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처참도 부족한 영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미성년자를 성폭행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얼마 전 단 둘이 술자리를 할 기회를 얻었는데 나에게 희한한 일이 하나 있고 성 노리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심증은 가는데 확실한 물증이나 고백이 없다며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난 호기심이 동하였기에 그 애의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란 것이었다. 또한 긴가민가하였다. 아무리 세상이 성에 대한 것을 일찍 알게 되고 접한다 하더라도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 그런 짓을 죄악감 없이 하는 것은 물론이요 상담을 해 본 결과 시치미를 때긴 땠지만 정보를 준 그 애의 담임선생님 말에 의하면 수업 중에도 안 보는 것처럼 하고 곁눈질로 본 것으로는 자위를 즐기는 것 같았고 또 이미 남자의 맛을 아는 애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뭔가가 있어 보였다. 그에게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였고 그로부터 승낙을 받았다. 
미성년자를 성폭행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운동을 하는 사람 그는 아니 그녀는 독신녀이기도하다. 왜 독신으로 사는가. 그가 미성년자 성폭력 상담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원인이 바로 그도 어렸을 적에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가진 여자이다. 그녀에 말에 따르면 처음으로 남자와 섹스를 한 것은 초등학교 3학 년 때 같은 교회에 다니는 중학생 오빠의 꼬드김과 호기심이 발단이 되었으나 한 번 하고는 자기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자기 친구들은 물론 학교 동기며 후배들에게까지도 건들게 하였고 그게 안 좋은 것이란 것을 알고 회피하였을 때는 이미 망가 질 대로 망가진 육체였고 그리고 병원 의사로부터는 평생 임신이 불가능 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였다고 나에게 토로하며 그 이후로는 남자를 모조리 짐승으로 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그 애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처녀 선생님으로 미모도 뛰어 났고 화통한 선생님이었다. 내가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조사를 해 줄 것을 의로 받았다고 하자 흔쾌히 그 애를 나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담임선생님은 머리도 잘 돌아가 그 애에게 나를 조손 가정의 애들을 돕고 후원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였다. 
일단 집을 알아봐야겠기에 차에 태우고 그 애 집으로 갔다. 그 애는 조손 가정이면서도 다른 조손 가정과는 경우가 다름을 차로 가면서 알게 되었다. 친할아버지가 아닌 작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애 말로 자기 작은 할아버지는 예전에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하신 그런 분이라고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차로 가면서 참새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면서도 손은 항상 중앙의 보지 위에 얹고 있었고 내 눈치를 살피며 간도 크게 누르기도 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가정 사정을 살피는 척 하며 주변을 살폈다. 같이 산다는 작은 할아버지란 사람은 집에 없었다. 이미 젖가슴이 초등학교 5학년답지 않게 발육이 잘 된 상태이기에 만약 그 애와 섹스를 하는 자가 있고 그 자가 그 애 집에서 그 애 말처럼 작은 할아버지가 집을 자주 비운다는 말을 차에서 하였기에 비운 틈을 타서 그 애와 섹스를 하였다면 분명하게 피임약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그렇다면 피임약이 들은 상자나 콘돔을 사용하였다면 콘돔의 흔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는 그 애가 눈치를 차리지 못 하게 하고 마당 주변을 살피고 화장실의 변기까지(다행히 소위 푸세식이었음)살폈으며 그 애 방이나 작은 할아버지가 기거 한다는 방의 휴지통까지 뒤졌으나 섹스 후 사용 하였음 직한 휴지 쪼가리도 발견을 하질 못 하는 소득이 전무한 상태로 돌아와야 하였다. 
