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처제


며느리니? 응 이모가 벌써 내려와서 거의 다 했다, 저녁에 아범하고 같이 오너라.”난 지금 처제 몸 위에 올라탄 체 며느리의 전화를 받는다. 
사실 오늘이 마누라의 기일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마누라가 일찍 죽어서 고맙다. 
왜? 
마음 놓고 처제와 빠구리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서가 집으로 오는 날은 빼고 말이다. 
동서는 화물차 기사로서 일주일에 많으면 두 번 적으면 한 번 아니 이 주일에 한 번도 집에 들르지 못 하는 경우가 있기에 처제의 보지는 거의 나의 전용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처제도 자기 남편의 좆보다 형부인 나의 좆이 박히면 더 짜릿하여 좋다고 한다. 
처제한테도 이미 이야기를 하였지만 다시 한 번 더 죽은 마누라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난 마누라에게 반하여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처제에게 반하여 결혼을 하였다. 
장인어른장모님은 돌아가셔서 모르지만 가운데 처제의 경우 막내처제와 나의 사이를 아는 모양이다. 


내가 선을 볼 당시에 처제가 열다섯만 더 먹었더라도 난 처제를 마누라로 선택을 하였을 것이다. 


내 나이 스물여섯에 선이란 것을 처음 봤다. 
그 당사자가 죽은 마누라였다. 
당시 마누라는 스물 둘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내내 농사를 지었고 처제가 셋이 있었는데 둘째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셋째는 중학생이었으면서 막내처제는 처제는 겨우 다섯 살에 불과하였다. 
마누라하고 막내처제하고 나이 차이가 왜 그리 나냐고? 
흐흐흐 먼저 그 이야기를 해야겠지. 


처갓집에는 마누라를 포함하여 딸만 셋이 있었다. 
그런데 장인어른의 어머니 즉 마누라의 할머니가 며느리가 딸만 낳자 대가 끊긴다면 장인어른을 부추겨 첩실을 거느렸는데 그 첩에게서 낳은 것이 바로 처제였다. 
아들을 기대하고 들인 아들의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를 첩으로 붙여 아들이나 낳아주길 바라며 데리고 살았는데 첩이 딸을 낳자마자 마누라의 할머니는 첩실 며느리를 쫓아내려 하였는데 쫓겨 나가는 첩실이 아이를 데리고 가면 자기도 죽고 아기도 죽는다며 장인어른에게 매달리며 사정을 하였으나 기가 센 마누라의 할머니는 딸이 많아 탈인데 그 딸까지 키울 수 없다면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였으나 장인어른이 자기 어머니에게 읍소를 하며 아기만 거두자고 하는 통에 아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 하고 거두어들인 것이 바로 그 처제였다.(물론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아껴 쓰라며 약간의 돈과 곡식을 주었단 말은 후일에 하였다) 
그런데 처제는 마누라가 학교에 갈 때도 따라가서는 운동장에서 놀다가 언니인 마누라가 학교에서 집으로 오면 따라 올 정도로 마누라를 따랐다. 


그런 처제이다 보니 언니인 죽은 내 마누라의 맞선 장소에도 같이 따라 나왔던 것이다. 
볼 품 없는 마누라와 다른 두 처제들 아니 장인장모님보다 막내 처제는 이목구비가 뚜렷하였다. 
거기다가 목소리는 얼마나 낭랑하던지........ 
맞선 보는 자리라기보다는 막내 처제의 학예회나 마찬가지인 그런 분위기의 맞선이었다. 
생각을 해 보라. 
예비 처제라고 하지만 겨우 다섯 살의 귀여운 아이가 춤을 추고 두 손을 꼭 잡고 배꼽에 대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말이다.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도 첩을 두었던 장인이 못 마땅하여 애초 선을 보지 않겠다고 선을 긋던 분들이 예비 막내 처제의 재롱에 빠져 실상 며느리 후보의 성격과 마음가짐을 테스트하여야 하는 맞선에는 아예 관심이 없이 재롱잔치를 보고 와서는 너에게 그런 처제가 생겨서 좋겠다는 투로 말함으로서 승낙의 말에 대신을 할 정도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꼬맹이 처제의 너무 많은 관습이었다. 
자기 언니의 드레스만 시시콜콜 시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형부가 된 나는 물론이고 자기 아빠엄마의 옷음 물론이고 그 어렵다고 하는 사돈할아버지 할머니인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복장이나 신발까지도 간섭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가 어른들이나 우리 어른들은 그냥 귀여운 짓을 하는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행여 하는 마음에서 장모님이 결혼식이 끝나고 폐백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마누라를 빼돌렸고 그리고 바로 공항으로 보내버렸다. 
제주도에 도착을 하였다. 
공항에서 이상한 조심이 느껴진다며 마누라가 장모님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결혼식 내내 천방지축 모르고 뛰어다니던 체제가 언니와 형부를 찾다말고 경기를 하더니 졸도를 하여 응급실에 들어가 있다는 


