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 18부

박봉구 / 이춘식 / 김유석

강인수 박사 / 길 기복 형사



제 18부 단서

길 형사는 자기 이름에 분명 마가 끼었다는 생각이다. 인생에 기복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요즘은 정말 기복이 심했다. 그 쥐새끼 같은 놈도 그렇지만 비린내 진동하는 현장을 몇 번이고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핏자국이나 신체 어느 일부분일지는 모르지만 바닥에 으깨져 있던 것들은, 비록 치웠어도 냄새는 역겨웠다.

“에이, 씨......”

차마 욕은 할 수 없어 다물고 늙은 노인네를 재촉했다. 상부에서는 빨리 찾아내라고 난리지만 쉽지 않는 일, 오늘로서 세 번째 방문이다. 이 역겨운 현장을.......

보고서를 대충 작성해 올린 지 3일도 되지 않아 NSC인가 뭔가 한 곳에서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길 형사가 작성한 보고서는 서장이 청으로, 다시 안보위로 계속 올라간 뒤 무슨 큰 거라도 되는 마냥 들쑤셨다. 언론에 노출은 되지 않았는지 서의 대부분 동료들이나 다른 부서는 알지도 못했다. 극비사항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따라 붙었다.

그로선 대수롭지 않았지만 과장의 귀띔을 듣자 머리가 번쩍했다. ‘그게 단순한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하네. 허참’ ‘무기?’ 군 시절 화생방 교육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일이지, 세균전이 바로 그런 거겠지. 북쪽 얘들이나 미국이 핵을 갖고 있으면 뭘 해. 이거 하나면 끝나지. 지들도 죽고 우리도 죽긴 마찬가지고’

그런데 문제는 구석구석 뒤져도 그 놈의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거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른 길 형사는 마냥 강 박사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인데 저렇게 난리부르스를 치는 겁니까?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네.”

쌍, 소리는 없지만 땀을 닦아낸 얼굴빛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도 모릅니다. 본적은 없어요. 만든다는 말을 듣고 내가 도와줬지만 마지막 작업은 혼자서 했기 때문에........,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그럼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아, 알았습니다. 박사님이야 뭐 잘못이 없으니........”

“아닙니다. 나 역시 후회막급입니다. 과학자의 호기심치곤 너무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으니 말이요.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니라면서요?”

“모를 일이죠, 그건. 제가 아는 바론 한 몇 십 명 정도? 더 있을지 없을지.”

“멈출 때가 됐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강 박사를 놓치지 않고 길 형사가 되물었다.

“전에도 언뜻 그런 말 한적 있었지 않았습니까?”

“물론 장담은 못하지만 하강곡선을 그릴 때가 됐을 거란 짐작이죠. 천천히 증가하다 갑자기 폭발하고 그 다음엔 모든 세포가 쇠잔해져 녹아버릴 겁니다. 지금이 폭발기고 길게는 1-2개월, 짧게는 2-3주 정도. 세포활동이 왕성하면 할수록 번식하다가 갑자기 죽는 거죠.”

“그럼?”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손에 잡고 싶은 길 형사지만 짧으면 2-3주란 말에 자신이 없었다.

“그 뒤론?”

“아무도 모르겠지 않겠습니까? 그저 쓰레기 썩은 냄새 풍기다 사라지겠죠.”

“박사님도 큰 죄를 짓긴 마찬가지로군요.”

“아픈 데를 찌르기엔 형사님도 마찬가지고요, 허허허”

“근데 그 건 어디 있습니까? 무슨 세균이라고 하는 거, 찾을 수는 있겠어요? 저 위에서 불을 켜고 있던데.......”

“아무래도 그 놈이 가져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작업은 그 놈 세포와의 합성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야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고........ 작은 그러니까 깨알만 한 것도 공중에 뿌려지거나 상수도에 넣게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한 도시 정돈 광기에 휩싸여 버릴 겁니다. 서로를 죽이고 범하고 여자만 보면 눈이 벌게져 어머니 딸, 누이를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허덕거릴 거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총이나 폭발물에 죽으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누군지 아는 상황과 누구나 다 적이란 상황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커 보였다.

