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 ... - 프롤로그

● 산골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산골에는 벌써 첫 얼음이 얼었어요



저는…저는…



이제 산골을 떠나려 합니다.

아니, 이젠 이 산골을 떠나야만 합니다.



내가 낳고,

내가 자란 산골.



이제 저는 이 산골을 떠나야만 합니다

나에게는 언제나 엄마의 자궁 같은 이 산골을

이젠 정말 떠나야 하나 봅니다.



동그랗고 예쁜 엄마의 무덤과

아직 흙도 채 마르지 않은 아빠의 무덤만 남겨놓고

이제 난 이 산골을 떠나야 합니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정말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산골을 떠나야만 합니다.



지금부터 약 6개월 전.



(빨간수건-처음에는 아프다던데)를 등록한 다음날 이른 아침.



따르릉∼설아. 아빠가 위독하셔. 많이…



친구 형자에게서 걸려 온 이 한 통의 전화를 받자마자

아침을 먹던 숟가락을 허공에 내던지고

입은 옷 그대로

신발도 신지 않고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터미널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산골로 들어간지

6개월.



그 한 통의 전화로 말미암아



학교도,

회사도,

고3 알바도,

테니스도

야전도,

**도,

OOOO도 (다른 필명 다른 작품),

내 인생도,

그리고



모든 게 올 스톱.

일단정지.



언젠가는 오고야 말 것이고

그것도 그리 멀지 않는 때에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날아 들 슬픈 소식을

마음에 준비를 하고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급한 비보를 접하고 나니

뭘 챙기고 뭘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산골로 달음박질을 하였습니다.



아빠.

아직은 안 돼.

그래도 아직은 안 돼.

그렇게 쉬 죽지 않는다고 했잖아 ?

날 두고 그렇게 빨리 가지는 않겠다고 했잖아 ?



읍내에서 산골까지가 평소의 걸음대로라면 오르막 2시간.

얼마나 허겁지겁 뛰고 절고 구르고 기고 비비고 쉬지 않고

가시덤불의 지름길로 단숨에 달려가 한시간만에 도착하니

유난히 여름 햇살이 뜨거운 툇마루 기둥에 힘없이 기댄 채

빙긋이 웃으시면 절 맞아 주신 아빠.



아빠 ?

아빠. 괜찮으세요 ?

응. 설이가 보고 싶어서…연락을 하라고 했지. 난 괜찮아.

정말 ?

응. 너보고 싶어 그랬어.

힘없이 빙긋이 웃으신다



그래도 난 좋다.

그런 아빠가 좋다.

날 보고 싶어 날 불러 주는 아빠가 좋다.

이젠…날 보고 싶다고 불러 줄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닌데…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질긴 것인지

피골이 상접 하다는 말

뼈와 가죽이 붙어있다는 말



그랬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망울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다리는 더욱 가늘어져 마치 지게 작대가 같은 아빠.



이젠 그 이름마저 두려운

Ethambutol(마이암부톨정), INAH(유한짓정),

Pyrazinamide(피라진아미드정), Rifampin(리팜핀캡슬)

그리고 비타민B6 제제(Piridoxine) 두 어 알이 툇마루에 뒹굴고



오랜 복용으로 인하여 이미 그 부작용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체력저하에 간장애, 신경장애, 광과민성, 시신경장애와

머리나 척수 등 중추신경에서 뻗어 나온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하루종일 끙끙거리며 통증을 참으신다.



그런 아빠를 위해 이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엄마의 동산에까지라도 걸어가게 하고

손이라도 잡고 방에서 마루로 나서는 근이완 운동과

통증이 심할 때 아스피린이나 해열진통제를 먹여주는 것이 전부.



지난달 음력 열 사흗날에 본 아빠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해서 저의 산골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날이 새면 전 매일 아빠를 업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다니면서

아빠가 일러 주시는 말씀들을 하나고 빼놓지 않고 들었어요.

아빠가 산골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 가지고 가서 엄마에게 일러주도록

산꼭대기로 능선으로 골짜기로 샘물로

난 아빠를 업고 이곳 저곳을 다녔습니다.



밤이면 호롱불 밝혀놓고

아빠가 잠드시기까지 아빠가 기운이 없어 하시는 날은 내가 이야기하고

어느 날을 아빠가 이야기하고

그렇게 수많은 낮과 밤을 우린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정작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말들이지만 말 이예요.



