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이런 년입니다


왕자지 밤바다 저

 

 

 

 

 

세월은 동지섣달 저수지 얼음장 쩡쩡 갈라지듯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갈라지며 무섭게 10년을 달려왔습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어려운 집안 입 하나 줄이자고 신랑 얼굴도 안보고 시집 와서 농사 일 시작하고 이듬 해 경운기 몰다가 논두렁에 쳐 박혀 죽은 남편 덕에 신랑 잡아먹은 년 되어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다가 남편 죽은 지 6개월 후에 그나마 손 귀한 집에 아들 하나 낳아주고 좀 사람대접 받는 가 싶었더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 한 돌을 나흘 남기고 뇌에 바이러스가 들어가 고열로 세상 떠나가 버린 뒤로 남편 잡아먹고 그도 모자라 아들까지 잡아먹은 아귀 같은 년이 되어 저주 받은 10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초롱초롱 오이꽃 위에 빛나는 이슬 같던 우리 아들의 눈빛은 나의 안식이었고 방실방실 웃던 그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 내 눈 속에 들어와 있었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 떠나 보내고나니 날 아들 잡아먹은 귀신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고 나에게 돌을 던지든 똥바가지를 뒤집어 씌우든 난 그저 죄진 년이었습니다.

 

 

 

난 죄 많은 년입니다.

 

 

 

아들 죽고 1년을 돼지처럼 살았습니다. 개처럼 먹었고 소처럼 일했습니다. 그리고 폐병으로 피를 토하는 내게 시어머닌 옷가지 몇 벌 보자기에 싸서 미친개 ?아내듯이 ?아내고 칼바람 맞는 내 등 뒤로 소금을 뿌려대었습니다.

 

 

 

시골 버스 터미널 대합실 설날을 몇 일 안 남긴 겨울 밤 콘크리트 바닥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내 몸을 서서히 얼려가고 있었습니다. 난 거기서 그렇게 한 많은 인생을 마치고 먼저 간 우리 신랑, 귀여운 우리 아들 만나러 저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 목숨은 참으로 질기더군요.

 

 

 

죽지 않으니 또 살게 되는 게 이 보잘 것 없는 년 명줄이어서 누군가 빵 한 조각 던져주니 기를 쓰고 먹고 살려고 애를 쓰게 되더군요. 죽고 싶었는데 미치게 죽고 싶었는데 그리운 남편 자식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서 미치게 죽고 싶었는데 이승에서 붙잡아 메는 이 거미줄 같은 생명줄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내 질기디 질긴 생명줄 파리 목숨보다 못 한 거지만 지난 10년 기를 쓰고 살았습니다. 남편 잡아먹은 년. 아들 잡아먹은 년. 버러지보다 못 한 이 년의 목숨이지만 기를 쓰고 살아서 세상에 먼지 만큼이라도 좋은 일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더군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년이고 제일 죄 많은 년인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시장에서 쓰레기 줍고 새벽 부둣가에서 생선 다듬고 막노동해서 작은 국밥집을 하나 열었습니다. 돈 벌어서 무엇에 쓰랴....... 내 산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면 그만이지...... 지나 가던 거지들은 다 불러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씩 먹여 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네들 아침 저녁으로 밥 한 사발씩 가져다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 덕에 시장 구석의 국밥집에 밤이면 온 동네 거지들이 다 몰려 왔고 가게 구석에 합판 하나 깔아놓고 자던 내 잠자리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난 가게 바닥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불쌍한 자식들. 엄마 아버지한테도 버림 받고 집도 절도 없이 시장 구석에서 떨며 자는 그 애들이 불쌍해서 하나라도 더 가게 안에 들여서 재울 수 있으면 재우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하루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저는 15살 먹은 만득이 녀석이 피투성이가 되어 밤늦게 가게에 찾아 왔습니다. 동네 애들에게 두들겨 맞고 온 게 틀림없었는데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그 녀석 물 데워 깨끗이 씻겨주고 국밥 한 그릇 말아주었습니다.

 

 

 

밥을 먹이고 구석 합판 위 잠자리에 그 녀석을 재우고 그 아래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려는데 굳이 아래 내려와 내 옆에서 자겠다고 보채는 녀석이 하도 불쌍해서 나도 침상 위로 올라가 그 녀석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습니다.

 

 

 

피곤한 내 몸뚱이는 언제나 등을 바닥에 붙이기만 하면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 만득이 녀석이 내 품 속을 파고들며 젖가슴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불쌍한 녀석 얼마나 엄마 품이 그리웠으면.......