“휴, 그러기에 막아야 되는데........”

길 형사는 거기서 자신이 없었다. 발바리 그 자식도 못 잡고 있는데 어떻게 그 무슨 M바이러스까지 찾아낸단 말인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참 이름은 알지 않을까? 갑자기 스쳐지나간 희망.

“혹시 말입니다. 혹시.”

말을 잠시 끊었다 기대하는 얼굴로 강 박사를 본다.

“처음 그 연구를 시작했을 때 제 생각입니다만, 누구에게 그 유전자를 주입할지 먼저 정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야 나중에 확인할 것 아닙니까?”

“아하, 맞습니다. 거기까진 제가 생각이 없었네요. 가만”

연구실 책상으로 간 강 박사는 서랍과 수첩과 컴퓨터 파일을 한참 뒤지더니 6개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출력했다. 2개씩 적힌 걸로 봐 아이들 이름은 아니고 부모 이름 같았다.

“아니 여긴 대전이 아니고 청주? 그렇다면 이놈이 청주에서 여기로”

발바리가 먼저 떠오른 길 형사는 아차 싶었다. 설마 청주까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강 박사님은 계속 찾아보시고 전 이곳에 가보겠습니다. 이 병원을 찾으면 뭔가 단서가 있을 거란 확신입니다.”



땀이 겨드랑이고 가슴이고 가리지 않고 흘렀다. 차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도 때 이른 더위엔 속수무책이었다. 청주까지 당장 쫒아간 그는 신부인과를 찾자 그나마 더위를 잊었다. 예전에는 제법 컸을 것 같은 3층 병원은 다른 건물이 올라가자 왜소해 보였지만 붉은 색 벽돌과 담쟁이 넝쿨이 고풍스러워 오히려 돋보였다.

원장실로 안내된 길 형사는 서른 후반의 기품 있는 중년여인의 명패를 보고 이름이 윤 혜란인 걸 알았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용건을 꺼냈다.

“윤 원장님 이렇게 찾아온 건 다름 아니라”

종이를 내밀었다. 여섯 개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은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아마 모를 겁니다. 이십년도 넘은 이름이니. 혹시 기록을 볼 수 있을까요?”

“기록은 있을 겁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진 않지만 잠깐, 가장 오래 근무한 간호사가 있어요. 제가 부르죠.”

“그래주시겠습니까? 근데 이곳을 인수하셨나요? 아니면”

“아 여기요. 여긴 제 아버님이 하셨는데 작고하셨습니다. 근데 대전에서 오셨다고요?”

“예, 대전에서 이 더위를 뚫고 왔습니다. 대전은?”

“저도 대전에서 개원을 했었죠. 마땅한 운영자가 없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혹시 란 산부인과라고 아세요?”

“아니, 모릅니다. 어디 아이 얼굴이나 볼 시간 있나요? 허허”

“참, 근데 이 이름들은........”

“사실 말씀드리기가 그렇지만........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서요. 혹시 뉴스 같은 걸 보신 적 있나요? 발바리라고”

윤 혜란은 그 때 그 치욕스런 일을 당한 뒤론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았다. 강간 사건이나 납치 사건을 보면 그 날의 수치와 모욕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그 놈들. 악마 같은 셋의 얼굴은 가물가물했지만 입에 쑤셔 넣은 그 생식기는 지금도 생각만하면 목에서 구토가 치솟았다. 레지던트였던 후배도 한참을 고통 속에서 지내다 끝내 이혼을 헸다. 남자의 성기를 보면 그 때의 수치심과 모멸감이 찾아들어 도저히 부부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나이 먹은 간호사가 들어서자 대화를 마친 그는 정중한 인사를 하고 기록실로 갔다. 오래된 파일들은 누렇게 변색이 되었지만 다행히 파일로 저장이 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충 생각되는 연도를 치고 성별을 구분하자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넘기다 나란히 적힌 세 이름을 찾았다. 충북 청주시. 아이들 이름은 없었지만 부모의 주소는 적혀 있다. 출력을 부탁하곤 휴대폰을 꺼냈다.

