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 5부

바이러스

이 석현 생명공학연구소 박사

강 인수 유전자공학연구소 박사

양 숙희 이 석현의 처

김 미연 강 인수의 처

떠돌이범죄자들



제5부 라마르크



“정말......,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물음이다. 내키지 않은 톤으로 강 박사가 천천히 말을 끝내자 마주 앉아 있던 서른 중반의 남자는 굳은 얼굴로,

“우리가 하지 않아도......”

잠시 끊었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해보고 싶은 욕구에 실험을 할 거야. 그렇다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고 우리가 먼저 시작을 해보는 게........”

“그래도 그렇지 잘못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될 텐데......, 아니 한 명이 아니지. 어쩌면 모든 게 엉망이 되고 애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볼 텐데”

‘그래도 하겠단 말이야?’는 꺼내지 않았다. 강 박사는 확신이 서지 않은 음성이다.

“한 사람? 한 명만 가지고는 안 되지. 한 열명은 해보고 싶지만 자네가 반대할 것 같아 세 명에게만 투입해볼 거야. 셋만 성공해도 충분해. 그 다음은.......”

이 위험한 실험을 그가 왜 그렇게 하려는 지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의 절망은 지금도 비수가 되어 몸 안에 박혀 있을 정도니까.



이 석현과 강 인수는 미국 유학 중에 만난 친구사이다. 그 전에는 사실 서로를 모를 정도로 연구와 강의실에만 틀어박힌, 그러니까 곰팡이 냄새만 폴폴, 나는 공부벌레들이었다. 전형적인 과학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 따위는 남의 세계의 일이었다. 학업에 충실한 둘에게 기회가 온 것은 70년대 당시의 국비유학생 선발이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우수한 성적만치 다른 나라들 천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우수하게 마친 둘이다. 돌아와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그래도 화학약품 냄새나는 연구소였을 뿐 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둘은 그것이 좋을 뿐인지 미국 유학에서 목표로 삼았던 유전자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 박사의 연구는 인간이 과연 진화를 하는 데 어떤 단백질이 어떻게 쓰여 지는가, 요즘 말로 하면 DNA 연결 구조 연구였고 강 박사는 진화와 인간 심리의 발달이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인간을 다룬다는 것이고 진화의 비밀을 깬다는 것이다. 특히 이 석현 박사는 다윈의 진화론보다 그보다 먼저 나왔던 라마르크의 진화론에 더 관심을 가졌다. 뛰어난 연구가였고 실험 끝에 이론을 내놓은 그였지만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던 라마르크. 오히려 신의 선택설에 뒷전에 밀린 그의 진화론은 나중에 다윈에 의해 다시 빛을 보았지만.

만약 인간이 머리만 계속 쓴다면 머리만 커질 것인가, 주먹을 계속 쓴다면 주먹이 한정 없이 커질 것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설명이 되지만 사람에게는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시인이나 네안데르탈인의 뇌를 비교하면 그 크기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틀리지는 않았다.

강 박사는 주로 심리적인 데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심리는 어떻게 변화되고 욕구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갖고 싶은 것을 가지면 됐지 인간들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고 그것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얼른 되지 않았다.

“만약 그 말대로 사람들이 눈을 많이 쓴다면 눈이 더 좋아야 되는 거 아냐? 그런데 눈은 더 나빠지지 않아? 그의 이론은 틀려.”

“틀리다고? 아니지. 사람들은 그래서 안경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강 박사 연구가 바로 그런 거 아냐? 망원경을 만들어내고 현미경을 마들어 내고 잠망경을 만들고 말이야.”

둘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 둘에 관련된 것이었다. 왜? 왜 그럴까? 과연 그럴까? 결론이 없는 대화는 하나의 사건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둘이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가을 단풍에 굶주린 것인지 선선한 바람을 쐬고 싶어서 인지 문득 자신들이 살고 있던 대덕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태조산으로 산행을 간 것이다.

높지는 않으나 오밀조밀한 길이 여성스러움을 주었다. 입구의 큰 은행나무에서 가을을 엿보며 연구실의 답답한 공기를 폐에서 마음껏 내뿜었다. 즐거운 가을행을 느낀 것은 좋았지만 초행길의 미숙함이 큰 실수를 가져왔다. 가을 산의 해는 너무 짧게 졌다. 서둘러 산을 내려와 입구의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차의 시동을 걸 때는 주위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을 뿐 그 많던 사람들은 어둠에 쫓겨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야, 이거 늦은 저녁 새참이 지발로 걸어 다니네, 응”

듣기에도 불량스러운 목소리에는 취기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 손에는 야구 배트라든가 체인 따위가 붕붕 소리를 내는 게 보였다.

