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의 갓난아기 남편의 유복자?


뱃속의 갓난아기 남편의 유복자?뱃속의 갓난아기 남편의 유복자?

 

 

 

앞으로 한두 편 (아니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음)정도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근친상간물이 됩니다.

 

혹시 장애인을 비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의도는 저혀 없음을 사전에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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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인가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아주 명망이 높으신 대학교수님이 한 분 계신답니다.

 

그분의 강의를 들으려고 강의실은 항상 미어터질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교수님 해가 바뀌어도 항상 하는 것이 하나 있답니다.

 

<이 세상이 멸망의 기로에서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은 딸과 아버지 단 두 사람만 남았는데 그럼 그 아버지는 딸을 임신을 시켜 종족 보존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라는 명제를 주고는 학생들에게 토론을 하라고 하고는 강의실에서 나와 버린답니다.

 

 

 

그럼 어떤 학생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라면 부녀가 근친상간을 하더라고 종족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떠한 경우에도 윤리가 우선이니 근친상간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극단적인 사고를 가진 학생들은 딸이 아버지 말을 따르지 않을 경우 강간을 해서라도 종족 보존에 힘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는 등 갖가지 의견으로 설왕설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극한 상황이 아니라도 이런 경우에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물론 저에게는 사후약방문이나 다름없는 질문이지만 말입니다.

 

 

 

질문을 드리죠.

 

남자는 8대를 이어온 아주 부잣집 종손이었습니다.

 

아니 8대 동안 독자로 대를 이어온 집안이란 말입니다.

 

친인척이라고는 외갓집 식구들이 전부고 처갓집 식구들이 전부인 그런 남자인데 그 남자에게는 자신의 처지처럼 역시 아들 하나뿐이랍니다.

 

물론 그 남자의 아내는 무던히 아이를 더 넣으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였답니다.

 

그건 아들 하나로 만족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뿐인 아들이 갓난아기 시절에 열병으로 얻은 뇌성마비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몸이었기에 종손 구실은 물론 남편 구실도 할지 모를 그런 애였으며 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못 먹고 못 입을 시절 같으면 팔려서라도 시집을 올 여자가 있겠지만 요즘처럼 먹고 살기 편한 세상에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 하는 그런 남자에게 누가 딸을 시집보내겠으며 누가 시집을 오려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말았답니다.

 

8대 독자인 그에게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이란 시한부 선고를 의사가 해 버린 것입니다.

 

그도 잘 견디면 그렇단 말이지 6개월도 장담을 하질 못 한다는 것이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폐암 말기였죠.

 

죽음을 앞에 둔 그 남자는 자기를 이어갈 손을 보지 못 하고는 죽을 수가 없다며 자기 아내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피가 다른 남의 애를 양자로 입적을 시키기는 싫었던지 자기 아내에게 뇌성마비로 몸도 가누지 못 하는 자기 아들과 관계를 하여 핏줄을 이어달라고 말입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게 미천한 촌부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사후약방문 격인 질문의 전부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바로 제가 위에서 말한 그 종갓집 종부입니다.

 

그리고 남편의 숨넘어가는 간청을 견디지 못 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들과 관계를 가진 끝에 아기를 낳았고 종가 사람들은 이 아기를 남편의 아기 즉 유복자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종갓집의 종부로 들어 온 것은 고등학교 3학년에 오르던 해였습니다.

 

우리 친정은 찢어지듯이 가난하였고 아주 부잣집 종가의 선산에 딸린 논을 빌려 소작으로 겨우 연명하는 정도였답니다.

 

부잣집 종가의 선산에 딸린 논의 실질적인 임자이자 관리인이 바로 시아버님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몇 대 독자부터인가는 군대를 완전히 면제 받았지만 당시에 방의로 편성이 된 남편은 6주의 기본 훈련을 앞둔 터였습니다.

 

8대 독자 종손에 군대에 간다는 것은 종갓집 사람들에게는 큰일도 아주 큰일이었습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들 생각을 할 정도로 흐들갑을 떨었으니 말입니다.