“강 박사님. 찾았습니다. 이제 잡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놈들이 스스로 자멸하기 전 내 손으로 잡아내겠습니다. 없어지기 전에 자신들의 과거를 알고 가야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길 형사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셋 중에 가장 강력한 유전자를 주입 받은 아이를 찾아야 합니다. 그 놈이 아마 캡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알았죠? 꼭 그 놈을 찾아내야 합니다. 만약 뿌리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알았습니다. 근데 어느 놈이 중요한 놈인지 무슨 단서라도 있습니까? 이거 바다에서 바늘 찾기지”

“그건 나도 모르요”

신호가 일방적으로 끊기자 우선 적힌 주소부터 가기로 했다. 물어보니 청주 외곽이다. 시는 시지만 그 땐 거의 시골이었다고 한다.





여자 엉덩이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쪽 곧은 허리를 따라 도톰한 살집으로 뭉친 커다란 둔부는 눈을 부시게 했다. 하얗고 풍만한 엉덩이가 다산의 상징이란 게 맞긴 맞는 모양이군, 유석은 중얼거리며 그 중 가운데의 보드랍고 연한 살을 가진 이 집 딸년의 힙을 손으로 만졌다. 융단을 만지는 느낌이다. 끝내주는 군, 이 년은 뒤에서 때리면 죽여주겠어, 저 날씬한 허리를 잡고 세로로 쫙 그어진 선을 따라 파고들면, 흐흐흐. 추리닝이 솟구쳤다. 가만 벨이 울렸지. 이년들은 이대로 두고 내가 맞아들일까? 아니야. 저년을 데리고 가야 안심하고 들어오겠지. 좋아.



거실에서 한 바탕 추잡한 짓거리를 당한 셋은 다시 질질 끌리다시피 해서 이곳, 은미의 귀중한 소장품을 모아 둔 미니 박물관으로 온 것이다. 시대별로 잘 정리해 놓은 여긴 은미의 자랑거리다. 골동품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장 바꿔도 돈이 된다. 천만 원은 훌쩍 넘은 도자기도 모아 두었다.



유석은 마침 적당한 물건을 찾았다. 눈에 들어온 물건은 예전 양반 년이나 상년들, 아니면 궁중에서 나인들이 썼을 것 같은 굵고 기다란 성기조각이었다. 하나씩 쥐어주자 멍청한 표정을 짓던 여자들은 곧 울상이 됐다. 무엇을 뜻한 지 아는 표정으로......,

“뒤로 돌아 쪼그려 앉아서 이걸 끼어. 이 년들이 말을 하면, 또 맞을래?”

‘흑’ 울음을 터뜨린 계집년의 뺨을 한대 올려치자 그때서야 ‘어마야’ 하며 돌아섰다.

“충분히 옛날 기분을 느껴. 조상의 슬기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여기에 어울리지 않나 싶으니까. 빨리!”

나무로 된 좆을 잡고 쪼그려 앉는 계집년은 잘 맞히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곳을 대자 유석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어깨를 움찍하며 제대로 맞혔지만 잘 들어가지 않은 듯 뽀얀 엉덩이를 자꾸 들었다 놨다 했다.

“눌러주랴, 응? 찢어지게 만들어 줄까? 이것들이 말을 하면”

“아, 아니요. 할 게요. 할 수 있어요. 때리진 말아요.”

울먹인 정화는 힘을 주며 엉덩이를 밑으로 내렸다. ‘윽!’ 얕은 신음. 투박한 나무의 결이 연약한 살갗을 스치자 아픈 듯 허리를 비틀었다.

“시발년. 처녀도 아닌 게”

욕지거리를 던진 유석은 엉덩이를 깔고 앉는 둘, 은미와 딸 정화의 손을 뒤로 묶었다. 다리도 묶으려다 윽박지르는 걸로 끝냈다.

