훌 털어 버릴 것은 어느정도 정리를 한 은수였다.

그리고, 언니인 지수의 도움으로 ‘낙태’를 위해 차가운 수술대위에 가랭이를 벌리고 동수의 씨를 귻어 냈었다.

물론, 그 낙태수술과 함께 J군 읍소재지 샛강의 갈대밭에서 두 사내에게 처절하게 당한 강간의 상처도 함께…

수술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언니 지수의 배려로 ‘C’시로 까지 나갔었다.

은수로서는 어쨌던 자궁속을 귻어 내는것으로 동수에 대한 기억과 강간의 추억을 깨끗이 잊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1주일전..언니 지수는 은수에게 모든 얘기를 듣고난뒤 그녀를 끌어안고 참 많이도 같이 울어줬었다.



[..은, 은…수야!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하렴!...그~리고…여기가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떠나고 싶으면 떠나! 응?...]



그리고 그 울음은 은수가 낙태수술 후 회복실에서 지수는 은수의 손을 잡고 통곡에 가까웠었다.

은수는 그렇게 울어주는 지수가 구원자처럼 믿음이 갔고, 후원자처럼 든든했다. 왜…진즉에 모든 일을 언니인 지수에게 의논을 하지 못했던지 그녀로서는 후회가 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는 것에 은수는 안정을 찾기 위한 돌파구는 마련된 셈이었다.

언니의 말대로 어쩌면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은수는 다소 들떠서 어젯밤 잠까지 사뭇 설쳤던 것이다.

그리고 또, 설사…근무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다시 예전의 학교로 돌아가리라고 마음먹은 은수였다. 서울의 근무지인 예전 학교엔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처리만 되어 있지 아직 정식 퇴직은 아니었던 것이다.



“텅!~”

“어~멋!!”



그때였다..

은수는 자신의 어께를 치고 통! 통! 굴러가는 농구공에 깜짝놀라 상념에서 벗어나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죄~송..함다! 공..좀 던져 주세요!!”



멀찌감치 농구코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은수는 등을 돌려 농구장을 바라봤다. 십여명의 애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것에 화들짝 얼굴이 달아오름을 느꼈지만 앞으로 자신이 가르켜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이기에 애써 근엄한 표정을 만들었다.



“자..받~어!!”



은수가 농구공을 집어들고 긴 팔을 뒤로뺀뒤 힘차게 던졌다. 오렌지색 농구공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허공을 갈랐다.



“땡~큐~써~얼!!”



무리들중에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농구공을 받아들고 거수 경례를 해오자 은수도 손을 들어 답례를 해 주었다.

…그 싱그러운 모습들에 상쾌한 첫 느낌이 은수의 몸을 감싸여 가고 있었다.



“누구…야?”

“글~쎄?....우~왕!! 누굴까?”



“히~야야!...쭈~욱..빠졌는데?...”

“글게…선생은 아닌 것 같구….??”



농구장에선 교무실로 걸어가는 은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각기 그녀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런 애들이 일제히 한 학생을 바라봤다. 그 학생은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던 것이다.



“치~이익!...나두 몰~러?....”



다른 학생들보다 덩치로나 나이가 조금 위인듯한 학생이 앞이빨 사이로 침을 쏘아낸뒤 고개를 흔들었다.



“어?...형도 모르면, 도대체 누구~얌?”

“글게….”



학생들은 또 다시 멀어져가는 은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가 다시 리더격인 학생과 번갈아 봤다.



“때,때~때…대…호 혀~엉! 사사사, 사~암..삼촌, 아,아…니! 교,교교 교장~샘에게 물,물물어 보,보..보면 되, 되…되~잖어?”

“쒜~까! 말 더듬지 말랬지? 글고 뭐가 그리 궁금하다고 지랄이~야?”



대호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며 침을 튀겨가면서 말을 더듬는 유난히도 키가 작은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 박았다.



“야! 야…다시 플~레이!...난, 빠진다! 철~호! 니가 뛰엇!”



대호가 신경끄라는듯 농구공을 코트안으로 던지며 경기를 재촉했다.그리고 그는 농구대뒤로 돌아가 등을 기대고 섰다.



“…씨~파! 누구지??”



대호 역시 궁금해 미칠지경이었던 것이다.

불현듯 나타난 미모의 젊은 여자의 정체는 그로서도 도무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던 것이다.



