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선(畵中扇) - 단편

-화중선(畵中扇)-



‘안녕하셨어요, 강 교수님? 그간 별고 없으셨죠?’



‘아니, 최 기자가 왠 일로?’



‘요즈음, 잡지에 교수님 글, 인기가 대단하던데요? 그래서 이렇게 글동냥 왔습니다 요.’



‘글동냥은 무슨…나야 비평이 전문이라 좋은 소리도 별로 못 듣는데, 인기는 고사하고….’



‘아닙니다. 교수님 만큼 그림이나 작가에 대해서 적확한 평을 해주시는 분이 많기나 하나요? 쉰소리 하는 것들 이래야, 지 못난 줄 모르고 까부는 것들이죠.’



‘근데, 그건 그렇고… 이번엔 무슨?’



‘제가 이번에 잡지사를 전문 계간지로 옮겼거든요. 그러다 보니 위에서 큰 건 하나 하라 길래, 이렇게 체면 불사하고, 교수님께 달려 왔지 뭡니까?’



‘비평 꺼리가 무슨 조폭들 암거래냐? 한 껀수 하게? 암튼 그 바닥은 쓰는 말들이 다 그래?’



나는 내가 가르친 제자가 이렇게 찾아와 조를 때에는 턱없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저, 선우재석 이란 화가 들어 보셨어요?’



‘응, 들어는 봤지. 10년전 인가? 국전에 당선되고, 그 이후로 절대 외부로 얼굴도 드러내질 않는다는 그 화가 말하는 거지?’



‘네. 저희가 비밀리에 알아낸 건데, 다음 달에 인사동의 작은 화랑에서 10년 만에 첨으로 작품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요.’



‘그런데, 그게 왜 비밀이야?’



‘말씀 드리면, 맡아 주실 거죠?’



‘얘기나 들어보고 나서…..’



‘하여간, 무조건 입니다. 교수님….저 좀 살려 주세요. 이제 글발도 녹슬고, 나날이 퇴물 취급 받는 와중에 교수님이라도 도와주셔야지, 이 노병, 사라지기도 전에 굶어 죽을 판입니다.’



‘엄살은….’



‘그러니까, 그 전시회에는 총 40개의 작품이 전시되는데요. 이미 36개는 팔렸고요….’



‘아니 팔리다니? 전시회도 안 했는데?’



‘그러니까요. 전시회를 열기 전에 이미 작품들을 서배 해서, 아는 사람에게만 팔았다는 거죠. 그것도 각서까지 받고서 말이죠.’



‘각서라니?’



‘그림을 절대로 딴 사람에게 양도하지 않겠다는 조건이랑, 또 뭐라드라…아! 만일 부득이한 경우에 팔 경우는 반드시 화가 본인에게 다시 산 가격에 양도한다는 각서 래지요, 아마….’



기인이라고 알려지기는 했어도 그렇게 인기가 높은 줄은 몰랐다. 작품전을 열었다고 하더라도 팔리지 않는 그림이 수두룩 인데, 그것도 그림 시장에 단 한 작품도 내놓은 적이 없는 화가가 전시회도 열기 전에 절품이라….. 나는 구미가 당겼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머지 작품은 전시는 하되, 포장이 된 채로 걸린대나 봐요. 전시회의 개막과 동시에, 그림의 내용을 비밀로 한 채, 그림의 주인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찾아갈 수 있게끔 한다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머지 네 개의 작품은 절대 팔지 않을 작품이고, 그 그림만 공개해서 걸어 놓는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영화 스토리 같죠? 수많은 그림들은 포장된 채로, 그리고 단 네 작품만을 위한 전시회, 뭔가 냄새가 나질 않습니까?’



‘평을 쓰려면, 난 화가를 만나 봐야 하는데, 얼굴이나 볼 수 있을까 몰라.’



‘그게 제일 문제라는 거 아닙니까? 고작 제가 손에 쥔 정보라고는 국전 출품 당시의 주소와 이름, 생년월일, 약력… 그 정도 거든요.’



‘다른 채널을 알아볼 수는 없고?’



