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녀의 가출 일기


저 계속 학교에 다녔다면 올해 중학교 3학년이었을 한 가녀린 소녀랍니다. 
학교 그만 두었냐고요. 
예, 작년 여름방학에 가출을 하였고 지금은 제가 노숙을 하던 괄할 동사무소 직원의 소개로 알게 된 고마운(?) 복지사 아저씨 덕에 모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센터에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며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답니다. 
아이를 낳으면 제가 모르는 국내 혹은 국외의 어떤 마음 좋은 사람에게 입양을 시켜준다고 하였기에 믿고 기술만 익히고 있는데 여기서 몸조리를 하고 난 후에 사회로 나가면 미용실에 취직을 하여 살아야 한답니다. 


부모님이 없느냐고요? 
금지옥엽이란 말 들어 보셨죠?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이란 뜻으로 아주 귀한 것이란 말로 통용이 되는데 아주 귀하게 크는 아이나 사람을 금지옥엽 같이 키웠다고들 하죠. 
그랬답니다. 
적어도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말까지는 말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끓인다던 라면 하나도 끓이지 못 한 그런 아이였답니다. 
심지어 코앞에 있는 냉장고 문만 열면 얼마든지 손수 꺼내 먹을 수가 있었던 음료수나 우유도 제 스스로 꺼내 먹은 적이 없이 엄마나 아빠에게 달리고만 하면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세수나 목욕을 할 때 말고는 손에 물을 묻힌 적이 없었답니다. 
아빠엄마보다 제가 더 우리 집에서 높은 존재라고 생각을 하였을 정도였죠. 


그러나 5학년 말의 겨울방학을 목전에 두고부터 엄마의 행동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밑 화장도 안 하던 엄마가 꽃단장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도 모자라 제가 하교만 하면 산식을 챙겨주고는 잠시 나갔다 온다고 하고는 아빠가 퇴근을 할 무렵에 맞추어서 집으로 들어왔고 저에겐 행여 아빠가 물으면 계속 집에 있었다고 하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먼 친척이라면서 웬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이기도 하였습니다. 
학원에 다녀와서 보면 그 남자가 옷매무새를 고치는 모습도 봤고 한 번은 엄마와 현관문 앞에서 뽀뽀를 하는 모습도 봤답니다. 
하지만 엄마를 믿었기에 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답니다. 


“어이 은지 온 모양인데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목욕 시켜 문을 다 닫지 말고”제가 안방을 향하여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저의 방으로 가는데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자기 변태 아니야?”엄마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니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어? 그냥 눈요기만 한다고 했지“남자가 말하였습니다. 
“다른 생각하기 없기다?”하고 엄마가 말하자 
“응 약속”하고 남자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철딱서니가 없었던 전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나오더니 목욕을 하자며 저를 욕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엄마 보지에서 하얀 물이 조금 배어나오지 뭐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건 엄마하고 안방에서 저로서는 알 수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그 남자의 좆 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전 엄마와 함께 샤워를 하였습니다. 
누군가가 문 앞에서 저의 몸을 훔쳐보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미쳤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야”학원에 다녀와 집으로 들어서니 안방에서 엄마가 누군가하고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란 말만 안 나왔어도 그냥 제 방으로 갔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란 말이 나온 것은 분명히 저와 상관이 있는 말이라 생각하였거든요. 
“뭐라고 자기 정말 변태 아니야 몰라 중학교에 올라가면 몰라도”엄마의 말이었습니다. 
“응 그때 보자고 자기가 날 안 버리고 마음이 안 변하면”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은지 곱게 키워서 자기 먹게 해 줄게”베란다 창밖의 하늘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그래 앞전에 봤잖아 아직 자기 좆 받아들이기에는 어려”더 충격적인 엄마의 말이었습니다. 


요즘 애들 무섭거든요. 
제 친구 중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빠구리를 한 애가 있거든요. 
그 앤 일주일에 한두 번 빠구리를 안 하면 책의 글도 안 보이고 TV를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를 못 할 정도로 심각한 아이랍니다. 
그 앤 그래도 나은 편이랍니다. 
확인을 하지 못 하였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좋아하는 이웃에 사는 고등학생 오빠에게 좆을 빠는 법을 배웠고 좆을 보지에 박으려고 하였으나 너무 어린 탓에 박지 못 하고 빨고 흔들게 하여 좆 물이 나올 시점이 되면 그 애를 눕히고 좆을 여린 보지 구멍 입구에 강하게 누르고 좆 물을 싸는 것을 봤다는 애도 있을 정도로 요즘 애들은 무섭답니다. 