“맞~어! 맹~쑨이뇬에게…알아 봐라고 해야 겠다!...야! 너!~ 교무실에 가서 말이야! 맹~쑨이..보구 말이~야!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고 나 에게 총!~알 같이 보고 하라구 햇!”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 학생이 총알같이 뛰었다.

여러모로…그의 말투로나 행동을 볼 때 학교의 우두머리…짱임이 틀림이 없었다.



+ + + + +



지수는 은수가 교장실로 면접을 위해 들어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동생 은수를 억지로 이곳의 시골 대안학교로 오게 만들것이 어쩌면 후회스러운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수는 입술을 꼬옥 깨물며 억지로 마음의 평정을 찾아 볼려고 가늘고 긴 숨을 토해냈다.

지수의 입장은 그랬다…

사실 너무 외로웠던 자신이 아닌가?...부모를 일찍 여의고 혼자살다시피 한 그녀였다.

서울로 유학을 갔을 때 가난한 이모집에서조차 기거를 할 수 없어 학교 기숙사를 사정, 사정해서 들어가 학부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캠퍼스 커플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깨가 쏱아지는 연애끝에 결혼까지 골인했지만…불과 1년만에 행복의 굴레가 깨어져 버린 그녀로서는 누군가에 의지를 하지 않고는 미쳐 버릴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동생 은수였는데, 은수의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확인하면서 불러 내리길 오히려 잘 되었다고 그녀는 판단되었다.



.‘…은, 은…수를 돌봐야…해!’



지수는 운동장을 멀끄러미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하나 밖에 없는 외사촌 여동생이며, 따지고 보면 병을 앓아 요양원에 있는 이모를 합쳐 이 세상에 단 3명뿐인 피 붙이들이었던 것이다.



“휴….흐으읍!...”



은수와 그의 어머니, 즉 자신의 이모를 떠 올리며 지수의 도톰한 입술에서 가늘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언니..사실은..나 임신..중이야!..]



은수가 핼쓱한 얼굴과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는 표정으로 G읍으로 온날 저녁 그녀에게 들었던 ‘임신’..의 고백에 지수는 하마터면 그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밝고 맑은 미소를 잃지 않고 굿굿하게 일류 사범대학까지 나와 뒷 돈을 주고서도 채용되기 힘들다는 서울 강남의 사립여중학교에 당당히 출근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지수는 좋아 했었다.

그런데…임신을 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물어도 은수는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었다.



[…한..때, 감미롭게 내 몸을 감싸고 지나간 바람이었을 뿐이야…]



다그치는 지수에게 은수가 한 말이었다.



“바…보 같은 기집…애!..”



지수는 억누르고 있었던 분노가 다시 끓어 올라 자신도 모르게 나직히 감정을 토로해 냈다.

적어도 미혼모는 안되어야 할게 아닌가 말이다….씨앗을 준 사내가 누군지 몰라도 지금 눈앞에 있다면 찢어 죽이고 싶은 충동이 부글, 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미련 없지?...지…우자! 응?..]



지수의 단호한 제의에 은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새벽에 자신이 직접 운전한 차에 태워 ‘C’시까지 가서 낙태를 시켰었던 것이다.



“…으~응?..”



그때였다. 지수는 등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표정을 수습 해야만 했다.



“박 선생! 무슨 걱정 있소?...흠! 흠!..”



교감겸 학생주임 박철만이었다.

시아버지..아니, 교장인 박대치의 먼 친척이라는 작자였고, 항상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욕정의 눈빛을 번득이고 있는 수캐였다.



‘교~감?..학..생..주임?....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야!”



적어도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책이었다.

정규사범대학은 고사하고 일반 전문학교의 문앞에도 못 가본적이 없는 작자였으며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과거를 몰랐다.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했지만 지수는 믿지 않았다.



“아..네!..걱정은..요?”



지수가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교무실 창가에서 벗어날때였다. 박철만이 스쳐지나가는 그녀에게 나직히 속삭여 왔다.



“박..선생! 전번에도..퇴짜..맞았소…이번..토욜..은 어떻소?”

“네?...무슨….”



지수는 동료 선생들의 따가운 시선들을 온몸에 받으며 애써 태연 한척 박철만을 바라봤다.



“허..차암!..정말 이러기요?..내가 밥 한끼..사면서 학교문제에 대해 박 선생에게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그러오!”