 

시아버지는 종손인 아들을 중학교까지만 정규 학교에 보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 전담 훈장선생님을 두고는 소위 공자 왈 맹자 왈만 배우게 할 정도로 고지식한 어른이었으며 시아버님의 말씀 한 마디면 종손들은 고개도 들지 못 하는 그런 무서움 분이었으나 자기 후대인 제 남편의 일 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하시질 못 하고 종가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행을 해야 하였습니다.

 

 

 

남편의 방위근무에 따른 6주의 기본 훈련을 받기 위한 입대를 몇 달 앞두고 문중 회의가 소집이 되었더랍니다.

 

갑론을박 끝에 난 결론은 6주의 기본 훈련을 받기 위한 입대를 하기 전에 혼인을 시키자고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은근의 처자들을 수소문하였으나 소위 문벌이나 있다고 하는 양가의 규수 중에는 이제 겨우 20살이 지난 남자 그도 한문에는 능통하였다고는 하지만 최종 학력이 겨우 중학교 졸업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여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있다고 한들 그런 남자에게 딸을 줄 부모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만만한 것이 뭐라고 하죠?

 

그래요.

 

만만한 것이 홍어 좆 이었고 바로 그 만만한 홍어 좆이 자기들 선산에 딸린 논을 빌려 소작으로 겨우 연명하는 우리 아버지가 홍어 좆이었고 그의 딸인 제가 홍어 좆이었습니다.

 

논밭 한 뼘의 당도 가지기 못하고 그 소작농 아니면 끼니를 연명 할 수도 없었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였던 아버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겨우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던 딸인 저를 설득하려 들었고 전 그 나이에 시집은 무슨 시집이냐고 울며불며 거절을 하였지만 가정형편을 누구보다도 뻔히 알고 있던 저는 끝까지 버틸지 아님 가출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단식을 하면서도 결정을 못 하는 혼란에 빠졌었는데 제가 울며불며 한사코 혼인을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밥은커녕 냉수도 한 모금 안마시고 단식을 한다는 소문을 그이가 들었던지 자기 집에서 만들었다는 갖은 음식이며 단술에 수정과 같은 음료에 우리 아버지에게 드린다면 농주까지 가지고 온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답지 않게 귀공자 타입의 그이를 보고는 요즘 말로 전 그만 뻑 가버렸고 학교를 다니다 말고 자퇴를 하였고 그와 동시에 혼인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저의 몸값은 그이 아버지 아니 시아버지 소유의 논 3마지기와 밭 2마지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아빠 능력으로는 허리가 휠 때까지 일을 해도 가질 수가 없는 그런 큰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혼인을 하면서 사용하라고 쌀 3가마에 소 한 마리 돼지 두 마리에 농주는 필요 한 만큼 수시로 가져가라고 하였으며 대갓집의 며느리가 되는 만큼 남에게 흠 잡힐 정도의 혼인식을 해선 안 되며 또한 손님에게도 대접을 아주 흡족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시아바지의 명령이었습니다.

 

 

 

저의 결혼 잔치는 혼인식 3일 전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죽하였으면 제가 다니던 상고의 같은 반 애들이 결혼식 3일 전부터 결석을 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교복을 벗어던지고 새색시가 될 저의 수발을 드는 친구가 있나 하면 온 종일 부엌일을 거든답시고 부엌을 지키면서 음식을 하기는커녕 먹어 조지는 애들도 있었지만 제일 저를 기분 좋게 하는 친구라면 이미 순결은 남자에게 주고는 그 경험담을 솔직히 말하면서 첫 섹스의 두려움을 풀어주는 그런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최고의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서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친구이기도 하며 지금은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오빠와 함께 도피 행각을 벌리고 있는 수진이란 애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기억을 되살려 삼천포로(삼천포 사시는 분들은 아주 싫어한다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표현을 하니 저도 미안하지만 사용 해 볼게요.)빠져보겠습니다.

 

 

 

수진이가 중학교 올라오던 해에 그의 오빠는 정확하게 3살 터울인지라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더랍니다.