 

 

 

만득이 녀석은 조물락 조물락 젖가슴을 주무르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을 내 바지 고쟁이 속으로 넣어 사타구니를 쓰다듬더니 이내 팬티 고무줄을 당기고 그 속으로 한 손을 쑥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곤 내 보지 검불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기를 쓰고 손가락을 내 가랑이사이로 밀어 넣으려 했습니다.

 

 

 

그 녀석 손을 잡아채서 도대체 어린 놈이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칠 수도 있지만, 몸도 성치 않은 15살 먹은 어린 녀석이 떠돌이로 세상 돌아 댕기며 살았어도 그래도 그것 만은 배웠구나 하는 대견한 마음이 오히려 들었습니다.

 

 

 

어려서 말랑말랑한 엄마젖이나 빨 던 기억은 있을까? 덕지덕지 얼굴에 때칠을 하고 다니는 녀석을 누가 한번 안아주기나 했을까? 배고픈 줄만 알았지 그 맘 속에 여자 한번 안아보고 싶어하는 맘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는데.......

 

 

 

“만득아, 만지고 싶니?”

 

“네에”

 

 

 

고개도 못 들고 개미 소리만 하게 대답하는 그 녀석에게 나는 속 고쟁이를 벗고 팬티마저 벗어 던지고 만득이의 손을 끌어다가 내 가랑이 사이에 넣어 주었습니다.

 

 

 

“만지고 싶으면 실컷 만져보렴.”

 

 

 

남편 잡아먹고 아들까지 잡아먹은 이 년의 몸둥아리는 이미 그 겨울날 얼어붙은 대합실에서 버려진 몸둥아리였는데 뭐 누구라도 그저 이 몸둥아리 한번 만져보겠다면 못 내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깨끗지도 못 한 이 년의 보지를 한참이나 주물럭대던 만득이 녀석이 자꾸 몸을 움직여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엎드리려고 아등바등 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오더군요.

 

 

 

만득이 녀석이 내 속이나 알고 저러는 걸까? 이 년 몸둥아리는 시장 바닥 쓰레기보다 못한 몸둥아린데 그래도 저렇게 이 년 추잡한 살구멍 속에 고추 한번 넣어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서 한번 못 줄 것도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만득아, 하고 싶어?”

 

“네에”

 

 

 

신랑 죽고 근 8년을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 년 몸둥이에 보지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못 쓰게 망가진 이 사지육신 중에 뭐라도 다른 사람에게 줄게 있다면 다 줘버리기로 했습니다.

 

 

 

가랑이를 쩍 벌리고 사타구니 가운데로 만득이를 무릎 꿇게 하고나서 그 녀석 고추를 붙잡아 내 살 속에 파묻어 주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 년 보지는 썩어버리지 않고 어린 놈 단단한 고추가 들어오니 그것도 보지라고 물이 흘러나오더군요.

 

 

 

그래, 가랑이 찢어진 살집 속에 니 어린 고추 박아 넣고 마음 속 먼지 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으면 니 맘껏 박아 넣으렴. 내 몸은 이미 버려진 몸인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네게 쓸모가 있으면 실컷 박아보려므나.

 

 

 

소아마비로 저는 한 다리 땜에 기우뚱거리면서도 악착같이 자지를 내 보지에 박아넣으려는 녀석이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내 두 다리로 그 녀석 허리를 휘감아 잡고 녀석이 보지 구멍에 잘 쑤셔 넣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 잡아 먹은 이 년 자궁 속에 죽은 아들을 다시 넣어 품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득이 녀석 자지 끝이 내 자궁 깊숙이까지 들어와 잘 박히도록 엉덩이를 끌어 잡아당겨 주었습니다.

 

 

 

다 마치고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 옆으로 누운 만득이 녀석 자지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밑물을 했습니다. 이 못쓸 년의 보지는 그래도 그날까지 매달 달걸이는 어김없이 찾아온지라 혹시나 싶어 밑물을 해서 씻어냈지요.

 

 

 

그리곤 침상에 올라와 만득이 녀석에게 사과 하나 깍아 먹이며 그 녀석 얼굴을 쳐다 보니, 볼이 벌겋게 되어서 달아 있는 녀석 얼굴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이 묻어 있었습니다.

 

 

 

“좋아?”

 

“네에”

 

 

 

그렇게 좋아하는 만득이 녀석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나게 좋았습니다.

 

 

 

“만득아, 너랑 나랑은 이제 아주 깊은 사이가 된 거니까. 앞으론 나를 아줌마라고 하지 말고 엄마라고 부르렴.”