면 소제지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던 그 애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도중에 약 2~3k 떨어진 면 소제지에서 구멍가게를 겸한 약방을 하나 발견하였다.(약국은 약사 자격증이 있어야 개설을 하지만 예전에 약사는 부족하고 무허가로 약을 취급 하던 사람에게 소위 약종상이라는 면허를 주고는 약방을 개설하게 하였으며 그 약방이란 곳에서는 조제도 금하고 소분하여 팔수도 없으며 포장된 약만 판매가 가능하며 요즘 그 약종상 면허를 가진 사람들은 거의 나이가 많은 사람들뿐이며 도시에서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주로 시골 변두리에서 구멍가게와 겸하는 곳이 많음: 필자 주)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 애와 섹스를 상습적으로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약방에서 손쉽게 피임약이나 콘돔을 구입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할아버지 박카스 하나 하고 알약 하나만 주세요. 간밤에 술을 많이 마셨더니”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노인에게 말하였다. “술 좋지 그렇지만 젊어서 몸을 아껴야지 쯔~쯔~쯔”혀까지 차면서 노인은 나에게 간장약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박카스 병을 내밀었다. “여기 다방에 물은 좋아요?”일을 저지르려면 확실하게 저질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흐흐흐 물이야 좋지 그런데 젊은이는 도시 물을 먹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이런 시골 다방 계집은 왜 찾누?”노인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누가 여기 물이 좋다고 하더라고요”하고 말하자 “여 몇 칠전에 새로운 애가 왔다더군.”묻지도 않은 말까지 해 줬다. “호~그래요? 콘돔 있죠?”하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묻자 “암 있고말고! 앞전에 00마을 김 성생이 다 가져가고 또 넣었지”하며 콘돔 한 상자를(3개 들이) 주기에 “그 분이 많이 가져가세요?”넌지시 물었다. “그럼 그 김 선생 부름을 받고 다방 계집을 자주 집으로 가는 모양이야 그러니 그렇게 많이 사가고 자주 사 가지”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세하게 대답하였다. “!”확실한 심증이 갔다. 00마을 김 선생이란 사람이 바로 그 애의 작은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증거가 필요하였다. 그 애의 작은 할아버지가 교편을 잡았다는 곳은 그 곳에서 제법 많이 떨어진 곳의 중소 도시였다. 
장날이면 오전에 항상 장에 온다는 말도 들었다. 부락에서 조금 외딴 집이었기에 증거를 수집하는데 누가 보고 신고를 할 일도 없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 그날은 집안과 마당만 살폈지만 약방 노인 말처럼 한 달에 5 상자 이상 사 간다면 어디서든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기대감을 가진 것이다. 장날을 이용하여 그 애 집으로 숨어들었다. 방안이고 부엌의 아궁이고 모조리 살폈지만 그 어디에도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 집 뒤에서 뭔가 태운 흔적을 발견하였다. 나무꼬챙이를 잡고 뒤지기 시작하였다. “!”끈질긴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태운 흔적의 제일 밑에서 라텍스가 녹아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다량이 녹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휴지에 곱게 싸고는 그 애 집에서 나왔다. 
이제 결정적인 확증이 필요하였다. 그 애 작은 할아버지가 교편을 잡았다는 곳으로 갔고 교육청으로 갔다. 나에게 협조를 구하였던 그 상담사 선생에게 미리 도움을 요청하였던 터라 교육청에서는 그 애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난 경악하고 말았다. 그 애 작은 할아버지는 그 애가 사는 마을이나 면 소재지 사람들의 말과는 교단을 그만 둔 이유가 판이하게 달랐다. 그 애 작은 할아버지는 그가 아는 사람들에게 교편이 적성에 맞지 않아 교단을 떠났다고 했지만 교육청에서 나에게 보여준 자료에 의하면 그 애 작은 할아버지는 고단에 있으면서 상습적으로 담임을 맡은 반 애들에게 성추행을 하였고 그 결과 교육청에 신고가 되었고 6개월 징계를 받는 것과 동시에 그 애 작은 할아버지의 퇴직금을 미리 당겨 수령하여 성추행을 당항 애의 부모와 합의를 하였는데 그 사실이 학교 내로 알려지자 더 많은 피해자가 있었고 그 피해자 중에 한 부모가 언론에 퍼트려 버리는 바람에 그 애 작은 할아버지는 6개월 징계가 아닌 해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으며 동시에 자기 부인에게도 이혼을 당한 것으로 알았으며 그의 아내도 교편을 잡고 선생노릇을 하다가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고는 사회봉사활동을 한다는 것까지 알았다. 더 이상의 증거는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그 애 입에서 확실한 진술이 나와야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정도는 난 알고 있었다. 