그런 것들을 알고 들었던 제가 엄마와 누군가가 전화로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그게 무슨 말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죠. 
엄마는 그 누군가에게 제 몸을 먹게 만든다는 듣고 가만히 있을 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빠에게 낮선 남자가 우리 집에 출입이 잦다는 말을 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자기 좆 받아들이기에는 어리다고 하던 말은 낮 부끄러워 차마 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장에 다니던 아빠는 저의 제보에 따라 하루 월차를 내고는 집 주변에서 지키다가 그 남자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고 그리고 말로만 들었지만 아주 확정적인 순간에 아빠는 경찰에 협조를 받아 엄마와 그 남자를 현장에서 채포 해 가도록 만들었고 그리고 이혼 소송을 병행하여 엄마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이혼을 해 버렸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아빠는 저에게 엄마하고 살라고 조용을 하였지만 자기 좆 받아들이기에는 어리니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 생각을 해 보겠다던 엄마를 따라 간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어요. 
한사코 반대하자 아빠는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자기와 살자고 하였습니다. 


이혼을 하면서 그렇게 저를 엄마에게 떠맡기려던 이유를 안 것은 얼마 안 지나서였습니다. 
엄마와 이혼을 하고 한 달이나 조금 지났을까. 
아빠가 저에게 은근히 물었습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기 싫지 않느냐고. 
샤워를 할 때나 세수를 할 경우가 아니면 물을 묻히지 않던 제 손은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한 후에는 물론 아빠와 교대로 하였지만 밥도 하였고 설거지는 거의 전담을 하였으며 세탁기가 해 주지만 빨래도 해야 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답은 간단하지 않나요. 
싫다고 하였더니 새엄마를 들이면 하는데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여자가 엄마자리에 온다는 사실이 싫었지만 당장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기 싫은 생각이 먼저라 그렇게 하라고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주일 후 저보다 한 살이 많은 여자애를 데리고 엄마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절 더러 그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였고 같이 온 애를 보고는 언니라고 부르라고 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기 싫어서 무슨 말이나 부탁을 할 경우(저기요 이거 좀 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며 주로 앞에 저기요 라고 말을 함으로서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같이 온 그 애에게는 이름을 불렀지 절대 언니란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그 여자가 어떤 여지인지를......... 
그 여자의 딸인 그 애 입을 통하여............ 
아빠하고 그 애 아빠는 아빠가 다니던 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는 동료이자 선배였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년 전에 낚시를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익사를 하였고 친척이 별로 없던 그들에게 아빠가 주도적으로 장례를 치러줬고 그 후로도 수시로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그 애 엄마와 아빠가 정분이 붙어서 토요일이면 가끔 자고 가기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아빠가 토요일이면 낚시를 간다고 챙겨 나가 밤을 새우고 온 것이 낚시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여자하고 놀려고 거짓말을 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먼저 외도를 한 것이 아니라 아빠가 먼저 했던 것인데 외도를 하던 현장에서 발각이 된 죄로 위자료 한 푼 받지 못 하고 쫓겨나다시피 이혼을 당한 엄마만 억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그 애는 놀랍게도 알아주는 날라리였습니다. 
우리 집에 온지 몇 칠도 안 되었는데 제 컴퓨터를 마치 자기 컴퓨터인 냥 자기 마음대로 사용을 하는 것까진 좋습니다. 
세상에 나보다 한 살이 더 많다는 애가 들어가는 사이트가 어떤 사이트인줄 아세요. 
세상에 어른들만 들어가는 사이트를 자기 엄마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들어가질 않나 심지어는 야한 동영상까지 다운을 받아서 제 컴퓨터에 저장을 하지 뭡니까. 
뿐만 아니었습니다. 