“허튼 수작하면 이 년이 작살나. 이 년 아랫도리를 질겅질겅 씹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뒤에서 보고 있을 테니 푹푹 쑤시라고. 거기가 흥건히 젖어있어야지 만약 말라 있으면 죽는 줄 알아.”

벽에 걸린 커다란 탱화를 뜯어내 둘을 덮어버렸다. 탱화가 살아 숨쉬었다.



은희를 대문께로 끌고 간 유석은 눈짓을 보냈다. 무슨 의미인지 그녀는 알았다. 그대로 데리고만 오면 자기들은 살려주겠다는 뜻이리라. 그랬으면 좋겠다는, 제발 그래주었으면 하는 그녀다.

문틈으로 여인들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 이것. 바로 이 냄새. 나를 구원하는 이 향기로운 꽃들. 꽃잎을 하나하나 따서 입에 넣고 씹으면 단물이 줄줄 흐를 것이다. 대문이 멀리 보이도록 몸을 피한 유석은 은희의 허리를 안으며 허튼 짓 말란 암시를 주었다. 겉옷만 입은 은희는 허리춤을 껴안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었다. 반은 문을 열고 도망을 치고 싶었고 반은 안에 있는 언니와 조카의 걱정이었다. 그의 마지막 위협은 효과가 컸다. 다른 반은 접고 대문을 열어 반갑게 맞았다.

“왜 이리 늦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느라고, 호호호”

“그래. 은희도 와 있었네. 한 상 차렸나 보지, 호호”

다들 한마디씩 하며 정원의 반을 들어설 때에야 묘하다란 생각을 가졌지만 이미 늦었다. 누군가 뒤에 나타나 순식간에 긴 줄로 한번에 묶어 버린 것이다. 저항 한번 못하고 굴비 엮듯 둘둘 말아 거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정말 ‘어’ 한마디 하지 못한 급작스런 일이었다. 물론 은희의 편안한 얼굴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길 거란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흐흐흐,”

징그런 웃음소리. 그때서야 아차 싶은 여인 셋은 몸을 돌려 도망을 치려했다. 긴 줄이 먼저 손발의 자유를 막았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얼굴 앞에 겨눠진 시퍼런 식칼이 막았다.

“까불지 마. 귀여운 년들. 어디서 날뛰려고 해. 맛을 보여줄까?”

다짜고짜 날라든 주먹이 아랫배를 강타했다. ‘끄르르’ 무릎을 털썩 꿇은 중년 여인. 풀색 투피스 차림은 카펫위에 스르르 무너지다 다른 여인의 줄 때문에 겨우 걸쳤다. 몸매가 호리호리한 여인에게서 진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화장품 향기에 향수까지 버무려진 내음은 정욕을 자극했다. 벌름거리며 어디선가 맡았던 기억이다. 어디였을까? 그 때 그 세차장이었던가? 아니면 발랄한 두 여대생 년을 낚아올 때였을까? 머리 속이 아득해지며 노란 빛이 파득 지나갔다. 유석은 스스로도 자기의 냄새가 더 독해진 것을 알았다. 주먹을 쥔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뼈가 녹아드는 느낌. 남은 건 하체의 좆이다. 좆은 더 커졌다. 대궁, 큰 활의 화살이 시위를 구부러뜨리며 날아가고 싶어 했다. 과녁. 필요하다.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동작이 빨라진 그다. 연거푸 후려친 유석은 은희를 앞세워 셋을 거기로 끌고 갔다. 다리가 후둘 거렸다. 살점이 얼음처럼 녹아든 것 같았다.

“빨리 걸어, 이 씨팔년들. 얼른 얼른.”

상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진 속을 셋은 배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대문에서 은미의 개인박물관까지 걸린 시간은 3분도 되지 않았다. 개 끌듯 몰아간 유석은 탱화를 벗겨내고 희미해진 눈으로 둘의 눈부신 뒷모습을 봤다.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던 둘은 놀라서 연신 힙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젖은 년이 누구야. 너야? 아하, 어미 년이 먼저 젖었다고. 니 년 친구들도 왔어. 환영의식을 보여줘야지. 돌려. 빙빙”

‘헉!‘ 셋 중 누군가 숨을 멈춘 듯 하다. 모녀가 홀라당 벗고 나무로 만든 성기를 끼고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현실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잘못 본거니 했던 세 여인은 진짜로 친구와 딸이자 숨을 멈췄다.