‘인사동 쪽에서도 이번 전시회를 화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도맡아서 대리인 격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전시회처럼 화가 자신이 전시장에서 설명을 한다든가 하는 이벤트는 없을 거라고 해서 난감하기도 하죠. 전시회가 끝나면, 저 같은 기자 양반들이 줄창 이 잡지, 저 신문에 긁어대서 제가 아무리 용을 써도 계간지이고 보니, 순서에서 뒤지고, 독자층도 한정되어 있어서 큰 껀이 되기 어려울 것 같아 교수님의 도움이 절실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문제는 문제인데…… 이거 사람 코빼기라도 봐야, 뭘 평하든가 말든가 하지….참! 그 대리인 이라는 사람을 만나 보는 건 어떨까? 혹시 선우재석, 그 화가랑 연결될 지 어떻게 알아?’



‘대리인은 커녕, 화랑 주인조차 극구 피하는 눈치드라니깐요. 전시회장을 빌리는 데에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 했다는 후문 이거덩요. 소금 자신 분이 물 켠다고, 어디 저희들 말을 듣겠어요? 가재는 게편 인데…..’



‘내가 한번 해 볼게, 전시회가 며칠이라고 했지? 팜플렛은?’



‘그런 것도 없어요. 전시회도 4시간만 하고 끝낸다고 하더라고요. 참나, 그럴걸 뭣하러 전시회는 여는지, 아예 택배로 그림 산 사람들에게 몽조리 부쳐주고 말지, 사람 괴롭게 이 고생을 시키나, 시키길?’



후배가 놓고 간 메모에는 그 화가의 약력과 국전 수상당시의 수상작 사진과 주소, 간략한 신상정보 등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른 화가들의 비평을 쓸 때, 그 작품을 완성하는 것 보다 더한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언제나 주지 시키곤 했다. 사실 비평이란 것이 그렇질 않은가? 좋은 비평 1퍼센트가 나머지 악평의 99퍼센트와 같은 무게라는 말도 있듯이, 뜻하지 않게 좋은 평을 받았을 때에는 뭐 로또에 당첨된 듯한 분위기를 띄곤 했으니, 평을 하는 나 같은 당사자로서는 신중해야 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되도 않는 작품에 후한 평을 덤으로 얻어주었다가는 독자들로부터 그것도 눈깔로 달고 다니냐는 소리나 듣기 십상이었고, 너무 깎아 내리는 평을 질렀다가는 좋은 소리 나올 때 까정, 어디 맞짱 한번 떠 보자는 열혈 추종자들도 부지기수로 만났기에, 언제나 나의 비평은 첨예한 대립을 피하고자, 철저한 조사와 방증, 분명한 객관성에 주안점을 두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비평가라는 직함보다 분석가라는 별칭이 더 어울렸다고 나는 자평 한다. 하나의 그림을 평가 하려면 우선 그 작가의 주변을 훑는 것이 우선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 그가 겪었던 수많은 삶의 연륜이 그림에서 묻어나니 말이다. 피난 시절, 종이가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천재화가 이중섭씨의 일화처럼, 화가 자신이 처한 환경적 요소는 그림의 주제 선정과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제 삼척 동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려운 작업은 그 화가의 화풍에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이며, 어떤 작품인가 하는 점이 제일 밝히기 어려운 부분 이었다. 이것을 해결 하려면, 우선 그 화가가 존재하고 있는 현 시점의 계보를 파악해야 했고, 누구의 사사를 받았는가, 누구의 영향을 띄고 있었는가를 면밀하면서도 꾸준하게 살펴야 제대로 된 평이 도출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비평을 읽는 사람들은 그 화가의 그림에 대한 해석보다 그 그림을 이해하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주변머리 둘러가기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내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머리가 지독히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그 많은 미술사적 지식과 화풍의 흐름 분석이 가히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사람들이 말 할 때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의 양심상, 그런 분석의 결말은 내가 힘들여 모은 자료를 그냥 보기 좋게 배열해서 노래를 부른 것뿐인데 라는 나 스스로의 되새김질 때문 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평을 위해 화가들을 만나고, 그 주변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나의 행태가 흡사 범인을 심문하는 형사와 같다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나의 의도는 아니었을 지언정, 보다 객관성이 있고, 누가 보아도 치우침이 없는 비평이었다는 정설을 듣기 위해 내가 하던 행동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식으로 보여 진다는 것이 싫기는 했어도 나의 글 쓰는 습성상 버리진 못했고….



‘음, 나 강교순데, 전 실장, 잘 있었어?’



전화 속의 인물은 이럴 때 내가 곧잘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다. 흥신소를 운영하다가 돈을 모아 이제는 방범경호 회사로 발돋움한 친군데, 매우 효율적이면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서 내가 언제나 흡족해 하는 사람 이었다.