폐백을 마치고 피로연도 하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탔기에 마누라나 나나 말은 서로 하지 아니하였지만 배꼽이 등에 닿은 상태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긴 차후 문제였다. 
훌쩍이는 마누라를 부축하여 공항 밖 로비 의자에 앉히고 일단 마누라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였다. 
얼마나 언니 언니하고 따라다녔던지 마누라는 울음을 멈추지 못 하고 등을 훌쩍였다. 
같은 호텔에 투숙을 하고 신혼여행 내내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한 일행들은 버스에서 가다렸고 난 어쩔 수 없이 가이드에게 우리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우리 둘을 빼고 식사며 여행은 진행하라고 하고 우리가 정상으로 되면 합류하겠다고 먼저 돌려보내야 하였다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신혼여행 와서 마음이 틀어져 이혼으로 향한 강등을 빚고 있는 부부로 보기 십상이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마누라더러 그 자리에서 떠나기 말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공항 안내 부스로 갔다. 
그리고 안내원에게 우리가 처한 사정을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안내원은 심각하게 듣는 척을 하였지만 간간히 고개를 돌려 웃음을 자아내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여도 우스운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장모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항공권예약을 하였으니 처제나 장모님께 죄송한 일이지만 막내 처제를 공항으로 데리고 가서 티케팅을 공황 안내 부스에다가 막내 처제를 데려다주면 거기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자 내가 하는 이야기를 막내 처제가 함께 듣고 있었던지 병원이 떠나들 듯한 막내 처제의 함성소리가 나를 웃게끔 만들었다. 


조취를 취하고 공항 밖의 로비 의자에 앉은 마누라 곁으로 갔다. 
마누라는 여전히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예약된 호텔의 차는 이미 사라진지가 오래 된 터라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서 요기나 하자고 부추겼다. 
하지만 막내처재가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 마누라의 고집이었다. 
마누라가 굶는데 신랑이 먹을 수는 없는 것아 아닌가. 
속으로 신혼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금식 여행을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의 기분은 참담하였다. 
호텔에 도착을 하였지만 식당으로 가려들지 아니하였다. 
난 어디선가 보았던(소설인지 그림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없음)초례청의 구조가 말이다. 
거기에 나오는 교배잔을 마누라와 함께 나누다 보면 풀어 질 것이고 말 그대로 밋밋한 초야가 아닌 화끈한 초야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마누라는 내가 호텔 방에 있든 나가던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배다른 막내 동생 생각뿐이었다. 


프런트로 내려가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독좌 상을 부탁하였다. 
잠시 후 호텔 종업원이 소반을 들고 왔다. 
“첫날밤이신데 식사를 일체 하지 않으셔서 우리 호텔에서 서비스로 드리는 것입니다”프론트에 돈을 주고 부탁을 하였기에 난 종업원에게 윙크를 날렸고 종업원도 답례를 하였다 
초례청이나 다름이 없는 호텔 탁자에 작은 상처럼 놓인 오븐에는 포도주로 추정이 되는 술 한 병하고 교배잔 두 개와 청실홍실 두 타래에 약간의 다과가 얹어져 있을 뿐이었다. 
“고맙습니다. 자기도 여기 않지”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은 마누라의 등을 밀자. 
“.............”마누라는 마지 못 해 테이블 의자로 왔고 앉았다. 