“다 벗어. 이 년들아. 넌 저리로 가 있어. 약속은 지킨다.”

은희를 도자기가 놓인 선반 아래로 보낸 유석은 참을 수 없는 욕정에 침을 흘리며 세 여인을 엎드리게 했다. 무자비한 폭력은 여인들에게 복종이 정답이란 걸 이미 알려줬다. 벌써 손에 쥔 낫이 투피스의 앞을 가르고 치마까지 찢어 발겼다. 공포영화에서나 본 듯한 ㄱ 자 모양의 낫이 공포를 키웠다. 그때마다 팔 다리가 잘려나가듯 ‘어마야,’ 얼굴을 질렸다.

후다닥 벗어젖힌 세 여인은 한 곳에 엎드린 채 덜덜 떨었다. 무릎이 아프다거나 팔꿈치가 아픈 것은 둘째다. 역겨운, 단백질 썩은 냄새를 풍기며 남자가 올라탈 땐 긴장과 공포로 기절할 뻔 했다. 젖가슴에 손이 닿을 때마다 ‘윽, 윽’ 고통스런 신음을 내뿜은 여자도 있다. 젖꼭지를 비틀거나 잡아당기며 희롱할 땐 죽고 싶을 만치 모멸감이 찾았다.

“헉, 헉. 시발 년들. 내 화살을 받아라. 화살 박힌 자국은 니 년 자궁에 영원히 남을 영광의 상처다. 헉, 헉!”



<하얀 원피스와 긴 머리칼 밑에

완전한 원뿔형의 가슴

잘록한 허리

가운데에 씨방을 묻고

익은 사과처럼 양쪽으로 나누어진 엉덩이>



그래 익은 사과를 반으로 뚝 잘라 질질 넘친 과즙을 마시리라. 멈추지 않은 엔진이다. 씩씩대며 쑤셔 박은 커다란 좆대가리를 빼내곤 다음 여인의 구멍에 냅다 꽂았다. 마른 음부가 벌어질 틈도 없이 파고 든 성기는 저 안 깊은 곳에 물을 뿌렸다. 화살이 박힌 아픔에 눈물을 글썽인 여인도 있지만 아랑곳없는 그다.



물체가 더 희미해졌다. 잔뜩 안개가 낀 것 같다. 박물관 내부를 밝힌 전등이 가물가물했다. 머리 속은 고장 난 세탁기처럼 덜커덩 거렸다.

“빨아.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이 세상에 마지막 남길 나의 화살들. 너에겐 영광이며 나에겐 호의며 세상엔 빛!”

정화는 입을 건드린 붉은 살덩이가 역겨웠다. 희멀건 액체도 싫었다. 분홍색 섬모가 촉수가 되어 두꺼운 벽을 타고 올랐다. 담쟁이처럼........

<긴 터널을 통과해 가면서

이브를 안는다.

내 좆으로 내 안의 여자를

먹는다.>

유석은 순간 머리 속을 흐르는 마지막 절규를 들으며 긴, 참이나 긴 진득한 정액을 품었다. 입가에 흐르고 있는 자기의 수많은 화살들이 늑대 울음을 냈다.





“아, 이 사람이요?”

생각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촌로는 다시 이름을 보며 말을 멈췄다. 생각은 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는 대답에 길 형사는 맥이 풀렸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십니까? 혹시”

“글쎄요, 동사무소에 한번 찾아가 보시죠. 거기라면 알까”

벌써 두 번째다. 처음 ‘이 00’란 세대주를 찾았지만 이사 간 지 한참이라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혹시나 해서 멀지 않은 이집을 찾았는데 결과는 같았다.

“동사무소가 어딥니까? 머나요?”