아다 깬 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된다는 듯이 4학년 때 아는 중학생 오빠에게 줬다고 자랑을 하였고 지금은 대학생 오빠하고 쉬기며 보지를 준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그 엄마에 그 딸이란 것을 그대로 증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콘돔을 저에게 보이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달라고만 하면 준다고 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맷돌 놀이를 하자고 제안을 하는 바람에 그게 어떻게 하는 놀이야고 물었더니 자기랑 내가 알몸이 되어 다리를 X자로 하고는 자기 보지와 제 보지를 마주대고 비비는 놀이로서 빠구리를 하는 것보단 기분이 덜하지만 혼자 자위를 하는 것에 비하면 스릴도 있고 물도 많아 나와 기분이 좋다고 하며 하자고 하였으나 전 그 말에 놀라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또 밥 먹듯이 외박을 하였지만 그 애 엄마와 우리 아빠는 한 번도 나무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와서는 고작 한다는 말이 몇 번 하였다는 말이나 어떤 때는 자기와 즐기는 오빠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함께 놀았다는 말도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는데 그 애는 날 아주 놀라게 만들었으니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둘이 교대로 하나는 밑에 깔려 똥구멍에 좆을 박아주고 다른 하나는 자기 위에 올라타서는 보지에 좆을 꼽고 펌프질을 하였는데 처음엔 똥구멍이 아파 죽는 줄 알았으나 한참 지나자 정말이지 보지보다 동구멍에 든 좆이 더 좋게 만들더라고 자랑까지 하였습니다. 
저보다 겨우 한 살이 많아 초등학교 6학년이 할 일이며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전 그 애 몸에서 악취가 나는 기분이라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애의 엄마 몸의 변화였습니다. 
집에 들어오고 얼마 안 지나서 입덧을 시작하더니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실망스럽게도 얼마나 좋아하던지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일학년에 올라가 여름방학 때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나를 가족에게서 말리 하게 만드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엄마하고 이혼 후에 저만 보면 불쌍하다며 눈물을 짓던 고모가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 여자가 낳은 남자애를 더 좋아하며 저에게는 관심도 주지 아니하였습니다. 
집안에서는 완전히 따돌림을 받는 애로 전락을 하고 만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기가 점점 싫어졌습니다. 
작년 여름방학을 기회로 드디어 가출을 감행하였습니다. 
친구들 집을 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친구 집도 하루 이틀이고 또 친구 엄마가 저의 가출 사실을 알아버린 경우는 노골적으로 자기 딸과 만나지 말라고 하면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도 여름방학 동안 겨우 돌아가며 지넬 수가 있었으나 개학을 하자 저는 길거리를 방황을 하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잠을 잘 곳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24시간 영업을 하는 대형 할인점의 휴게실이나 마당의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허지만 관리를 하시는 사람에 의하여 쫓겨나서 다시 잘 곳을 찾아야 하였습니다. 
행운이었던지 불행의 시작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공원을 배회하다가 여자 노숙자를 한 사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자기도 저 만한 딸이 있다면 끔찍이 생각을 해 주며 자기 곁에서 자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같이 잠을 자는 남자 노숙자들이 치근거리면 욕을 하며 몽둥이를 들고 때릴 기세를 하면서 저를 보호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에게는 애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같이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정분이 붙었다는 그 아저씨는 다행히 여동생의 도움으로 노가다를 하면서 여동생 집에서 기거를 한다고 하였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그 공원으로 와서는 그 아줌마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다른 여자 노숙자에게 맡기며 잘 지키지 못 하면 죽는다고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주의를 시켰고 저를 맡은 다른 여자 노숙자는 남자 노숙자들이 제게 와서 치근거리기라도 하면 그 아줌마 이름을 들먹이며 엄포를 놓으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난 왜 남자 노숙자들이 그 아줌마 노숙자를 무서워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다른 여자 노숙자의 입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아줌마하고 연애 아닌 즐기는 노숙자 신새를 면한 그 남자가 공원에서 노숙자 생활을 할 때 모든 노숙자들이 그 남자에게 벌벌 기었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별이(처음에 그 별이란 것이 전과 횟수인지 몰랐음)이명박 대통령처럼 전과가 14개로 주먹을 한 번 쓰면 거의 죽을 정도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는 그럼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튼튼한 백을 가진 아줌마였기에 감히 덤비지 못 하고 벌벌 긴 것입니다. 


