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강한 열전 - 5부 1장





제 5 화



수입차 매장에서 만난 미시



제 1 부 우연한 만남





자물쇠로 잠가 둬라.

감금하라.

문지기를 두어 보라.

그러나 문지기는 누가 감시하지?

여자란 지혜롭다.

그녀들은 문지기부터 손을 댄다.

-유베날리스





도로변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여기 저기에 쌓여 있었다.

맑게 갠 파란 하늘이 흰눈에 반사되어 유난히 더 차가워 보였다.

잔설에 묻어온 바람도 칼날처럼 매섭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높고 파란 하늘이 차갑기 보다 어쩐지 슬퍼 보인다.

날아 다니는 새 한 마리도 없이, 하늘은 나의 가슴처럼 그렇게 텅 비어 있었다.



나에게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다.

언제까지라도 나만을 사랑할 것 같던 여인도 때가되면 떠난다.

여인과의 이별은 처음 얼마동안은 마음의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러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잊혀져갔다.

이렇게 떠나보낸 여인은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더라도 서로가 변해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의 어느 유명한 시인은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묻어두고, 산 현재에 활동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말은 남녀관계에 있어서 기가막히게 들어맞는다.

과거는 죽은 과거일 뿐이다.

더 이상 연연하여서는 안된다.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경제 용어처럼 그동안 숱한 여인들과 로맨스를 이어 왔지만 영원할 것 같던 남녀 관계는 어느 순간엔가 청산되어지고 오늘처럼 우울할 때 옆에 있어줄 여인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또 우연한 계기로 생각지도 않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를 만난 것은 강남의 한 수입차 매장이었다.



마침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지나던 길에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들어선 터였다.

유리 너머로 꽤 예쁜 차들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젊은 남자가 문을 들어서자마자 깍듯이 인사를 건네며 반겨 준다.



"그냥 구경이나 좀 하려구요....."



"아, 네. 그러세요. 마음 놓고 찬찬히 구경하세요."



나는 친절한 그의 말투에 편한 마음으로 진열된 차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매장에는 색깔도 아름다운 예쁜 자동차들이 잘 정돈된 상태로 진열되어 있었다.



"어머, 예쁘기도 해라!!!"



정신없이 차를 둘러 보고 있을 때 어느 한쪽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켠에서 웬 아리따운 여인이 매장직원의 안내로 차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가씨가 타기에는 지금 보시는 사브가 성능도 더 좋고 무게감도 있어요.

유럽에서는 이 차가 꽤 인정을 받아요.

뭘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나 벤츠나 BMW같은 차들만 선호하지요."



"아, 그래요. 제가 보기에 모양도 제일 예쁜 것 같아요.

그럼 이 차에 대해서 자세한 자료와 견적서를 좀 뽑아 주세요.

그리고 지금 타고 다니는 제 차도 알아서 어떻게 좀 처리해 주시구요."



"네! 일단 사무실로 좀 들어갑시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서 내 앞을 지나 가는 여인은 얼핏보아도 상당한 미인이었고, 또 젊어 보였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값비싸 보이는 수입 승용차를 구입할려고 하는 것을 보니 관심이 생긴다.

그동안 좆을 차고 태어났다는 자부심만으로 마음먹은 여자는 반드시 먹어치웠다.

외간여자를 탐하는 보통의 고만고만한 놈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먹어봤으면 하는 잘난 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먹어치웠고, 나의 무기아래 함락시켜오는 동안에 이제는 시시한 년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를 보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새로운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지만 그녀의 체취는 나의 중추신경을 자극시켰고, 잠자고 있던 욕망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이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사무실에 들어가고 난 뒤에 건성으로 차를 둘러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매장앞을 어슬렁거리면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직원의 환송을 받으며 나온 그녀는 곧장 걸어 가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노상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인 듯 싶은 흰 색의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고 잽싸게 뛰어나가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를 세웠다.



"아저씨! 수고비는 알아서 드릴테니 저기 주차된 저... 앞차 빼거던 좀 따라가 주세요."



늙수구레한 기사는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났는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가 탄 차는 국내에서 최고급으로 치는 H사에서 나온 대형승용차였다.



20여분간 달려간 앞차는 강남에서도 대형 아파트가 몰려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더니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만 산다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단지 안으로 들어간 차는 한 낮이라 주차공간이 많아서인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아파트 동앞에 그어진 주차선에 주차시키더니 그녀는 아파트 출입구로 들어가 버렸다.

메타기에 찍힌 요금의 두 배를 주니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채고는 휑하니 되돌아 나가버렸다.

택시에서 내려 그녀의 차가 주차된 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면서 보니 소문대로 목에 힘깨나 주는 부류들만 산다는 아파트답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하나같이 고급차들이다.

그녀의 차 넘버를 머리속에 기억시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경찰서에 있는 고등학교 동기놈에게 전화를 걸어 좀전에 외워 두었던 넘버를 대면서 차적 조회를 부탁했다.

