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초대 - 16부



- 초대 16 -







뚝딱뚝닥....쿵쾅쿵쾅.....



본격적으로 은주집의 공사가 시작됐다



대여섯명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나또한 도면과 서류를 들여다보며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현장에서 몇가지 지시를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집에 전화를 했다



< 어젠 어디서 주무셨나요~ 서방님? >



코맹맹이소리를 섞어 장난치듯 아내가 물었다



< 글쎄......기억이.....작은방? >



< 에라이~ 킥킥.....아침은요? >



< 서방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전화도 한통 없구말야.... >



< 전화 없으니 살아있는거겠지.....아침 먹었냐구~ >



< 안먹었지....김밥싸와라 >



< 밑에가서 드셔~ 당신 기다리느라 밤잠 설쳤더니 피곤하네... >



곧이어 아내가 하품을 하는듯했고 들어가 잔다는 말을듣고 전화를 끊었다



나역시 밤잠을 설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머리는 무거웠고 가끔 나도모르게 하품을 하곤했는데 남이보면 외박한 티가 줄줄 흘렀을것이다



띵똥~



은주에게서 멧세지가 도착했다



[ 어젠 잘들어갔어요? 은주는 지금 일어났어요...회사? ]



머리속이 복잡했다



은주를 만나고 사랑을 나눈게 바로 어젯밤의 일인데 마치 몇달이 지난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헤어진후의 일이 더 많고 복잡해서일까?



좀처럼 지난밤의 일과 현실이 똑똑하게 그려지질 않았다



지수와의 있었던 일로 남자는 얼마든지 사악한마음을 가질수 있다는걸 느꼈다



아내를 등지고 다른여자를 사랑한것도 죄악이지만 그사이에 또다른 여자를 품을수 있다는것에 더욱 놀랬다



해가뜨고 해를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부끄러웠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결국 닫아버린채 서랍속에 넣었다



지금 양심으론 도저히 은주에게 아무일없었다는듯이 답장을 할수 없었다



아내와는 또다른......형식적이었지만 아내에겐 의무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장실에가서 거칠게 세수를 했다



< 왠 아침에 세수를 하세요? 더우세요? >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직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놀란눈으로 쳐다보는 직원의 말투가 마치 외박했구나~ 하고 놀리는것처럼 들렸다



화난사람처럼 대꾸없이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내자신에게 화가났지만 다른사람들에겐 그냥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자리에 돌아와 담배를 한대물었다



아직도 입에서 술냄새가 나는것 같았고 몸에선 낯선여자의 냄새가 나는것 같아 참을수 없었다



아니, 그냄새들을 다른사람들이 맡을까 두려웠다



엉덩이를 앞으로 빼 의자속에 몸을 깊이 파묻고 눈을감았다



지난밤의 일들이 차례대로 한컷씩 지나갔다



남자들이라면 한번쯤 눈독들일만한 여인네들을 하루밤에 번갈아 안았다



남들이 보면 지독하게 운좋은 남자라고 할것이라 했겠지만 내마음속의 생각은 달랐다



사랑을 나누어줄수 없는.....그러면서도 두갈래 모두 애착이 가는건 무슨마음인가



은주도....지수도 차마 거부하기엔 내게 너무 과분한 여인들이었다



담뱃재가 부스스 바닥에 떨어져 재떨이에 비벼끄곤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상태에선 도저히 아무것도 집중할수 없었기에 헬스클럽에 가기로 마음먹고 지하로 내려갔다



미친듯이 스쿼시라켓을 휘둘렀고 너무하다 싶을정도로 빠르게 런닝머쉰을 탔다



지수의 처음을 가진 책임감.....은주의 사랑을 받으며 또다른 여자를 품었다는 죄책감 등이



내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80도의 뜨거운 사우나에서 얼마를 있었는지 모른다



온몸이 벌겋게 익은걸 느끼고 밖으로 나와 찬물을 뒤집어썼다



치익....



뜨겁게 달궈진 대장간의 쇳덩어리처럼 내몸이 퍼렇게 식는것 같았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려 농구장엘 들어갔다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짝을맟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텅! 텅! 바닥을 튕기는 농구공소리.....여기저기 울리는 외침소리.....온몸으로 쏟아내는 땀방울....



젊은이들의 바쁜 율동을 한동안 보고있자니 정신이 맑아지는듯 했다



그래......둘다 잊어버리자.....



