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우(氷雨)

빙우(氷雨)


나는 병원에 넘쳐 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질병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 100년 만에 왔다는 3월의 폭설 얘기들을 하면서 저마다 세상의 기후가 이렇게 변덕이 심해지는 것이 말세가 가까왔다 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면서도 오늘 당장 먹어야 될 처방조제약을 타기 위해 번호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그리도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인간은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병원 안에서 밝게 웃는 사람들을 별로 보질 못했다. 저마다 병원을 찾은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병을 지고 들어왔다는 심리 때문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표정으로 지쳐가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 온다. 간혹 산부인과 병동을 나서는 남자들의 얼굴에서는 언뜻 기쁨의 조각들이 보이기는 해도 이 힘든 세상에 새 생명을 내놓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난 속에서 그 생명을 성장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부담이 바로 얼굴을 덮어버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아 있기에 닥칠 수 밖에 없는 병마 속에서 인간은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추풍낙엽보다 못한 존재 인 것을…

‘오늘 일찍 오셨네요?’

내가 한 달에 한 번,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나올 때 마다 마주치는 정간호사. 매일 당직이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내가 호스피스 자원 봉사를 할 때면 근무를 서기에 두 사람은 이제 어지간히 안면식이 터 있다.

‘한달 사이에 살 많이 찌셨네!’

나는 의례 그렇듯이 부었다고 대답한다. 그 편이 조금 위트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다. 숫기가 없어서 항상 대화의 주도권에서 밀려나던 학창 시절 때부터 나는 성인이 되면 보다 쾌활해지고 붙임성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야지 라고 다짐 했건만 지금도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호방함이 없다.

‘오늘은 어디죠?’

‘암 병동 B-16호실 인데요, 2인실인 건 아시죠? 오늘은 그러니까……차트에 00은영이라고 되어 있구요. 성이 두자네. 나이가 00살, 혹시 김 선생님이랑 같은 나이 아니에요? 김 선생님 쥐띠죠?’

아예 호구조사를 하지!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사생활이 없다는 불평 같은 우스개 소리를 자주 하곤 했다. 한 달에 하루에 불과한 자원 봉사지만 환자들과 나눈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내가 돌아간 이후에 환자의 입을 통해 담당 간호사에게 전해져 다음 번에 병원에 들어서면 나를 향한 질문들에서 깜짝 놀랄만한 껀 수들이 등장하곤 해서 당황 스러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간호사에게 매번 그렇듯이 지난 달에 내가 마주했던 환자의 용태를 물었다. 더 이상의 호구조사가 귀찮기도 해서…

‘그 할머님이요? 10일 전인가 OP(수술)들어가셔서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코마(의식불명의 혼수상태)라죠?, 힘들 것 같아요.’

역시나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그녀다.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있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얘기도 껌 씹는 것처럼 감정 없이 전달하는 폼을 나는 도저히 흉내내기 조차 어렵다. 그래도 망자가 될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는 있는지라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죽음에 대한 표현인 힘들다라고 하는 단어로 대치한 걸 보면 일이 몸에 베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층마다 있는 당직 데스크에서는 취식이 금지되어 있는 규정을 가끔 몰래 어기면서 책상 서랍에 쵸코파이를 넣어놓고 먹다가 나에게 걸리는 적이 있던 그녀는 병동의 흉흉한 분위기에서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코드블루(응급사태)가 떠도 일탈의 내색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그게 직업이기도 했기에…나는 호스피스 용 가운을 갈아입고 자원봉사 명찰을 달았다. 나는 가운을 걸칠 때 마다 가벼운 천으로 만들어 졌으면서도 왜 이리도 무겁게 느껴지는 지에 대해서 간호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다들 그러시더 라구요. 수술 가운이랑 같은 천인데….아마 다른 분의 아픔을 나누어 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 말은 한참이나 기억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실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난 다음에 생전 처음 대하는 충격적인 모습들 때문에 나 스스로 인생의 회의에 빠졌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읽어달라는 책이나 성경구절을 읽어드리거나 얘기상대가 되어주는 것 뿐인데 나는 그들을 만나고 온 그 시각부터 항상 죽음이란 명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죽음을 만지고, 숨쉬고, 손에 쥐고 돌아서는 발길 속에는 항상 나도 언젠가는 나 같은 호스피스의 도움 속에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곤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자원 봉사 교육 시에 자주 듣게 되지만 언제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환자와의 첫 만남은 항상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병실 안에는 두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한 사람은 MRI촬영(핵자기공명 단층촬영, CT보다 진보된 단계의 촬영)을 위해서 자리를 비웠다고 말하는 여자는 병자라고 보기에는 다소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00은영입니다. 반가워요. 오늘은 누가 오시나 했는데 저랑 나이가 비슷한 분이네요. 맞죠?’

내가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반갑게 나를 맞이 한다. 어제 간호사가 오늘은 나이 연배가 엇비슷한 분이 오실 것이니 얘기 상대가 될 거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는 그녀는 다소 수척한 모습이긴 했어도 죽음과 싸우고 있는 병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단지 팔에 꽂혀있는 링거병이 작고 색이 짙은 것으로 보아 다른 일반 환자가 맞고 있는 주사액이 아니라는 것과 침대 옆에 붙어있는 절대안정이라는 표지판이 그녀의 상태를 어렴풋 하게 암시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여느 암 환자들 처럼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있다. 나는 그 모자를 보면서 항상 영화 레옹이 연상된다. 이름하야 레옹은 그 자신을 가리켜 클리너라고 했었다. 한국말로 구지 해석하자면 해결사. 뛰어난 본능으로 문맹이지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급기야 자신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마틸다를 위해서 웃으면서 수류탄으로 자폭하던 모습과 겹쳐져 암 환자들의 삶도 그것처럼 고통 속에서도 웃음이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죽음을 맞이 할 수밖에 없는 형상이 조금은 비슷한 여운이 있었기에…

‘모자가 잘 어울리네요.’