“아..네..에!...학생 주임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그런 문제는 집에서도 교장 선생님과 자주 대화를 하는 편이어서…굳이 학생주임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수는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는 동료 교사들도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허..참..알,알..겠소이다…아뭏튼 조만간 학교운영 발전회의가 학부모들 참석하에 있을 예정이니…교육향상 방안에 대해서..들, 의견제출을 해 주기 바라오!”



박철만은 머쓱한 기분을 감추려는듯 그 또한 지수와 교무실 교사들 모두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개…같은 자식!..’



지수는 박철만에게 등을 돌리며 속으로 쓴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씹어 삼켰다.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양호실 담당 나길숙 간호사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며…간간히 여학생들까지 추행을 일삼는다는 것은 학교내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방학전 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국어담당 민현정 교사의 경우도 박철만이 데리고 놀다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퇴직권유에 야밤 도주 하다시피 떠나야 했던 것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대안학교(代案學校)가 안고 있는 비극이었다. 교육청에서 정식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설립자들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교사들의 채용과 퇴직 또한 관계기관에 하소연 조차 할 수 없는 법제도 속에 교사들은 하루, 하루..가 교장이나 학생주임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기분에 따라 표정관리까지 신경쓰야 할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대치 대안학교는 설립자 박대치가 투자한뒤 자신의 친인척들을 주요 보직에 앉혀 황제처럼 군림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어~쭈!..씨..불년! 지, 시~아버지…에게 수시로 가랭이를 벌려주는 주제..에?...’



반면에, 박철만은 자신의 은근한 유혹에 차갑게 대꾸한뒤 교무실을 나서는 지수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속이 끓어 올랐다.

그가 자신의 8촌 정도의 형님이 되는 교장 박대치가 며느리인 박지수를 수시로 아랫배밑으로 깔아 뭉게며 욕정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관사의 마름격인 칠복이에게 귀뜸 받았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짐작했다. 어릴적부터 지켜본 박대치의 염색행각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박대치의 외아들 ‘박대길’의 출생 비밀도 그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확실하게 핏줄을 대조해 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엔 박대길의 출생에 의심이 충분히 갔다.

그 이유는…박대치의 둘째부인, 그러니까…박대길을 낳은 에미가 이미 그 당시 유부녀였다는 사실이었다. 박대길 생모의 빼어난 미모에 홀딱 빠져버린 박대치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온갖 협박을 다 동원해서 여자를 억지로 이혼시킨뒤 안방에 들여 앉혔던 것이다.

그런데…안방을 차지하자 마자 5개월도 안되어 여자는 출산을 했었다. 물론, 박대치는 첫째부인에게 얻지못한 자식이었기에 이미 1년전부터 여자를 첩으로 삼아었다고 떠들어 됐지만, 그의 인간됨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박철만은 믿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박대치가 여자에게 한눈에 반한 것이 바로 안방으로 들여 앉히기전 3개월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그 여자가 박대길을 쑤욱 뽑아낸뒤 원인모를 병에 걸려시름시름 앓다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죽은게 박대길이 태어난지 두 돌이 마악 지난뒤였고, 여자의 죽음이후 박대치의 염색행각은 지칠줄 모르게 현재까지 이어졌을 뿐 아니라…급기야는 친자식인지 아니면 다른넘의 씨앗으로 태어났는지 모를 자신의 외아들이 사랑했던 며느리인 박지수에게 검은 손을 뻗쳤던 것이다.



‘…그~려!..씨불뇬! 언제까지 그렇게 고상한척…팅~기는지 두고 보지…내 좆에 매달려 지랄 발광할때가 있을..거~여!...쩝’



박철만이 짧은 시간에 박지수에 대한 욕정을 다소나마 털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금 교장실에서 마악 나서는 한 여자 때문이었다.



“으~응?...”



사실 미치도록 궁금했던 박철만으로서 도무지 여자의 정체가 무언지 몰랐던 것이다.

여자를 처음 봤을 때, 속으로…또, 박대치가 사고를 쳤다고 생각한 그였다. 가까운 도회지로 수시로 들락거리며 자신의 지인들과 염색행각을 일삼는 박대치였기에 인근에서 제일 큰 ‘C’시의 요정에서 여자 하나를 꿰 찼다고 짐작한 그였지만, 도무지 여자의 자태에선 화류계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다는것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천하의 잡놈 박철만이 아닌가 말이다.