또 나를 다른 여자 노숙자에게 맡기고 간 그 다음 날 아침이면 누가 봐도 노숙자로 보지 않을 만큼 깨끗한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그 남자와 여관에 가서 모든 노숙자들이 부러워하는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온 것입니다. 
그런 날이면 전 너무나 좋았습니다. 
왜? 아줌마 몸에서 나는 비누 냄새며 로션 냄새였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여관에서 몰래 가져온 로션을 바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줌마와 같이 자지 않은 날이 지나고 동이 트면 저를 포함한 여자 노숙자들은 공원 여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유는 조금 전에 말을 한 로션을 바르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던 셈입니다. 
절 보호 해주는 그 아줌마는 봇장도 커서 자기가 훔쳐온 로션을 모든 여자 노숙자에게 골고루 주었기에 그 로션은 금방 바닥을 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은지야 너 따듯한 물에 목욕하고 싶지 않니?”절 부호해 주는 아줌마가 느닷없이 물었습니다. 
“하고 싶어요, 아줌마”하고 대답하자 
“아저씨 와 나 셋이서 해도 좋아?”놀라운 제안이었습니다. 
“...........”부끄러워서 고개만 숙였습니다. 
“나나 아저씨는 널 생각해서 한 건데 싫으면 말고”아줌마가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고작해야 공원 안의 공중화장실에서 세수나 하고 손발이나 씻는 일이 전부고 더구나 겨울 초입이라 그 마저도 곤란한 지경인 마당에 아줌마의 꼬드김은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미 섹스를 한 애들도 있었을 정도로 사회가 문란하였지만 설마하니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 아줌마와 찬한 그 아저시가 절 어떻게 하겠느냐는 생각까지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줌마 그럼 목욕만 하고 나오면 되요?”아줌마 옆에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습니다. 
“은지 얘 너 미쳤니? 비싼 돈 주고 들어가서 자도 안하고 나오게 방이 얼마나 뜨겁다고”아줌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줌마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돈 몇 푼이 없어서 노숙자 신세로 사는 마당에 어쩌다가 여관방에 많은 돈을 주고 들어갔다가 샤워만 하고 그냥 나오려면 차라리 대중목욕탕에 가면 될 것인데 구태여 많은 돈을 지불하고 여관에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온 몸이 거무튀튀하여 노숙자란 것이 표가 나면 대중목욕탕에 가려고 하여도 문전박대를 당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 하고 말입니다. 
“언제 가요?”다시 물었습니다. 
“은지 네가 간다면 오늘이라도”웃으며 말하였습니다. 
“정말?”손뼉을 치며 묻자 
“아저씨에게 연락 할까?”웃으며 물었습니다. 
“예 아줌만 만 좋다면”하고 대답을 하는 저의 몸은 온 전체가 근질근질하였습니다. 
“좋아 따라와 전화하러 가자”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공원 안에 있던 공중전화로 가서 아줌마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어이 가지”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그 아저씨가 오더니 아줌마에게 말하였습니다. 
저의 눈에는 그 아저씨가 들고 온 커다란 비닐 봉투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보였습니다. 
평소 그 아저씨가 아줌마를 만나러 오면 항상 들고 오던 비닐 봉투였고 아줌마는 그 아저씨를 따라가기 전에 항상 그 비닐 봉투 안에서 빵이나 음료수를 한 개 정도를 저에게 주었으나 젖 그 안에서 나는 켄터키치킨이며 족발 냄새를 맡으며 배고파하였답니다. 
그런데 함께 여관에 가게 되면 목욕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또 저만 빼고 자기들만 먹진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자 더욱더 허기가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여관까지 갔는지는 지금 생각하여도 모릅니다. 
먹을 것 생각에 말입니다. 
겨우 알고 있었던 것은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라고 시킨 것과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게 시킨 것 말고는 말입니다. 