“그 새끼요? 그게 인간인가요? 짐승이지 생각도 하기 싫어요!”그 애 작은 할아버지의 전 부인은 만나 그 애 작은 할아버지 이름을 대며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자 점잖게 보이던 그 애 작은 할아버지의 전처가 대뜸 나에게 한 말이었다.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는 미리 준비한 아주 작은 녹음기가 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휴~ 말도 말아요. 그게 인간인가요? 학교에서 창피하게 애들을 상대로 그 짓을 했다기에 이혼하고 나니 지금은 시집을 간 딸애가 말합디다. 그 인간이 자기 친딸을 강간하려 들었다고 하지 뭡니까. 그 애가 엄마에게 이른다고 하자 겨우 멈추더랍니다. 그놈 기사 여기에서 나오는 00신문에 가사로까지 나왔답니다. 김모라고 나왔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그놈이 김명수란 놈인 것을”그 애 작은 할아버지의 전처는 아주 결정적인 말을 나에게 해 주었고 난 그 말을 고스란히 녹음을 하는데 성공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였던 신문사로 찾아가 그녀가 말하였던 신문 기사를 카피하였다. 
“민영이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겠니?”그 애 담임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여 그 애를 차에 태우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민영이 너 사실대로 말 해 내가 다 알아 봤어. 어 작은 할아버지하고 이상한 짓 하지?”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뭔데 있지도 않은 말을 해요? 인권 몰라요? 또 인권 모독 몰라요?”난 놀랐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겨우 초등학교 5학년생의 입에서 인권이란 말이며 인권 모독이란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말이었다. “그래? 인권 모독 아저씨도 잘 알지”하고 말하였다. 밀리면 패하는 것이나 말이다. “그렇다면 두말 할 필요가 없네요.”그 애가 벌떡 일어서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때었다. “너 너희 작은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붙잡지 않고 그 애를 향하여 소리쳤다. “훌륭한 선생님 하시다가 그만 두신 분이예요”뒤돌아보고 쏘아대듯이 대답하기에 “이거 한 번 볼래”신문을 카피 한 것을 끄집어내어 내밀었다. “그게 뭔데요?”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00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선생이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해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00시 교육청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인 김 모 씨(49)는 자신의 학급 학생 6~7명을 상대로 성추행을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모 씨는 담임을 맡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아이들을 뒤에서 껴안고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식으로 성추행을 해왔는데 피해 학생들 중에는 남학생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작년에도 3명의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한 것이 알려져 해임이 되었고 경찰에 입건이 되었다>그 애는 그 기사를 말없이 읽었다. “흥 이게 우리 작은 할아버지란 것을 어떻게 믿어요.”그 애가 기사를 카피한 종이를 내 앞으로 던지더니 다시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에“그럼 이건”하고는 주머니에 황급히 녹음기를 꺼내어 버튼을 눌렀다. <휴~ 말도 말아요. 그게 인간인가요? 학교에서 창피하게 애들을 상대로 그 짓을 했다기에 이혼하고 나니 지금은 시집을 간 딸애가 말합디다. 그 인간이 자기 친딸을 강간하려 들었다고 하지 뭡니까. 그 애가 엄마에게 이른다고 하자 겨우 멈추더랍니다. 그놈 기사 여기에서 나오는 00신문에 가사로까지 나왔답니다. 김모라고 나왔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그놈이 김명수란 놈인 것을>그 애가 가던 길을 멈추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들었다. “아저씨 다시요”그 애 작은 할아버지의 전처가 한 말이 끝나자 뒤돌아 나에게 오더니 말하였다. 다시 돌려서 틀어주었다. “!”그 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 “아저씨 추측이 맞았지?”