나는 항상 모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 칭찬을 하곤 한다.

‘그래요? 저는 이 모자가 싫은데…참 제가 이름을 물었던가요?’

‘아뇨. 제가 인사가 늦었지요? 제 이름은 김준성 입니다.’

환자답지 않게 악수를 하려고 팔을 내민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약간 싸늘하고 메마른 느낌. 대개의 암 환자들이 항암제를 투여 받을 때에는 미열과 구토를 동반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 보다 따스한 느낌이 돌지만 암말기 환자들은 모르핀 계열을 투여 받기 때문에 손에서 받는 느낌이 조금 찬 것이 보통 이었다. 그녀는 이제 머리가 조금 길었음에도 모자를 구지 쓰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 회진은 언제였지요?’

‘벌써 다녀 가셨어요. 뭐 별거 있나요? 식사는 제대로 하느냐, 소변은 봤느냐, 많이 아픈 곳은 없느냐, 일상적인 질문들이죠. 저는 회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말기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질문이 적어서 정말 내가 아픈가 싶기도 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예전에 만났던 한 분은 폐암 말기가 되도록 자신은 조금 피곤한 것만 느꼈을 뿐, 자신이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해 들어간다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그 분은 병원에서 말기 판정을 받고도 가족들이 숨기는 바람에 정상인 처럼 주일이면 성가대에서 열심히 찬양도 하고 주변의 지인들도 결코 알아 차릴 수 없이 건강한 모습이어서 그때까지 자각증상 없이 버티어 온 자신의 상태가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되뇌었었다. 기적. 이런 병동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 기적을 바라는 과정들을 모두 겪고 넘어온 사람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자청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매일 만나면 울음만 지어대는 가족 보다는 남은 시간을 평범한 얘기를 나누면서 건강했을 때의 삶을 반추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결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애써 보통의 화제처럼 얘기하고픈 욕구가 앞서갔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모아서 책을 쓴다면 아마도 브리테니커 사전 열 곱절은 되지 싶은 분량이라고 생각했었다.

‘100년 만의 폭설 이라죠?’

‘글쎄요. 100년 전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더 신기해요. 바로 내일의 날씨는 개판 5분전처럼 못 맞추면서 지나간 날씨에 대한 기록은 꼭꼭 챙겨 두었다는게 도무지…’

나는 기상대의 발표에 대한 나의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다. 그녀는 그래도 요즈음은 적중률이 높다면서 긍정적인 옹호를 보였다. 내가 느끼는 말기 환자들의 특징중의 하나였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거추장 스러운 것도 마다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에 숙달된 기계 같은 그들의 여유. 나는 건강한 몸으로 언제나 무엇에 쫓끼고, 지고는 못 살며, 손해에 대해서는 서릿발 같은 반격을 일삼는데 비해서 그들은 그들만의 코드처럼 만사를 수긍하는 일들이 습관이 된 것처럼 보였다.

‘종교가 있으세요? 성경책이나 아니면 반야심경 같은 것을 독송해 드릴까요?’

나는 항상 하는 것처럼 물었다.

‘저는 종교가 없어요. 그러니 그런 수고는 않 하셔도 되요. 그런데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모르겠네.’

‘무언데요? 말씀해 보세요.’

‘결혼 하셨죠?’

나는 결혼했으며, 애가 둘이라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으면서 안경을 쓰느냐고 물었다. 학교 때에는 안경을 썼지만 겨울에 버스를 탈 때마다 끼는 성에며, 여름날의 코 잔등이 지분거리는 것이 귀찮아서 이제는 콘텍트 렌즈를 낀다고 했다.

‘혹시 00고등학교 방송반 아니셨어요?’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혹시 누구 한테 들으신 거라도…’

나는 간호사들이 별걸 다 전하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도 고등학교 때의 일을 환자들과 얘기한 적은 없었기에 그녀의 질문이 새삼스럽기는 했다.

‘죄송한 말씀인지는 몰라도 그때 보다 살이 많이 찌셔서 몰라 뵈었어요. 저 그때 방송제에 갔었어요. 이런 우연도 있네요.’

그녀와 나는 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이었고, 그 당시 유명했던 우리 학교의 봄 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던 시화전과 방송제를 보러 갔다가 나를 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방송반의 일원으로 드라마에서 흉악한 악역의 목소리를 내서 청중들에게 꽤나 박수를 받았었기에 기억할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그때는 호리호리한 몸에 안경까지 쓰고 있었기에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범생이의 모습이었는데…

‘정말 그렇네요. 이렇게 세월이 지나도 저를 기억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게 믿어지진 않지만…’

‘그 당시 목소리가 꽤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역시 좋으시네요. 지금 하시는 일은 그럼 방송 계통의 일?’