‘교수님도 안녕하시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들 경기가 바닥이라고 한숨들인데, 잘 돌아가는 친구는 자네 뿐 인 것 같아. 어때 요즘은?



‘저라고 힘 안들겠습니까? 그래도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분들이랑 회사가 아니었으면 벌써 고꾸라 졌을 텐데요. 참, 무슨 일로 전화 주셨어요? 제가 도울 일이라도…’



‘응, 사람 하나 찾아봐 줘. 별로 어려운 건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잘 알려졌던 인물이라 손대기는 쉬울거야. 내가 톡톡히 보답 할께.’



‘보답은요! 제가 술을 거하게 사도 사야 할 판인데, 암튼 맡겨만 주세요. 그리고, 비용 걱정 마시고요. 망년회 때에는 저희 쪽에서 모시겠으니 이달 27일은 약속 잡지 마십시오, 아셨죠?’



지나가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얘기해 주는 전실장이 고마왔다. 언제나 싹싹한 친구…나는 최기자가 주고 간 메모의 내용을 알려 주었다. 적어도 호화장정의 계간지에 실릴 비평이 될 것 이기에 그 화가를 만나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나는 믿고 있었으며, 전실장의 도움은 없어서는 안 되는 출발기점 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고, 전실장은 자료를 들고 학과 사무실로 찾아왔다.



‘교내가 벌써 썰렁하네요.’



‘그럼, 학기말 고사도 끝나고, 벌써들 다 놀러 튀어 나가고, 공부 꽤나 한다는 것들이나 취업 준비하는 애들 말고 학교를 지키는 사람은 없어. 그런 계절이지, 뭐…’



‘부탁하셨던 사람의 조사 자룝니다. 꽤나 묘한 사람 이던데….’



‘묘하다니?’



‘대개 국전에 당선된 분들은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게 대부분이고, 개인적으로 속해 있는 단체 라든가, 본인이 운영하는 화실, 아니면, 후학을 양성하는 차원에서 학교로 진출하시는 것이 보통이죠. 그런데, 이 분은 그런 기록이 전혀 없더라는 겁니다. 국전 당시에 제출 되었던 신상명세로 추적해 본 결과, 이제는 더 이상 그 주소지에 살지도 않을뿐더러 한 서너 차롄가 옮겨 다니다 기어이 새로 옮겨간 지역의 전입신고 조차 하질 않아서 더 이상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 해졌습니다. 혹시라도 죽었을 수도 있어서 살펴 봤는데, 살아 계신 것은 확실하구요. 어떻게 본인의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극도의 대인기피증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은둔 생활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데 말이죠. 주소지가 드러나고 있던 3,4년 간은 그래도 공과금을 납부한 흔적 이라든가, 공적인 장소에 가끔 모습을 드러냈었는데, 정확히 당선 후, 4 년 즈음부터는 종적이 묘연합니다. 그렇다고 어디 병원이나 요양원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쪽도 손을 써 봤는데 없더라구요. 이런 경우는 무척 드문데…..’



‘그럼 어쩌지?’



나는 전실장에게 사람을 찾는 경위에 대해서 최기자로부터 들은 정황을 자세하게 들려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전실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나 실장인데, 인사동의 000화랑에 대해서 좀 알아 봐. 그리고, 한달 후로 예정된 전시회에 관련된 주최측 대리인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빠짐 없이 긁어 놔. 내 곧 들어갈 테니….’



‘이거 나 때문에 괜히 고생이나 하는 거 아닌지 몰라.’



‘당연히 제가 나서야지요. 얼마나 도와 주셨는데…곧 있어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전실장이 돌아가고 정확히 이틀 후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며, 나를 시내의 어느 조용한 일식 집으로 불러냈다.



‘이 집, 비싸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교수님도 걱정 마세요. 이 곳 사장님도 저희 클라이언트 입니다. 메뉴의 가격표랑 다르게 진짜 저렴하게 해주니, 부담 갖지 마시고 드십시오.’



유달리 회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비용의 부담 때문에, 언제나 먹기에 앞서서 걱정하는 버릇은 버리질 못했다.



‘그래, 이번엔 뭘 좀 건졌어?’



‘아니, 교수님도 그런 단어 쓰실 줄 아세요?’



‘허어, 이 사람도….’