 

수진이도 공부를 좋아하는 타입의 애가 아니었지만 그 애의 오빠 역시 공부라면 질색이었지만 부모님이 적어도 고등학교는 졸업을 해야 한다면 강제로 고등학교 그도 농고에 입학을 시킨 바람에 거역을 하질 못 하고 학교에 다니기는 다녔지만 나쁜 짓이란 것은 모조리 하고 다니는 그런 오빠였었답니다.

 

 

 

그런 오빠가 하루는 학교를 가는 길에 돌아서면서 같이 땡땡이를 치자고 꼬드기더랍니다.

 

이미 부모님은 아침상을 차려놓고 농사를 지으러 밭으로 간 상태인지라 집으로 가 가방을 방에 숨겨두고 오빠와 같이 땡땡이치기로 작정을 하고는 오빠가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면서 오빠를 따라 산으로 갔었답니다.

 

 

 

“오빠 왜 이래?”산으로 오르던 오빠가 넓은 바위에 걸터앉기에 수진이고 오빠 옆에 나란히 걸터앉자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불을 끄더니 씨익 동생인 수진이 자신을 보더니 갑자기 팔로 목을 감더니 강제로 눕히기에 고함을 질렀는데

 

“씨바 가만있어 좋은 것 가르쳐줄게”라고 말하며 치마 안으로 손을 넣더랍니다.

 

“!”아차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미 늦은 상태란 것을 알고 후회하였지만 이미 깨어진 그릇이나 다름이 없더랍니다.

 

아무리 시골이고 또 겨우 중학생이었지만 남녀가 하는 짓을 보기는 못 하였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바가 있었던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또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였더래요.

 

“흐흐흐 요게 벌써 털이 나오고 있네.”팬티 안으로 손을 넣더니 몇 가닥 뽀송뽀송하게 올라오던 보지 털을 잡아 비비며 소진이 얼굴을 보고 웃더랍니다.

 

“!”부끄럽고 두려움에 아무 말도 못 라고 몸을 떨고 있었더니

 

“히히히 너도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야”하며 수집이 손을 잡더니 자기 바지 안으로 손을 넣게 하였고 그리고 좆을 만지게 하였고 무성하게 자란 좆 털의 감촉을 느끼게 하더랍니다.

 

“오빠 하지 말자 오빠와 난 남매야”하고 앙칼지게 말하며 손을 빼려하자

 

“야이 씹 팔 년아 네가 좋아하고 따르는 상임이 누나 알지?”하고 말하며 빼려는 손을 못 빼게 팔목을 잡더랍니다.

 

“응”마지 못 해 오빠 좆의 딱딱하고 뜨거움을 느끼며 대답하자

 

“내 친구 상호가 그 누나 동생인 것도 알지?”하고 또 묻더랍니다.

 

“응”하고 대답하자

 

“그 누난 자기 동생인 상호에게 먼저 하자고 해서 했고 또 나도 그 누나에게 동정을 줬어”하고 깜짝 놀랄 말을 하더랍니다.

 

“저........정말?”하고 묻지 않을 수가 없더랍니다.

 

“너 그 누나하고 자주 목욕 했지?”하고 묻기에

 

“응”하고 냇가에서 벌거숭이로 목욕을 하였던 기억을 떠 올리며 대답하자

 

“그래 그럼 그 누나 보지 옆에 검은 점이 큰 것 있는 것도 알지?”수진이 오빠는 그 언니의 보지 옆에 난 검은 점을 정확하게 지적을 하더랍니다.

 

수진이가 사는 마을과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 마을에 사는 상임이 언니하고는 자주 목욕을 같이 했으며 또 그 점을 유심히 봐 왔기에 잘 아는 것인데 그것을 오빠가 정확하게 지적하자 오빠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 믿음은 수진이 손을 오빠 바지에서 빼지 못 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으며 또 오빠가 하는 행동에 거역을 하지 못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더랍니다.

 

“그 누나가 어제 말하길 내일 한 번 준다고 했거든 그런데 말이지 너무 헐렁하여 맛이 없어 그래서 이 오빠가 너에게 선심을 쓰는 거야”하면서 교복 안의 팬티를 그대로 내리더랍니다.