내가 휴지를 건네며 물었다. “.............”그 애는 휴지를 받더니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너 알지 그 상담사 아줌마”하고 묻자 “네”하고 대답하기에 “그 아줌마에게 가서 자세하게 말 해 주겠니?”하고 말하자 “무서워요 아저씨”하고 말하기에 “그렇다면 담임선생님도 오시라고 할까?”하고 묻자 “네 그래주세요 흑흑흑”다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난 상담사에게 먼저 전화를 하였고 그리고 그 애 담임선생님에게도 개략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애가 진술을 하는데 그 애의 참고인이자 보호자 격으로 같이 있었으면 한다고 하였더니 흔쾌하게 승낙을 하였고 그 애 이야기를 나에게 말 하며 도와 줄 것을 요청한 상담사 사무실로 갔더니 거기에는 이미 사복 여 경찰까지 와있었다. 경찰은 나는 입회를 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나 상담사와 뒤늦게 달려온 그 애의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는 입회를 허락하였는데 지금부터 그 애의 진술을 바탕으로 쓰기로 하겠다. ******************************************************** 우리 집은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아주 행복했어요. 제 기억을 제법 큰 그릇 집을 아빠와 엄마가 하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아마 제가 유치원에 막 입학을 하였던 해였을 거예요. 그만 아빠엄마가 그 그릇 가게에 불이 나고 말았어요. 우리는 거지가 된 것이죠. 제일 먼저 엄마 모습이 사라지더군요. 남은 것은 단칸방에서 몸을 겨우 누일 수 있는 부엌도 없는 방 하나와 아빠 오빠 그리고 저가 전부였어요. 오빠는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학교 가는 날보다 땡땡이를 치는 날이 많았어요. 문제는 아빠였어요. 밑천이 없으니 장사는 못 하고 노가다 판에서 일을 했던 모양이었어요. 하지만 허약한 체력은 하루 이틀 일을 나가면 4~5일을 끙끙 앓고 누워 있어야 하였어요. 그러니 밥은 시장에서 사온 김치 하나로 때웠죠. 또 여름 장마철이면 그나마도 먹질 못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하였죠. 하지만 우린 그게 더 좋았어요. 김치 하나로 먹는 밥보다는 라면이 더 좋았으니까요. 아빠가 일을 나가면 방안에서 휴대용 렌지에 부탄가스를 넣고 사용하는 그 위험한 것을 이용하여 오빠가 라면을 끓여주면 먹었고 오빠가 학교라도 가 버리면 그나마도 먹질 못 하고 식은 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였죠. 
그러다가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에 우리들은 할아버지 손에 맡겨졌어요. 아빠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좋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답니다. 할아버지 댁에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동생이신 작은 할아버지만 계셨지 두 분의 말에 따르면 일찍 죽었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동네나 인근 마을에서 할아버지 이름을 대면 겨우 몇 사람만 알았지만 작은 할아버지 이름은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죠.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도시에서 선생님을 하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귀향을 하였고 따로 나가 살겠다고 하는 것을 할아버지가 혼자 살면 적적하니까 함께 살자고 사정하여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였어요. 아빠는 일 년에 한 번 꼴로도 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할아버지가 병환이 나고 병원에서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집으로 모시라고 하자 그때서야 아빠는 어떻게 알았던지 할아버지 집으로 왔고 이틀 후 할아버지는 눈을 부릅뜬 체 죽고 말아답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친답니다. 그 때가 제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오르기 직전의 겨울이었습니다. 
초상을 치르고 아빠는 작은 할아버지에게 두 아이를 맡기기 거북하였던지 초등학교 6학년인 오빠만 데리고 가면서 할아버지에게 성공하지 못 하면 안돌아 오겠다는 말과 저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어요. 그날 밤부터 일이 벌어진 것이랍니다. 