“빈속이라 괜찮겠어?”호텔 종업원이 마누라 잔에 술을 따르자 난 마누라와 웨이터 눈치를 살폈고 웨이터를 보면서는 가득 부으라는 듯이 눈을 찔끔거렸다. 
포도주 두 잔에 한 병이 디 비워지자 웨이터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속상해 하지 마 내일 아침에 공항으로 마중가면 되잖아”잔을 들며 말하였다 
“정말 우리 불쌍한 정아 오죠?”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못 믿겠소? 다시 친정에 확인 해 볼래요?”처갓집 전화번호를 물렀다. 
“자기가 직접 받지”전화기를 마누라에게 주었다. 
“언니야 나 내일 언니에게 가려고 옷 샀다 아주 곱고 예뻐”처갓집에서 전화를 받은 것은 장모님도 장인도 아니 배가 같은 처제들도 아닌 마누라의 배다른 처제였고 그 처제의 목소리는 무척 밝아있었다. 
“우리 정아 많이 울었어?”마누라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응 언니 보고 싶어 정아 죽는 줄 알았어.”정아 처제의 목소리는 마치 전화기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그랬어, 내일 늦잠 자지 말고 일찍 오려면 어떻게 해야지”마누라가 막내 처제에게 물었다. 
“언니야 정아 잔다.”하는 말과 함께 
“저녁은 먹었니?”장모님의 걱정스런 말씀이 나왔다. 
“네 장모님 저희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내일 막내처제 보내주시면 더 재미있게 놀겠습니다.”쓴웃음을 짓고 있는 마누라를 보고 윙크하며 말하자 
“그럼 귀찮겠지만 부탁하게 끊네.”하고는 장모님은 매너 있게 전화를 끊어주셨고 그로부터 마누라와 난 참다운 초야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막내처제 덕에 점심부터 곯은 나와 마누라는 몸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행동하였다. 
그 결과 막내처제가 도착을 할 예정시간이 훨씬 지난 9시가 되어서 우리는 눈을 떴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새 신랑 새 신부답지 않게 마치 고양이 세수 하듯이 세수를 하였고 난 아무것도 바르지 아나하였고 마누라는 겨우 영양크림을 조금 바르는 듯 마는 듯 하고는 동항으로 달려갔다. 


공항 안내부스에는 이미 막내처제가 와 있었고 생글거리며 안내원이 사 준 것으로 믿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입과 얼굴에 떡이 되도록 바르고는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정아야”마누라가 눈물을 훔치며 달려가며 부리자 
“언니야! 앙앙앙~~~~”금방까지도 아이스트림을 먹으며 웃고 있던 막내처제가양 볼과 입에 아이스크림의 떡을 치고 있던 막내처제가 자기 언니가 부르자마자 쪼르르 달려와서는 아이스크림으로 떡을 칠한 볼과 입으로 언니 볼과 입을 비비며 마구 울었다. 
공항 안내 부스에 모여 있든 안내원들이 폭소를 자아내었고 영문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안내원의 이야기에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정말이지 창피하여 공항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왔다. 


마누라와 막내처제가 씻는 동안 난 호텔 입구에 출발을 가다리던 단체신혼여행객들을 태운 차로 가서 가이드와 기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다른 여행객들과 같이 행동을 할 수가 없음을 말하고 난 차를 한 데 렌트하여 같은 일행의 관광버스 뒤를 따르겠다고 하고 마누라와 막내처재를 렌트한 차에 태우고 버스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몇 곳의 관광지를 지나며 놀고 사진을 찍자 이젠 막내처제가 관광버스에 타려고 하였고 버스에 탄 신혼부부들도 막내처제를 자기들 곁에 두려고 경쟁 아닌 경쟁을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서나 자기 언니 곁에 있었지 밖으로 나가면 마누라의 동생이 아니었고 나의 막내처재도 아닌 일행인 가른 신랑신부들의 동생이었고 처제였지만 잠자리에 들 시간만 되면 항상 언니와 나 사이에 끼어들어서 자는 통에 난 말 그대로 신혼여행 내내(아니 첫날밤 빼고)독수공방을 할 수 밖에 방법이 없었다. 


거기서만 끝났다면 그래도 고마웠을 것이다. 
형님내외분이 계셨지만 우리는 신혼 초를 가풍을 조금이라도 배워야 한다면서 마누라에게 우리 집에서 일 년 정도 살다가 새 살림을 차리기로 사전에 합의를 해 두었기에 신혼여행에서 다녀오고 처갓집에서 반방을 벌리 깨까지는 아주 분위기도 좋았다. 