고등 학교때 열성을 부리던 나의 그 시절을 알고 있던 동창들은 내가 아마도 방송 계통으로 나갔을 거라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아니오.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죠. 그거야 학교 때 치기어린 시절의 얘기죠. 지금 생각하면…’

‘왜요? 그 분야로 나가셨더라도 잘 하셨을 것 같은데…’

나는 그녀에 대해서 보답차원의 질문을 하려했다. 그때, 밖에서 정 간호사가 들어왔다.

‘링거 좀 교체 할께요.’

작은 용량이지만 말기 환자들은 심장도 약해져 있고, 투여 되는 약에 대한 반응이 격심할 때도 있어서 주입간격을 보통 사람보다 서너 배는 늦추기 때문에 정상인 사람보다 적은 량을 긴 시간에 걸쳐서 맞아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손등과 팔목에는 주사바늘을 찌를 곳이 없어져 신참 간호사들은 되도록 이런 병동에 배치하질 않았다. 밥 먹듯이 링거를 맞아야 하는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자는 병원측의 배려이기도 했다. 요즈음은 외부에서 튜브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비형 바늘이 나오긴 했어도 바늘이 꽂혀있는 병약한 환자의 혈관이 헐고 막혀서 주기적으로 다른 곳을 찌르지 않고는 도리가 없었다. 정 간호사는 링거를 교체하고 다시 별도의 주사제를 링거에 섞어 넣으면서도 우리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질 못했다. 나가면서 내 귀에 대고는 속삭였다.

‘너무 다정하게 붙어 앉아 계시는 것 아녀 유?’

정 간호사가 나가자,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뭐라고 그러세요?’

나는 실없는 소리라며, 대답하질 않았다. 그녀는 잔뜩 흐린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이 또 올 것 같죠? 김 선생님, ……눈에도 냄새가 있는 것 아세요?’

나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자기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었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질 않았던 부분이 있다면서 얘기했다.

‘사계절도 모두 저마다의 냄새가 있어요. 눈도 그렇고 비가 오기 전에도 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어요. 나는 비 냄새가 나니 내일쯤이면 비가 올거야 라고 하면 모두 믿질 않았어요. 아무리 날씨 예보에 비가 올거라고 하면서도 내가 아침에 창문을 통해 맡아 보는 중에 비냄새가 없으면 저는 우산을 들고 등교하질 않았죠. 그리고 학교가 끝날 즈음에 이런 화창한 날씨에는 버렸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툴툴 거리면서 우산을 들고 집에 가는 아이들에게 거 보라면서 자랑을 하던 때도 있었구요.’

‘무슨 신통력 같은 건가요?’

나는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게 제 병이랑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분도 날씨에 대한 제 말을 반신반의 하기는 마찬가지 였지만…’

나는 그녀의 나이로 볼 때, 남편을 지칭해야 마땅 했는데 그 분이라는 존칭을 사용해서 조금 의아했다. 그럼 미혼 인가?

‘그 분 이라면, 혹시 남편?’

‘아니요. 저 아직 까지 법률적으로는 미혼이에요.’

나는 그녀가 미혼이라는 사실에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그녀와 부지불식간에 객석을 통해 만났었다고 하는 고등학교 때의 인연도 그렇고, 이 나이가 되도록 미혼이라는 사실도 그랬고…

‘그럼, 혼자 사세요? 가족들은?’

나는 그 질문과 함께 그녀의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는 사진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가족사진이고, 하나는 그녀보다 나이가 좀 더 있어보이는 남자와 사진관에서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 가족 사진에 있는 그녀는 아마도 대학생 인듯 싶은 애띤 얼굴이었고, 남자와 같이 찍은 사진은 볼에 살이 알맞게 오른 것으로 보아 병으로 고생하기 전에 찍은 듯이 보였다.

‘저 사진 속의 남자 분이 말씀하시던 그 분?’

‘네, 선생님 이세요. 그것도 미술선생님.’

‘그럼, 가족은요?’

‘가족들은 서울에 없어요. 모두 00에 살고 있죠. 저는 안가고 여기에 남았지만 친척들이 모두 00에 살고 있어서 초청이민으로 다 갔고요. 제 몫으로 부모님께서 한국에 남겨 놓으신 돈이 아니었으면 이런 치료도 감히 상상할 수 없죠. 가족들은 제가 이렇게 아픈 사실도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만 알고 계세요.’

‘실례되는 질문 이지만 선생님과는 어떤?…’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은 자신의 얘기를 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얘기가 허공에 흘러 사라진다고 해도 누군가 들어주어서 기억에 남게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제는 가족들도 알게 되었을지 몰라요. 그나마 근근히 안부나 묻고 지내던 내가 몇 달씩 소식이 없이 가족에게도 알리질 않고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으니….아마도 서울에 다녀갔을 거에요. 그리고 유일한 끈일 수 밖에 없는 선생님을 찾아가 내 안부를 물었겠죠.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을 거구요. 아직까지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자원 봉사를 하다 보면 어찌 이 드넓은 하늘아래 혈육도 없이 쓸쓸히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는가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제가 도리어 피곤하게 만드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요. 괜찮으세요? 말씀하기 힘드시면 좀 쉬세요.’

