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세남편


저는 이미 지옥행 급행열차를 예약을 해 두고 사는 새내기 신부입니다.


이제 겨우 27살이란 나이에 세 남자 그도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남자들의 요구만 있으면 가랑이를 벌려주어야 하는 인생이기에 지옥행은 이미 확정이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먼저 제가 가랑이를 벌려주지 않아서는 안 될 세 명의 남자를 먼저 간략하게 소개 올리겠습니다.






첫 번째 남자는 당연히 벌려주어야 할 제 남편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 남편에게 가랑이를 벌려주는데 대하여 이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일단은 넘어 가겠습니다.


두 번째로 가랑이를 벌려달라고 하면 벌려주어야 하는 남자는 바로 제 남편의 아버지이자 저에게는 시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시아버지가 발려달라고 할 경우 거절을 하지 못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가랑이를 벌려주었던 분이 바로 시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제가 가랑이를 벌려주어야 하는 남자를 먼저 소개하기에 어떻게 하여 시아버지가 될 사람에게 먼저 벌려주게 되었었는지는 마지막 세 번재 인물을 소개를 한 후에 자세히 말슴을 드리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소개부터 올리겠습니다.


세 번째 남자는 제 남편의 동생이자 저에게는 시동생이 되는 남자입니다.


저는 이상의 세 남자에게 가랑이를 벌려달라고 하면 벌려주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제가 세 남자에게 가랑이를 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조리 아는 사람은 시동생뿐입니다.


시아버지는 자신의 큰아들과 자신에게만 벌려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며 남편은 남편 자신에게만 벌려주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를 그런 구렁텅이에 빠트린 남자는 바로 제 남편입니다.


왜 제 남편이 저를 그런 지옥행 급행열차를 예약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자세하가 고백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시아버지가 되실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부터 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제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저도 몰랐었지만 제 시아버지도 제가 자기의 며느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을 것입니다.


제가 전문대학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곳은 사장 혼자서 운영을 하는 아주 영세한 무역 사무실이었습니다.


취업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저는 다른 과의 또래 학생들 둘과 함께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 자체부터가 이상하였습니다.


거의 20Kg에 가까운 박스를 들고서 일어났다 서기를 반복을 시켰고 같이 간 두 학생들은 온힘을 다하여 들었지만 한두 번 들고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한 반면 엄마가 시장 난전에서 채소 가게를 하던 탓에 학교에 일찍 다녀오거나 가지 않는 날의 경우 배추나 무 등의 무거운 채소는 엄마 대신에 들고 배달을 하였기에 힘에는 자신이 있었던 저는 그 박스를 마치 공기 돌리듯이 자유자제로 들고 내렸고 그러자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저에게 출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역회사 사장님은 혼자서 무역 사무실을 운영을 하다가 조금 바빠지자 저를 채용을 하였던 것입니다.


처음 입사를 하여서는 무엇을 어떤 경로를 이용하여 수입을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몇 주일에 한 번씩 사장님이 부산으로 내려갔다오시고 나서 몇 칠 후면 2.5t 화물차로 물건이 사무실 겸 창고 앞으로 도착을 하면 지게차를 불러 물건을 창고 안으로 하차하고 사장님이 손수 박스를 해체하면 저와 사장님이 박스에 담긴 물품들을 정리를 하고 거래처에 연락을 하면 거래처에서 직접 물건을 인도하러 현금을 들고 오면 물건과 현금을 바꾸기에 때일 염려가 없는 사업이라 처음 보는 제 눈에도 재미가 쏠쏠해 보였습니다.


저를 포한하여 세 명의 학생이 면접을 보러 갔다가 힘이 좋은 저를 선택을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건은 창고에서 해체를 하는 할 때 부산하게 움직이다 보니 사장님과 본의 아닌 스킨십이 자주 일어났고 그럴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러웠으나 사장님은 아주 담담해 하여 혹시 저를 여자로 보지 않고 단순하게 일만 하는 여자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사장님은 여자로서 제대로 달린 눈을 가지고 있다면 혹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핸섬하고 신사다운 면모를 가진 그런 남자였거든요.


전문대에 다니면서 미팅도 수 없이 많이 하였지만 졸업을 할 때까지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그런 남자는 없었는데 사장님이 제 마음을 흔들었지 뭐예요.