‘중요한 몇 가지를 알아냈죠. 이번 전시회를 주최한 그 화가의 대리인은 다름 아닌 그 화가의 애인 이랍니다. 나이 차이가 12살… 조금 많기는 한데….그래도 예술 한다는 사람들 대개 그렇잖습니까? 70이 넘어선 우디 알렌도 미아 페로우랑 사이에 입양한 한국계 순인가 영흰가 난짝 데불고 살잖아요? 뭐 쫌 한다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튀어보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과감하게들 옮기나 보죠. 저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어디 꿈이나 꿔 보겠어요? 말이 양녀지, 관계로 보면 근친상간인데….암튼 관계는 모르겠는데, 그 여자의 현재 주소는 경기도 000,000… 알아보니까 대단위 팬션 중에서도 제일 크고, 구석진 곳에 위치한 곳이더군요. 하긴 그림이 다 팔렸다고 하니, 그 값만 따져도 어마어마한 돈 아니겠습니까? 돈이 돈을 부른다고, 안목이 있었기에 그 화가에게 투자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10년을 바라보고 투자해서 그렇게 한방에 타내기도 적잖이 어려울 텐데 말입니다.’



‘나이가 어린데, 그 돈은 어디서 났을까?’



‘그게 좀 이상하거든요? 그 여자의 부모가 좀 부자이긴 해도, 결혼도 아직 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딱히 그 화가를 바라보고 10년을 투자하고 먹여 살린다 라는 가정을 하기에는 좀 앞뒤가 안맞기는 한데…’



‘형사 사건이 아니니 그 여자의 계좌추적 같은 것은 안했겠구만.’



나는 궁금하긴 했지만, 돌려서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누굽니까? 계좌 추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실적을 올렸죠. 이번에 전시하는 40개의 작품 중에서 36개는 이미 팔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전시장에 도착되어 있는 그림은 40개가 아니고 34개 였지요.’



‘그거야, 전시작품이 아직 도착하질 않아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아닙니다. 그 네 작품은 이미 도착되어 있구요. 그래서 화랑 주인을 저희가 아는 사람이 조졌지, 아니 다구쳤지 뭡니까? 그래서 알아낸 것이 이것 이었죠.’



‘그게 뭔데?’



‘한번 살펴 보십시오. 내노라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 자료에는 화가로부터 그림을 구입한 사람의 간략한 신상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짜하니 알 수 있을 것 같은 유명인사의 모음집 같았다. 그들 사이에서 소리 소문 없이 그림들이 돌고 거래되었던 사실들이 거간을 중개해오던 화랑 주인의 토설로 밝혀진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잡아냈어?’



‘세금이죠, 뭐, 거래가 워낙 은밀했다 보니, 세금 신고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가격이란 생각에, 넘겨 짚으면서 후려 쳤더니, 가까스로 죽을상을 지으면서 털어 놓드구만요. 그 돈으로 그 여자는 화가를 먹여 살렸을 테고….’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문득 이렇게 우울한 상황의 화가라면 그 화풍은 지극히 폭발적인 원색, 아니면 죽음을 연상 시키는 암울한 분위기의 둘 중 하나일 거라는 메모를 수첩에 적어 넣었다. 국전 수상작은 보았지만 전시될 작품을 보지 않아 무어라 판단할 수는 없어도, 그 화가는 세상을 등진 것이었을 테고, 그 재주를 아까워하는 그 여인이 그 화가를 설득해서 그림을 그리도록 종용하고, 그 그림으로 화가의 먹거리를 대왔다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시회를 통하기는 했지만 그 여인의 투자 예측은 보기 좋게 들어맞은 셈이 되었고, 10년 사이에 간간히 팔아온 그림들이 유명인사들의 손에 비밀리에 흘러 들어갔으니, 공개적인 전시회를 빌미 삼아 발표한다는 작품들은 아마도 절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의 한 부분 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화가를 먹여 살리는 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고가로 그림이 중간에 매매되어 왔다면 그 여인의 수중에서는 손해가 절대 날 수 없었을 것이고, 다만 그녀가 할 일은 고가의 그림을 사줄 수 있는 인사들을 엮는 일만이 몫이었을 거란 예상이 들었다.



‘따르릉!’



‘교수님 이세요? 지금 어디 계세요?’



‘나? 지금 시내에 나와 있는데? 왜? 아직 전시회까진 시간이 좀 있잖아?’



최기자 였다.