그러나, 그런 걱정은 건강한 사람의 몫 이었다. 예전에는 TV를 볼 때, 어째서 죽어가는 사람이 그렇게도 말을 많이 하려고 애쓰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드라마 여서 그러겠거니, 작가의 상상력 부족, 체험 부족 등을 이유 삼아 저런 장면은 좀 현실감 있게 표현하지 라며, 혀를 차곤 했는데 이렇게 나와보니 그들은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오는 단어 하나에까지, 문장 한 줄에까지 생명을 걸고 토해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삶들 보다 시간에 쫓기는 자신들의 얘기를 꺼내 놓는 데에 결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고..’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 옆 자리의 아주머니도 검사 때문에 일찍 들어오실 것 같지는 않고 이렇게 얘기나 하면서 시간 보내죠. 저야 누워서 이렇게 편하게 얘기만 하는데 어때요? 듣기 지겨운 사연을 참고 들어주셔야 하는 김 선생님이 더 괴로우실 테지만요.’.

‘저는 괜찮습니다.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제 할 일 중의 하나이거든요.’

‘봄에 열렸던 그 방송제 에도 선생님과 함께 갔었어요. 미술반 이었던 저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남학교의 시화전은 어떻게 하는지 보아두는 것도 괜찮다면서 저희들을 데리고 가셨었죠. 그 분은 제 1학년때 담임 이셨어요. 항상 조용한 미소에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색상이 화려한 옷을 잘 소화해 내시던 모습에 반해서 미술반도 스스로 들어갔고요. 아그리빠를 데생할 때에 제 옆에서 역광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제 그림을 봐 주실 때에도 감히 얼굴을 쳐다 볼 수도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녀는 그저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평범한 사춘기 여고생에 불과 했었던 자신을 되짚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에 학창시절 에는 여학교의 누가 선생님과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다느니, 애를 가졌다느니 하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들이 심심찮게 들려 왔기 때문에 별로 마음에 두는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된다. 게다가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나가면서 사모하던 선생님을 꿰차는 당찬 졸업생들 중에서 일빠따로 결혼을 하면 여학교에서는 세탁기나 냉장고를 신접 살림용 선물로 주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들어오던 때였다.

‘그러던 2학년에 접어 들면서 문과 이과를 결정하는 시기가 왔을 때, 집안이 발칵 뒤집어 졌었죠. 제가 미대에 가겠다고 반기를 든 거죠. 예원 같은 예체능 전문 학교를 들어간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들어와서 취미로 시작한 미술에 온 생애를 걸겠다고 나선 저의 무모함을 부모님이 가당치 않다고 여기셨던 가봐요.’

그녀는 부모님과 2학년때 담임과의 적극공세에 밀려 미대 진학을 위한 꿈을 접었다고 했다. 단, 조건은 그래도 취미 삼아 소속되어 있는 미술반을 나오지는 않는 것이었다고…

‘단지 그 당시 저의 바램은 선생님과 좀더 긴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 미대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야자도 받을 필요가 없었고, 전국대회 격의 미전에서 대상을 타면 대학입학의 특혜가 주어졌기 때문에 밤새워 미술실에서 선생님의 지도아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점이 가장 부러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는데 열어 놓은 창문으로 아닌게 아니라 비 냄새가 흘러 들어왔습니다. 하늘은 고만고만 했고, 비가 올 것 같질 않았는데 아침 뉴스에는 오후에 구름 만 낄 것이라고 했지만…나는 우산을 가져 가려다가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내가 틀렸으려니 하면서…오후가 되면서 일기예보는 구름 낀 날씨에서 변하여 지형성 강우가 예상된다는 소식으로 바뀌었고, 마지막 시간인 체육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인해 실내 수업으로 바뀌었죠. 나는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린 답시고 야자가 끝났는데도 건물 현관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은 지체되고 비는 멈출 줄을 모르고, 나는 안되겠다 싶어서 미술실로 올라 갔어요. 미술실은 조용해야 한다면서 선생님께서는 건물 제일 윗층 구석진 부실을 사용하고 계셨죠. 저는 집에 전화를 걸 요량으로 미술실에 들어 갔어요. 싸한 유화물감 냄새가 코끝에 스미는데, 방 안에는 때마침 아무도 없고, 선생님 혼자 무얼 그리고 계셨어요. 나는 실내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등뒤로 제가 다가가는 것을 모르셨어요. 이젤 위에 있는 그림은 평소에 보지 못하던 여인의 나체화 였습니다. 모델도 없이 선생님께서는 누드를 그리시고 계시는 것이 이상했지만 상상 속의 인물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하면서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죠. 그림 속의 여자는 아직 완성이 되질 않아서 전체적인 윤곽만이 잡혀 있었지만 가냘픈 체격이 꼭 학생 같았고, 단발머리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죠. 그제서야 선생님께서는 등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놀라시면서 돌아다 보셨죠.’

““은영이 구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집에 가려는데 비가 와서요. 시간이 늦어지고 해서 집에 전화를 하려는데 회수권 밖에 없고 동전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미술실의 전화 좀 쓰려고요. 제가 방해 되었나요? 그림 참 멋있던데…””

““봤니? 난 별론데, 요즈음 한동안 그림을 안 그렸더니 예전만 못해. 누가 모델이 되어 주어도 좋을 텐데… 학교이다 보니 모델들이 오려고 하질 않고…””

““모델 일이 힘드나요?””

““그럼, 중 노동이지, 옷을 벗고 있는 것도 힘든 일인데 포우즈를 취한 상태로 정지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 스러운 일인데…””

그녀는 선뜻 선생님에게 자신이 모델이 되어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학교에서 알게 되면 큰 일 날 일이라며 반대하셨지만 그녀는 너무도 당돌하게 미적인 창조 활동을 위해서 옷을 벗는 것이고, 아무도 모르는 이런 시간에 그리면 되질 않겠냐는 그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일축했다고 한다. 숙직을 서는 선생님들의 의심을 피할 수도 없을 뿐더러 소문은 금방 퍼져서 자칫 두 사람 모두 위태로와 질 수 있다는 선생님의 판단 때문이었다고 했다.