전 죽은 할아버지가 꾸며준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물론 작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쓰던 방에서 잤죠. “악!”꿈에서 깼습니다. “꿈에서 본 것은 할아버지가 죽어가며 눈을 부릅뜨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닫힌 작은 할아버지 방의 문고리도 잡질 못 하고 꽝꽝 치며 불렀습니다. “민영아 왜? 꿈 꿨니?”작은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나왔어요. “응 무서워 혼자서는 못 자겠어 흑흑흑”정말이지 너무나 무서웠어요. “그래 그렇다며 이 할아버지하고 자자 꾸나”하며 저를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어요. 
“어디 이불을 하나 더 펼까?”하며 농을 열고 요와 이불 하나씩을 잡고 당기려하기에 “할아버지 싫어 할아버지 곁에서 잘레"하고 할아버지의 팔을 잡았어요. “아니 왜?”할아버지가 의아스러운 눈으로 저를 보며 물었어요. “죽은 할아버지 이불이잖아”하고 고함을 질렀어요. 얼마 후 제가 할아버지에게 부탁하여 태웠지만 저는 그 이불만 봐도 무서웠어요. “그래 그럼 할아버지 품에서 자라”하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저도 쪼르르 들어갔답니다. 하지만 그 날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음 날 밤 전 혼자 자는 것이 무서운 나머지 아예 제 베개를 들고 잠옷을 아니 잠옷이라기보다는 긴 내복을 입고 작은 할아버지 방으로 갔어요. 할아버지는 TV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제가 나란히 앉자 저를 힐끗힐끗 보대요. “자 우리 민영이 일어나 봐”TV를 보다 말고 저에게 말하였어요. “왜? 이렇게?”벌떡 서서 다리를 벌리고 양손을 허리를 짚으며 마치 TV에서 본 모델 흉내를 내었더니 “흐흐흐 이제 다 컸구나.”하며 이해가 왼 드는 말을 하며 제 엉덩이를 당기더니 제 배에 얼굴을 대고 비볐어요. “아이 할아버지도 간지러워”하고 말하며 떨어지려 하였으나 할아버지의 힘에는 감당하지 못 하고 그대로 있어야 하였어요. 그리고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잠이 든 것 까진 기억이 났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에 제 내복 위의 가랑이 사이로 손이 들어왔어요. 직감적으로 할아버지 손이란 것을 알았지만 반항을 하며 할아버지 곁에서 잠을 재우지 않을 것만 같은 마음이 생겨 가만있었어요. 그날 역시 그게 전부였지만 제법 만졌어요. 간지럽기는 하였지만 억지로 참았죠. 
그 다음 날 밤 할아버지 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자고 했어요. “!”잠이 막 들었는데 할아버지 손길이 전날 바처럼 제 거기에 또 닿았어요. 제가 미동을 안 하자 할아버지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이번에는 내복 안으로 손이 들어왔어요. 무섭기도 하였지만 호기심도 났어요. 그리고는 부끄러운 부분에 손가락을 대고 상하로 움직였어요. “민영이 안자는 구나”할아버지가 나직하게 물었어요. “응”하고 대답하자 “어제도 안 잤지?”하고 물었어요. 할아버지는 이미 자신이 제 잠지를 만질 때 제가 거칠게 숨을 쉬는 것을 듣고 이미 알았었던 모양이었어요. “응”하고 대답하자 “혼자 자겠니? 아님 할아버지하고 함께 자면서 우리 예쁜 민영이 잠지 할아버지에게 만지게 하겠니?”할아버지가 물었어요. “만져”선택을 하고 말고 할 것이 없잖아요? 혼자 자면서 무서운 꿈을 꾸느니 할아버지에게 잠지 조금 만지기 하는 것이 저에겐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흐흐흐 그래 그럼 그렇게 하고 이일 절대 비밀이야 알겠니?”할아버지는 계속 제 잠지를(당시에는 할아버지는 보지란 말을 안 썼어요.)그날 밤은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만짐을 당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어요. 