G읍은 물론, J군 인근과 ‘C’시의 웬만한 술집은 다 수렴하고 다니고 있기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면 단골마담들에게 제일먼저 전화가 걸려 오겠금 만든 한량이었던 것이다.



“얼~래래?....”



박철만은 고개를 또 갸우뚱했다.

방금 교장실에서 나온 미모의 여자에게 박지수가 차악 달라붙어서 어께를 나란히 하고 복도를 나서는것에 한눈으로 봐도 둘 사이가 이미 과거부터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누구…요?”



언제 다가 왔는지, 박철만 곁으로 서무과장 박기대가 껌을 찍찍 씹으며 두 여자를 턱으로 가르켰다.



“나두..몰~러?”

“아~…형님이 모르면 누가 알~우? 딱! 딱…”



박기대가 껌을 싸가지 없게 어금니로 딱! 딱거리며 빈정거리는 말투에 박철만은 비유가 팍 상해지만 애써 감정을 눌렀다. 그 역시 따지고 보면 집안의 먼 친척이었고, 박대치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바람에 꽤나 신임을 얻고 있는 작자였다.



“에~구!..쩝!...야! 종례 마치고 말~이여! 한잔 빨~자!..씨볼..이래,저래..좆~같구먼..”

“조~오치요!...읍내 감나무집에..반반한 새 깔치..가 며칠전 들어 왔다고 어제부터 민~마담이 전화질 이~우?”



박철만과 박대기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 + + + +



박대치는 교장실 창가에 서서 밖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눈에 들어오는 두 여자의 뒷 모습을 관찰하며 의미있는 웃음을 입꼬리에 달았다.

그리고 귀를 울려오는 심장의 벌떡거림에 피가 뜨거워져 왔다. 눈속에 들어오는 두 여자의 뒷 자태는 대조적이었던 것이다.

명목상으론 대외적인 며느리며 자신의 욕정의 배설구로 전락한 박지수는 낭창낭창한 강가의 봄 버들강아지처럼 보인다면, 그옆의 강은수는 말그대로 한마리의 야생마처럼 보였다.

강은수는 골격 그 자체가 틀려 보이는 여자였다. 꽃으로 비유한다면, 박지수는 한떨기 ‘수선화’였고, 강은수는 유월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육감적인 짙은 향을 내 뿜는 ‘흑장미’였다.



박대치는 조금전 강은수를 면접할때의 일을 다시 그려 보았다.



[…자력을 보고..놀랐소~만 흠!흠!....]

[..과찬이..십니다! ]



박대치의 근엄한 목소리를 들으며 은수는 다소곳히 머리를 숙여 보였었다.

그런 그녀의 자태로 가슴골이 깊숙히 패인 젖가슴의 굴곡으로 여자의 유방크기가 보통 암캐들보다는 크다는 것을 늙은 수캐는 금새 알아차린뒤 박대치는 굵은 침을 삼켰었다.



[..박지…수 선생하곤…외사촌 지간이라고 해~쏘~오?]

[네 그렇습니다. 박 선생의 어머니가 저희 어머니와 자매이십니다.]



[ 흠!~……암튼! 이렇게 와 주셔서 무엇보다 고맙소이다 헐! 헐!]

[……………………..!! ]



박대치는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당구공 같은 민대머리를 연신 끄덕였었다.

그로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호박이 덩굴체이 줄줄이 달려 들어온 셈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이다…

어느 누가 산골 읍내의 학교…아니, 그것도 정식인가를 받은 교육기관도 아닌 ‘대안학교(代案學校)’같은 곳으로 스스로 오겠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바로 눈앞의 박지수의 사촌 여동생 ‘강은수’를 바라보는 순간 박대치는 심장이 벌컥거릴 정도로 뛰어 왔던 것이다. 그건 바로 강은수가 뛰어난 미녀일뿐 아니라 몸매 또한 침이 삼켜 질정도로 육감적이어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문화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교육이란 강요가 아니라 수용시켜야 한다는게 저의 교육관입니다…]



박대치가 짐짓 과장스런 위엄의 목소리로 대안학교(代案學校)를 어떻게 생각하는냐고 질문했을 때, 또렷하게 대답을 해온 강은수의 교육지론이었다. 한마디로, 재색(才色)을 겸비한 여자였던 것이다.