녀석은 요즈음 재미있냐는둥 의례적인 안부를 물어 보고는 별다른 의심없이 10분쯤 후에 알려 주겠다며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짐작대로 그녀는 아까의 그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주민등록상 나이는 29세였다.

아가씨처럼 보였는데 29세라면 유부녀인 모양이다.

아까 얼핏 보기엔 잘해야 스물 대여섯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승용차로 일찌감치 어제의 아파트로 출동해서 그녀가 외출하기를 기다렸다.

지루해서 하품을 연거푸 할 때쯤해서 그녀가 나타났다.

어제와는 달리 간편한 복장이다.

그녀의 차를 한강쪽으로 가더니 예상밖으로 한강 둔치의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잠시후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차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는지 아까의 복장이 아니고,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몸을 뒤틀며 심호흡을 몇번 하더니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녀는 한가한 시간대를 택해 한강변에서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가 서서히 달려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업에 들어갔다.



"1시간을 기다리다가 그냥 갑니다.

실수로 그만 선생님의 차를 손상시켰습니다.

여기 연락처를 남기고 가니 원하시는 곳에서 수리하시고 꼭 연락 주십시오.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상쾌하게 달리는 동안에 등줄기로 땀이 흐르며 찌부등하던 몸이 긴장으로 팽팽해지는걸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육상선수를 할 정도로 그녀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배어 나온 땀을 훔치며 차로 돌아온 "김미라" 는 윈도 브러시에 꽂혀 있는 메모지를 읽어보고는 속이 상했다.

차를 돌아보니 차 뒷범퍼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기에 안심을 하며 다시 한번 메모지를 들여다 보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도 그만이었을 텐데 굳이 연락처를 남겨 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생각 같아서는 당장 전화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곧 처분할 차라는 생각이 들자 수리하기보다는 적정한 선에서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휘트니스센타로 차를 몰아갔다. 오늘 오후에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있었기에 어차피 오늘은 연락해서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그녀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요즘 세상에도 그런 사람이 다 있네....."

이런저런 생각에 그녀는 밤이 늦어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저....실례지만 마....강한씨....."



"아! 네, 제가 마강한입니다만......"



"저.....어제 주차된 제 차를........"



"아. 네! 어제 사고 차 차주 되십니까?"



"네. 맞아요."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기다려도 오시지 않길래 그만......

꼭 만나 뵙고 사과를 드렸어야 하는데, 오후에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메모만 남기고 그냥 떠났습니다.

많이 속상하셨죠?"



"아.......아니에요.

별로 크게 부서지지 않았던데요. 뭐...."



"그런데 뜻밖입니다."



"...??....."



"솔직히 차주가 여자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왜요. 여자라서 안 되나요?"



"아, 아닙니다. 너무 뜻밖이라서요.

여자분이 그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리라곤 미처 생각을 못해서요.

전화로 이럴게 아니라 직접 만나 뵙고 자세한 말씀 드리도록 하지요.

오후에 시간 있으십니까?"



이런 식의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그녀는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약속 시간까지 그녀는 샤워를 하고 입고 나갈 옷을 궁리하면서도 그 사내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있는 사내의 음성이 아직도 귓전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나타난 남자는 생각보다 젊어 보였으며, 꽃미남은 아니었지만 듬직한 체구에 눈빛이 강렬해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다.



"어제 친한 친구가 이민을 떠났습니다.

2세 교육을 위해서 캐나다로 떠난다나요.

공항에서 배웅을 해 주고는 울적한 심사를 달랠겸해서 한강 둔치로 갔었지요.

그런데 평상시와는 달리 별다른 주의없이 차를 대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아가씨의 차를 들이박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미안한지...... 아무튼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리는 하셨습니까?"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



"아직은요..... 저도 어제 오후에 모임이 있어서 좀 바빴거든요."



"그러면 지금 저하고 같이 지정 서비스센터에 갑시다.

제가 직접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생각중이에요.

마침 차를 바꾸려든 참이었거든요.

그리고 조그만 흠집이 난 범퍼를 통째로 갈기에는 조금 아깝기도 하구요...."



미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남자의 매너와 첫인상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실렵니까.

그러면 갈고 안 갈고는 아가씨가 결정하시고 저는 무조건 새 범퍼 가격을 현금으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일정액만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운전이 서툴러서 뒷범퍼가 많이 망가져있는 상태이거든요."



"아닙니다.

제가 잠시나마 심적인 고통을 드렸으니 그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라도 충분한 금액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그 정도로 야박할 정도로 궁색한 형편은 아니니까 부담갖지 마세요."



은연중에 미라는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무척 다행스런 일이군요.

저도 제가 이렇게 가해자가 된 일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했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처럼 마음씨 좋고, 아름다운 분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순간 여자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다.