‘다름이 아니고 이렇게 급하게 전화 올린 거는요, 오늘 저녁에 그 전시회 주최측에서 교수님을 초대해서 말이지요. 시간 있으세요? 아무래도 화가분과 인사도 시키려는 의도 같아요. 제가 그 대리인 귀에 들어가도록 화랑에다가 교수님이 평을 쓰시게 될 거라고 말을 흘리고 왔었거던요. 어떠세요?’



‘그래? 그거 잘됐네, 아닌 게 아니라 내 쪽에서도 몇 가지 알아보고 있었거든. 없어도 시간을 내야지, 어쩌겠나? 우리 노병, 굶어 죽기 전에 한탕 뛰어 줘야지, 안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심, 저야 고맙죠, 황송하기도 하고….제가 주소 불러드릴게요.’



‘아니, 자네는 같이 안가구?’



‘글쎄요. 교수님만 오시라고 하대요. 이거 쪽 팔려서 다음 해에는 하다못해, 방통대 교수라도 해야지 안되겠어요. 이렇게 세상이 사람을 차별대우 한다니깐요, 글쎄….’



나는 받아 적는 그 주소가 전실장이 알려준 그 팬션의 주소와 같다는 것을 통화하면서 전실장에게 보여주었다. 식사를 하면서 전실장은 또 한가지 가정을 들려 주었고…



‘그런데, 화랑 주인 말로는 그 화가가 1년에 딱 네 작품만을 그렸고, 그래서 총 40개의 작품이 된 것 같다고 하드라고요. 그리고, 지나온 10년간 그 중에서 1년에 한 개씩만 팔아 치웠고… 나머지는 그 팔지 않는다는 네 작품을 빼고, 이번 기회에 몽조리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아 버렸고요….너무 괴상한 사람 같지 않습니까?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를리 없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 화가가 10년 동안 한 작품도 발표하질 않았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제 머리로는요…’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 였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어디에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집에 들르자니 시간이 촉박해 질 것 같아, 그냥 사우나에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경기도 지역에 위치한 그 팬션은 잘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었다. 아마도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살려고 만든 휴양지 겸 주거환경을 갖춘 곳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했다. 차를 타고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차 안은 히터를 틀어야 될 정도로 기온이 급강하하고 있었다. 현관에 서서 주위에 사람 그림자가 하나도 없기에 덜컥 겁도 나기는 했다. 아마도 이미 도시형으로 익숙해져 있는 나의 습성상, 복작거리고, 불빛이 휘황해야 안정감을 얻기 때문인가 싶기도 했고…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최기자님께 연락 드렸던 대리인 손정혜 입니다. 들어오시죠.’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강인석 입니다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그녀의 다소곳한 말품새와 훤칠한 키와 체격, 이런 구석진 곳에 산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도회적인 스타일 이었다. 현관을 지나면서 나는 또 한번 놀래고 말았다. 저택의 중앙은 3층까지 천장이 뻥 뚫려 있었고, 벽과 천장은 기가 막힌 테라코타 마름질이 되어 있었고, 게다가 둥근 돔형의 천장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집안의 곳곳이 우거진 아름드리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이름도 모를 새들 마저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



‘워낙 새를 좋아하셔서…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투명 그물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덮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죠.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앙의 홀을 지나 다시 복도를 거쳐 들어간 곳은 보기에도 무척 커 보이는 서재 였다. 소파의 안락 의자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앉아서 내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인석입니다. 이번 계간지에 선생님의 평을 쓸 사람입니다. 이렇게 초면에 불쑥 찾아 뵙게 되었네요.’



‘아닙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게 해서 저희가 송구스럽지요. 식사는?’



‘아, 하고 왔습니다.’



‘음, 그럼 차나 과일 같은 것 좀 갖고 와.’



그는 그 대리인과 애인 사이인 것처럼 말을 놓았다.



‘저에 대해서 여러모로 묻고 다니신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 인데…’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 드리지요. 워낙 비평이란 것이 있는 사실만 갖고 써도, 하도 말들이 많은 세상이라, 정확하고, 증명된 꺼리 로만 평을 쓰려는 제 버릇 때문에 그렇지요. 뭐 다른 화백들처럼 손쉽게 만나뵐 수 있는 분들 같으면 모르겠는데, 선생님께서는 워낙 두문불출 하시어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만나 뵐 재간이 없드구만요.’