“후훗?...오래 살고 볼일이야..아~암!!”



박대치의 민대머리가 끄덕여졌다.

순간, 불알친구가 떠 올려졌던 것이다. J군과 G읍에도 개발의 붐을 타고 그동안 묶여있던 그린벨트와 농림지가 어느정도 풀리자 그 친구는 하루아침에 졸부가 되었지만, 돈다발을 요밑에 깔은체 혀바닥이 쑤욱 빠져 나올정도로 더웠던 지난해 중복날 자빠져 죽어 버렸던 것이다.

평소 막걸리 한잔이라도 불알친구들에게 산적이 없는 구두쇠였던 그였고, 그 친구가 죽자마자 집을 나가 살던 자식쌔끼 3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향으로 내려와 재산권 싸움을 머리통이 터지도록 했었다. 그리고 재산권싸움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귀둥냥으로 들은 박대치로서는 한심한 생각만 들뿐이었다.

한마디로 돈을 쓸줄모르는 꽁생원이었던 그 친구더러 주위사람들은 죽써서 개(犬)를 줬다느니, 아끼다 ‘똥’되어 버렸다고 빈정거렸었다.

그 꽁생원 친구는 불효막심한 자식쌔끼들의 농간으로 고향선산에조차 묻히지 못하고 화장되어 마을뒤 저수지 주변에 유골이 뿌려졌을 뿐이었다.



“..병신…쒜~끼…돈 다발깔고 뒈~지먼 뭐 하누?...저승갈 때 싸 짊어지고 갈것도 아니구…캬~아악! 퉤!~”



박대치는 교장의 명패가 거대하게 올려져 있는 반지르한 오동나무 재질의 책상밑에 타구통을 찾아 가래를 내 뱉았다.



“어!~…머리뒤가 뻐~근..한~데?....”



박대치는 푹신한 소파식 집무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좌우로 빙빙 돌렸다.

혈압의 문제는 없었다. 읍내 보건소장이 자신의 꼬봉인지라 일주일 한번꼴로 건강 진단을 받고 있는 그였다.



[…아이고!~…교장 선생님! 보약…좀 줄이세요…보약도 너무 많이 쓰면 독..되요…하하핫!..]



보건소장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박대치더러 보약을 줄이라고 했을뿐 건강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었다.



“쓰~으….며칠..굶어서..그렇~남?”



박대치가 고개를 갸웃 했다.

그가 굶었다고 한 것은 바로…색욕! 성교였던 것이다. 보약을 달고 살며 먹는 것 조차 스테미너가 넘치는 음식을 골라 먹으니 몸의 혈기가 30대의 젊은놈처럼 펄,펄 끓어 오르는 그였다.



“허!~…씨~파! 그러고..보니, 십여일…됐~남?”



박대치는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깜빡거렸다.

불알속 정액을 시원하게 방사시키지 못한 것이 10일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자신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벌써, 그 기간동안 박지수를 올라탔어도 두어번은 되었을 것 같았다.



“흠! 흠…..아~이고고!...쩝”



박대치는 용트림을 해댔다.

10일 동안 욕구를 발산하지 못한 그의 아랫도리속 페니스는 꿈틀,꿈틀 일어나고 있었고, 눈앞엔 삼삼한 박지수의 몸뚱아리와 조금전 면접때 본 강은수의 육감적인 몸매가 그려지고 있었다.



“삐이~~이잇!!”

“네!~ 교장 선생니~임!”



박대치의 솥뚜껑 만한 손이 책상위의 인터폰을 신경질으로 눌렀고 상대방은 금방 응답을 해 왔다.



“양호실 나 선생..쪼옴 오라구 혀! 혈압측정기..가지구 말이 얏!”

“네! 알았습니다”



박대치는 지시를 한뒤 집무용의자에 깊숙히 몸을 파 묻었다.



+ + + + +



“그래…결심 했니?”

“응?...뭘?...”



지수의 물음에 은수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던지 눈망울을 굴리며 되 물어 왔다.

둘이서 천천히 걷는다는게 어느새 읍내로 진입하는 사거리까지 와버린 터였다. 달리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읍내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었기에 지수가 파득 걸음을 멈췄던 것이다.



“지지..배가? 교장과 면접하고…어떻게 하기로 했냐구!”

“으응!...뭐?..일단 해..보는 거지..머!”