““은영아, 내가 은영이의 마음만은 고맙게 받을게.””

그러나, 선생님은 그녀의 마음만을 고맙게 받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 계기 때문인지 점차 완성 되어가는 그림 속의 여인은 그녀를 닮아갔고, 그 모습이 뚜렷해 질수록 학교 내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가 미술 선생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둥, 누드를 그린 후에는 서로가 섹스를 했을 거라는 둥, 해괴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학교 전체를 시끄럽게 해서 급기야 선생님은 교장실로 불려가서 해명을 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선생님은 시말서를 쓰고 다른 학교로 전근 대기발령을 받고야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미워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저를 쳐다보는 모든 눈들을 송곳으로 팍 찔러주었으면 싶었으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저를 뒤로하고 다른 학교로 가시게 된거죠. 아이들은 말은 않 하고 있었지만 교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선생님을 이유야 어떻든 간에 제가 떠나 보내게 했다는 질책을 모두 감수했었어야 했으니까요. 마지막 수업이 있던 토요일, 선생님께서는 오후에 미술부원 들이랑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하셨습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중국 집에서 조촐하게 선생님과의 이별파티를 마련하고서 저희는 우울한 심정으로 선생님과 식사를 했지요. 오후 어스름이 되어서 선생님께서는 학교로 다시 올라가겠다고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짐을 싸는 것을 도와줄 사람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모두가 대답도 없이 저만을 쳐다보고 있어서 제가 할 수 없이 선생님의 뒤를 따라 갔고...부실에 들어섰을 때, 선생님의 짐은 깨끗이 싸여져 있었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은영이, 네가 따라오질 않으면 어쩌나 했다.””

““왜요? 선생님?””

““사실 너에게 이 걸 주려고 말이야.””

그러면서 그 선생은 그녀에게 포장지에 싼 그림처럼 보이는 물건을 내밀었다고 했다. 손에 잡혀지는 느낌으로 비싼 액자까지 해넣은 것이 그림인 줄은 알았지만 그 것이 문제가 된 자신과 닮은 누드화 인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그림을 넘겨 주시고는 창문을 향해서 담배를 피우셨어요. 나는 액자의 포장지를 벗겨 내면서 나던 그 종이의 찢어지는 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생생합니다. 제 속 살이 스산히 잘려져 나가는 것 같은 소리들…. 저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그림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저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바로 제가 그려져 있었지요. 소문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선생님께서 저를 그리신 것은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도 모르게 완성해서 그려 넣으신 마지막 부분은 아무도 보지 못한 부분이었죠.’

‘그게 어떤 것이었길래…’

‘그것은 거울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인어 공주상 처럼 나체로 앉아있는 저를 그리고 계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림의 안쪽 구도에 그려 넣으셨었는데…그게…그 당시로서는 정말 충격이었죠. 그림 속의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다 말고 붓을 손에 쥔 채로 다른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붙들고 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 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림 속의 나처럼 완전한 나체로 앉아서….’

나는 그 그림을 그리면서 그녀의 나신을 그리워하는 그의 곤혹 스런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마 마음속에 두고 있는 제자를 누드의 모델로 그릴 수는 없었기에 그런 상황에서 그려 보고픈 그 만의 애틋함이 표현 되어 있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잊어먹고 있었어요. 그림의 나는 보기보다 너무나 빼어나게 그려져 있었고, 그림을 그리시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저의 나신을 바라보는 그림 속의 선생님의 눈빛이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닮아 있다뇨?’

‘그 눈빛은 바로 서로를 애타게 찾고있는 그리움 같은 것 이었지요. 평소에도 저를 유독, 주의 깊게 보아 두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후에 듣고서 저는 내내 선생님의 곁에 가고 싶은 저처럼 선생님 께서도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저에 대한 보고픔이 사무치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녀는 지쳤는지 조금 쉬겠다고 했다. 나는 가습기의 물을 더 받아 오겠다고 하고는 물통을 들고 잠시 병실을 나왔다. 그녀의 얘기 속에서 나는 예전의 환자들처럼 건성으로 들어 제끼던 것이 아니라 그녀의 지난 일들에 대해서 내 자신이 화선지에 먹물이 배어가듯이 휘말려 흡수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다시 기운을 차린 듯 얘기를 계속했다.

‘저는 한참이나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때까지 포르노도 보질 못했던 제 앞에 젊고 늠름한 남자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는 그 그림이 흉측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건만 저는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죠. 두 사람의 사이에 가로 놓여져 있는 이젤 만 아니라면 금방이라도 서로의 살을 섞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요.’

그 선생은 그 그림을 통해서나마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은 심정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림을 내려 놓고는 창 밖 만을 보고 있는 선생님의 뒤로 다가가 살며시 껴안았다고 했다.

‘선생님을 껴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수천마디 말보다도 그림 한 폭으로 저에게 선사하는 선생님의 고백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 했으니까요. 저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지금 떠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만이 머릿속을 뒤틀고 있었습니다.’

““은영아! 우리 나가자!””