 

“!”마치 선심을 쓰듯이 말하는 오빠의 말이 어이는 없었지만 이미 발동한 호기심을 누르기에는 늦은 상태였더랍니다.

 

그건 오빠의 동정을 주었다던 그 상임이 언니의 평소 행동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대요.

 

이미 마을에서는 그 언니가 헤프다는 소문이 돌았고 또 수진이 자신도 그 언니가 어른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봐 왔고 또 장날이면 장에 간 아줌마의 눈을 피하여 어떤 아저씨 방에서 좌우를 살피며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수진이로서는 상임이 언니가 왜 남자와 그렇게 하는 이유도 궁금하였더래요.

 

“처음엔 조금 아프대 하지만 다음엔 안 아프고 좋거든 알았지?”반항을 하지 않자 일어나면서 혁대를 풀더랍니다.

 

“!”그리고 수진이는 아주 놀랐답니다.

 

굵고 길며 딱딱하게 하늘을 찌를 기세로 치켜선 오빠의 좆을 봤으니 말입니다.

 

“후후후 상임이 누나도 내 좆이 자기 동생 좆 보다 크다며 좋아하지”좆을 잡고 까며 말하더래요.

 

“!”하지만 수진이는 겁만 나더래요.

 

저렇게 길고 굵은 좆이 관연 연약한 자기 보지에 꼽히기나 하련지 하고 말입니다.

 

“다리 벌려”오빠가 몸을 포개더니 명령을 했대요.

 

“무서워 오빠”아랫도리로 뜨겁고 딱딱한 오빠 좆을 감촉을 느끼며 다리를 모으고 말했대요.

 

“시팔 어서 벌려 참 내가 키스도 가르쳐주지”하고서는 어떤 말도 하기 전에 오빠는 입을 자기 입에 데었고 혀를 아주 강제적으로 다문 입술 사이로 넣고는 자신의 입안에 들어오자 마구 빨고 나름 대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가랑이가 벌려졌고 그리고 오빠의 좆이 보지 금을 가르는 가 싶었는데

 

“악! 오빠 아파 빼”순간적으로 느끼는 아랫도리의 통증을 느끼면서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오빠의 가슴을 밀쳤더니

 

“오~좋아 빡빡해 잘 무네.”상체는 여동생임 수진이 손에 의하여 벌어졌지만 하체는 그대로 밀착을 한 체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밑을 보더래요.

 

“오빠 빼 어서 흑흑흑”아픔의 눈물을 흘리며 오빠의 가슴을 밀쳤지만

 

“후후후 조금만 참아 오늘만 아파 일주일 후에 해 주면 아마 너도 상임이 누나처럼 자꾸 해 달라고 할 거야”하며 천천히 움직이더랍니다.

 

“북적! 북적!”수진이 귀로는 그렇게 들렸었고 한참을 그렇게 하자 아픈 감각도 무디어졌었던지 그리 아프지도 않았지만 하복부의 포만감은 여전하더랍니다.

 

“오빠 뭐야?”그런 느낌도 잠시였고 갑자기 자기 보지 안에 박힌 오바의 좆이 갑자기 요동을 치는가 싶더니 뭔가 뜨거운 느낌이 보지 안에서 느껴지더랍니다.

 

“후후후 뭐긴 뭐야? 좆 물이지”하고 말하며 웃더랍니다.

 

“아기 씨?”들었던 것은 있어서 묻자

 

“후후후 그래”하고 대답하면서도 연신 좆 물을 보지 안으로 뿜어 대더래요.

 

“아기 배면 어떡하고?”다시 오빠 가슴을 밀치며 말하자

 

“후후후 너 아직 생리 안 하잖아?”하고 말하더랍니다.