그러나 막상 마누라와 내가 장인장모님에게(장인어른의 어머니는 작음 며느리 즉 막내처제의 엄마를 몸조리도 시키지 않고 내쫒은 탓에 벌을 받았던지 막내처재가 태어난 이듬해에 죽었다고 함)인사를 올리고 마누라와 둘이 집을 나서려하자 다시 막내처제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통에 우리는 다시 말목이 집히고 말았다. 
겨우겨우 달랬지만 막내처재는 한사코 가지 언니의 치맛자락을 휘어잡고 놓치려 들지 아나하였다. 


새 사위가 왔다고 모두 모인 처가식구가 시간이 늦어갔지만 누구 하나 먼저 집으로 갈 수가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님어머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막내처제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쉽게 그렇게 하라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혀만 찰뿐이었다. 
가방까지 준비하고 내일 유치원에 간다는 약속까지 받고서야 우리는 막내처재를 데리고 신행길을 나설 수가 있었다. 
웃기는 일은 맞선을 보며 본 것이 처음이고 그 후로 양가가 경혼 문제로 왕래를 하며 몇 변을 더 만났었고 그리고 결혼식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지만 우리 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막내처제는 마중 나온 우리 부모님을 마치 자기 할아버지할머니다 되는 것처럼 달려가 안겨 재롱을 부리더니 마누라와 내가 부모님에게 큰절을 올리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막내처재도 우리에게 큰절을 받는 해프닝을 연발하고 말았다. 


다음 날 난 직장으로 갔고 마누라가 막내처재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유치원을 마치고 처재는 놀랍게도 자기 집이 아닌 우리 집으로 왔다. 
처갓집에서 야단이 벌어진 것은 명약관하 한 일었었고. 
본의 아니게 그날 저녁 처갓집에서는 양가의 모든 가족이 모인 가운데 전체 가족회의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 모두가 막내처재 하나로 비 롯 된 일이지만 정작 막내처재는 그저 많은 사람이 모여서 좋다고만 할 뿐이었다. 
아무리 말하여도 해답의 기미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심한 경우 둘째 처제의 경우 자기 엄마를 찾아서 돌려보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 말이 나오면 마누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벽에 우두커니 기대어 훌쩍일 뿐이었다. 


명쾌한 회답은 장인어른 입에서 나왔다. 
“사돈 사돈께서는 아들 두 분이나 두셨고 저는 저 년을 포함하여 딸만 넷입니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저 사람을 우리 아들 삼고 살고 싶은데 어떨까요? 나침 일층에 분양이 안 된 다세대 주택이 비여 있으니 집을 구하러 다닐 필요도 없고요”장인어른의 말에 
“허허허 쟤 때문에라도 그렇게 하는 게 상책 같네요. 여보 안 그래?”아버지가 엄마의 동의를 구하자 
“허허허”엄마는 어이가 없었던지 너털웃음만 지었다. 
그렇게 우리 내외는 이사 아닌 이사를 결혼 일주일 만에 시집에서 처가로 하고 말았다. 


막내처제는 생일이 빠른 탓에 7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또 마누라도 마치 때를 맞추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막내처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에 아들을 낳았다. 
정말이지 막내 처제는 웃기는 아이였다. 
자기 언니와 함께 아버지 피는 같은 피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갓난아기 때 본의는 아니라지만 엄마 젖도 먹지 못 하고 큰엄마인 나로 보면 장모님 손에 의하여 우유를 먹고 자랐을 막내처제는 우리 아들이 젖을 먹기만 하면 자기 언니 품에 파고들어 반대편의 언니 젖을 주무르며 만지는 것이 가장 큰일일 정도로 즐겨하였다. 
장인 장모님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억지로 때어내면 온 동내가 떠내려 갈듯 한 울음을 터트렸고 그런 언니인 마누라가 자기 막내 동생을 끌어안고 젖을 물리면 웃었다. 


그러나 한 가지 바뀐 것은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기 전에는 항상 아내와 나 사이에 막내처제가 중간에서 잤다면 아들을 낳고는 아들 옆에 마누라 그리고 그 옆에 저 그다음으로 막내처제 이렇게 줄줄이 누워서 잤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보채면 마누라가 젖을 먹이고 그러면 저는 슬며시 막내처제를 밀어내어 충분한 공간을 확보 한 후에 마누라가 아들 젖을 먹이고 나면 불편하게 마누라를 옆으로 엎드리게 하여 잠자리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잠자리 전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더 기막힌 것은 호칭이었다. 
형부님 아니 형부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처제가 나를 부를 때는 항성 <형부야>다. 
형부가 친구인가 
형부야 하고 부르게.............. 
세 살 배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을 우리 막내처제만 보면 알 것이다. 