“씻고 먹을까 먹고 씻을까?”여관방에 들어서자 아저씨가 커다란 비닐 봉투를 탁자 위에 얹으며 물었습니다. 
“뭔데?”아주마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아 일하다가 고철 팔아서 잡수입까지 생겼고 더구나 우리 은지 공주님 모시고 온다고 하여 켄터키치킨하고 족발 그리고 탕수육까지 가져왔거든 물론 자기 좋아하는 소주도”아저씨가 그것들을 탁자 위로 끄집어내며 말하였습니다. 
“꿀꺽!”말로만 들어도 입맛이 다셔지는 마당에 냄새까지 진동하자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습니다. 
“아이고 안 되겠다. 조금이라도 먹고 씻자 탕수육이 식으면 맛이 없지”하며 아저씨가 탕수육을 꺼냈습니다. 
엄마아빠랑 다복하게 살 때 엄마가 해 주던 탕수육으로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은지야 먹어”아줌마가 젓가락을 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예 아줌마”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을 하고는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 왜 그래 나중에 해”아줌마의 말이 들리긴 하였지만 전 먹는데 신경이 곤두섰지 아줌마의 말이나 아저씨의 행동은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흐흐흐 어때서 그래 참 사전에 이야긴 했어?”아줌마와 아저씨의 대화는 계속 되었지만 여전히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아니 나중에 함께 씻으면서 알아서 해”알아 듣지도 못 할 말들을 아저씨와 아줌마는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 배불러”탕수육이 거의 바닥을 들어내자 포만감이 생겼습니다. 
“맛있었어?”아저씨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예,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절을 하자 
“얘 여기선 아빠라니까”아줌마가 눈을 흘기며 말하자 
“아~그렇지 아빠 잘 먹었습니다”하고 다시 절을 하였습니다. 
“그래 은지야 이제 아빠하고 엄마하고 함께 샤워하고 이 켄터키치킨이랑 족발 먹자”하며 아저씨는 마치 아빠처럼 제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하였고 
“그래 지금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은 함께 씻지”하며 아줌마가 먼저 옷을 벗기 시작하였습니다. 
벌거숭이가 된 아줌마 손에 의하여 부끄러움에 점점 알몸으로 변해가는 아저씨를 외면하는 저의 옷도 한 가지씩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후후후 먹을 만 하겠는데?”아저씨가 알아듣지 못 할 말을 하였습니다. 
아니 이미 후회 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섰음을 짐작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날 버리진 않겠지?”아줌마가 말하자 
“이 사람아 저리 어린애를 자기와 함께 안 오면 어떻게 여관에 출입을 하겠나? 안 그래?”아저씨가 말하였습니다. 
“호호호 하긴 그래”하고 대답을 하며 저를 욕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줌마가 여관방에 들어오면서 틀어둔 뜨거운 물이 욕조를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자긴 몇 칠전에 씻었으니 은지야 네가 먼저 들어가라”하고 아저씨가 말을 하더니 제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더니 순식간에 저를 들고는 욕조 안에 넣었습니다. 
“!”순간적인 순간이었지만 겨드랑이 안으로 와 저를 들었던 아저씨의 손은 팔목 위로 저 들었고 손바닥은 순간적이었지만 저의 젖가슴을 움켜잡아버렸습니다. 
“후후후 제법 만질 것도 있는데”아저씨가 아줌마 옆에 앉더니 아줌마의 축 늘어진 젖가슴을 움켜잡으며 말하였습니다. 
“내 것?”아줌마가 묻자 
“아니 쟤”하며 아저씨가 턱으로 저를 가리켰습니다. 
“흥 난 늘어져서 싫단 말이지?”아줌마가 눈을 흘기며 말하면서도 나의 작지만 아담하게 솟구친 젖가슴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참 자네가 먼저 말하지?”아저씨가 턱으로 절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전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몸의 때를 불리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아저씨와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은지야 씻으니 좋지?”아줌마가 물었습니다. 
“예”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나랑 아저씨가 여관에 올 때면 항상 데리고 올 태니까 너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하겠니?”아줌마가 물었습니다. 
“..............”대답을 하지 못 하였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짐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잔 말이야 청결이 항상 중요하거든 어때”아줌마가 물었습니다. 
“그래 여잔 여기를 항상 깨끗이 해야 해”언제 제 옆으로 다가왔던지 아저씨의 손이 물속으로 들어오더니 제 보지를 덥석 잡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거절을 할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보지를 아저씨에게 주더라도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씻고 싶은 마음이었을 정도로 제 몸에서는 구역질나는 냄새가 났습니다. 
“흐흐흐 싫지 않지?”아저씨가 제 보지 둔덕을 만지며 물었습니다. 
“아! 아파요”아저씨 손가락이 제 여린 보지 살점 안으로 진입하자 아저씨 팔목을 집으며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아니 처음이니?”아저씨가 놀라며 물었습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뭐 아다?”아저씨 얼굴에 완전히 화색이 돌았습니다. 
반면 아줌마의 얼굴을 사색으로 변해갔고요. 
“...........”말의 뜻을 대충 알았기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네가 어서 씻기게”아저씨가 아줌마에게 시키고는 욕실에서 나갔습니다. 
전 힘을 하나도 들이지도 아니하고 묵은 때를 아줌마 손에 의하여 벗겨 내었고 그리고 물기도 아줌마의 손으로 다 닦였습니다. 
“은지 너 날 배신 때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알지?”아줌마가 물기를 다 닦아주더니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예”하고 대답하자 아줌마는 저를 데리고 방으로 갔습니다. 