아빠의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었어요.



고구마 순을 제 때에 따 줘야 알이 굵게 되는데…

땄어요. 어제 오늘 요.



지난 태풍 때 쓰러진 고추나무는 작대기를 꽂아 묶어서 바로 세워야 하는데…

참깨는 거름을 많이 먹지만 꽃이 지면 바로 알맹이가 차기 시작하는데.

그때는 거름을 주지 마라.

많이 먹고는 그대로 쓰러진단다.

아빠…



옥수수가 열렸니 ?

호박은 몇 개나 열렸니 ?

많이 요.

아주 많이 주렁주렁 요.



그래. 호박 그 놈은 거름을 주지 않아도

사람이 찾아가지 않아도 그냥 저 혼자 꽃피고 호박을 달아서

가을에 가보면 이게 왼 횡재냐 하는 게 호박이란다.



올해 밤 대추가 많이 열리거든

읍내 친구 집에도 좀 갖다 주렴.

내가 산을 내려 갈 수가 없어 니 친구가 두 어 번 약을 가져다 주었단다.



아∼ 형자야.



내년에는 읍내 종묘사에 가서 토마토 씨앗을 좀 사다가 엄마 동산 옆에 심으라…

토마토가 먹고 싶구나.



내년 ?

내년 ?

내년에는 나도 아빠도 이 산골에는 아무도 없을 것임을 알고 계시면서

내년에는 ?

내년에는…토마토를 심으라고 하신다.



분명 나에게 할 말이 많을 것인데

아빠의 이야기는 뜸을 들이면서 자꾸 엉뚱한 데로 빗나가는 것을 보아

매우 심각한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저렇게 하기가 힘든 것일까 ?

내가 재촉하여 이야기를 하시게 할까 ?

아냐. 그건 아냐.

가느다란 명줄을 잡고 오늘밤이나 아니면 지금 당장 입을 닫을 지경에 계시면서도

저렇게 꺼내기가 힘든 이야기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 ?



감자씨앗은 있지 ?

응.

바람이 잘 통하는 음지에 내다 놓아라.

마대자루에서 싹이 나면 일년 농사 헛일이야

아니지. 넌 감자를 심고 그 감자를 캐서 먹을 때쯤엔 여기에 있을 것이 아니지.

아신다.

그 모든 것을 아신다.



언제나 옛날이야기라고 한다는 것이 딱 한가지.

옛날 옛날에 총각과 처녀가 살았는데

둘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았단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늘 그랬고 이야기의 끝도 늘 그랬다.

이젠 내가 다 외우고 있었다.



그래. 그래. 잘했다 그치 아빠. 나도 현욱이 하고 도망가서 살고 싶어.

현욱이 ?

응.

누군데 ?

응. 있어. 우리 반 앤데 참 잘 생겼어. 착하고.

그래.

응. 나도 현욱이도 나와 같이 살고 싶데…거짓말이다. 현욱이가 누군지 나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응 ?

응. 그래. 그래서 우리 설이와 닮은 예쁜 딸 하나를 낳고 아주 잘 살았데.

또 그 얘기야 ?

매일 밤 토씨하나도 틀리지 않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이야기 마지막에는 혼자 몰래 우시던 일.



내년에는 들깨 잎을 따서 당근과 파를 잘게 썰어 양념장에 함께 담가두면

반찬하기 싫을 때 그냥 꺼내먹어.

짭짤한 게 그 놈이 밥도둑이야.



엄마에게 하시던 말씀 그대로다.

엄마가 보고 싶은 신가 보다.

머잖아 만나게 될 것을…

내 숨이 붙어 있을 이승에서도 그렇게 목마르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건데. 너 골짜기에 대추와 밤은 많이 열렸어 ?

응. 아직 꽃만 떨어 졌는데 올해는 아마 많이 열릴 것 같아.

작년에는 쉬었잖아.



저기…뽕나무밭에…새까만 오디…가 먹고 싶구나.

알았어 아빠. 지금 따다 줄 께.



너 고추에 상처는 다 나았느냐 ?



엄마 동산에서 미끄럼을 타다 억새풀에 베인 그 상처 말이야 ?

아…네 에. 다 낳았어요.

흉터는 생기지 않았느냐 ?