“뭐야? 너희들”

제법 강단이 있는 강 박사가 일행을 뒤로 감싸며 나섰다. 싸움이나 힘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기 어려운 그다. 더구나 지금은 사랑스런 아내가 있었다. 이 놈들의 목표는 뭔지 몰라도 돈이나 달라는 것이겠지, 하는 판단에서였다.

“이 말라비틀어진 새끼는 뭐야? 이 새끼가 죽으려고 색 쓰나”

나이가 한창 아래인 네 놈 중에 덩치가 큰 놈이 쌍말을 날리며 앞으로 나섰다. 바닥에 침을 한번 뱉곤 그대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비명소리는 강 박사의 처 미연에게서 먼저 나왔다. ‘악!’ 눈을 크게 뜬 미연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진 남편을 끌어안았지만 머리를 크게 다친 강 박사는 정신을 잃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저 새끼도 보내버려”

보내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박사도 곧 알았다. ‘퍽’ 하며 뒤통수에 떨어진 배트는 이 교수를 바람 빠진 풍선으로 만들었다. 피시시, 소리를 흘리며 바닥에 무너졌다.

“여보!” 숙희 역시 미연처럼 남편의 몸을 붙잡으며 흔들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봐 아줌씨들”

“아줌마가 아닌 가 본데, 처녀들인가?”

두 놈이 이죽거리며 다가서자 미연과 숙희는 무릎걸음으로 뒤로 피했다. 몸을 빼면서 주위를 돌아봤지만 멀리 가로등이 있을 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미연이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눈앞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 말도 안돼는 일이다, 짐승들이 아닌 다음에야 멀쩡한 사람의 머리를 후려칠 수 있다는 말인가.

“더 질러, 응? 더 질러 봐. 아가리에 칼을 쑤셔 줄 테니까”

“아니 좆을 박아주지 뭐. 정말 미치도록 좋아할 걸”

“목을 따 버려”

덩치가 큰 놈이 나서며 서늘하게 내뱉자 미연과 숙희는 등을 타고 흐르는 소름을 느꼈다.

“이 놈들이 니들 놈팽이야?”

“.........”

“놈팽이가 아니면”

“나, 남편이에요”

“남편?”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덩치가 제일 큰 놈이 미연의 머리를 휘어잡고 들어 올렸다.

“아, 아야”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아서인지 머리가 빠져나갈 정도로 아팠다. 비명소리는 크게 내지도 못했다. 목을 따버린다는 한 마디가 모든 저항을 뺐어갔다.

“니 남편들은 죽지는 않을 거야. 안심해. 우린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나쁜 아이들은 아니거든. 대신에 이 귀여운 입술을 우리에게 좀 주면 좋겠어.”

“아, 안 돼요. 하지 마.”

“뭘? 뭘 하지 마. 뭘 할지 니들이 알어?”

바람을 가른 소리가 미연의 귀에 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가 미연의 엉덩이에 ‘팍! 소리를 냈다.

“악!” 오줌을 지릴 만큼 통증이 엉덩이를 타고 얼굴로 흘렸다. 핏기가 사라진 듯 하얀 얼굴이 밤에도 보일 정도다.

“때리지 마세요. 시키는 대로 할 게요”

“너도?”

숙희를 쳐다보자 그녀 역시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군. 요즘 여자들은 참 문제야. 고분고분 한 맛이 없어. 이 새끼들은 차 안에 쳐 넣고 철수하자”

덩치가 큰 청년은 미연의 머리채를 끌고 마른 체격의 청년이 숙희의 어깨를 싸안으며 마치 연인처럼 끌어당긴 자세로 주차장의 옆길로 들어섰다. 여자들의 울음소리와 발소리만 간간히 어두운 숲길에 들렸다. 3여 분을 걷자 텐트 같은 게 나타났다. 숲 속에 쳐 놓은 텐트는 밖에서는 쉽게 눈에 뜨이지 않을 것 같았다. 네 명이 며칠이고 지낸 탓인지 안은 엉망이었다. 먹다 남은 라면이며 소주병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바닥을 손으로 치우고 둘을 무릎 꿀린 채 앉혔다.

