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장 - 5부 5장

박 차장 5-5





참석자 중 이벤트가 완전히 종료되기 전에 행사장을 떠나는 사람은 303명의 참석자 가운데 세 명이었다. 그 중의 두 사람은 부부로 보였다. 행사장을 떠나면서도 막말을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몸은 맞아서 멍들고 할퀸 자국이 선명했다. 두 사람은 호텔 정문 앞에서도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욕질을 하더니 정문 앞으로 주차된 자신들의 차에 각자 올라서는 행사장을 떠났다.



부부를 뒤이어 한 여자가 나왔다. 비록 마스크를 썼지만 무언가에 홀린듯한 그 여자는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한 쪽 다리에만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스타킹도 뭐가 많이 묻었는지 곳곳에 하얀 얼룩이 져 있었고 그녀의 등에도 하얀 것들이 뭍어 있었다. 한 여자 종업원이 보기에 민망했는지 물수건으로 여자의 등을 닥아주었다. 여자는 안내데스크에서 밍크 코트를 집어든 여자는 천천히 코트를 몸에 걸쳤다. 그녀의 지갑에서는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여자가 귀챦은 듯이 전화기를 빼 들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1팀장입니다.”



“네…”



“계속 전화했지만 전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네…”



“오늘 영업 3팀의 PC를 뒤졌습니다만, PC 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OS 와 문서작성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 박장우라는 녀석이 미리 PC 에 있는 데이터를 모두 지워버린 것 같습니다.”



“끊으라고 했쟎아욧!”



여자는 전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끊고서는 전화기를 다시 지갑에 넣었다. 여자가 서있는 곳에 그녀가 타고 온 승용차가 세워졌다. 운전석에 앉은 그녀는 잠시 이마를 운전대에 대고 있더니 고개를 세우고 승용차를 출발시켰다.



어느덧 참석자에게 허용된 1시간의 파티 시간이 지났다. 장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고객님들과 함께 했기에 즐거웠던 오늘 행사 시간의 다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5분 뒤에는 조명이 밝은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못다한 이야기가 있으신 고객들께서는 5분 동안 이야기를 끝마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승용차는 테이블 A 부터 호텔 정문 앞에 주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앞 테이블 고객께서 홀을 나가신 다음에 차례차례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리며 오늘처럼 항상 즐거운 날들이 고객 여러분께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5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자 그 동안 어둠 속에서 사랑을 나눴던 사람들이 얼마되지 않은 옷 매무새를 고치고는 자신들의 테이블로 들어왔다.



홀의 문 쪽부터 서서히 밝은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의 머리 모양이 처음 입장했을 때 보다는 많이 헝클어져 있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밝은 얼굴로 차례차례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행사장의 손님들이 완전히 호텔을 나선 것을 확인하고야 장우는 영업3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오늘 정말 수고들 많았어. 아주 성공적인 이벤트였어.”



“그래요. 차장님. 결혼정보회사에서 온 고객들도 굉장히 좋아했어요. 우리 이벤트 덕분에 커플들이 좀 생길 것 같은데요.”



“그래. 마스크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른 참석자들도 다 만족한 얼굴들 이더라구.”

“근데, 고객 중에 세 분은 먼저 행사장을 떠났어요. 무슨 일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싸우고, 한 사람은 얼이 빠져서 가더라구요. 그 여자 등에는 남자 정액 같은게 있어서 닦아줬어요.”



“그래…? 정 대리가 잘했군. 아마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그러고 보니, 육 대리하고 차장님도 이벤트 말미에 없어지신 것 같고. 어디 있었어요? 혹시, 참석 고객이랑 몬 짓한거 아니에요?”



“하긴 뭘해? 이벤트장 둘러보면서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하고 행사장 돌아다녔어.”



“수상해…두 사람 모두 팬티 앞에 뭐가 묻은 것 같기도 하고…”



“정 대리님, 좀 사람을 믿어봐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이곳 저곳 문제 생기지 않나 살피느라고 힘들었다구요.”



“육 대리, 이마에 힘줄 생기면서까지 그럴 필요없쟎아? 정말, 두 사람 이상하네…”



“쓸데 없는 얘기로 시간 끌지말고. 안 대리, 구매 신청서 다 모은거야?”



“네, 여기 있습니다.”



“추가적인 구매 주문은 그리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수량은 모르겠지만, 주문서 두께는 꽤 되는군. 좋았어!”



“차장님, 이거 다 정리하고 가야하나요. 하루 웬 종일 서 있었더니 다리가 후들거려요.”



“고 대리님, 제 다리도 후들거립니다. 주문서는 정 대리한테 주고, 지금부터 안 대리랑 정 대리 차에 넣고 우리도 뜨자고.”



영업3팀이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옷을 갈아입은 엑스터시팀들도 짐을 챙기고 행사장을 나서려 하고 있었다.



“장은주씨.”



“네, 차장님.”



“오늘 굉장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안무 때문에 전 죽는 줄 알았어요.”



“후훗, 많이 놀래셨죠? 우리 팀 사람들도 너무 신이 나서 마지막에 얘기되서 만든거에요. 난처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해요.”



“난처한 건 없었고…하지만, 지불은 계약 금액대로 드릴텐데요.”



“상관없어요. 저희도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장은주씨. 맨 마지막에 그 여자는 누구였어요?”



“풋, 그 여자가 알고 싶으세요. 하지만, 어떡하죠? 그 여자는 그림자 여자였는걸요.”



“알겠습니다. 그림자 여자였지요. 그림자 여자도 방울 팔찌를 달고 있더군요. 장은주씨 처럼.”



“그랬나요? 전 잘 못 봤어요.”



“하하하, 하옇튼 그 그림자 남자와 여자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십시오. 덕분에 오늘 이벤트가 매니 매미 에로틱 무드가 됐다고요.”



“전해드릴께요. 그럼.”



장은주는 장우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다른 팀원들과 행사장을 나갔다. 장우는 행사장을 나서는 장은주와 엑스터시팀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멋진 사람들이야. 프로야.”



장우는 끝까지 수고해 준 호텔 종업원들과 모델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들 역시 오늘의 패션쇼를 무척이나 즐긴 것 같았다. 모든 정리가 완료되고 영업3팀이 호텔 정문을 나서는데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장우에게 왔다. 행사 중에 타이티 여행권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남자가 장우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번 이벤트를 기획하신 분들입니까?”



“에, 그렇습니다. 제가 책임자인 박장우 라고 합니다.”



“그러십니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릴려고 여태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석해 주셔서 저희가 감사를 드려야 하지요.”



“아닙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고, 또,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특히, 오늘이 저희 부부 결혼 20주년이었거든요.”



“그렇다면 다시 한번 축하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두 분이 타이티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네, 아이들이 곁을 떠나고 부부 사이가 잠시 소원해졌는데 오늘 행사로 둘 사이가 다시 뜨끈뜨끈해진 것 같아요. 제 명함입니다. 혹시, 박 선생님께서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찾아 주십시오.”



“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명함 간직하고 부탁드릴 일이 있으면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흔들면서 호텔을 떠났다. 장우는 **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뿌듯한 만족감이 들었다.



“아까 그 사람들 보기 좋죠?”



“그래, 보기 좋아.”



“우리가 좋은 일 한 것 같아요.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응. 일 하면서 이렇게 기분까지 좋은 것도 복이지.”



“차장님, 보세요. 눈이 와요.”



영업 3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때 늦은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둡기만 했던 밤이 눈 때문에 환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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