조금 요…

후에 시집가서 니 신랑이 그 흉터를 보고 놀리면 아빠에게 이르렴.

…네…아빠…



어디…아픈 데는 없고 ?

그럼요 아빠.

이젠 넌…혼잔데…혼자가 되는데…

누구하나 보살펴 줄 사람도 없는데…아프면 안 된다 응 ?

네 에. 아빠.

그래…넌…이제 정말 혼자가 되는 구나.



건데 아빠 ?

아빠엄마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만나 여기에 살게 되었고

날 어떻게 낳았어 ?



아빠 아∼





이제 곧 죽을 사람이라도

누구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거나

누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쉬 죽지 못하고 그 가녀린 생명줄을 끈질기게 이어 간다더니.



이승에서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지 ?

이승에서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



그러나.

아∼너무도 잔인한 계미년 시월 열 하룻날 새벽 3시경.



해가 질 무렵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더니

밤 11시30분까지 4시간 동안 몇 번이나 숨을 놓고 깔딱깔딱 하였는데.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남길 거라곤 그것 뿐 이였는지.

끙하고 힘을 주더니 바지가 흥건히 젖도록 물똥을 싸고

나보기가 미안했는지 씨-이-익 웃어 보이는 아빠.



아빠. 괜찮아요.

아빠 혼자 저를 키울 때도 몇 년 동안 매일 밤낮으로 똥 기저귀를 갈았잖아요.

겨우 6달 이였는데 뭐…

똥물이 마치 핏물 같았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쌀과 보리쌀을 갈아 만든 희멀건 죽 한 그릇 뿐인데

그것조차 새기지를 못하고 아래로 다 내려놓다니

이젠 정말 가시려나 보다.



과연 인간은 죽으면서 자기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게 무엇일까 ?

이승을 하직할 때

뭘 가지고 가려하고

실제 뭘 기자고 가는 걸까 ?



뭘 가지고…



가지고…

가지…

가…



나는 더 이상 미루다가는 어쩌면 영영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나는 기어이 아빠에게 묻고 말았다.



아빠 이제…더 하실 말 있으시면 하세요?

그래…이리 귀를 이리 줘 보렴…

네. 아빠. 이제 하실 말 마음놓고 하세요

그래 그래…이제 정말 눈앞이 저승이구나.

예. 아빠. 잘 버텨 내신 거예요.

그래. 널 너무 오래 동안 고생을 시켰구나.

아니에요. 아빠.

그래 내일 이야기 하자구나.

예 아빠.



아빠 자는 거야 ?



아빠 코에다 귀를 대어보니 골골 가래가 끓는 소리.

그 사이로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

그래 자. 아빠. 나도 잘 깨.



새벽 3시쯤일까 ?



가슴이 답답하고

누가 내 손을 거세게 잡는 것 같은데

갑자기 내 얼굴에 뜨거운 물을 확 끼얹는 느낌에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니



아∼아빠다.



이런∼세상에…악. 안 돼. 아빠. 아빠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아빠.

설…설…아…

응. 아빠.

우리 설이…참…예뻐…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얼굴에 시뻘건 핏덩어리를 한 바가지나 울컥 뱉어내고

순간 내 가슴에 떨구면서 안기는

아빠의 머리가 순간 무겁다고 느끼는 순간.



악.

갑자기 몰려오는 견딜 수 없는 무거운 침묵.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안 돼.

안 돼.



유언도…가족도…누구도 없이 오직 혼자서 맞은 아빠의 마지막.

이것이 아빠의 임종(臨終)이였어요.



아.

내가 바보였다.

어제 저녁때쯤 내 옷이 더럽지 않니 하시기에

어제 갈아입은 건데요 뭐. 그래도 갈아입고 싶으세요 ?

응.

그래요. 어떤 옷을 입혀 드릴까요 ?

벽에 걸린 회색 남방을 가리키신다.

그건 너무 추운데…

그러나 나는 작년 가을 내가 서울에서 사 가지고 간 그 남방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속옷까지 다 갈아 입혀 달라고 하신다.

알았어요.

엄마가 생전에 손으로 기워주신 고쟁이와 소매 없는 적삼을 입으시고는

손으로 자꾸만 쓰다듬고 있다.



그 위에 남방을 입히고 다시 코트를 걸치고서야 빙긋 웃는다.