막내처제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행동은 여전하였다. 
마누라가 낳은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자기 방을 따로 달라고 하였으나 내 아들보다 겨우 5살 많은 막내처제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파자마 입기보다는 내복차림으로 잤고 집안을 누볐고 여름이면치마라고 입었지만 팬티가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것만 있었으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그 짧은 치마도 벗어던지고 팬티차람으로 잤다는 사실은 아침에 눈을 뜨고서야 막내처제 발밑에 걸린 팬티를 보고 알 수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장모님도 돌아가시고 작은 처제도 골골 앓다가 죽어나갔고 가운데처제도 골골 하였지만 다행이 시집을 가자 건축업을 겸하던 나는 인근에 땅을 샀고 거기에다 다세대주택을 지어서 다세대주택 일이층을 모두 내 앞으로 명의 이전하고 이전이 된 집에는 처와 나 내 아들 그리고 막내처제가 전부였다. 
난 당시 장인어른으로부터 물려받은 집 부근의 작은 과수원을 마누라하고 같이 운영을 하였다.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또 과수원 땅 일부에 막내처제 명의의 축사를 만들어 소를 입식하고 그것을 막내처제 몫이라고 선언하였더니 막내처제가 몇 년을 정성을 다하여 소를 키우거니 축사를 철거하고 그 땅은 형부인 나에게 강권하여 팔더니 그 돈을 고스란히 자기 위 언니에게 병원비로 쓰라며 주었고 소를 키워 판돈과 전문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한 회사에서 돈 번으로 시집을 갈 것이니 형부와 언니는 자기 걱정을 하지 말고 내의 아들인 조카 대학에 보내라고 말하며 부족하면 자기가 조카를 위하여 투자를 하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막내처제가 여자답게 철이 든 것처럼 보였던 해가 우리 부부 밑에서 살면서 나이가 22살이 되던 해였다. 
그해 봄 막내처제는 나와 마누라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사년 제 대학에 편입을 하기는커녕 어떤 공장의 경리로 취업을 하고는 첫 출근을 하면서 자신이 취업을 하였다고 우리에게 밝혀 우리를 경악케 만들었다. 


그 전에 막내처제는 말 그대로 망아지에 가까웠다. 
어떤 망아지였냐고 하면 조카가 5살이나 어린데도 조카가 맛있는 것이나 좋은 장난감을 가지 있는 꼴을 못 보는 것이었다. 
고집불통이 조카에게 밀리기라도 할라치면 막내처제는 자기 언니가 아닌 나에게 와서 이르고서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배포는 어른인 마누라는 물론이고 나도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중학교 때로 기억은 하지만 몇 학년 때 이야긴지는 가물가물하여 기억에 없다. 
누군가가 놀린다고 창희는(우리 아들 이름)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정아는 엄마가 정아를 팔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간 모양이라고 놀리자 막내처제 정아는 눈물 한 방을 울리지 않고는 그 말을 한 사람더러 돈 몇 푼에 딸을 낳고 버리고 간 그런 년이 어디 있냐며 찾아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는 삼일을 학교는커녕 입에 풀칠도 하지 않고 단식을 하는 바람에 난 막내처제를 달래어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느라고 이틀을 직장에 나가질 못 하였다. 


그러고 보니 중 일 떼인 것 같다. 
그도 정아의 유일한 피붙이이기도 한 아빠 즉 나의 장인어른이 별세를 하기 전의 일이니 말이다. 
이는 장인어른이 작고를 하고서 난 직장도 그만 두고 장인어른이 손보던 과수원을 마누라와 나의 손으로 가꾸었으니 알겠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막내처제는 약간의 변화를 보였다. 
나도 모르게 부풀어 오른 막내처제의 젖가슴이나 펑퍼짐하지만 풍성한 막내처제의 엉덩이에 시선이 머물기라고 할라치면 막내처제는 얼굴을 조금 붉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도 어리광은 거기서 거기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언니에게는 학교 다녀 왔습니다하고 가방을 내동댕이치며 건성으로 하였지만 나에게는 명색이 고등학생이면 옛날로 치면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기를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어깨에 매달리고는 봅을 비비며 자기 없는 동안 얼마나 심심하였느냐며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는 물론이고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내 눈에 비친 처제의 그런 행동은 철없는 아이의 행동으로만 보았고 단순하게 체제로만 보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나이 중년으로 접어든 52살 때 그도 마누라가 대장암 말기로 고생을 할 무렵 막내처제가 결혼을 할 남자라며 남자를 데리고 왔다. 
자기보다 나이가 세 살이 많으며 직업은 대형트럭을 운전한다는 것이었다. 
직업이 운전이란 바람에 마누라는 물론이고 나도 반대를 하였다. 
고아하고 고아나 다름없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아야 세상 좋은 줄 알고 사람 그리운 것을 안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웠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고집 하면 한 고집하는 막내처제에게 병약한 마누라와 난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마누라가 입원을 하고 있는 통에 막내처제의 혼사 준비는 모조리 나의 목이었다. 
마누라와 상의를 하여 막내처제 부부를 우리가 사는 다세대주택 이층을 막내처제 명의로 하여 거기서 살도록 하기로 하였다. 