 

“하지만.......”하고 말을 흐리자

 

“생리 시작하면 좆 마개 끼고 하면 돼”하고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하더니 다시 키스를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매일매일 수진이 오빠는 동생인 수진이를 감시하였고 남학생이나 아무 남자하고 대화만 하여도 신경질을 내며 가까이 하질 못 하게 하였고 그리고 거의 매일 하고 후나 아님 부모님이 잠든 틈에 빠구리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 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되어 시집을 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외국의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그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독신주의자인(?) 오빠를 돕는답시고 남편과 이혼을 하고 출국을 한 것으로 간 것으로 다른 사람들은 알지만 수진이의 비밀을 모조리 알고 있는 저로서는 수진이가 오빠와의 근친상간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 하고 남편과 이혼이라는 최악의 수를 두고는 오빠가 있는 외국을 출국을 한 것이라는 것을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이면 비밀이며 그건 저에게 남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게 만든 하나의 이유인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답니다.

 

아니 나에게 그런 무섭고 엄청난 일을 하도록 만들어준 주되 동력원이었다고 할 수가 잇을 것입니다.

 

 

 

각설하고 하여간 친구들의 각양각색의 경험담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이란 것을 하는 저에게 자신감을 주었죠.

 

그리고 무사히 저는 결혼을 하였고 또 무난히 초야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6주 기본 교육에 다녀왔고 또 읍사무소로 출퇴근을 하면서 나라에서 필요하다는 병역 의무를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고 마칠 당시에 이미 저는 홀몸이 아닌 아이를 임신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 임신은 저에게 무한한 힘을 주었답니다.

 

새색시라 함부로 말도 못 하고 나서지도 못 하는 처지였다가 막상 아기를 임신하자 저에 대한 대우는 정말이지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하얀 백발의 노인들도 저에게 허리를 굽혔고 지병으로 골골하면서도 광의 열쇄를 움켜쥐고 내어놓기를 거부하시던 시어머님에게서 광의 열쇄를 받아서는 시아버지는 제에게 주였습니다.

 

지병으로 골골거리던 시어머니 대신 제가 명실상부한 안채의 우두머리이자 권력자였습니다.

 

그리고 전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고 우리 아기는 제 품에 안기는 때라고는 젖을 먹이는 시간뿐이고 아기가 등을 방바닥에 붙이는 시간은 밤이나 되어야지 붙이지 항상 시아버님이나 남편 아님 주변의 먼 일가친척들이라고 하며 찾아오는 손님들의 손이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올게 몸을 풀지도 못 한 상태에서 전 시어머님의 별세로 상복을 입어야 하였습니다.

 

아기가 아픈 것 같았으나 빈소를 지켜야 한다기에 빈소를 지켜야 하였습니다.

 

밤이 되자 아기의 머리며 온 몸이 불덩이 같이 뜨거웠습니다.

 

부랴부랴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의사는 고열에 의한 뇌선마비가 될 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말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시어머니의 상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전 어떻게 하던지 우리 아기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도 감당하게 어려웠거든요.

 

아기는 링거를 달고는 자기만 하였습니다.

 

가슴의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 아기는 살아 있다는 확신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눈을 뜬 아기의 눈은 힘이 없었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 하였습니다.

 

골골거리던 시어머님의 상을 당한 것 보다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긴 제 자식이었기에 키워야 하였습니다.

 

 

 

시아버님과 문중 사람들은 제가 다시 임신을 하기를 기다렸고 아기가 세 살이 되자 임신을 강요까지 하였으며 남편도 임신을 하기를 원하였지만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네 살이 되던 해에 임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는 제 몸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도 몇 차례나 임신을 하였지만 번번이 유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6살이 되던 해에 시아버님이 남편과 같은 질병인 폐암으로 사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제가 임신만 하면 몇 달을 버티질 못 하고 유산이 되자 아예 임신을 포기하고 우리 아들 하나만이라도 잘 키우자고 말하며 더 이상의 임신을 만류하였습니다.

 

아이를 틈틈이 물리치료를 병행하였지만 겨우 걸을 수가 있을 정도 밖에 되지를 아니하였고 공부는 아예 꿈도 못 꿀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심각하느냐 하면 올해로 20살이나 되지만 잠자리에서만은 귀저기를 차고 있다면 말을 다 한 것 아닙니까.