그리고 이내 사시나무 떨 듯이 턱까지 다닥거리며 떨고 있었다.

그 봐. 추운데 왜 옷을 갈아입자고 하고서…

나는 가만히 아빠를 안았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 떨림은 간신히 멈추었다.



옷을…

새 옷을 그것도 원하시는 옷을 챙겨 입고 그렇게 가신 것이다.

그걸…난 몰랐던 것이다.



울고…또 울고…

산골이 떠나가도록 난 울고 또 울었다.

밤새도록 그렇게 울고만 있었다.



산골을 비추는 아침 햇살을 보고.

아빠의 손에서 내 손을 빼려니 아뿔싸 손이 빠지지를 않는다.

손가락으로 아빠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힘들여 펴는데

그때마다 우두둑 뼈마다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마침내 내 손을 빼낸 아빠의 손아귀를 보니



손바닥에 꼬깃꼬깃 접혀진 누런 종이.

그 종이에는

딱 한 줄의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게 누구야 아빠 ?

응…?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렸어…

아직도 살아 계신다면 아흔 둘인데 하시던 그 사람 주소일까 ?



이젠…난 어떻게 해야 하나 ?

눈앞이 캄캄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감뿐이고

이제 뭔가를 하긴 해야하는데…



그래.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할 뿐

정작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내 얼굴에 토해 낸 시뻘건 핏덩어리 한 사발이

내 눈물에 다 씻겨 내려갈 즈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그래. 현이 아빠에게 물어보자.

아∼

참. 현이네 엄마 아빠는 현이 엄마 친정에 누가 결혼을 한다고 가고 없지.

갑자기 이 산골엔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서움을 느꼈다.



이제…

호상(護喪)은 누가 하고

부고(訃告)는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

염습(殮襲)은 ?

입관(入棺)은 ?

상복(喪服)은 ?



뇌리를 스치는 갖가지 무서운 생각들.



정말.

호상은 누가 하지 ?

그래. 참. 뻐꾸기와 부엉이가 있지.

우리 아빠가 돌아 신 것을 알기라도 하듯 뻐꾹 뻐꾹 밤새도록 울어대던 뻐꾸기와

부엉이가 부엉부엉 호상을 하고



그러면 부고는 누가 전해주지 ?

그래. 맞다. 너희들이 있지.

토끼와 다람쥐야 니들 등에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실어 줄테니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전해주면서

혹시 이곳을 지나가는 길이라면

나와 함께 같이 울어 줄 수가 있는지 물어 보렴.



아빠. 이제. 나 한번만 더 보고 이제 눈을 감아.

오늘 새벽에 엄마 봤지 ?

예뻤지 ?

저기 엄마 사진도 한번 더 보고

이젠…자. 아빠. 문을 감아 응 ?



아빠를 반듯하게 눕히고 눈을 곱게 감도록 쓸어 내리는데

아빠의 얼굴에는 나의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울면서…그냥 울면서…



가산화수소에 담갔던 솜을 꽉 짜서

코와 입을 그리고 귀를 막고

아빠의 옷을 모두 벗긴 후

큰 솜뭉치로 피골이 상접한 아빠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낸다.

아직도 따듯한 아빠의 몸을…



아빠. 추워 ? 빨리 할 깨.



엄마가 오시면 함께 덮겠다고 아끼시던 하얀 이부자리를 펴고

반듯하게 눕히고 얼굴에 하얀 모시 수건을 덮고

아빠. 추우니까 이불 덮어.

미리 준비해둔 하얀 홑이불을 머리까지 덮어놓고 일어서려는데

난 다리가 휘청하며 다시 아빠의 품에 쓸어졌다.

아빠.



방문을 열고 나오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나는 대문 밖 동산에 계신 엄마의 무덤으로 달려갔다.

엄마. 이제 아빠를 엄마 품에 보냈어.

만났지 ? 어땠어 ? 너무 말랐지 ? 미안해 엄마. 그래도 난 한다고 했는데…

이젠 엄마가 해 드려 응 ?

엄마.

난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해 응 ?



발상(發喪)도 부고(訃告)도 할 수가 없으니.



다음날

또 다시 아빠의 몸을 깨끗이 닦고 수의(壽衣)를 입히고

현이 아빠가 일러 준 데로 옷을 다 입힌 후

차가운 손발을 가지런히 놓고 이불로 싼 뒤

엄마의 치마끈으로 싸늘하게 식은 아빠의 몸을 꽁꽁 죄어 맸다.