하지만 아빠 같은 분을 좋아 한다는 것은 아주 막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건 제가 자란 우리 집의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엄마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빠가 누구이고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니까요.


아빠 없이 자란 탓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연민으로 바뀌어 그 대상이 사장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의 경우 특이하게 엄마로부터 간접적으로 자위를 배웠습니다.


엄마가 술이 취한 날이면 몸부림을 치며<날 이렇게 하 놓고 잘 살줄 알아? 흥 나는 어떡하라고>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손을 파자마 안에 넣고 무엇인가를 마구 문지르는 장면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라 수 백 번도 넘게 보았고 초등학교 상급생이 되어서 그게 자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사장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장님에게 두 가지 안 좋은 면이 있었습니다.


6개월을 근무를 하였지만 저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하여서는 한 마디도 묻지를 않고 사무적으로만 대하는 것이었고 6개월을 근무를 하는 동안 비록 단 둘이서 근무를 하는 처지이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회식 자리를 마련 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저녁 한 번 같이 먹자는 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 오늘 봉급 탄 기념으로 제가 저녁 대접 할 게요.”7개월 근무를 하고 7개월 째 봉급을 주시기에 제가 먼저 저녁을 사겠다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사장님은 처음 입사를 하였을 때 6개월이 지나고 7개월째부터 급료를 올려주신다고 하였고 사장님에게서 받은 7달 째 급료 봉투는 전달에 비하여 확실하게 두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허허허~참 그러고 보니 우리 미스 공에게 사장이라면서 저녁 한 번 같이 먹은 적이 없었군, 아니야 미스 공 오늘 내가 쏘지. 자 나가지”하고 말을 하면 양복저고리를 걸치셨습니다. 


“헤헤헤 사장님 그럼 이차는 제가 쏠게요”헤헤거리며 말하자


“그것 좋지”하고는 저를 데리고 볼고기 집으로 데리고 갔고 언감생심 돼지불고기만으로도 만족을 하고 남을 저였지만 사장님을 쇠고기를 시켰습니다.


물론 그렇게 좋은 안주에 소주가 빠지면 안 되겠죠?






사장님과 소주를 곁들인 불고기를 먹으면서 사장님은 7개원 만에 처음으로 저의 가족에 대하여 물었고 저는 한 마디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는 말씀드렸고 사장님의 저에 대한 신상을 모조리 밝힌 후 사장님의 가족에 대하여서 질문을 한 결과 사장님의 부인께서는 이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들 둘과 사는데 혼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사장님의 큰아들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일등 항해사가 되어 마국을 왕래하는 커다란 상선을 타고 있다고 말하시면서 자신이 하는 무역업도 아들이 미국에서 한국에서 실고 간 물건들은 하역을 하는 동안 미국에 다니면서 거래를 튼 오퍼상을 통하여 물건을 구매하고 배에 실어 부사까지 운반을 하여 부산항에서 하역을 하면 자신이 부산에 내려가서 통관 절차를 밟은 후 화물차로 창고 겸 사무실 까지 올려 보내고 자신은 KTX를 다고 올라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부니 큰아들의 경우 일 년에 겨우 몇 차례 집에 들를 수는 있지만 하루라도 일직 선장 자격증을 따야 한다며 집에 오지도 않는 형편이고 둘 째 아들의 경우 토목과를 졸업하여 토목기사로 일을 하기에 주로 지방에서 생활을 하다가 금요일 저녁이면 집에 들렀다가 일요일 저녁에 현장으로 가기에 셋이 다 모이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사장님의 사장님 자신의 신변 이야기 중에 가장 제 마음을 아프게 한 부분은 이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사모님 때문이었습니다.


엄마가 어떤 이유로 아빠라는 사람하고 헤어졌는지 알 길은 없지만 엄마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손을 파자마 안에 넣고 자위를 하였다는 생각이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장님의 사연을 듣자 엄마 생각이 났고 그 생각은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하도록 만들었지만 마음을 추스르면서 겨우 참았습니다.


그리고 술이 어느 정도 오른 상태라 분위기를 반전을 시키려고 사장님에게 노래연습장에 가자고 하였고 사장님은 계산을 하시고는 제가 앞장을 서자 나란히 서서 따라왔습니다.


노래연습장 방값을 사장님이 계산을 하시려고 하기에 거의 강제로 내가 계산을 하자 사장님께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에 음료수까지 사셨습니다.