아내에게 더이상 나쁜신랑으로 남기 싫었고 쑥쑥 커가는 아들을 쳐다볼 용기가 없다면



여기서 그만 멈추어야 했다



지난 며칠동안은 다시 태어나기위한 잠깐동안의 방황이라 생각하자.....



기나긴 터널을 뚫고나와 하늘을 본것처럼 맑게만 느껴졌다



아내의 보조개 파인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상황에서든 날믿으며 의지했고 잠시 좌절감에 빠졌을때도 전쟁터의 책사처럼 새로운 의견을 꺼내들며



위로하고 다독거려주던 아내였다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집으로향했다



내가 잘못했다.....다시는 당신얼굴 못쳐다보는 행동은 하지않을께......



아들 현이의 해맑은 웃음이 생각났다



내 입가에도 어느덧 미소가 번졌고 목소리가 듣고싶어져 전화기를 찾는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둔탁한 무언가가 내 이마를 때리고 가슴에는 묵직한것이 한없이 짓눌렀다



정신을 잃는구나.......세상이 전부 까맣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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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옆에 누워있는 내가보였다



내가 나를 본건 처음이었다



흔들어 일으켜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수없었다



웅성웅성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를 건드려보기도 했고 말을 시키기도 했다



한남자는 어디론가 다급하게 전화를 하는듯 했고 다른남자는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고 있었다



내차가 보였지만 본네트부분이 어디론가 없어지고 반동가리만 남아있었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수도 없었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지금 내눈에 보이는 현상은 단순하게 흘러지나가는 TV속 드라마같이만 느껴졌다



경찰과 엠블란스가 도착해 대원이 뛰어내려 다급히 내 상의를 찢고 여기저기를 만져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백색의 들것이 오고......내가 그위에 실려졌다



두세사람이 겨우겨우 추스려 올려놓았고......이윽고 백색의 들것은 빨간색으로 변했다



근처의 병원으로 엠블런스가 도착했고 내몸은 얼굴까지 하얀천으로 몇겹쌓여 응급실 한쪽침대로 옮겨졌다



내가.......죽은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는데......정녕 죽었단 말인가?



고개를 숙여 다리를보려고해도 보이지 않았다



팔을뻗어 얼굴을 만지려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머리속의 생각이 확연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내는 어떡하지? 현이는 누가 돌보구......



잠시후 아내가 뛰어들어왔다



내몸앞에서 나를붙들고 울부짖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니 들어오기전부터 아내의 얼굴은 피빛이 거의 없어보였다



아내에게 손을 뻗어 잡아보려했지만 그 어떤것도 내손에 만져지질 않았다



진짜......죽은거야.......



박이사님이 급하게 뛰어들어오다 오열하는 아내를 발견하곤 그자리에 주저앉는다



이건 아닌데.......아직 할일이 남았는데......아내에게도 하고싶은 말이 많은데.......지금해야하는데....



눈물이 흐르는듯 했다



아니 아내보다 내가 더욱 슬퍼 눈물이 나는것 같았다



누워있는 내몸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만신창이가된 내얼굴을 쓰다듬던 아내가 내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박이사님이 아내를 부축해 밖으로 나가려했지만 뿌리치고 울부짖으며 계속 내몸을 닦아주었다



닦아도 닦아도 흘러나오는 핏물때문에 아내의 손수건은 핏물이 뚝뚝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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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개념이 느껴지질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어 대기실복도 의자에서 쪼그려 울다 지쳐잠든 아내옆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윤실장과 사모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황급히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복도 의자에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지못하고 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윤실장의 황당한 표정과 사모님의 처절한 울음소리뒤로 입을가린채 소리죽여 흐느끼는 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은주야.......은주야.......



백번도 더 불러봤지만 입에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보고싶은 얼굴이었지만 여기까지 오리라곤 생각 못했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개념조차 없었기에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반가웠다



입을가린 손에 내가 끼워준 반지가 보였다



태어나 아내외에 다른여자에겐 처음으로 준 사랑의 표시였다



눈앞이 흐멀흐멀 뿌예진다



태양보다 밝은빛이 머리위에 쏟아지더니 내몸도, 아내도, 은주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뿌옇게 변해간다



이제.....가야할 시간인가?



작별 인사는 해야할텐데........왈칵 그리움이 쏟아졌다



아내의 얼굴도, 은주의 모습도......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낯선 사내들의 모습이 보이고 평온한 얼굴을 띄며 내게 손짓한다



서서히.....두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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