"별말씀을요.

그리고 저, 아가씨가 아니고 결혼한 유부녀예요...."



"네? 정말입니까?"



나는 일부러 그녀가 농담을 하는걸로 단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얼굴은 탤런트 뺨치게 예쁘게 생겼다.

굳이 비유하자면 탤런트 "신은경"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늘씬한 키에 육감적인 몸매의 그녀는 예쁜 얼굴과 썩 잘 조화를 이루어서 남자들의 시선을 끌만하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그녀의 눈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눈빛이었다.

더러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와 같고, 더러는 꿈꾸는 검은 별과 같고, 더러는 사람을 통째로 빨아들일 듯이 강렬한 눈빛이었다.

누구든지 그녀의 눈빛을 보노라면 매료되지 않고는 못배길 그러한 묘한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여자의 눈빛인 것 같아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짬짬이 생각해 보았다.

누구더라???

누구의 눈빛이더라???

맞다!! 임청하(린칭샤)의 눈빛이다.

"동방불패"란 무협영화의 여자 주인공 임청하의 눈빛이 바로 그녀의 눈빛과 흡사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번 그녀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로 결혼하신 유부녀신가요?"



그녀는 나의 의문스런 질문에 몹시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왜요? 유부녀티가 나지 않나요?"



"............."



"그럼, 아저씨는 결혼하셨나요?"



"아저씨면 당연히 결혼했겠지요....

제가 조금 모자라는 놈이어서인지 아직 총각입니다."



우리들의 대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바이기도 하였지만.....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는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자꾸 가방 끈만 만지작거렸다.

노련한 내가 분위기 반전을 위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저. 초면인데 여성분에게 식사 대접은 실례가 될 테고......

신세를 갚아야 되는데.....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하며 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시려구요?"



"잠깐이면 됩니다."



나는 그녀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밖으로 후다닥 걸어나갔다.



의아해진 미라가 주문한 차를 마시는 동안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나는 다시 나타났다.



"막 뛰어왔더니 숨이 차네요.

근처에 제과점이 없어서 길 건너까지 갔다왔습니다."



숨이 차서 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이거 케이크인데 집에 가서 드세요.

마음 같아서는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초면이고 또 유부녀라고 하시니 선뜻......"



같이 식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사실은 어제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해서 수리비를 알아봤거든요.

그래서 미리 현금으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하고 말하며 케이크위에 돈봉투를 내려 놓았다.



"뭘 이런걸.......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참, 자상하신 분인가 봐요."



서서히 여자는 나의 덫에 걸려 들고 있었다.



"그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만나고 보니 어제의 사고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집니다.

아니면 미인과 이렇게 마주앉아 차를 마실 기회나 있었겠습니까?"



"엉큼한 분은 아닌 것 같은데, 말씀은 엉큼하게 하시네요."



말하고는 무엇이 즐거운지 까르르 웃는다.

대화를 하면서 웃는거야 비일비재한 일이겠지만, 처음 만난 남자에게 만난 목적과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며 웃는다는 것은 나의 목표달성에 확실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여자에게도 끼가 있다는 증표이니까......



그녀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 그만 가 봐야겠어요. 케이크 잘 먹을게요."



그녀는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제가 오히려 신세를 졌지요."



나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너무 늦었군요.

좋은 시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좋습니다. 식사대접을 하고 싶은데, 연락 한 번 꼭 주십시오."



그녀는 살짝 웃음만 지었다.



"혼자 나오시기 어려우시면, 친구 분이나 애기하고 같이 나오셔도 좋습니다.

빠른 시간이면 더욱 더 좋구요. 기다리겠습니다."



남자의 마지막 말은 미라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었다.

이남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구나......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 않고 살짝 웃음만 지어 보였다.



사내와 헤어진 미라는 며칠 동안 뜬구름 위를 거닐 듯 붕붕 떠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경제적인 만족을 위해 결혼한 남편은 늘 바빴다.

생판 놀고 먹어도 다 못쓸만큼 돈이 많은데도 영감은 부지런을 떨었다.

게다가 요즈음 들어서는 힘이 떨어지는지 밤일도 신통찮았다.

남편 역시 젊은 와이프에게 미안했던지 일부러 출장일을 만들거나 해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귀족같은 생활이 즐거웠고 친구들의 부러움도 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마음 한 구석이 늘 허전하던 참이었다.

자신이 새장에 갇힌 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저께 만난 마강한이라는 젊고 자상해 보이는 사내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신선한 자극과도 같은 것이었다.

황당하고 부끄러웠지만 남자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신의 젖꼭지가 간질간질 하였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할려고 팬티를 벗어보니 분비물도 조금 묻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여도 자신의 몸속엔 또 다른 색깔의 자기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결혼후 정숙한 아내의 역할을 하느라 잊어버리고 지냈던 잠재된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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