사장님이 먼저 저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으나 장유유서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사장님이 어른이시니 먼저 불러야 한다고 하자 사장님께서 마지 못 해 먼저 노래를 부르셨는데 50대 중반답게 7080세대의 은은한 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르셨습니다.


나도 내가 아는 7080세대의(엄마가 즐겨 부르고 들었기에 조금은 즐기는 편임)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장님께서 다시 노래를 부르시는데 이번에는 아주 흘러간 옛 노래였습니다.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는 사장님 뒤에 서서 소위 백 허그를 하자 사장님은 짐짓 당황하시지 노래를 멈칫 하였으나 이내 이성을 찾으시고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이어 내가 아는 거의 몇 곡에 지나지 않는 아는 트로트 노래 중에 소양강 처녀를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이 나처럼 내 허리를 잡는가 싶더니 백 허그를 하셨고 나와 달리(난 하체를 밀착을 시키지 않음)하체를 밀착을 시켰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계속하며 엉덩이를 조금씩 흔들자 내 엉덩이에 닿은 사장님의 하체 일부가 딱딱하게 변한 것을 감지 할 수가 있었고 난 그게 사장님께서 성욕이 생겼고 그래서 그것이 발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은 붉어지기 시작하였는지 뜨거워지기 시작하였으나 저 역시 이성을 찾고 노래를 계속 불렀습니다.


그런 동작은 시간이 다 되었을 때까지 계속이 되었지만 더 이상의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대신 그날 이후 사장님께서는 수시로 저에게 저녁을 사주셨고 저녁은 먹으면서는 항상 반주도 함께 들었고 저녁은 먹은 후에 노래연습장을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입사를 하고 꼭 일 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난 날 사장님은 저에게 퇴직금을 주셨습니다.


사표를 썼냐고요?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땡초입니다.


입사를 하고 첫 출근을 하던 날 사장님께서는 저에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개인 사업이라는 것이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잘 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또 몇 년이고 계속 근무를 하다가 사표를 슬 경우 개인 사업자로서는 몇 년 치 퇴직금을 한꺼번에 주게 된다는 것이 크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매 년 마다 입사 한 달이 되는 날 급료와 함께 퇴직금을 지급하게 되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사장이 망하여 많은 퇴직금은 날려 버리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를 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사업자인 자기도 나중에 제가 퇴직을 하게 되면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하고 깊은데 의향이 어떠냐고 물으시기에 사장님 편하신 방향으로 하시라고 하자 그렇게 하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대신 사장님께서는 매년 퇴직금을 받고 받은 퇴직금을 써 버리면 퇴직금의 의미가 사라지므로 퇴직금을 받은 즉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돈은 은행에 저금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고 저는 퇴직금을 받은 이튿날 은행에 저금을 하고 통장을 사장님에게 보여 드림으로서 어 역시 사장님에게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자기 말을 따라줘서 고맙다며 저녁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날 생기고 말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필수 코스인 노래연습장에서 제가 노래를 부르는 도중 역시 사장님께서 백 허그를 하고 하체를 제 엉덩이에 대고 비비기시작하셨고 그 결과 사장님의 그것이 발기가 되자 저도 그만 흥분이 된 나머지 간주곡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되었고 뒤돌아보는 순간 저 머리에 얼굴을 대고 있던 사장님의 입술을 제 입술이 포개졌고 포개지는 손간 저도 모르게 저는 이성을 잃어버렸던지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그만 사장님의 목에 매달렸고 그리고 저의 혀가 사장님의 입 곳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제가 사장님을 유혹을 한 것입니다.






사장님은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온 제 혀를 게걸스럽게 빨아주시면서 제 엉덩이를 잡았고 그리고 하체를 밀착을 시켰습니다.


사장님의 그것이 제 거기에 정확하게 닿았고 압박을 하였습니다.


사장님의 팬티와 바지 그리고 저의 치마와 팬티만 없다면 박히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아니 아무런 생각 없이 사장님의 그것을 제 그것 안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그런 욕망은 자연스럽게 제 손을 사장님 바지 지퍼로 가게 하였고 또 내리게 만들었으며 생애 처음이지만 간도 크게 제 손은 사장님의 바지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고 또 곧이어 사장님의 그것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좆이 떨리는 제 손아귀에 쥐어졌고 마음은 시키지 아니하였지만 행동은 사장님의 좆을 밖으로 끄집어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제 치마 안에 손을 넣으셨고 이어 역시 생애 최초로 남자의 손이 제 거기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제 보지둔덕에 닿게 하였고 쓰다듬게 만들었습니다.