‘제 그림이 알려진 바가 없어서 평을 쓰시기에 어려움이 많으실 텐데요?’



‘비평은 하루 아침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논문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전반적인 상식과, 깊이와 넓이를 망라한 화풍 짚어 나가기, 등등 즉흥적 작품은 절대 아니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어서 차가 날라져 왔다. 그와 나의 중간에 그 대리인이 앉고서 얘기는 그 대리인이 주도해 나갔다.



‘이렇게 모신 것은 들으셔서 아시다 시피, 이번 전시회는 우리 선우 화백님의 초대전이자, 마지막 회고전이 되겠기에 그런 것입니다.’



‘아니, 아직 한창 그림을 그리실 나인 것 같은데, 이걸로 작품활동을 접으시다뇨?’



‘그래서 교수님을 초대한 것이지요. 어차피 마지막으로 결정된 일, 명망 있는 분께 보다 정확한 비평 꺼리를 드려야 도리가 아닌가 해서요.’



‘한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네가지 작품은 팔지 않기로 하셨다니, 전시장에서 볼 수는 있겠으되, 나머지 이미 팔려간 작품은 포장이 된 채로 전시된다고 하니, 일반 사람들이나 저나 매한가지로 내용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런지요? 게다가 그 중에서도 일부 작품은 10년 사이에 이미 소량작품 이긴 하지만 팔려 나간 상황이고 보면…어찌되었든 간에 작품의 흐름과 화백님의 그 간의 세월이 겹쳐져야만 일치된 비평과 함께 설득력 있는 화풍 따라잡기가 될 것 같은데요…..’



‘그건 걱정 마세요. 원본은 아니라 할지라도 완성되었던 작품은 원본과 같은 크기로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작업실로 가시죠.’



작업실은 지하에 있었다. 대개의 아틀리에는 채광과 통풍이 좋은 제일 상위층의 남향창을 가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나는 계속해서 수첩에 참고가 될만한 사항들을 적어 나가기에 바빴다. 지하의 작업실은 정말 어마어마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지상의 대지 면적을 모두 한 공간으로 터 놓은 듯한 구조는 운동장을 방불케 했다. 그 안에는 어느 누구도 본적이 없을 뿐더러, 그림을 소유한 본인 이외에는 볼 수 없는 그 작품들이 온 벽이 좁다 하고 걸려 있었다. 나는 국전 당선작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40여개의 작품을 처음부터 감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로 나이 많은 노인과 젊은 여자, 혹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강렬한 섹스를 주제로 한 그림들 이었다. 너무 사실적이지 않으면서도 각 그림마다 나타내고자 하는 어떤 특징들은 뚜렷이 각인되는 그 포인트들…. 나는 정신 없이 작품의 제목과 완성 일자와 함께 세세히 그림의 분위기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본 그대로가 바로 비평이 되야 하는 중압감은 나를 다급하게 하기도 했지만, 그림 속에 드러난 인물들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공통점 같은 것이 있었기에 조급함을 조금은 자제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걸려 있던 것은 이제까지의 작품과 다르게 한 여인을 모델로 그린 초상화 같은 분위기 였다. 네 작품 모두 이제까지 다루었던 두 사람의 연인이 아니라 한 여인만이 독창적으로 포우즈를 잡고 있어서 내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이 팔지 않으시겠다던 그 네 작품 인가요?’



‘네.’



‘정말 분위기랑, 구도하며, 어디 나무랄 데가 없네요. 기존의 작품이랑 좀 다르긴 하지만…그런데 뭐 하나 여쭈어 봐도 될까요? 저렇게 진한 섹스 광경의 묘사 때문에 일반공개를 하지 않으시는 건지, 아니면, 모델들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지요? 화백님의 답변이 궁금하네요.’



‘둘 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모든 그림은 그 소유자의 요청에 의해서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린 것들 뿐입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실 수 없겠죠. 어떻게 누드도 아닌 섹스를 화가 앞에서 드러내고 포우즈를 취할 수 있는 것인지를요…..’



‘대단한 용기네요.’



‘아닙니다. 용기로만 가지고는 저렇게 포우즈를 취할 수는 없지요. 그들 각자에게는 바로 목숨과도 같은 섹스랍니다. 결코 남이 알아서도 안되고, 스스로 말할 수도 없는 근친의 늪….저는 그걸 그리고 있었지요….’