울면서…

엄마를 부르면서…

엄마.

날 좀 도와 줘 응 ?



망자의 옷은 불에 태워 줘야 저승으로 가면서 입고 간다고 하지만

불을 지르고 싶어도 입산금지에 산불금지라 금방 소방차가 달려 온데서

이렇게 관속에 다 넣을 줄 테니 가다가 춥거든 껴입어 응 아빠.

엄마를 만나는 날은 제일 좋은 옷을 입어.

엄마.

이제 아빠를 엄마 곁에 보내 드려요.



그리고 엄마에게는 설이가 사 준 거라면서 엄마에게 꼭 이야기해야 해요 네. 알았죠 아빠 ?

아빠. 여기 엄마의 옷들도 함께 넣어 줄 테니 엄마를 만나거든 전해 줘 응 ?

그럴 거지 응 ?

아빠. 이젠 편안히 주무세요



염라대왕님.

오늘.

우리 아빠를 당신께 보내드리오니

부디 우리 아빠 좀 잘 봐주세요 네 에 ?



우리 아빠는 요.

산골에서 태어나 평생을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으며

산골에서 오직 흙만 파고 살았던 착한 우리 아빠를 제발 벌주지 마시고

우리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 게 해 주세요 네 에 ?



엄마 얼굴이 가물가물 하다.

이젠 영원히 잊어버리려는가 보다

아빠가 설명을 해주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리곤 했지만 이제는 아빠마저 없으니

엄마는 이렇게 해서 영영 잊으려는가보다.



아빠가 미리 준비해둔 관속에

관이래야 그저 여기저기서 생전에 주워 모은 낡은 널빤지로

그래도 모양만은 관 흉내를 내고 엉기성기 만들은 관에

아빠의 시체를 넣는데 한 나절.



살아 생전에는 갓난아기처럼 한 줌도 안 되는 것 같아

가볍게 업고 산골을 누비고 다녔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왜 그렇게 무거운지.

낑낑대고 낑낑대며 겨우 관속에 뉘고 나니



언제 와 있었는지 방문 밖에 서 있는 등산객이 묻는다.



누구…신지 ?

네. 우리 아빠예요.

네…그래요. 혹시 도와 드릴 일이라도…

네. 다른 거는…읍내에 내려가시거든 보건소에 들려 저기 안골에 설이 아빠가 돌아 가셨다고 전해주세요.

그러면 아실 거예요.

그 동안 보건소에서 두 어 번 다녀 가셨거든요.



아무도…가족이나 친척도…아무도…없어요 ?

네…없어요.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 등산객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관 뚜껑을 덥고 그 관 뚜껑 위에 굵은 싸인 펜으로

"우리 아빠. 잘 가세요" 라고 썼다.



등산객이 사라진지 두 어 시간이 지났을까 ?

보건소의 늙은 공의가 숨을 헐떡이며 산골로 올라와서

형식적으로…그리고 건성으로…아빠를 살핀 후

능숙한 솜씨로 먹지를 대고 방바닥을 책받침으로

금방 한 인간의 죽음을 쓱쓱 적어 가며 "사체검안서"라는 것을 단숨에 휘갈겨 써 주고는

난 바빠서…

아무리 보건소에 등록된 오랜 지병의 환자가 사망하였다고 하지만

너무 사무적이고 너무 형식적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 방에서 아빠의 관을 끌고 마루로

다시 마당으로

대문을 지나서 엄마의 무덤 곁에 미리 아빠가 파놓은 구덩이까지 가는데

꼬박 한나절.



한달 전부터 찾아 온 산골의 겨울 날씨에도

몸은 땀으로 얼굴은 눈물로 젖어

움직이기만 해도 물이 뚝뚝 떨어진다.



덜컹.

아무리 조심을 하고 밀어 넣으려 했지만 관은 그만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빠. 미안. 아팠지 ?



해가 다 지도록 계속되는 삽질에

내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땀과 눈물과…

그만 그 자리에 핑하고 쓸어졌다.



어 ? 배가 왜 고프지 ?

그러고 보니 벌써 3일째 난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엄마의 무덤크기로 흙을 쌓으면서 잔디를 층층이 놓고…다지고…

아빠. 이젠 춥지 않지 ?