“여기는 세상과 단절된 곳이야.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갈 곳이 없다는 애기지. 알만한 대가리라서 얼른 알아들었을 거야. 가끔 모르는 대가리들은 빠따로 맞아야 알아차리더라구. 답답한 인간들이지”

“아, 알았어요. 때리지만 마세요.”

“불빛에 보니까 얼굴이 곱상한데. 아까 그 세끼들은 호강을 했었구만. 이런 미인들을 매일 밤 품에 안고 뒹굴었다니 부럽네, 씨팔”

“임마 우리도 이젠 부럽지 않지. 니 남편들하고는 비교도 안 돼는 좆대가리로 깊게 쑤셔줄테니까. 좋아?”

“흑, 흑”

숙희는 정신이 없었다. 지금 이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알고 눈물만 그렁, 할 뿐이었다.

“내가 먼저 할까?”

아까 미연의 머리채를 잡아끌던 덩치 큰 놈이 세 놈을 밀며 미연을 일으켜 세웠다.

“벗어”

“아, 안돼요”

“싫으면.......”

바닥에 놓인 몽둥이를 집어 들자 미연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계속 도리질을 했다.

“제발, 그것만은......”

“이 아줌마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이런 씨팔”

허벅지를 후려치고 다시 쓰러진 미연의 등을 때리려고 하자 숙희가 단발마를 내며

“하지 말아요. 때리지 말아요. 이러면 안돼요”

“이런 씨팔년들이 정말 화를 돋구네.”

숙희의 등을 후려치고 계속 미연의 허벅지를 후려치자 그때서야 둘은 손을 비비며

“아, 알았어요. 버, 벗을 께요. 때리지만 말아줘요, 흑, 흑”

“대가리가 돌아간 년인 줄 알았더니 영 안돌아간 년들이구만. 하나씩 벗어 봐.”

숙희가 부랴부랴 떨리는 손으로 청바지를 벗어 내려가자 미연도 재킷을 벗으며 스웨터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램프 빛에 드러난 성숙한 여체는 네 놈의 눈빛에 침을 질질 흘리게 했다. 통통한 가슴의 빵빵한 유방, 처녀 같은 잘록한 허리, 엉덩이는 얼마나 큰지 네 놈이 핥아도 다 못 핥을 것 같았다.

“손 치워. 이 년들아”

이번에는 미연이 먼저 손을 허리 아래로 내렸다.

“뒤로 돌려”

마지막 부끄러운 곳까지 드러낸 둘의 뺨은 부끄러움에 벌겋게 물들었다.

“야, 저 털 봐라. 이 숲하고 똑 같네”

“임마 털보다 저 갈라진 보지를 봐라. 한번도 좆대가리를 만나지 못한 것 같지 않냐?”

“후후후, 역시 잘 골랐군. 우린 오늘 굶주려 있었던 참에 아무나 낚아채려고 했거든. 그런데 신은 기다린 사람에게 복을 준다고 이런 복을 주다니, 좃나게 고맙기만 하군. 그건 그렇고 까 봐”

“네?” 하는 얼굴로 미연과 숙희가 동시에 얼굴을 들자

“까란 말이야. 밤송이 까듯 두 손으로 까라고. 그냥 하면 재미가 없잖아. 우리가 까줄까? 우린 칼로 까는 버릇이 있는데......”

“아, 알았어요. 할 게요”

이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들에게서 행운을 바란다는 것은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들여보내기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았다. 두 손가락으로 살짝 벌리자

“더 벌려. 내 좆이 꼴리게 냄새를 팍팍, 풍기란 말이야”

“흑, 흑”

참을 수 없는 수치감에 미연과 숙희는 얼굴을 꼬고 눈물을 흐렸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치부를 이런 어린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고통스러웠는데 거기다 자기 손으로 음순까지 벌려야 한 것이다.

“스발, 이제 꼴리기 시작하네. 나도 한 물 갔나, 이젠”

바지와 팬티까지 한번에 벗은 덩치 큰 놈이 둘을 다시 무릎 꿇렸다.

“내가 먼저 할 테니까 기다려, 알았어?”

이 놈이 대장인지 다른 놈들은 한마디도 못 하고 뒤로 물러나 텐트를 나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이런 모습을 한 명면에만 보여준다는 것이 마음의 위안이었다.