나는 그제서야 처음부터 그림의 내용을 대강 짐작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건 아마도 아버지와 딸 정도의 관계일 것이고, 저것은 오누이, 저건 아마도 모자상간…..어째서 선우 화백이 세상에 발표하지도 않고서 그림을 주고 있었는지 대강 짐작이 가고 있었다. 모두가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관계를 접었다고 했다. 마지막 금단의 열매를 들이키면서 그 기억을 오래도록 강렬한 색조와 구도로 남기고 싶었던 소유자들의 욕망은 저렇게 화가의 심금을 뒤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네가지 그림은 조금 다른 구도가 특이 하군요. 대개 모델이 나타내는 포우즈는 어떤 것들을 의미한다고 듣고 있는데, 이상한 것은 그림 모두가 화중선 이란 제목으로만 되어 있고, 구분 표시가 없는 것이 이상한 점이라 할 수 있고, 또 한가지는 여인이 들고 있는 부채 인대요. 어쩐지 그 모습이 부자연 스럽고, 마치 부채를 강하게 나타내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구도 자체가 흔들린 듯한 느낌을 주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상체의 모티브와 다르게 하반신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것이 좀 부조화 스럽네요. 다리를 자연 스럽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역시 선생님의 비평적 분석은 못 당하겠네요… 그 이유는..’



그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 대리인 애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놀랍게도 내 뒤에는 지하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휠체어를 밀고 승강기에서 나오고, 의자에는 한 여인이 웃으면서 앉아 있었다.



‘그 이유는 제가 말씀드릴께요. 그건 그 모델이 부채를 들 수도, 다리를 꼬고 멋들어지게 앉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사하시죠. 우리 언니에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인은 대리인과 얼굴이 매우 흡사한, 그러나, 조금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여자 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림과 같이 부채를 들어올린 가녀린 팔이 팔꿈치 부분부터 손까지가 없었다. 그리고 힘없이 축 늘어진 긴 홈웨어로 보아 무릎 밑으로 다리도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교수님을 초대한 것은 모두 저의 생각 이었어요. 이제는 밝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구요. 어차피 저 화중선 네 작품을 중점적으로 평을 하시게 될 터인데, 이제까지 저이가 그린 그림을 모르신다면 제대로 된 비평이 나올 수 있을까 걱정 되어서 말이지요. 인사가 늦었네요. 손정은 입니다. 얘는 제 동생이구요.’



동생보다 언니의 얼굴은 더 화려하고 아기자기 하면서 우아함이 넘쳤다.



‘이젠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어요. 우린 이렇게 살아갑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저와 제 동생, 그리고, 남편 이렇게 셋이서…. 제가 다치고 나서부터 쭉 이렇게 말이죠.’



‘아니, 그럼…’



‘네, 보시는 것처럼 저는 팔꿈치 아래로, 무릎 아래로가 없습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모두 잘라 냈지요. 병신인 채로 살아가기에는 그 당시 너무 젊었고, 남편도 사랑하고 있었을뿐더러 그 외의 부분은 여자로서 멀쩡 했으니까요. 단지 아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 뿐…맨 처음에는 죽으려고도 했지요. 동생의 질투가 불러 일으킨 사고로….’



동생이 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 제 잘못이지요. 국전에 당선된 형부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저와 언니는 그 곳에서 형부를 같이 만나게 되었죠.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형부와 언니의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었습니다.. 부유하던 우리 집의 사정으로 언니는 형부의 어려운 생활을 거의 도맡다 시피 하면서 만났고…..4년간 두 사람은 정말 불같이 사랑하면서 붙어 다녔죠.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언니가 심하게 다투고, 바람같이 차를 몰고 나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던 거죠. 그런데, 그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저의 질투가 불러온 결과 였으니까요. 제가 면도칼로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들은 대로 브레이크 오일 호스를 잘라 놓은 것이 화근 이었죠. 차를 몰고 가다가 브레이크가 듣질 않게 되고, 언니는 대형 사고를 내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죄값을 치루기 시작했죠, 이렇게….’