“아녀유, 저기 저 아래로 가면 금방이어유”

쉬워보였는데 어려웠다. 길 형사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저기’한 손짓을 따라 더위 속을 걸었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찾았다. 마침 나이 지긋한 동사무원이 대번에 해결을 해 준거다.

“아 이 부부. 잘 알죠. 함께 살았는데요. 지금 시내로 이사를 갔는데........., 이 사람 아들이 같은 동사무소엘 근무해서 잘 알죠. 근데?”

그때서야 무슨 일인가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올려봤다. ‘동사무소에 근무라? 어째 번지수가 잘 못된 것 아냐, 이거’ 자기와 같은 국가공무원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시 한번 확인을 했지만 같았다.

“그럼 혹시 이 사람은?”

한참을 생각할 것도 없이 쉽게 대답을 했다. 더위 속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데 마음이 놓인 그는 내친 김에 ‘박00’까지 물었다.

“아, 이 사람은 모르겠네요. 이 사람은 분명한데”

“그래요, 이거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고맙고요, 혹시 생각이 나면 여기로 연락을 주십시오.”



청주 시내로 돌아온 길 형사는 그 사람이 알려준 대로 흥덕구의 한 동사무소를 찾았다. 오후시간이었지만 바쁘지 않았다. 먼저 신분을 밝히며.

“여기 김 유석이란 직원이 누굽니까?”

스물 중반의 남자들을 돌아봤지만 다들 한 옆 빈자리를 가리켰다. 비어 있는 자리. 거기엔 ‘휴가중’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오래됐나요?”

“예, 솔직히 말씀드리면 휴가 기간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출근을 안 해 집에도 찾아갔지만 모르겠다고 하네요.”

모른다? 그건 마찬가지였다. 김 유석만 아니라 이 춘식이란 얘도 이미 집을 떠난 지 오래라 전혀 모른다는 대답이다. 어째 쉬워 보인다, 했지. 길 형사는 더위에 짜증이 났다. ‘스벌’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습관이다. 그래도 이 정도 실마리를 찾았으니 전산망을 뒤진다면 어딘가 박혀 있는 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휴대폰을 열자 젊은 형사가 받았다.

“야, 내가 부른 이름들을 빨리 적어, 그리고 전국 어디고간에 찾아 내. 오늘까지 당장”

마지막은 박00. 또 다시 올 일 없이 온 김에 다 찾아보자고 그 집을 찾았다. 이층 양옥의 집. 오동나무 한 그루가 대문 옆에 자라나고 있어 특이했다. 거문고를 만들 일도, 시집갈 때 해줄 장롱도 아닐 텐데......... 집은 맞았지만 아들은 없었다. 이름은 박 봉구였다. 다시 휴대폰을 꺼내는데 마침 전화가 왔다.

“선배님, 찾았어요. 찾았어. 이 춘식, 이 이름이 전국에 서른 개 정도 있는데 청준엔 없고 여기 대전의 무슨 가게 주인이 그 이름이에요. 확인했더니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지만 냄새가 나요. 갑자기 나타나서 가게를 내고 또 갑자기 보이지 않고. 이리로 오실 거 에요, 아니면 제가 가볼까요?”

“기다려. 내가 가지. 그리고 이 이름도 찾아. 박 봉구, 형은 군에 있다는데 동생은 오리무중이래. 집에서 내 논지 오래고. 어째 이상하지 않아. 이 중에 분명 그 새끼, 발바리가 있을 거야”





고통은 조금 미뤄졌다. 아주 조금 뒤로. 날이 푸른 면도를 꺼내고 허리 아래부터 발등까지 비누거품을 칠했다. 분홍빛 맑은 살갗이 하얀 거품으로 덥혔다. 흰 눈이 내린 벌판이다.

“최상급의 가죽을 얻기 위해서야. 잔털은 물론 조그만 털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여야 이 세상 최고의 구두가 되는 거거든. 벗기고 난 뒤에 해도 좋지만 아직 따뜻한 피가 흐를 때 해야 손상이 덜 가. 아프지는 않을 거야. 이런 귀중한 피부에 손톱만큼의 상체기가 나도 내 마음이 아프거든.”