“자네가 눕히고 엉덩이 밑에 시트 안 버리게 타월 접어서 깔게”아저시가 아줌마를 시켰습니다. 
“자기 앞으로 얘만 찾으면 싫어”아줌마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잔말이 많아 자구 잔말하면 돌리는 수가 있어”아저씨가 침대로 올라와서 제 가랑이를 벌리더니 흉측한 것을 제 보지의 가녀린 금을 벌려 끼우며 말하자 
“.................”아줌마 얼굴을 사생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질 못 하고 지켜만 봤습니다. 
“악 아파요 아파”가랑이 사이로 빡빡한 포만감과 함께 무서운 통증이 엄습하였습니다. 
“후후후 참아 앞으로 호강 시켜 줄게”아저씨는 저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저의 젖꼭지를 질겅질겅 씹어가며 엉덩이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제 보지에 박힌 아저씨의 흉측하게 생겼던 물건이 출납을 하며 제 가랑이를 더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제 보지에 뜨거운 정액을 쌌고 그리고 켄터키치킨과 족발을 먹었고 아침까지 아저씨는 아줌마와는 고작 한 번만 하고는 저에게는 세 번을 더 하고서야 새벽 같이 여관을 빠져나와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인 후 아줌마에게 제 옷을 하나 사 입히고 속옷 그리고 신발도 새 것으로 사주라며 돈을 주고는 몇 칠 후 올 것이니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또 저를 잘 지키지 못 할 경우 저로서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돌린다는 말을 아줌마에게 남기고 말입니다. 
아줌마는 아저씨가 준 돈으로 제일 싸구려 옷에 싸구려 속옷에 신발도 길거리에서 그도 최고 싸구려로 사고 나머지 남은 돈을 삥쳤습니다 
그게 아줌마에게 무서운 형벌로 다가 올 줄을 모르고 말입니다. 
차라리 저에게 말을 하고 입을 맞추기라도 하였더라면 다행이었을 것을 말입니다. 


몇 일후 다시 우리를 찾은 아저씨는 아줌마와 저를 데리고 여관으로 갔습니다. 
아저씨는 저만 데리고 욕실로 가더니 옷값이며 산 것들의 가격을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가더니 아줌마에게 나머지 돈을 달라고 하자 아줌마는 돈이 안 남았다고 하였고 그러자 아저씨는 저에게 혼자 씻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아줌마를 데리고 나갔고 그 후로 아줌마의 모습을 공원 안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그날 밤 아저씨가 아줌마를 데리고 공원으로 가서는 거기에서 노숙을 하는 아저씨들은 물론 좆이 달린 남자라는 남자들은 다 불러 모아서는 아줌마를 그냥 돌렸는데 그 말은 윤간을 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줌마 자리에 제가 들어간 것입니다. 
또 하나 깨운 친 것은 가랑이를 잘만 벌리면 먹을 것이 생기고 잠자리가 생기며 돈까지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저씨는 거의 주기적으로 왔습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이 항상 오는 날이었습니다. 
여관방 맛이며 뜨거운 욕실 맛을 알게 된 저는 공원 안에서 노숙이 하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선택을 한 것은 공원 밖의 술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겨우 두 번이지만 정기적으로 목욕을 하고 아저씨와 여관에 가는 날이면 씻은 후 더러워진 옷을 빨아두었다가 입었기에 공원에서 노숙을 하는 아이로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12시가 가까워지면 취객들이 보였고 그 취객들을 하나같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돈을 줄 것이니 여관에 가자고 말입니다. 
따라갑니다. 
방을 잡으며 쉬었다 갈 지 자고 갈 지 묻습니다. 
그럼 취객들은 잠시 쉬었다 간다고 하며 계산을 하려 들지만 저가 그러면 그냥 가겠다고 하며 자고 가게 해 주면 따라간다고 하면 취객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방값을 계산해 줍니다. 
그리고 가랑이를 벌려주면 좆 물을 제 보지에 뿌리고는 약간의 돈을 주고 사라집니다. 
생리를 하지 않는 날이면 거의 매일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생리가 끊긴 것입니다. 
아저씨에게 하소연 하였습니다. 
그게 저의 최고 실수였습니다. 
아저씨가 다시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휴대폰 번호도 바꾸어버렸는지 결번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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