역시 다음 날 밤 할아버지 방으로 설거지를 마치고 내복차람으로 갔더니 제를 TV를 보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더니 또 내복 안으로 손을 넣고 만지기 시작하였어요. “!”뭔가가 제 엉덩이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뭐야?!”엉덩이를 찌르는 물건의 정체가 궁금하여 손을 뒤로 하고 덥석 잡았죠. 그리고 놀랐죠. 그건 바로 파자마 위이지만 할아버지의 고추였어요. “흐흐흐 우리 민영아 할아버지 좆 크지”그때서야 전 어른들의 고추를 좆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어요. “응 커”손을 때며 말하자 “계속 잡고 만져주겠니?”할아버지의 손 하나가 갑자기 저의 개복 속에서 빠져나오더니 제 손을 잡았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좆을 제 손으로 잡게 만들었어요. 도리 없이 만져야 하였어요. 그건 시작에 불과하였어요. “민영아 할아버지는 직접 민영이 보지 만지는데 민영이만 파자마 위로 만지면 손해겠지?”하고 말하더니 저의 대답은 듣지도 아니하고 제 손을 자신의 파자마와 팬티 안으로 넣게 만들더니 좆을 쥐게 했어요. 그때서야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들었어요. “할아버지 봐”하며 자신의 좆을 쥐어주게 만들었던 손을 빼더니 제 볼을 돌렸어요. 그리고 할아버지 얼굴로 제 얼굴을 향하였더니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제 머리를 자신에게 당겨 입을 마주 닿게 만들더니 혀를 제 입안에 넣고 마구 빨고 핥았어요.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봤던 어른키스를 할아버지는 저에게 하였죠. 할아버지의 수염 때문에 좀 따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할아버지 맨 좆을 손에 잡게하여 생기게 한 무서움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당돌한 저는 오히려 하나 남은 손으로 할아버지 목에 매달리며 저의 혀를 할아버지 입안으로 넣으려 들었으니 말이어요. “어른키스 하니 우리 민영이 좋아?”긴 어른키스 끝에 할아버지가 입을 때며 물었어요. “응”얼굴이 화끈거렸어요. “우리 민영이 어른키스 했으면 이제 여기로 어른 놀이도 해야겠지?”내복 속에 돈 손으로 제 잡지를 꼭 잡으며 물었어요. “!”대답을 못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대충은 짐작을 하거든요. 또 어떤 애들의 말에 다르면 누구하고 누가 했다든지 또 아무개 하고 아무개가 학교 뒷산에서 하다가 걸렸다는 소리도 들었거든요. 하는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예전에 몇 번 봤던 오빠의 고추에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굵고 긴 할아버지의 좆이 제 잠지에 들어오기나 할지 걱정도 되었고 또 찢어지지나 않을지 두려운 마음뿐이었어요. “자 일어서서 벗어야지”내복 속에서 손을 빼더니 제 겨드랑이 안으로 손을 넣었어요. “어서 벗어”일어서서 머뭇거리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하였어요.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 한 그런 험악한 얼굴이었어요. “으....응 알았어.”말을 더듬으며 서둘러 내복을 밑으로 내렸어요. “오 그렇지 그렇게 말을 잘 들어야 할아버지랑 같이 살지 안 그래?”할아버지는 말을 하면서도 제 가랑이 사이에서 눈을 때지 못 하였고 그리고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한 손으로 엉덩이를 당기며 저를 가까이 오게 하였어요. “예쁘다 우리 민영이 보지”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제 잠지를 보지라고 말하였어요. “가랑이 벌려 봐”다시 말하였어요. 전 아무 말도 안 하고 할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가랑이를 벌렸어요. “아니다 누워서 벌려”할아버지가 고개를 땅바닥에 대고 제 보지를 올려다보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말하였어요. “응”이번에는 대답을 하고 할아버지 앞에 누워 할아버지에게 보지가 잘 보이도록 가랑이를 벌리고 누웠어요. “후후후 이게 얼마 만이냐? 걸레들만 상대하다”할아버지는 제 보지를 더 크게 벌리더니 안을 들여다보며 제가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을 하며 침을 흘렸어요. ******************************************* 여기서 잠깐. 그 애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자 난 그 애에게 그 말이 어떤 연유로 나왔던지 진실을 말함으로서 가식 없는 진솔한 진술을 얻어내기 위하여 잠시 중단을 시키고 면 소재지 양방의 노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 애에게 말 하였더니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왔더니 요란하게 차려 입은 여자가 돈을 세며 나오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것을 몇 번 봤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심심하여 면 소재지 다방에 차를 시켜 마셨다고 둘려댔다고 진술을 하였다. *******************************************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앉은 체 팬티와 파자마를 벗었는데 만지던 것보다 거무튀튀하게 생긴 색갈이며 굵고 긴 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놀랐어요. 하지만 흉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아니하고 어떻게 저렇게 굵고 긴 것이 들어올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할아버지는 작정을 하였던 것 같았어요. 머리맡에 미리 밀크로션을 준비해 두었었고 그 밀크로션을 제 보지에도 바르고 자신의 좆에도 발랐으니 말이죠. 