정성스러웠다. 사각사각,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될 것처럼 조심스레 면도질을 했다. 허벅지의 흰 눈이 치워지고 분홍빛이 살아났다. 솜털까지 밀어낸 허벅지는 탄력 좋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했다. 가랑이 사이까지 말끔히 밀었다. 검은 털이 쓸어졌다. 거품에 묻혀 밀어진 자리는 검은 점들만 별처럼 박혔다. 종아리, 발목, 발등의 잔털에 발가락의 몇 올 긴 털까지 밀었다.

“면도를 하면 깔끔해지지만 대신 향기도 없어지지. 향기가 없는 꽃은 꽃이 아니듯 육향이 풍기지 않은 피부는 이미 피부가 아냐.”

준비해두었나 보다. 말간 액체가 든 병의 뚜껑을 열어 허벅지 양쪽에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향기 좋은 프리지아를 으깨고 짜서 만든 즙이야. 이걸 바르면 다리와 발에서 강한 프리지아 향기가 피어나지. 거기에 허브, 민트도 조금 넣었어. 최고의 살갗이 분명 될 거야.”

손바닥으로 펼쳐 문지르기 시작했다. 즙은 표피를 뚫고 진피까지 적셨다. 분홍빛 살은 즙을 머금으며 향기를 내뿜었다. 아, 이건가? 내 머리 속을 지배했던 냄새가........, 내 이빨을 날카롭게 하고 물어뜯게 만든 향기가 이거던가? 춘식은 정아의 발에 즙을 바르며 발바닥에 입을 맞췄다. 뜨겁게 입맞춤을 한 그는 혀를 내밀어 보드라운 살을 맛봤다. 돌기에 감치는 물렁한 발을 가볍게 물었다. 하체가 부풀었다.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에 쌓였다. 이물질이 가득한 것 같다. 서걱서걱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 이유는 몰랐다.



“고통의 피부를 가질 주인공이 바로 너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오면 이 두 발을 펼치고 발가락을 세우며 네 찢어진 영혼을 여기로 모아. 가슴과 머리로 보내면 매질이 멈추지 않을 거야. 알았지? 아픔을 이 두 다리와 발로 꼭 보내. 피부가 고통에 팽창해지도록”

길고 넓적한 가죽회초리가 스물 중반, 글래머의 국부를 향해 날라들자 비명을 지르며 두 발을 활처럼 휘었다. 발가락까지 휘며 고통에 잠겼다. 허벅지와 종아리 살이 팽팽한 긴장으로 부풀었다. 회초리가 거두어져도 비명을 멈추질 않았다. 너무 아팠다. 이런 고통이 있다는 걸 처음 안 것처럼 목을 꺾으며 죽는 시늉을 했다. 두 번째, 허리를 비틀었다. 뒤꿈치만 대고 엉덩이를 들었다. 매끈한 다리 선이 타원을 그렸다. 다행히 발목은 폭이 넓은 천으로 고정돼 상체기가 나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진 스물 중반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멈춰달란 비명을 질렀다. 세 번째. 네 번째. 묵묵히 풀무질을 하며 쇠를 달군 대장장이처럼 계속 회초리를 내리쳤다. 발까지 붉게 물들었다. 피가 몰린 탓이리라. 얼마나 힘을 주었으면 발가락까지 발갛게 물들었다. 회초리가 멈추자 비명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춘식은 회초리를 던져놓고 동글게 휜 발가락을 가지런히 폈다. 회오리 모양의 지문도 빨개졌다.

“고통은 반드시 쾌락을 동반하지. 부인은 쾌락의 가죽을...........”

“어, 어.”

입을 벌리며 겁먹은 소리를 냈다. 바로 옆에서 귀를 뚫었던 비명이 아직까지 맴돌았다.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싫어, 하지 마요.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발이요, 흑흑”

“쾌락은 고통이 아냐. 온 몸이 뜨거워지는 열락은 세상의 모든 뜨거운 것으로부터 보호를 해주지. 고통의 가죽이 세상의 상처에서 보호를 해주는 것처럼.”