막내처제의 결혼을 서둘러야 하였다. 
이 모두가 마누라의 병세 때문이었다. 
수술 시기도 놓친 상황이라 막내처제 결혼 문제만 완료가 되면 마누라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게하고 보내드리라는 것이 산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의사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막내처제 결혼 이틀 전 그러니까 마누라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 하루 전의 일이다. 


“형부야 우리 마지막으로 한 잔 어때?”예나 지금이나 막내처제의 어투는 항상 이 모양 이 꼴이다. 
“좋아”막내처제의 신혼집 단장도 마무리하였겠다, 거기다가 동서가 부모형제가 없는 탓에 폐백 준비도 필요 없고 뷔페에서 피로연만하면 마누라가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집에서 따로 음식 준비가 필요가 없기에 나로서는 모처럼 긴장이 풀어진 순간이기도 하였다. 


“어~처제 이거 언제 다 준비했어?”난 막내처제가 들고 온 상을 보고 토끼눈으로 상과 처제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었다. 
육해공군이 모조리 모여 있었고 거기다가 고급술에 두 개의 수저와 앙증맞은 술잔 두 개가 마주보고 놓여있었다. 
그리고 이상 한 것은 깎은 과일 접시 옆에 과도가 놓여 있었으나 난 그 과도의 존재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헤헤헤 우리 형부야가 날 이렇게 곱게 키워서 시집 보내주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해”상을 안방으로 가져가며 말하였다. 
“거실에서 안 먹고?”의아스런 표정으로 막내처제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형부야 앉아”상을 안방 가운데 놓더니 상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그래”난 여전히 의구심을 풀지 못 하고 시키는 대로 앉았다. 
“형부야 받아”술병으로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잡아들며 말하였다. 
“그래 고마워 처제”난 술잔으로 술을 받으며 처제 얼굴을 보고 잘 커 줬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처제도 한잔 받지”술병을 잡으며 말하자 
“고마워 형부야”잔을 들며 말하였다. 
“그런데 형부야 우리 러브 샷 어때?”일어나더니 내 곁으로 와 앉으며 말하였다. 
“하하하 그렇게 해 보고 싶니?”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팔을 동그랗게 말아 잔을 입에 대자 
“응, 헤헤헤”막내처제가 실없이 웃으며 팔을 걸고 마시는 것 같기에 같이 마시고 잔을 상에 놓자마자 
“읍!”난 토끼눈으로 지금 까지 이십 년 넘게 함께 살았지만 가장 가깝게 막내처제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막내처제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고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막내처제는 삼킨 것으로만 알았던 자신의 입안에 든 술을 내 입으로 밀었고 나도 모르게 난 입을 열고 들어오는 술을 마시면서도 여전히 나의 눈은 토끼눈이었고 막내처제의 팔에 내 목을 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가는 술 대신 막내처제의 혀가 들어오자 놀라 목을 감고 눈을 감은 막내처제의 팔을 풀려고 하면서야 난 처제의 팔이 내 목을 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깍지를 낀 탓인지 풀리지 아니하였고 되레 막내처제의 혀를 더 깊이 들어오도록 만든 꼴이 되어버렸다. 
정말이지 생각 아니 상상도 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도 막내처제의 결혼을 하루 앞두고 말이다. 