그 언니의 주위로 선우 화백이 다가왔다. 아내를 난짝 들어서는 소파에 뉘였고, 그들은 능숙하고 서두름이 없는 속도로 일을 이어 나갔다. 그 넓은 소파를 제끼니 말로만 듣던 소파베드가 되는 것이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이라 내가 제지할 사이도 없이 선우 화백이 옷을 벗는 동안, 동생은 몸이 불편한 언니의 옷을 차근차근 벗겨주고, 순식간에 세 사람은 나체로 변했다. 동생은 불편한 언니의 절대적인 도우미 였다. 생활도, 섹스도, 감당하면서 도와야 하는 죄값….화백이 아내의 젖을 빨고 있는 동안, 동생은 무릎을 꿇고 선우 화백의 좇을 빨아 세워 주었고, 다리를 벌리는 것이 힘든 언니를 위해 언니의 보지에 좇을 때려 박는 형부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버둥대는, 잘라진 두 다리를 편안히 받치면서 양쪽으로 벌릴 수 있도록 도와 주고, 뒤로 박자는 화백의 말에 동생은 언니를 등에 짊어 지듯이 하고서 엎드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동생의 등에 업혀 뒤로 드러난 언니의 보지를 선우 화백은 가차없이 쑤셔 박았고….



‘헉헉.. 윽윽…. 교수님 이런 광경, 처음 보셨죠? 이게 우리 세 사람이 엉켜 사는 모습입니다. 어때요? 억억…. 그러니, 제가 저렇게 화중선을 그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윽윽….억억….’



‘흐흐흑…. 교수님…. 저는 동생을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우리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평생토록 애쓰려는 동생을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었답니다. 윽윽윽….저 그림은 자신의 처녀를 형부에게 바치던 그 날, 부탁한 것이었어요. 부채를 좋아하는, 그리고 매끈하게 다리를 꼬고 싶어하는 언니를 위해서 그림으로나마 팔다리가 온전한 언니를 그려달라고요….. 윽윽….윽윽……’



급기야. 선우 화백은 위아래로 벌려진 언니와 동생의 보지를 번갈아 가면서 박아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내가 있는지 상관도 하질 않은 채, 광란의 섹스를 벌리고 있었다. 그런 근친의 향연을 자신까지 포함해서 10년이 넘도록 그려온 그였기에 이깟 남들 앞에서의 섹스야 문제될 것도 없는 듯 했다.



‘악악… 여보… 사랑해요.. 죽을때까지… 나, 너무 행복해요…..…’



‘형부, 더 쑤셔줘요. 언니가 질투로 미쳐 죽어버릴 때까지 내 보지에 박아줘요. 오늘 만큼은 제발, 제발, 제 보지 안에다 싸 줘요… 윽윽윽… 형부, 제발…’



‘당신이랑, 처제가 있어서 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어허… 이 좋은 보지가 둘씩이나 이렇게 미쳐가는데,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 그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우리 셋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자. 윽윽윽윽…. 나 싼다…. 억억억…..ㅇ….ㅏ….ㄱ’



마지막 순간에는 위아래로 포개져 벌려져 씰룩 대는 두 여인의 뒷보지 정면에 물감 붓을 흩뿌리듯이 만장으로 좇물을 뿌려댔다. 두 여인을 위한 장엄한 휘날레…… 동생은 언니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결혼도 않한 처녀의 몸으로 아예 자궁을 드러내 버렸다고 했다. 더 이상 이런 불행한 세대는 우리들로 족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세 사람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 앉고 나서, 나는 방으로 들려 올라간 언니와 선우 화백에게 인사를 하고, 동생의 배웅을 받았다.



‘교수님을 믿고 드리는 말씀 입니다. 전시회가 끝난 후, 이 주소로 그림 네 점을 보내 주세요. 얼마 있질 않아서 저희는 이곳을 뜰 겁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눈과 입 속에 굴러 다니는 가십거리가 되질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어떻게 써 주실지는 교수님께 완전히 맡길 겁니다. 부탁 드려요.’



뒤도 돌아보질 않고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 그녀….추운 겨울 바람이 땀으로 흥건한 내 머리 결 속으로 바늘 끝처럼 파고 들었다. 나는 전시회가 끝나고, 최기자에게 화중선과 선우 화백의 그 외 작품 등에 대한 장고의 비평을 보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천재 화가의 비평을 내가 썼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는 했지만, 다시는 그의 작품을 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안타까운 점이었다. 나는 비평의 탈고를 하면서 내 방에 걸린 그림을 쳐다 보았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 얼굴 빛과 달리 팔의 색이 확연히 다른 그 그림… 저 그림도 혹시 어떤 비밀이 담겨진, 그런?......아직도 그 세 사람의 모습이 내 눈앞에는 화려한 부채의 빗살 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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