‘저와 선생님은 짐을 나누어 들고는 교문을 나섰지요.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선생님은 제 손을 꼭 쥐신 채로 아무 말씀 없이 차창 밖만을 보고 계셨습니다. 택시가 멈춘 곳은 선생님의 하숙방 이었죠. 나는 방안에 물건들을 내려 놓으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넓은 방안에는 온통 화구들과 이젤, 그리고 평소에 그리시던 그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그 그림의 주인공들은 어렴풋 하기는 했어도 모두 저를 모델로 그린 것들 이었습니다. 마실 것을 사러 갔다 오신 다고 하면서 방을 비우신 사이에 저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스케치북을 열어 보았지요. 그 안에는 목탄으로 그린 것 같은 남녀의 아름다운 누드화가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역시 선생님과 제가 주제로 되어 있는…언뜻 보면 그저 남녀간의 천박한 섹스장면을 묘사 한 것 같았는데 선생님은 그 그림 속에서 저와 선생님과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감정이 전달되는 순간을 빼놓지 않고 넣어 놓으셨지요. 어떤 자세로 섹스가 펼쳐지더라도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외면하는 일이 없이 끈끈한 동아줄로 엮여져 있는 듯한 그런 모습 말이죠. 저는 너무나 황홀한 생각으로 그림에 빨려 들어가 있어서 선생님께서 뒤에 서계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겨드랑이를 스치는 걸 알았죠. 바로 선생님의 손이었지요.’

그녀는 이미 앞으로 언젠가 시일을 기약할 수는 없어도 그림과 같은 상황이 선생과의 사이에 벌어질 것을 예상했다고 했다. 그 시간이 조금 빨리 왔을 뿐…선생은 천천히 그녀의 유방을 뒤에서 껴안았고…

‘저는 너무 감격하고 있었던 가 봐요. 다리의 힘이 풀려 저의 뒤에서 제 가슴을 보듬 으면서 만져 주시는 선생님의 가슴에 온 체중을 뒤로 실으며 기댈 수 밖에 없었거든요. 선생님은 떨리는 호흡을 애써 참으시면서 저의 목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죠.’

그는 그녀를 돌려 세워 미친 듯이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고 한다. 남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선생이 이끄는 대로 있는 힘껏 입을 벌린 채로 자신의 입안으로 토사가 밀려 들어오듯이 마구 치밀어 들어오는 그의 혀를 무방비 상태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고…너무도 생생한 그녀의 묘사로 인해 혹시라도 누가 들어 오면서 들을 까봐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문쪽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그 선생은 능숙한 리드로 그녀를 차츰 흥분의 초입으로 끌어갔지만 상대가 자신의 아끼는 제자라 그랬는지, 그저 키스에 열중하면서 그녀의 교복 위를 쓰다듬기에만 정신이 없었는데…

‘저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죠. 그렇게 눈에 넣고 싶어하는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가만히 선생님을 밀쳐 내고는 제 손으로 교복의 단추를 끌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나던지…기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고…이 시간이 혹시나 두 사람에게 마지막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되고…이렇게 드러낸 내 몸뚱아리를 가져버린 후에 선생님과 영원히 만날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복잡한 심정 때문에 이래저래 눈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은영아! 내키지 않거나 원치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네 마음을 알고 있으니 그걸로도 난 충분해.””

““아니에요. 선생님, 저도 원하고 있어요. 얼마나 제가 보고 싶으셨으면…””

““그래서는 않 된다며 수 없이 다짐했지만 너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은 식을 줄을 몰랐어. 이런 지경까지 끌고 온 내가 미친 놈이지.””

그는 어린 제자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자기 자신이 처참했던지 차마 그녀가 교복을 스스로 벗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가 옷을 벗고 태초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자, 그의 눈빛은 그야말로 불꽃이 이글거리는 것 같아서 보기에도 무섭기까지 했단다.

‘선생님은 방구석에 있던 침대 위에 저를 앉히고는 부끄러워서 몸을 가리고 있는 것도 아랑곳 하질 않고 한참이나 계속해서 내려다 보고 계셨죠. 그러더니 저의 곁에 다가가 앉으셨어요. 저는 그때 남자가 그렇듯 커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시선을 가득 메우면서 내 앞을 가로막는 선생님의 가슴이 무슨 커다란 바위덩어리 같이 느껴졌으니까요. 저는 감히 선생님의 옷에 손끝 조차 제대로 댈 수 없었죠. 선생님은 제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옷이 벗겨지면서 나타나는 선생님의 육체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교실에서 보여지는 선생님의 외모는 단단한 체격일 뿐이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여지는 선생님의 체격은 그야말로 요즈음 화두로 떠도는 몸짱 이었던 거죠.’

그녀는 조금 기운을 차린 듯 싶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환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삶의 의욕을 되찾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주 보아 온 터였다.

““은영아! 사랑해, 아니 사랑하고 있었어. 너를 이렇게, 이렇게 꼭 안고 싶었지.””

그는 그녀를 안으면서 무척이나 행복해 하면서도 제자에 대한 연민의 심정 속에서 고뇌하는 빛이 역력했다고 했다. 겨우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나이의 연약한 제자를 여자로 대할 수 밖에 없는 몰염치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으로 인해 서로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지만 그는 내내 한숨과 통한으로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렸고…그런 그녀는 계속해서 눈가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괜찮다라는 말만을 했다고 기억했다.