오늘 저녁에는 아빠 곁에서 잘 깨.



일년에 한 두 번 먹어 본 하얀 쌀밥으로 저녁을 짓고

이미 먹지도 못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찾으시던

파랗고 여린 잎과 줄기의 아욱을 따서 간장에 무쳐

반찬이라곤 달랑 그것 하나로 아빠의 무덤 앞에서 아빠와 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정말 초근목피로만 살아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공납금이 밀려 아빠가 선생님 앞에 불려와서

차가운 교실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고 계시던 일이 제일 먼저 더 오른다 .



언제나 도시락 반찬은 산나물이고

소풍가는 날 겨우 계란 찐 거 하나

그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밤마다 읽어주는 그림책.

훗날 그 그림책을 보니 그 책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은 백지였다.

설사 글이 쓰여져 있다 하여도 아빠에게는 소용이 없다.

아빠는 글이 있어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였던 것이다



산골을 찾은 선생님에게 드릴 것이 없어

거북이 등같이 갈라진 그 검은 손만 비비면서 비굴한 웃음을 흘리시던 아빠.



내가 철이 없어 친구 엄마가 해주시는 하얀 쌀밥도 먹고 싶고

또 친구의 좋은 집에서 자고 싶어 말도 없이 친구 집에 자고 오는 날

새벽 서리를 맞으며 친구 집 앞에서 기다리시던 아빠.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한 생리.



자고 나니 방바닥에 피가 흥건히 흘러 너무 무서워서 앙 하고 울어버렸는데

그런 날 꼭 껴안고 한 손으로는 장롱을 뒤져 장롱 깊숙한 곳에서

엄마가 미리 준비해둔 하얀 모시 생리대를 꺼내 주시던 일.



무더운 여름밤 산골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날이면

밤새도록 잠도 주무시지 않고

잠자는 제 곁에 앉아 부채로 모기를 쫓아 주셨고,



장독대에서 날 발가벗겨 놓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목욕을 시켜 주시던 일.



장작 한 짐과 맞바꾸고 사온 예쁜 책가방.

그러나 등에 매는 타입은 중학교에 들어가면 못쓴다고

아예 손에 드는 책가방을 사서 또 깁고 기워 8년을 썼던 일.



읍내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산골에 올라오는 동안 다 녹아

얼름 뼈다귀만 달랑 가져오시던 일.

냉동 피자를 사서 냄비에 물을 붓고 삶아 주시던 일.

나무 짐을 팔아 빵을 사서 학교 앞에서 기다리시던 일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담 모퉁이에서 기다리시던 일



낫으로 긴 머리를 잘라 주시던 일.

아빠는 언제나 바느질용 가위로 내 머리를 짧게. 정말 짧게 바가지 머리로 짤라주었는데

그 이유는 아빠가 머리를 자르는 솜씨가 없어서 자꾸 만지다 보면

점점 머리는 짧게 되고

또한 나머지 이유는 짧게 잘라야 1달에 한번 자르는 걸 2달에 한번 자르게 되고



머리가 길면 엄마처럼 머리를 손질하여 땋아주지도 못할뿐더러

산골에 가뭄이 들면 매일 머리 감을 물은커녕 밥 해먹을 물도 없을 때가 있는데

어린 기억으로 일주일에 한번정도 밖에 머리를 감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언제나 훌륭한 헤어디자이너였다.

물론 미장원 갈 돈도 없었지만

그 동안 아빠의 헤어디자인 솜씨도 점차 늘어

최초로 미용실에 간 것은 고3때 원하던 대학에 필기시험 합격 후 면접 보려간다고

미장원에 간 게 그게 처음이었다. 그것도 형자가 데리고 가서 형자가 돈을 주었다.

그 전에 난 언제나 바가지머리였다.



그것도 여자의 머리를 말이다.



나이가 점점 들어 가슴이 불룩해 오자

엄마가 하시던 브라쟈가 너무 크다고 생때를 부리면

큰 대바늘과 굵고 흰 실로 뚜벅뚜벅 기워 줄여 주시던 아빠.



음력으로 매월 보름을 전후로 한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달빛이 훤하여 산으로 오르기 좋아 산골로 가는데

언제나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산골 어귀에서 날 기다렸다는 아빠.