“빨아”

흉물스런 물건을 흔들거리며 둘의 얼굴 가운데 놓은 그 놈은 둘에게 동시에 빨라고 시켰다. 하지 않으면 또 때릴 것이다. ‘쯥’ 소리가 나도록 둘은 혀를 내밀어 핥았다.

“니 년부터 빨아봐,”

미연에게 마음이 있어서인지 물건을 손에 받치고 미연의 입에 쑤셔 넣었다. 울컥!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솟아 나왔다. 비릿하고 시큼한 물건은 남편의 그것과 달랐다. 애정이 깃들지 않은 남자의 물건은 흉기라는 말이 맞다. 짐승의 그 냄새다.

‘쭛, 쭛‘ 침으로 질퍽한 물건을 이번에는 숙희가 빨기 시작했다. 미연은 고게를 떨구고 보지 않으려 했지만 머리를 끌어당기자 볼 수밖에 없었다. 분홍 입술을 벌려 붉으죽죽한 물건을 빨고 있는 숙희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었다. ’꺼억‘ 하고 목울대를 울렁거린 숙희는 얼굴을 뒤로 빼며 숨을 헐떡거렸다. 뭔가 물렁한 것이 목을 타고 흘렀기 때문이다.

“기분 끝내주는 구만. 그럼 본격적으로 우리 놀아볼까?”

다시 미연의 머리채를 끌어 거꾸로 눕혔다. 엉덩이를 들고 네 발로 기는 모습이다.

“오늘 니 년들은 새로운 테크닉을 배우는 거야. 앞으로도 남편들에게 많이 해주라고. 엉덩이 더 들어, 이 년아”

천천히 몸을 밀고 당긴 덩치 큰 남자는 흥분을 참을 수 없던 탓인지 깊게 박아 놓고는 미연의 등을 팔로 안았다. 통통한 유방을 주물거리며 입술로 목 뒤를 핥았다.

‘헉, 헉’ 뒤에서 파고 든 남자의 물건이 속을 뚫고 들어오자 미연은 고개를 젖히며 들썩였다. 바닥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게 보였다. 아픔인지 희열인지 모르지만 연신 신음을 흘리며 할딱거렸다.

숙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것이다. 그 남자는 길게 뻗은 두 다리를 양손으로 들어 어깨에 걸치고 몸무게를 실어 눌렀다.

“악!” 통증이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이제 처음으로 성교를 한 처녀는 아니었지만 활짝 벌어진 가랭이 사이를 뚫고 들어온 물건은 살갗을 찢어낸 아픔을 주었다.

“그, 그만. 멈춰요”

숙희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남자의 가슴을 밀었다. 눈물이 핑그르 날만큼 고통스러웠다.

“좋으면서 왜 그래 이 아줌마가”

느물거린 표정으로 덩치는 ‘푹, 푹’ 소리를 내며 찍었다. ‘아! 악!’ 뺄 때는 아픔이 덜했지만 다시 깊게 박을 때는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아팠다.

덩치가 나가자 둘은 바닥에 그냥 뻗어 있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겨우 시작이었다. 다른 세 놈이 몇 바퀴 돌아서야 비틀거린 몸으로 텐트를 벗어났다. 걸을 수 없을 지경으로 아래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둘은 손을 잡고 숲길을 더듬어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또 붙잡히면 그 때는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 판이었다.



그 날 이후로 이 박사는 말이 줄고 강 박사와도 소원했다. 자신의 힘이 약해서 아내가 그런 심한 꼴을 당했다는 것도 자책감 탓인지는 몰랐지만 실험실에 묻혀서 날을 보낼 뿐 보기 조차 어려웠다. 그렇다고 강 박사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은 안하지만 표정으로 보아 여자로서 심한 꼴을 당한 것만은 분명했다. 경찰과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텐트는커녕 휴지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이 놈들은 이렇게 떠돌아다니면서 그딴 짓만 하는 전문적인 놈들 같습니다.”

“붙잡을 수는 없나요?”

“글쎄요, 붙잡기는 하겠지만 언제가 될지......”

경찰의 말은 다시 범죄를 저지를 때 운이 좋으면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거다. 병원의 진찰 결과는 전치 6주였다. 너무 심하게 훼손돼서 피부 조직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죽일 놈들.......”

죽일 놈들이지만 죽일 방법이 없었던 이 박사와 강 박사는 아내를 위로하며 잊자고 할 뿐이었다.