‘선생님께서는 제 몸을 아주 천천히 쓰다 듬으며 계속해서 제 살 냄새를 맡고 계셨어요. 냄새에 민감한 제가 스스로 암만 맡아도 느낄 수 없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제 몸에서 아기들 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하셨죠. 끊임없이 저의 살을 핥고 또 핥고… 간지럽다는 말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저는 제 몸이 벌써부터 여자로써 반응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전 처음 느껴 본 남자의 살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죠. 살갗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그것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쾌감인 줄은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었고, 다만 남자와 살을 섞으면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구나 하는 미련한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스케치 북에 있던 그림처럼 선생님께서 제 위로 올라오시는 것이었어요. 제 두 다리 사이로 선생님의 털이 북실한 두 다리가 놓여지면서 내리 누르자, 제 두 다리는 그저 힘없이 벌어지고 있었죠.’

““은영아 좀 아플 거야. 아프면 얘기해, 그만 둘게.””

‘그렇지만, 저도 아프다는 얘기를 못했고 선생님도 그만두지는 못하셨어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챙겨주어야 하는 선생님과 제자의 사이가 더 이상 아니었기에…저는 눈 앞에 번개가 번쩍하는 것 같았어요. 아랫도리의 어느 한 부분이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았는데, 그게 사실은 선생님이 저에게 섹스를 시작하시는 신호였지요. 저는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었어요. 쓰라리고, 아프고, 가랑이는 있는 힘껏 벌어져서 두 다리는 공중에 댕그렁 매달렸는데,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거죠. 체육시간에 다리 찢기를 수 백번 했어도 그렇게 골반이 으깨지는 것처럼 벌어지면서 아픈 것은 처음 느꼈습니다. 젖가락 두 짝 사이에 손가락을 들이밀고 두 쪽을 갈라 놓는 것처럼 제 두 다리 사이에 선생님은 제 아랫도리가 쪼개져야 되는 것처럼 허리를 밀어대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이 뒤집혀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처럼 아름 다울 것 같았던 남녀간의 섹스에 대한 환상이 점차 무너져 갈 즈음에 엉덩이를 타고 흐르는 이상한 느낌에 저는 아픔이 조금씩 아련한 쾌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마찰음들이 아래 쪽에서 들려왔지만 저는 겁이 나서 도저히 고개를 들고 볼 수도 없었지요. 선생님도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시고 시트에 머리를 묻은 채, 제 가랭이를 뻐개놓듯이 허리를 내려 찍으시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주절거림과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고작 이었습니다. 아무런 동사도 형용사도 없이 선생님께서는 제가 대답을 하고 있는대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외쳐대고…모두가 그렇겠지만 여학생들은 자신의 음부를 자세히 살펴보는 일이 없어요. 가정 시간에 사람의 몸과 기초적인 성교육이 있기는 해도 오줌구멍과 경도가 같은 줄 알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으니까요.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이면서 선생님의 허리를 두 다리로 감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올가미에 잡아 넣듯이, 선생님은 저의 몸 안에 담겨 있고 저는 선생님의 몸이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할 것 처럼 두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선생님의 허리 뒤로 두 다리를 엮어서 조여 주고 있었던 것이죠.’

그녀는 창피한 것도 몰랐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이 순간 만은 잊은 것도 같았다. 그녀의 눈빛이 얘기 했었던 선생의 눈빛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은영아! 돌아 누워 봐.””

‘저는 선생님의 요구에 따라 숨이 차오는 것도 잊고서 엎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제 등이며, 엉덩이, 할 것 없이 온통 자신의 혀로 쓸고 다니셨지요. 게다가 제 등을 핥고 계실 때에 제 엉덩이를 건드리는 선생님의 성기를 처음 느끼고는 소스라 치게 놀라기도 했지요. 저는 사람의 몸 안에만 뼈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남자의 물건에도 뼈가 있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식했으니까요. 그러시더니 엎드려서 거의 정신이 나가있는 제 몸에 다시 체중을 실으셨습니다. 그 뼈다귀 같은 선생님의 성기가 제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면서 아직 쓰라린 느낌이 가시지 않은 제 아랫도리를 불로 지지는 것 같이 밀어넣는 통에 저는 다시 한번 참으려고 했던 비명 같은 괴성이 튀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죠. 저는 그러다가 잘못해서 더러운 제 항문에 선생님의 그 물건이 들어가면 어떻 하나 하는 걱정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깐, 제 몸 안으로 뒤를 통해 다시 한번 선생님의 물건이 치미고 들어왔습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물 같은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꼈는데 처음에는 피나 오줌이 흐르는 것으로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 물이 나오면 나올수록 제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으면서 아랫도리 에서부터 시작된 아릇한 감각이 온 전신으로 퍼졌습니다. 저는 입술을 물고 참으려고 했는데도 계속해서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 때문에 어쩔 줄 몰랐죠. 아픔은 이제 씻은 듯이 사라지고 선생님의 몸이 저의 엉덩이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그 율동으로 말미암아 저는 멀미를 하기도 했습니다. 숨은 계속해서 막혀오고 눈 앞은 점점 까매져서 까무라 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큰 소리로 부르시는 것이 들렸습니다. 저는 그와 동시에 제 몸 속으로 생전처음 남자의 정액을 받아보았죠.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그녀는 흡사 섹스를 한 사람처럼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붉게 상기된 얼굴을 수그렸다. 아마도 그녀는 그 얘기를 통해서 선생님과 있었던 그 당시의 뜨거웠던 감정을 맛보고 싶은 것 같았다. 이제는 병마와 싸우는 것도 지쳐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시계 초침처럼 달려가는 자기 자신을 이런 짧은 순간이나마 그 당시의 아련한 추억 속에서 잊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탁자의 액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쓰다듬듯이 액자의 표면을 쓸었다.

