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씨 - 3부

4.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다.



그 당시 나는 진짜 순둥이였다. 멍청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까.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 땐 더 현실 감각이 없고 더 겁쟁이였다. 삼 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임신이 아니기만 바라며 아무런 대책 없이 보낸 것이 첫 번째 바보짓이었고, 수술비용이 없다고 병원도 못 가보고 결국 수술 불가능한 시점까지 끌고 간 것이 두 번째 바보짓이었으며, 예정일 한 달 전에 결국 엄마한테 들켜 엄마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 세 번째 바보짓이었다. 피임을 못 한 것은 나의 실수고 내 책임이라 생각해 혼자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혼자 해결한 것이 없었다.



임신 오 개월 째,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지만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때이다. 나는 원래 마른데다 임신 후에도 보통 때처럼 활동했기 때문에 배도 많이 안 나와서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에 갔을 때도 임신한거 맞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임산부복 입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는 예비 엄마들 보면 너무 부럽다. 어쨌든 그래서였을까. 그 녀석이 다시 휴가를 나왔을 때도, 나의 변화에 대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부대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 날 이후로 그 녀석과 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라는 걸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귀는 남자 친구라 할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르게 하기는 그 놈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휴가 나와서 나와 동아리 친구들을 같이 만났는데, 사귄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아 너무 서운했었다. 임신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도 겨우 친구들에게 나를 알리느냐 알리지 않느냐에 마음 상했다는 게 물론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그 때는 두 문제가 나에게는 똑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그 녀석을 부여잡고 한바탕 운 뒤, 여관을 갔다. 처음 가보는 여관이었고, 처음 완전한 나체를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었다. 옷이 벗겨지면서도 그 녀석이 배에 대해 뭐라고 할까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배를 본 그 녀석이 한 말은,

“왜 이렇게 배가 나왔어? 살찐 거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심하다. 다음에 볼 때는 살 좀 빼!!”

“으응......”

입 안에서는 ‘나 네 아이 임신 했어‘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끝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펠라치오를 해 보았다.



오월에 아기가 태어났다. 밤에는 병원에서 재우고 아침에 입양 시설에서 데려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외할머니와 엄마가 아기를 절대 보지 못하게 했다. 정 떼기 힘들다고. 밤새 나를 지키시던 외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살짝 아기에게 가 봤다. 쪼끄만 게 하품도 하는데 너무 귀여웠다. 너무 작아서 안아보기가 겁이 나 그냥 바라보기만 하다가 내 병실로 돌아왔다. 얼마 안 있어 입양 시설에서 사람이 와서 아기 아빠의 외모랑 성격 등을 물어본 뒤 금방 데려가 버렸다. 몸조리를 위해 집에 있으면서 아기의 동그랗고 까만 눈이 자꾸 생각 나 계속 울음을 삼켜야 했다.



이 이야기를 마저 마무리하자면, 제 작년 결국 그 녀석에게 ‘너의 아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다’ 라고 얘기해 주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이 말하고 싶어 결국 병이 났던 이발사와 같은 심정이었나 보다. 그 녀석은 그제야 그 때 내 배가 살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했다. 한참 만에 놀란 정신을 수습하고 물었던 질문이,

“어떻게 생겼어, 누구 닮았어?”

였는데 내 대답이라는 게,

“몰라, 제대로 못 봐서. 금방 가버렸어.”

였다.



5. 밤에는 다른 인격으로 활동하다.



정서 불안에 시달리던 나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웹 채팅에 빠져 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나를 밤마다 게임방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이유였다. 웹 채팅이 처음에는 이러한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게 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채팅은 순수했던 처음에도, 불순해진 나중에도 언제나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채팅을 통해 한 오빠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 함께 술을 먹었고 그 뒤로는 만난 적이 없다는 것만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 오빠와 함께 술을 먹은 날, 나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집에 걸어가겠다는 오기를 부렸던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처음 보는 방에, 처음 보는 사람과 누워 있었다. 일어나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 처음 보는 사람이 물을 가져다준다. 대단히 친절한 사람인가보다. 조금 정신이 들자 전날 밤 일의 한 단편이 머리 속을 휙 스쳐 지나갔다.

「해도 돼요?」

「네......」

그럼 나 이 사람이랑? 그러고 보니 토악질하는데 등 두드려 주던 사람도 있었던 것 같고. 가뜩이나 아픈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자 그 친절한 사람이 설명을 해준다. 전날 집에 오는데 웬 여자가 만취 상태로 아슬아슬 걸어가더라고. 그런데 뒤에서 택시 하나가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고. 위험해 보여서 자기 집으로 데려온 거라고. 듣고 보니 고맙긴 한데 결국 자기도 그 택시 기사가 했을 일을 해버린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면 오십보백보지만 심한 외로움증에 걸려 있던 나는 너무 감동을 하고 말았다. 게다가 해장국도 사주니 말이다. 그래서 지나가던 행인과 나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 그 행인에게서도 신기한 체위를 배웠다. 그 행인은 자기 것을 삽입한 다음 다리를 붙이게 해서 그 위에 눕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피곤하면 눈을 감고 입으로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나는 점점 행인을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나 그 행인은 그저 섹스만을 원할 뿐이었다. 나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한 행인이 접근금지선언을 하면서 그와 나의 관계는 끝이 났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채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번개라는 것을 처음 하게 되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는데 같이 한 잔 하기로 이야기가 되었고 내가 있는 게임방을 찾아오기로 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비를 잔뜩 맞은 그 남자는 키가 작고 마른데다 얼굴엔 여드름까지 난, 유행이 지난 청재킷과 바지를 입은 사람이었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택시를 타고 학교 근처 술집으로 가서 소주를 두 병 정도 마셨다. 그리고 또 필름이 끊겨 버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미친 ×이라 욕하셔도 머라 할 말이 없다. 왜 그렇게 내 몸을 마구 굴리며 살았는지 나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눈을 뜨자 또 다시 모르는 장소였다. 둘러보니 모텔이었다. 새벽에 들어오던 것이 생각났다. 잠깐 쉬어가자고. 그런 고전적인 대사에 그냥 끌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내 몸에 들어오는 것까지 허락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만나긴 했지만 그의 중요한 의의는 채팅을 통해서 번섹을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나는 점차 번섹에 취미를 붙여 급기야는 수도권까지 진출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났고 그 다음에는 나처럼 안고 있는 걸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 두 번째 사람에게서 몇 년 후 연락이 와 자기 부인에게서 혹시 확인 전화오거든 제발 모르는 척 해달라고 부탁해서 많이 웃었다.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은 비디오방에서는 불편하고 불안해서 못 하겠다고 하더니, 방까지 잡아 놓고는 뭔가 창피하다고 도망가 버렸다.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어 버리자 심심해진 나는 또 다시 채팅을 했고 그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P.S. 제 글이 많이 심심하신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고해랍시고 글을 써서는 게시판만 점령하고;; 하지만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별 이상한 인간 다 본다라고 생각하시고 넘어가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글재주가 없어 경험담을 재미있게 구성하지 못해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래도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인기 야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