 

 

 

작년 봄 남편은 의사로부터 시한부 사망 선고를 받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뒤를 이어 문중을 끌고 나갈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걱정을 하며 잠도 자질 못 하였습니다.

 

 

 

“여보 부탁이 있는데.............”몇 칠 동안 이렇게 말을 흐리며 무슨 부탁인지 하려 들었지만

 

“뭐요 뭐든지 말씀하세요. 다 들어드릴게요”하고 대답을 하였지만 남편은 한숨만 쉴 뿐 부탁이라는 것이 무슨 부탁인지 말도 꺼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여보 당신 우리 대를 이어 줄 아기 임신 할 생각 없어?”몇 칠을 벼른 끝에 남편이 한 말이었습니다.

 

“무리가 안 되겠어요?”남편의 부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시원하였습니다.

 

남편이 힘이 없어 올라오지 못 한다면 제가 올라가서라도 해서 임신만 된다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남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게 전부였기에 제가 남편 몸 위로 올라 갈 기미라도 보이면 밀쳤습니다.

 

아기를 가지라고 하면서 밀치는 이유를 도무지 몰랐고 그리고 이해도 안 되었습니다.

 

날짜는 자꾸 지나고 남편의 몸은 더 말라만 가고.................

 

하루하루가 죽을 기분이었습니다.

 

 

 

“여보 상호 아기를 당신이 배면 어때?”임신을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하고는 거의 보름이 지나서 남편 입에서 나온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상호.

 

그 애는 제가 열 달 뱃속에서 키워서 낳은 뇌성마비에 똥오줌도 가리지 못 하는 제 아들 이름이거든요.

 

그런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애 그도 제 뱃속에서 키워서 태어나게 만든 애의 애를 배라고 하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여보 당신 정신 있어요?”놀라며 물었습니다.

 

“여보 내가 죽으면 틀림없이 종친들이 양자 들이라고 야단을 칠 것인데 당신이 양자 들일 거요?”하고 묻지 뭡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들이라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 몸도 건사를 못 하는 애를 종가의 종손으로 인정을 하려 들지 않고 있었기에 말입니다.

 

“사촌 아니 육촌 팔촌만 되어도 내가 미리 작정을 해 두었겠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종친이라고 오는 사람들 모조리 십촌 아니 그보다 훨씬 먼 촌수인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의 애를 양자로 들이겠소? 양자를 준다고 하는 사람들 너나없이 재산에 눈이 먼 자들뿐이지 않소?”남편은 제가 들어도 한 마디도 틀리지 아니한 말만 하였습니다.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기에 할 말이 더욱더 없었습니다.

 

“내가 요 몇 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험을 했다오.”남편이 제 눈치를 살피며 말하였습니다.

 

“무슨 시험”하고 묻자

 

“이것 하고 이것으로......”남편은 주머니 안에서 작은 약봉투를 하나 끄집어내었습니다.

 

“!.......이건?”하나는 날 놀라게 만든 비아그라라는 글자가 선명하였기에 놀랐지만 하나에는 이름도 없는 알약이었기에 물었습니다.

 

“이건 알 것이고 이건 수면제라오”하며 역시 제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래서요?”의아심을 품으며 물었더니

 

“상호에게 이것들을 먹이고 잠이 들기에 흔들었더니 나옵디다.”하고 말하며 검지를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만들고는 그 안에 넣고 빼며 말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들 상호에게 비아그라와 수면제를 먹이고는 용두질을 쳐 봤단 말이고 또 치니 정액이 나왔다는 말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부 이건 죄악 이예요. 죄악”하고 말하자

 

“그럼 생판 모르는 애를 종손으로 들이겠단 말이오?”남편은 빼도 박도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더러 어쩌란 말이어요? 흑흑흑”남편의 사후를 생각하니 정말로 막막하였습니다.

 

“상호에게 이걸 먹이고 당신이 이렇게 흔들어서 나오면 삽입을 하며 아마 우리의 진짜 혈통이 태어날 것이지 않겠소?”남편은 또 검지를&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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