‘……그 당시, 선생님은 결혼 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저는 사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고, 사리분별이 어두운 아이였습니다. 사모님도 교직에 계신 분으로 목포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죠. 두 분은 그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야 하는 주말부부 셨고요. 저와 그분의 관계는 그때부터 계속 이어졌습니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야자도 빼먹고 선생님의 하숙집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 구요. 주말에는 선생님이 안계신 틈에 청소와 빨래도 하고, 밑반찬도 해서 냉장고에 쟁여놓고…신혼 부부 같은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고3이 되던 해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가족들의 이민결정이 내려 버렸습니다. 저는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대학을 꼭 가야 된다고 성화를 부려 저 혼자만 서울에 남게 된거죠. 아버지는 대학에 구지 다닐 필요 없이 이민 가서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지만 저는 극구 반대하면서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고 매달렸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있는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었지요. 유부남을 그것도 스승을 사랑한 것만해도 천벌을 받을 일인데 그 당시 제 안중 에는 사모님도, 가족도 없었지요. 그저 당돌하고 뻔뻔스럽게도 그 분 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들어가고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그 남자와 미친듯한 사랑을 했다고 했다. 아예 그 남자가 있는 하숙집으로 옮겨와서 바로 옆방에 있으면서 밤이면 온 잠을 설쳐가며, 그와 섹스를 하느라 수업을 빼먹기 일 쑤 였고, 어떨 때는 자신이 너무 소리를 치는 바람에 재갈을 문 채로 섹스를 한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턴가 선생님과 섹스를 하기만 하면 월경 때도 아닌데 피가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병의 시작인 것을 그 당시에는 까맣게 몰랐지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여름에 저는 실수로 선생님의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도, 기를 수도 없었기에 저는 낙태를 하기로 결심하고 병원을 찾아갔지요. 저는 의사선생님께서 내진을 하시고는 낙태는 반드시 해야 된다고 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심도 잠깐, 아무래도 내시경이나 초음파 검사를 해야 될 것 같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별거 아니겠거니 했는데 벌써 저의 왼쪽 나팔관과 자궁내벽 사이에는 양쪽의 살을 깊이 물고 들어가면서 폴립형의(물혹형태) 근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암세포에 대한 조직배양 검사까지 마치고 암이라는 판정이 내려지는 것은 고사하고 낙태와 함께 암세포의 전이를 사전에 예방 하기위해 자궁을 들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야 만 것이죠. 저는 담당의 앞에서 통곡을 하면서 호소 했습니다. 결혼도 아직 않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말할 수 있느냐고요’

그 의사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 경험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들 보다 암이 조기에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학회에 보고되어 있지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질 않았지만요. 조심하셨어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녀는 자궁을 들어내고, 2년쯤 있다가 연이어 드러나는 암증 으로 계속되는 수술과 재발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암세포가 임파선에 까지 전부 퍼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노라고 했다.

‘세상에는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들이 있는가 봐요. 이제 사 생각해보면 눈 벌겋게 뜨고 남편을 다른 여자의 품속에 뺏기다시피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모님의 눈물이 보이는 것도 같아요. 손 대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었죠. 신이 이 세상에 존재 한다면 그 꼴을 그냥 두지 않았겠지요. 저에게 여자로서 치명적인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석녀라는 운명을 지운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마무리를 하라고 하는 그 어떤 절대자의 존엄함 같은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길지도 않지만 제 인생을 되돌아 보면 그런 거 같아요. 저희 식구들이 살고 있는 곳의 겨울에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 있데요. 빙우 라는 것이죠. 맨 처음에 구름 속에서 결정이 될 때는 눈이었다가 대기중에 내려오면서 따뜻한 기류를 만나 비로 되었다가 땅에 닿기 전에 대지의 한랭한 기류를 다시 만나면 눈도 비도 아니고 얼음도 아닌 것이 내려서 온 땅을 얼음바닥으로 순식간에 만들어 버린 다는 것이죠. 제 인생이 꼭 그런 것 같아요. 눈으로 태어 났지만 눈으로도, 비로도, 얼음으로도 될 수 없이 땅에 내동댕이 쳐지는 그런 인생…’

나는 인생을 나 정도 살았음에도 훌쩍 성숙해져 있는 그녀의 인생관이 부러웠다.

‘이제 가 보셔야죠? 저녁이 다 되어가네. 다음 번에 뵐 때는 좋은 책 좀 하나 소개해 주세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제가 괜한 얘기나 한 게 아닌가 모르겠네.’

그들은 안다. 그들 앞에 놓여져 있는 인생의 여정에서 다음 번이라는 단어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회자정리라고 했던가, 인생은 그렇게 만나고 헤어짐의 사이에서 의미도 없이 방황하다가 제 갈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을…죽음이 오늘 저녁에도 매번 그랬듯이 그녀의 주위에서 서성거릴 것이고 그녀는 혹시 내일 아침 햇살을 안도의 한숨으로 맞이할 지도 모르지만 다음 번이라는 달콤한 기대에 무리수를 둘만큼 그녀와 나는 어리숙 하진 않다. 다만 먼저 갈 사람과 남겨져 더 살아야 하는 그 차이만이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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