“내가 새로 합성한 DNA야. 들개의 유전자와 저번에 사형집행당한 강간살인마 있지? 그 놈 유전자를 구해와 서로 합성한 것이야. 들개의 염색체 배열에 그 놈의 염색체를 강제로 끼워 넣었어. 별로 트러블은 일어나지 않더군.”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의 DNA를 추가로 합성했다는 이야기는 뺐다. 이 유전자가 주입된 놈은 어디에 있든 자신의 신경계와 연결될 것이다. 그 놈이 느낀 생각이나 감정, 행위는 곧 그에게 전달되게 만든 것이다.

- 일명 M프로젝트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며 얼마나 진화할 것인가? 이 게놈을 주입 받은 인간은 그 두 개의 특성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사실 80 년대의 당시 과학 수준으로는 염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지만 미국에서의 연구와 이번 사건의 계기가 크게 작용된 것만은 틀림없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강 박사도 차츰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사건이었다. 인간의 심리상태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그렇게 짐승처럼 변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강 박사는 이 박사가 건네 준 DNA에 심리적 발달을 유도하는 물질을 가미했다. 정의보다는 불의. 도덕보다는 파멸의 요소, 양심보다는 욕구에 충실한 충동심. 타인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기심 등을 DNA 게놈지도를 펼쳐 넣고 전기적인 자극과 순차적인 화학반응을 주었다.

과연 라마르크가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은 한번 사용한 신체나 생각한 심리가 계속 발전할 것인가?

그 대답은 기다리면 나올 것이다. 가만히 앉아 신문과 방송을 지켜보면 된다. 만약 성공하면 이 물질을 공기 중에 퍼뜨리면 끝이다. 액체를 기화시켜 인간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을 바이러스로 만들어 뿌리면, 아니 액체 그대로 상수원에 뿌리면 이 물질은 사람들 속을 파고들어 그야말로 짐승의 세계가 될 것이다. 서로 죽이고 강간하고 빼앗고 세상은 폐허가 될 것이다. 복수다. 당한 것보다 수십만 배 더 크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아내의 아픔과 자신의 상실을 대신 보상받는 것이다. 공멸의 세계로.......



“이거네”

강 박사는 세 개의 작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하얀 액체를 이 박사에게 건넸다. 주사기로 담아 약처럼 넣으면 그만이다.

“고마워. 우린 과학의 진전을 100년은 더 일찍 가깝게 할 거야.”

“그런데 만약 실패하면.......”

“실패는 없지. 성공을 해도 세상의 실패고 실패를 해도 세상은 그대로이니까. 어차피 이 세상은 실패한 세상 아닌가.”

“산부인과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신생아의 팔에 주사를 꼽으려면 아는 병원이 있어야 되니까.

“내가 아는 선배가 청주에서 산부인과를 하고 있지. 그것은 걱정 마”

“실험의 효과는 동시에 비슷하게 태어난 아이들에게 해야 할 텐데.....”

“걱정 마. 거기 병원은 크니까”

병원을 찾은 이 박사는 선배에게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시민 민주화와 선배의 주 관심사인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

“미술은 역시 아프리카야. 피카소도 처음에 아프리카 인형을 보고 영감을 떠올렸다고 하잖나. 이상하게 큰 눈, 머리 뒤에 붙어 있는 눈과 입, 아무려면 지금의 미술은 모두 아프리카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거지, 하하하”

“선배님 말씀이 맞을 것 같군요. 아직도 피라미드의 건축학을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럼 그것뿐인가. 이브의 원 고향이 아프리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세계 인류의 조상이 바로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지”

‘하지만 지금 아프리카는 어떤데요? 우간다 같은 대량 학살과 남아프리카처럼 인종정책이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어디든 망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선배’

이 석현은 속으로만 대꾸하며

“그런데 혜란은.......”

혜란은 선배의 큰 딸이다. 배우처럼 윤곽이 또렷한 미모에 늘씬한 몸매는 남자들의 시선을 뜨겁게 받기에 충분했다.

“아마 학교에서 임상실습을 할 걸. 게도 산부인과를 택했지, 하하하”

그리고 그 날 밤, 미리 철저하게 준비를 해두었던 것처럼 한 아이씩 골라 쉽게 주사를 놓았다. 모두 세 아이.

잠에 빠져든 세 아이의 얼굴은 맑고 고왔지만 이 박사에게는 실험용 흰쥐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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