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과 상희 - 상

수연과 상희 - 상





아침의 이런 상념에 젖어 상기된 표정으로 상희와의 약속에 따라 첼로연습실에
수연이 도착했을 때 상희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인 아버지와 독일인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늘 수연와
대화를 나누고 집에도 종종 놀러온 터여서
수연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가장 친하게지내는 단짝 친구였다.
"오 마이러브 ! 뷰티풀 베이비, 너 오늘 따라 더 예쁘다 얘"
호들갑을 떨며 상희가 수연를 가볍게 안으며 뺨에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을 살
짝 댔다가는 뗀다. 반가울 때면 늘 하는 그녀의
버릇이다. 쾌활한 그녀는 언제나 수연를 마치 연인처럼 대한다. 그런데다 둘은
이미 그들의 육체를 통해 은밀한 즐거움을
비밀스럽게 종종 나눠온 사이이다.
"상희, 그동안 안녕. 유럽엔 잘 다녀 왔니?"
상희는 방학시작과 함께 유럽여행을 출발했었다. 그래서 수연의 방학이 더욱
따분한 것으로 되었는지도 모른다.
"응. 방학내내 아빠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 다니다 엊그제 왔어"
"그동안 너 보고 싶어 혼났다. 난 매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책만 봤는데"
수연은 상희의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를 보면서 부러워 한다. 어쩐지 얼굴이 하
얗다 못해 투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분위기 있는 숙녀 같아보이는데 뭐"
"너도 야 더 예뻐졌다. 아니 훨씬 야해 보이는걸"
수연이 감탄한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원래 수연처럼 몸매가 잘 빠진데다 허
리 가슴 골반의 곡선이 미끈해서 아무도
그녀를 고등학생으로 보지 않는다. 거기다 유럽여행을 통해 적당히 썬탠이 가
미된 그녀의 모습은 뭍에 갓 올라온 싱싱한
물고기 같이 탄력적이다.
"그래? 미워졌다는 것 보다는 기분 좋은데 . 그런데 너무 까매진 것 같아"
그녀의 아빠는 대학교수이다. 수연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상희의 아빠가 늘
상희와 함께 여행도 잘 다니고 매일같이
출근길에 학교까지 그녀를 승용차로 등교 시켜주는 등 수연의 아빠와는 전혀
딴판으로 딸에게 자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연의 아빠는 사업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탓도 있고 수연에 대한 교육과 지
도를 그녀의 엄마에게 거의 일임하고 있는데다
그는 늘 아빠로서의 후견과 그늘 역할만을 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또 한가지는 상희가 중3때 갑자기
그녀의 엄마를 백혈병으로 잃었기 때문에 상희의 아빠가 외동딸인 그녀를 더욱
끔찍하게 아끼는 이유도 있었다. 그가 젊어서
독일 유학 중에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그녀의 엄마는 독일여자들의 대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매우 적극적이고 쾌활해서
그가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빠른 시일내에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
국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상희엄마는 수연이 상희를 알게되기 일년 전에 돌아 가셨기 때문에 수연은 그
녀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상희집 거실에
걸려있는 사진을 통해 그녀가 상당한 미인이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아
마 엄마를 닮아서 상희도 그렇게 늘씬하고
예쁜가 보았다. 그는 종종 애잔한 표정으로 그의 딸을 지켜보곤 하는데 아마
과거의 그러한 가슴아픈 사연이 존재하는
탓이리라. 수연 역시 곧잘 상희의 집에 가서 그녀와 같이 첼로를 연주하거나
기말시험을 위해 밤새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해서
그를 잘 알고 있고 그 역시 수연를 좋아해서 상희와 함께 분위기 있는 그릴에
서 외식을 시켜주거나 경치좋고 조용한 야외로
드라이브를 시켜주곤 했다.
"우리 아빠가 밖에서 기다리셔. 같이 나가서 점심도 먹고 여행얘기도 해주고
할께. 어때. 오후에 다른 스케쥴은 없지?"
상희가 해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 본다. 기분좋을 때면 종종 짓는 그녀
의 독특한 애교있는 제스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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