은수의 메마른 대답에 지수는 뜨악해졌지만 그래도 속으론 고마웠다. 혹시나….은수가 서울로 다시 올라가겠다고 한다면 억지로라도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 붙잡을려고 단단히 맘을 먹은 지수였던 것이다.



“근데…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니?”

“으응! 암..것두 아니야! 언니…지금 있는 곳이 좀 불편..해! 나 언니 본가로 들어갈…까?”



은수가 화제를 단번에 바꾸었다.

주거문제는 이미 의논을 할려고 마음 먹은 터라 꺼집어 냈던 것이고..



“글~쎄?.....너가 더 불편하지 않겠어?”

“……………………..!!”



은수는 지수의 말에 내심 고민이 되었다. G읍으로 처참해진 몸과 마음을 부여안고 왔을 때 자신이 먼저 지수의 본가로 가지 않겠다고 버텼었다.

물론, 그 당시 몰골로는 어느 누구도 대면하고 싶지 않았고 언니 지수를 만난뒤 곧 바로 서울로 상경하리라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일단 오늘은 그 집에서 하루 더 쉬어…내가 너 쓸 방을 치워 놓을께 응?...그이가 썼던 서재인데 워낙에 비워났던 방이라 지져 분해…”

“응…..”



은수는 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웃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참 좋네!”



지수 또한 은수의 헤 맑은 미소를 너무 오랜만에 보는지라 덩 달아 웃어 주었다.

이것으로 어쨌던 든든한 피 붙이를 자신 곁에 둘수 있다는 것에 그녀로서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장수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나 퇴근하고 올때까지 쉬고 있어! 저녁 같이 먹자..알았지?”

“응……”



지수는 은수가 자기 모르게 도망이나 칠 것 처럼 느껴져 다짐을 주었다.

그런 그녀의 속내를 짐작이나 한듯 은수는 걱정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뒤 총총히 읍내로 향했다..



“……………………..!!”



지수는 학교로 돌아가면서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은수가 읍내 사거리를 돌아 임시숙소로 묵고 있는 여인숙 골목으로 들어서며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바라보았다.



“휴…..흐…으읍!!”



지수의 입에서 긴 숨이 토해내 졌다.

막상 은수를 곁에 두기로 한 것은 참 잘되었다고 생각 했지만 또 다른 마음의 한 구석엔 커다란 바위를 안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던 것이다.

그건..바로 시아버지이며 학교의 교정인 박대치(朴大治) 때문이었다.

그와의 관계가 탄로나면 은수가 자신더러 얼마나 추잡스런 여자로 치부 할것인가!...학교의 상사인 교장이라면 그런데로 변명이 되겠지만, 엄연한 남편의 아버지인 시아버지와의 불륜(不倫)은 근본적으로 본질이 다른 문제였다.



‘근친상간(近親相姦)…….’



삼류소설에서나 다뤄지며, 실제 그런 관계가 있다는 야설과 같은 얘기를 접할때마다 지수는… ‘설마?...그런일이….있을수 있을까?’라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 근친상간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는것에 너무도 처절한 인생무상(人生無常)의 비운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떻..하지?...”



은수의 눈을 아무리 피한다고 해도…꼬리가 길면 밝히는 법이 아닌가!...

그렇다고 은수를 지금처럼 여인숙에 계속 머물게 할 순 없었고, 달리 읍내에 셋집을 얻을려고 해도 퍼뜩 떠 올려지는 집이 없다는것에 당황스러웠다.



“그래…일단…괜찮은..집이 구해..질 때..까지….”



지수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언제까지고 은수의 눈을 속일 순 없을게 아닌가!...아무리 거부해도 늙은 수캐의 욕정을 막을 순 없다는게 지수로선 절망을 느끼게 했다.



어느새 교정으로 들어선 지수는 중앙건물로 향하지 않고 교문옆 우뚝 솟은 느티나무밑으로 다가가 그 밑의 벤치에 앉았다.

어지럼증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떠 올려지는 늙은 수캐!...박대치에게 몸뚱아리를 허락 할 수 밖에 없었던 작년 여름방학의 일이 퇴색된 필름처럼 눈 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 + + + +



장마비가 엄청 내리고 있었다.

흡사 하늘에 구멍이 뻥 뚫어져 퍼붓듯이 내리는 장마비는 십여일째 계속되었고 읍내 샛강이 범람해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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