“흐흐흐 처음엔 피도 나고 좀 아프거든 참아야지 착한 민영이지?”할아버지가 자신의 좆을 잡더니 무릎을 꿇고 가랑이 사이에 앉아 엎드리고는 제 보지 금을 벌리며 좆을 대는가 싶더니 두 팔로 방바닥을 짚으며 밑을 보고 힘을 줬어요. “아~~할아버지 아파”할아버지 가슴을 밀며 얼굴을 찌푸렸어요. “조금만 참아 처음에만 아프지 괜찮아”말을 하며 힘을 더 주었어요. 정말이지 그대 아랫도리는 할아버지의 좆이 아니라 굵고 긴 야구방망이로 쑤시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악! 아파! 흑흑흑”제 입에서는 비명과 울음만 나왔어요. “조금만 더 참아 잘 들어가고 있어”제가 아파하는 것이나 우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어요. “흐흐흐 터졌군. 터졌어. 흐흐흐 이게 얼마만이냐?”밑을 내려다보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전 아픔과 하복부의 포만감이 그렇게 싫었어요. “민영아 볼래? 처녀막 찢고 들어갔어. 흐흐흐”할아버지는 저의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저의 고개를 받치더니 일으켰고 저는 밑을 보려고 눈물을 닦았어요. 계속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정확하게는 보이질 아니하였지만 할아버지 말처럼 처녀막이 찢어졌던지 보지 주변에는 피가 묻어있었고 할아버지의 좆을 2/3이상 자취를 감춘 후였습니다. “이거 절대로 누구에게 말하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알지?”할아버지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입막음을 하였습니다. “응”아팠지만 대답을 하였죠. 
그건 시작을 알리는 첫 빠구리였습니다.(빠구리란 단어를 듣기는 들었지만 차마 입에 담질 못 하였지만 할아버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였죠. 처음 몇 칠은 밤중에 하더니 나중에는 초저녁부터 잠을 자게하고는 제가 잠이 들면 저를 저의 방으로 옮겼어요. 아는 사람들을 일부러 불러서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그들이 다 가고 잠을 좀 자다가는 새벽이면 저의 방으로 와서 빠구리를 하였어요. 
그건 지금 생각하면 자기는 조카딸에게 아무 짓도 안 하고 잘 키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점점 할아버지에게 쇠뇌 되어가고 있었으며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저 자신만 몰랐었어요. 할아버지는 제 보지에만 좆을 박은 것이 아니라 입에도 박았으며 심지어는 일주일에 한두 씩은 똥구멍에게다 박기도 하였어요. 그건 저에게 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어요. 컴퓨터를 하나 사 주더니 이상한 사이트 아니 빠구리 사이트로 들어갔고 거기서 그런 것을 보더니 제에게 시도를 했는데 그게 저를 할아버지의 끈을 놓지 못 하게 만든 계기가 될 줄은 차마 몰랐었어요.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새벽이면 날이면 날마나 빠구리를 전 하면 좋다고 하더라는 애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거의 매일 아니 매일 새벽이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을 계속 하였지만 좋다는 느낌이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작년 가을 추석이 지나고 어디서 사 왔던지 아님 주워 왔는지는 모르지만 중고 컴퓨터를 하나 가지고 와 인터넷에 연결하더니 남들에게는 조카딸 공부에 도움이 될까하여 도시로 가서 거금을 주고 구입을 해 왔다고 하고는 새벽이면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는 어디서 주워들었던지 야한 외국 사이트 주소들을 적을 종이를 펴놓고는 독수리 타법을 더듬으며 치서 열고는 야동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 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똥구멍빠구리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였는데 처음에는 마치 처녀막이 찢어질 때처럼 많이 아팠지만 할아버지가 인정사정 안 보고 펌프질을 해 대자 어느 순간인가부터 그 아팠던 아픔은 사라졌고 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죠. 그러자 할아버지는 저에게 이제 맛을 알기 시작하였다면서 좋아하였고 그 맛에 길들여진 저는 제 스스로가 똥구멍빠구리를 해 달라고 할아버지를 조르기에 이르렀죠. 