정말 그의 혀는 뜨거웠다. 입김을 씌어줄 땐 다리를 휘며 오르가즘에 빠져 들었다. 집요한 입술과 혀는 서른 중반 풍만한 여자의 곳곳을 태웠다. 음모를 밀어낸 거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의 그곳처럼, 다만 다른 점이라면 금이 크다는 것일 뿐. 세로로 그어진 살을 벌리며 안으로 파고든 긴 혀는 수많은 세포들을 날뛰게 했다. 질 안의 숨겨진 그곳을 건들 때는 허리를 비틀며 물기를 흘렸다. 허벅지의 피부가 부르르 떨렸다. 혀가 스칠 때마다 아, 그 밑, 그 아래. 더, 더. 여인은 눈을 감으며 입을 벌렸다.

“쾌락은 저 아래, 당신의 두 발에 다 모아야 돼. 흘리지 마. 핏줄이 터지도록 담아둬”

다리를 핥았다. 종아리의 살을 깨물며 빨 때는 발바닥이 둥글게 말아 올려졌다. 발목에 멈춘 혀는 반대쪽 다리를 타고, 허벅지의 안쪽을 핥으며 아랫배의 배꼽을 희롱했다. 여인은 스스로도 거기가 질퍽해진 걸 알았다. 잘 익은 밤이 너무 익으면 스스로 터트리듯 여인은 음부를 벌렸다. 유방으로 옮긴 남자는 쉬지 않고 잘근잘근 물었다. 이젠 유방이 팽창했다. 유두가 일어서며 입을 기다렸다. 아기를 찾는 유방은 남자의 입에 젖을 뿌렸다. 딱딱한 젖꼭지가 검붉어졌다. 거친 신음은 남자가 떨어져 나가도 한참 이어졌다.

“그래, 이렇게 따뜻한 살갗이 좋아. 희열에 들뜬 이 피부 좀 봐. 울긋불긋 물든 이 가죽.”

춘식은 서둘렀다. 또 이빨이 욱신거릴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득해졌다. 미경은 실신했는지 요동도 하지 않는다. 의자에 앉는 자세로 머리가 옆으로 기우려져 곧 쓰러질 것 같다. 편하게 뉘였다. 가벼운 몸을 눕히고 작은 발을 쥐어본다. ‘조금만 기다려. 곧 아름다운 구두를 만들어 줄 테니까. 이 세상의 마지막이며 최상의 구두를........’



길 형사는 바빴다. 청주에서 돌아오자마자 후배가 파악한 연락처를 들고 프리지아를 찾았다. 아니 찾아가려는 길에 다른 일이 터졌다. 프리지아는 나중에 가기로 하고 먼저 신고 접수가 들어온 사건현장을 찾았다. 벌써 오후 5시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건은 오전부터 발생했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신고가 됐다. 신고는 남편이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다. 부인과 딸은 병원에 실려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지, 대통 당했겠군. 발바리가 확실하다면 아마 육신이 가리가리 찢겨질 고통을 받았을 걸, 휴‘

길 형사는 이미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에게서 그 놈의 짓거리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피해는?”

“그건, 저........”

“알았습니다. 그건 우리들이 파악할 테니 장소나 안내해주시죠”

그 장소, 소장품을 모아둔 장소는 너무 끔찍했다. 그가 연락이 안 돼 부랴부랴 뛰어든 현장은 처참, 그 자체였다. 전쟁터에 시체가 나뒹군 것과는 또 달랐다. 얼핏 본 난징대학살과 같았다. 여자의 자궁에 대나무가 꼽혀 있는 사진은 너무 끔찍했었다. 근데 그게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 순간,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보기에도 검고 징그러운 나무 모양 성기가 깊게 박혀 손잡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전에도 이런 것들은 제발 좀 치워버리라고 잔소리했지만 예술품이란 대답에 넘어가곤 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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