간도 크게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순간적으로 당장 보지구멍으로 사장님의 좆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후회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은 저로 하여금 탁자를 짚고 엉덩이를 빼게 만들었고 사장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던지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발목까지 내렸고 그리고 엉덩이를 잡는가 싶더니 어머 어마한 통증이 아랫도리에서 느껴짐과 함께 배가 더부룩해진 그런 느낌이 들더니 사장님께서 멈칫 하시더니 처음이냐고 물으시기에 아픔을 참으며 그렇다고 하자 후화가 안 되느냐고 다시 물으시기에 후회 할 짓은 하지 않은다고 하자 사장님께서는 천천히 펌프질을 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한 번 터진 물꼬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잘도 터졌습니다.


사무실에서도 터졌고 창고에서도 터졌으며 물꼬가 터지고 나서 밑반찬을 만들어 드린다고 드나들기 시작한 사장님 집에서도 터지더니 급기야는 사장님 집에서 자고 사장님과 같이 출근을 하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주 중에는 언지든지 사장님이 가자고 하면 사장님을 따라 사장님 집으로 갔고 그리고 사장님 품에 안겨 잤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절대 오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사장님의 작은아들이 지방의 토목 공사 기사로 일을 하기에 주말이면 집으로 오기에 오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항해사로 일을 한다는 큰아들은 처음부터 코빼기도 보지를 못 하였습니다.


하루라도 일찍 선장 자격증을 따야 한다며 휴가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집은커녕 자기가 물건을 공급하여주는 아버지의 사무실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 25살이 되던 해의 가을의 어느 날 사장님께서 큰아들이 사무실에 들른다는 연락을 받았다면 청소를 깨끗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급한 전화를 받고서 거래처에 다녀온다고 나가시면서 명함 사진 한 장을 건네며 자기 아들이니 그렇게 생긴 사람이 오면 기다리라고 하고 차를 대접하라고 지시를 하고 나갔습니다.






삼십 여 분이 지나 사장님게서 주신 사진의 인물과 동일한 인물이 사무실로 들어왔고 그분에게 사장님께서 급한 전화를 받고 나가셨으며 기다리시라고 하였다고 하자 알았다고 하면서 마치 저를 감시나 하는 듯이 저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저에게 말을 마구 붙였습니다.


귀찮기도 하였지만 사장님의 아들이고 더구나 몸까지 합치고 또 합칠 분의 아들이라 무시를 할 수가 없어 묻는 대로 대답을 착실하게 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물었습니다.


정말이지 휴대폰 전화번호는 가르쳐주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억지를 부리는 통에 가르쳐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단은 거기에서부터 벌어진 것입니다만 당시에는 그게 문제의 발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얼마 후 사장님이 오셨고 두 분이 함께 사무실을 나가시면서 사장님은 저에게 퇴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장님 아들의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습니다.






보름 후 낮선 전화번호가 뜬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사장님의 아들이었고 다음 날 올라갈 것이니 밖에서 조용히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만나지 않겠다고 하자 사무실 앞에서 아버지 몰래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피할 방법이 없어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사장님의 큰아들은 하선하기 전 날이면 저에게 전화를 걸었고 장소와 시간만 말하고는 나오라고 하고는 저의 대답도 듣지 않고 끊어버렸습니다.


어떤 날은 사장님께서 지기 집으로 가자고 하는 날과 겹치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사장님 큰아들의 억지가 저를 이겼습니다.


11번은 만난 날 저는 사장님의 큰아들로부터 뜻밖의 제안 아니 놀라운 제안을 받았습니다.


아니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받았던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을 하여 전날 사장님의 큰아들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은 이야기를 하고 사표를 쓸 생각을 하였는데 사장님께서 자기 아들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한숨을 쉬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시고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표를 쓸 마음의 준비도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사그라졌습니다.


아예 하선을 하면 사무실로 찾아와 마치 아버지인 사장님에게 시우ㅏ라도 하듯이 저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였고 그러면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사장님은 나가라고 허락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사장님은 저에게 빠구리를 하자고 하지 않았고 조금은 멀리 하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사장님은 저에게 자기 큰아들과 결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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