참 한 가지 더요. 제는 다른 애들보다도 생리를 빨리 시작 한 편이예요. 그건 지금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제 보지며 입에 뿌린 좆 물이 남성호르몬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한 탓으로 봐요. 4학년 여름부터 젖에 젖꼭지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크기 시작하였고 얼마 안 가서 생리를 시작하였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한 달이면 한 번 이상은 00시로 갔고 올 때에는 저의 먹을 것도 물론 사왔지만 좆 마개를 왕창 사왔어요. 날마다 빠구리를 해 대니 필요하였던 것이죠. 손녀가 임신을 하였다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누굴 의심하겠어요. 선생님까지 하였던 할아버지는 아주 치밀하였던 것 같아요. 저 아저씨의 말처럼 면사무소 부근에 있던 다방들의 아가씨들을 수시로 집으로 불러들였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그것도 할아버지는 저와의 관계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때를 택해서 불러들었으니 얼마나 치밀해요. 
전 할아버지를 믿고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 작은 할아버지에게 매달 보내준다던 생활비를 아빠는 한 번도 안 보냈고 또 연락도 없었거든요. 그러니 제가 믿고 의지 할 곳이라곤 작은할아버지 말고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이제 무서워요. 작은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나니 더 무서워요. 저보다 훨씬 앞에 저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한 언니들이 불쌍해요. 
그런데 우리 작은할아버지 잡아가면 전 어떡해요? 고아원에 가야하나요? 거긴 싫어요. 경찰 언니 상담소 선생님 우리 선생님 그리고 아저씨 절 고아원에 가게 만들지만 말아주세요. 우리 아빠 오빠 언젠가는 돈 벌어서 우리 할아버지가 남겨준 집으로 올 거예요. 그때까지 제가 우리 집 지키고 있으면 안 되나요? 작은 논도 있고 밭도 있지만 어려서 논농사는 짓지 못 해요.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밭농사는 지어 봤어요. 집에 살게만 해 주면 제가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밭농사 지어서 돈 벌어 저축하여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싶어요. 그러니 제발 절 집에 있게만 해 주세요. ******************************************* 여기까지가 그 애의 진솔한 진술이었다. 그 애는 즉시 상담소의 도움으로 정신과 병원이 입원을 하여 종합 진단을 받게 하고 또 미친 인피만 쓴 그 미친 노인은 경찰에 의하여 구속이 되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안정을 한 그 애는 담임선생과 상담사가 의논을 한 끝에 집에 기거 하도록 하고는 수시로 으 애 집을 방문하기로 합의하였고 면사무소에서고 상담사의 노력과 경찰의 협조로 영세민 혜택을 받게 만들었으며 학교 측도 주의 깊게 관찰을 하기로 하였으며 나에게도 지나가는 길이면 들려서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난 매 주 말이면 아내와 아들딸을 데리고 그 애 집으로 가서 그 애와 함께 지내다가 일요일 오후면 집으로 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어쩌다가 내가 출장이라도 있는 주말이면 아내가 그 애를 집으로 초대하여 지내게 하고 있는데 지금은 무척 안정이 된 상태이며 속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엔 그 악몽을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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