이 나이가 되도록

영원히 벗지 못할 것 같은 가난과

그 가난의 굴레를 숙명처럼 지고 사셨던 늙은 홀아비인 아빠와

그 아빠의 철없던 딸년을 혼자 키우던 지난 이야기들이

끝없는 명주실 타래 같이 밤새도록 애비의 무덤 가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

이런 아빠를 위 해 난 무엇을 했었나.

이 불효 자식의 죄 값은 무엇으로 갚아야 하고

어떠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렸다.



아니 ? 설아. 이걸 니 혼자서 다…

우리 아빠 일인데요 뭐.

산골로 돌아 온 현이 아빠가 멍하니 서서 나를 쳐다본다.



쯧 쯧.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그래 서둘러 가셨나.

현이 아빠다. 그래.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황급히 가셨우 그래 네. 설이 아빠 ?

이제 산골의 마지막 친구도 갔구려.



현이 아빠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아빠의 무덤에 엎드려 어린애처럼 엉엉 우신다.

왼 슬픔이 그를 그렇게 울게 했는지는 난 모른다.

자신도 다음달에는 산골을 따나 현이 엄마 친전 동네로 이사가는 것이 서러워서 우는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아빠가 좋아하시는 아욱국을 끓여 아빠와 같이 아침을 먹었다.



설아.

이젠 넌 가거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아냐 아빠. 아직 산골에서 할 일이 많아.

뭔데 ?

음, 음, 이것도, 저것도…

눈물이 말랐나.

꺼이꺼이 헛 울음만 나온다.



엄마 무덤도 다시 손 봐야 하고

해마다 봄가을 갈수기에 아빠가 그러하셨듯이

산짐승들이나 우리 식구들이 물을 먹을 수 있게 골짜기에 새 우물을 파거나

빗물에 쓸려 내려와 우물을 매운 흙들을 걷어 내어 물이 많이 고이게 해야 하고



손바닥만한 우리 밭을 산소자리로 탐내던 읍내 고추 방아간 사장도 만나야 하고

집에 남은 가마솥이랑 쇠로 된 농기구들은 한 곳에 모아 두어

읍내 고물상 할아버지가 가져가게 해야 하고



집은 ?

응.

집은 산골에 겨울에 눈이 오고 날씨가 추울 때면 길 잃은 등산객이나 심마니들은 물론

토끼와 다람쥐들이 들어가서 추위를 피하고 잠을 자게 방문을 열어 놓고 갈 것이며

마당 장독대는 그대로 두고…



이것들이 다 정리(?) 되면 이제 산골을 떠나려고 해요.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결코 울지 않기를 바라면서 떠나려 합니다.



학교는 복학 준비,

회사는 재취업 타진.

고3 알바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힘들 것 같고 아쉬운 데로 고2라도.

산골생활로 망가진 몸은 테니스로 다시 만들고

아직 미완인 시나리오도 마지막 완성을 해야 하고

야전에도,

**에도,

OOOO에도,



작가 님들의 글도 읽어야 하고.

그동안 밀렸던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작가님 들의 작품을 읽는 일인데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6개월 치의 수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읽자면

모르긴 해도 3개월을 걸릴 것 같은데.



글도…쓰고…

그리고

내 인생도,

그리고…

또…



산골에서 서울로 가져가져 가는 것을 챙겨 보니



엄마의 비녀, 골무, 그리고 빛 바랜 사진 한 장과

아빠의 라디오. 고장난 팔목시계. 라이타 (휘발유를 부어 쓰는 것)

그리고 아빠의 사체검안서.



내 것이라고는 화분에 옮겨 심어 서울로 가져오는 설앵초 한 포기.

부디 서울에서도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하는데…



지금의 계획으로는 일주일 후쯤.



해가 지고 난 뒤

부모를 여윈 영원한 죄인 상주의 풀어 헤친 머리로 산골을 내려가



몸 떠나면 마음 떠난다고 언제 다시 오겠냐면서

남편을 시댁에 쫓아내고 우리 애기랑 우리끼리 같이 밤새도록 이야기하자는

읍내에 있는 친구 형자집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면사무소에 들려

아빠의

사망신고와

매장신고를 마치고.



그리고

이제…



설이는

서울로 가렵니다.



서울로…



(끝)



마지막 대필 및 등록대행 : 정O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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