“처제 왜 그래?”생각치도 않은 긴 키스 끝에 입을 때자 놀라며 물었다. 
“!”그러나 나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막내처제가 입을 때고 내가 말을 하기 무섭게 단정하게 입고 있던 블라우스 단추들을 푸는가 싶더니 블라우스를 벗어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 많이 잘 커줬구나 하고 생각하였던 처제의 젖가슴을 가린 브래지어가 보이는가 싶더니 그것마저도 때어버리더니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제법 큰 사발 두 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젖가슴이 내 앞에서 위용을 자랑하듯이 들어내었다. 


“처.........처제”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를 몰라 황당하여 막내처제가 벗어 놓은 블라우스로 막내처제의 젖가슴을 가리자 
“형부야 나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지? 나의 처녀는 형부야 것이지 정기 씨 것은 죽어도 아니야, 마지 못 해 하는 결혼이니까”막내처제가 놀라운 말을 하면서 나의 손에 들려진 자신의 블라우스를 당겨 손에서 빼더니 다시 나의 손을 당기더니 자기 젖가슴에 얹었다. 
“처제 이러는 게 아니야”황금하게 손을 빼려고 하며 말하였으나 
“형부야가 지금 날 안 가지겠다면 난 죽은 목숨이나 같아”막내처제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상에 놓인 이유를 몰랐던 문제의 과도를 다른 손으로 잡더니 자신의 젖가슴에 대지 뭔가. 


“처.......처제 흥분하지 말고 이성을 찾아 제발 부탁이야”나의 목소리를 떨리고 있었지만 손바닥으로는 탱글탱글하게 익은 막내처제 과도로 겨눈 젖가슴이 아닌 반대의 젖가슴의 뜨거움이 그대로 전달이 되고 있었다. 
“형부야 빨리 말 해 아니 바지 벗어”막내처제는 거의 협박에 가깝게 말하였다. 
난 내 바지 가장자리를 내려다봤다. 
나의 생각답지 않게 나의 바지 가장자리는 이미 텐트를 치고 있었다. 
더구나 몇 달이나 마누라가 병원에 입원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이기에 굶은 탓도 한 몫 하였다. 
“그.....그래”나도 모르게 막내처제를 처제가 아닌 여자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협박은 핑계에 불과한 행위였다. 
“형부야 팬티도”바지를 벗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였고 
“응”나 역시 처제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팬티를 벗었다. 
“형부야 누워”다시 명령이 이어졌다. 
“그.......그래 제발 부탁인데 그 칼 치워”난 핑계에 불과한 말만 하였다. 


“악!”막내처제는 내가 눕자마자 내 몸 위로 올라오더니 치마를 들치고 엉덩이를 그대로 내려버렸다. 
“!”그때까지 마누라에거서도 느껴보지 못 하였던 빡빡함이 전달이 되었다. 
“이제 나 형부야 여자지”미간을 찌푸리며 막내처제는 자신의 보지구멍에 박혔던 좆을 뺐다. 
“그........그래”빡빡함을 느꼈던 나의 좆은 허탈감을 느꼈지만 대신 막내처제가 그녀 말 대로 숫처녀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그런 안아 줘”막내처제가 내 옆으로 나란히 눕더니 팔로 내 목을 감으며 당겼다. 
“정말 후회 안 하지”조심스럽게 막내처제 몸 위로 올라가며 물었다. 
“후회 할 것 같았으면 이렇게 하였겠어? 형부야 바보 아니야”막내처제가 자기 치마를 위로 올리려다가는 호크를 풀고는 벗어버렸다. 
“!”막내처제의 보지둔덕과 그 주변은 장미꽃보다 더 붉고 아름다운 꽃무늬가 막내처제의 처녀막을 관통하면서 나왔던 선혈이 묻은 나의 좆이 빠져나오면서 마치 붉고 정열적인 수채화처럼 곱게 피어 나의 좆을 빨리 들어오라고 유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런 생각을 하였어?”좆에 힘을 주고 쑤시며 물었다. 
“형부야가 좋으니 그랬지”막내처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몸 위에 올라 온 나를 부둥켜안으며 말하였다. 
“내가 그렇게 좋았어?”천천히 펌프질을 하며 물었다. 
“좋지 않으면 내일 결혼을 할 년이 형부야에게 처녀 주겠어?”막내처제가 아픔을 참으려는 듯이 자신의 볼로 내 볼에 대고 비비며 대답하였다. 
“언니도 처음에 이렇게 빡빡하진 않았는데”웃으며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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