 

“정말요?”

 

 

 

그렇게 만득이 녀석을 아들처럼 대해주며 먹이고 재우고 때론 용돈도 주고 설득해서 얼마 안 있어 만득이 녀석은 재활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자동차 수리기술을 배우며 요즘도 가끔 나에게 휴가를 내어 찾아오곤 합니다.

 

 

 

“엄마 보지에 박고 싶었지?”

 

“네에”

 

 

 

날 찾아오면 어김없이 녀석은 내 보지를 탐했고 나는 허물없이 만득이에게 내 보지를 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득이 녀석에게 내 보지를 처음 내어주었던 것이 2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이후로 나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생겼습니다.

 

 

 

상처 받은 아이들 그 마음을 어디서 위로 받지 못 하는데, 국밥 한 그릇으로 배고픈 건 해결할 수 있다지만 사랑에 굶주린 그 가슴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다면 내 몸이라도 다 주고 그 맘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어쩌다가 아이 하나 데리고 자는 날이 있으면 한 달에 한 두 번 꼴로 아이들에게 내 몸을 주었는데, 차차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일 주일에 서너 번이던 것이,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내 보지를 내어 주어야 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동네 2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매일 하나씩 불러서 먹이고 씻기고 밤이면 내 보지를 내어주는 일이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고 보니 본격적으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아예 불임 수술을 하고 왔습니다.

 

 

 

생리를 하는 몇 일 동안 아이들에게 보지를 내어주는 걸 쉬어야 하는 것도 아쉬워서 피임약을 먹으며 생리도 아예 몇 달에 한번만 하도록 조절해가며 난 열심히도 동네 거지 아이들에게 내 몸을 주었습니다.

 

 

 

시장 국밥집 30촉 노란 전기다마 불빛 아래 치마를 들춰 올리고 허연 가랑이를 벌리고선 동네 아이들에게 보지를 실컷 박아대도록 다 주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박아주던 걸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아침이건 대낮이건 아이들이 오기만 하면 얼른 문 걸어 잠그고 아이들이 원할 때마다 내 보지를 벌려 주었습니다.

 

 

 

“엄마 나 왔어요”

 

 

 

아이들은 그렇게 찾아와서 나를 부르곤 했는데, 난 한 녀석 한 녀석 모두 내 아들 같아서 얼른 불러들여 품에 안아주고 국밥 한 그릇 먹이곤 얼른 치마를 들춰 주었습니다. 그리고 맘껏 하고 싶은 대로 내 보지를 입으로 빨아대든 손으로 벌리고 쑤시든 자지를 박아대든 내 버려두었습니다.

 

 

 

다만 일이 끝나면 난 그 아이들에게 꼭 한 가지 다짐을 받곤 했지요.

 

 

 

“우리 아들, 이제 걸벵이 짓 안 하는 거야. 알았지? 담에 오면 나랑 약속하자. 재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난 아이들이 내게로 다시 찾아오길 기다려서 설득하고 설득해서 2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재활원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중에 자칭 왕초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9살 먹은 그 아이의 이름은 두식이였는데 그냥 애나 어른이나 그 아이를 ‘두시기 두시기’ 그렇게 불렀습니다.

 

 

 

두식이는 나한테 와서 국밥 한 그릇을 얻어 먹어도 돈을 내고 먹는 손님 보다 더 큰 소리를 치며 밥을 얻어 먹었고 내가 집어 주는 용돈 몇 푼을 당연히 받아가는 자릿세인 것처럼 받아다가 오락실에서 다 써버리곤 했습니다.

 

 

 

때때론 아침 장사도 하기도 전에 찾아와서 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르기도 일쑤였지요. 난 그래도 그 아이의 심성은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회가 그 아일 그렇게 만든 것이지 그 아이는 처음부터 그런 나쁜 심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두식이는 피해자이지 가해자는 절대 아니라고 믿었지요.

 

 

 

그래서 그럴수록 그 아이에게 더욱 잘 해주었습니다. 두식이의 마음에 작은 불꽃 하나라도 피워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천원 줄 걸 그 아이에게 2천원 주고 밥 먹을 때 반찬 하나라도 더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를 설득해서 가게에 재우고 내 몸도 주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두식이는 거지 아이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는 시장 뒤 창고 건물에서만 잠을 자고 절대로 우리 가게에서 자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일 동안 두식이가 시장에 안 나타나길래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두식이가 아파서 창고에 그냥 쳐 박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녁 장사를 준비하다말고 국밥하고 반찬을 쟁반에 담아 싸가지고 그 창고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창고 한쪽 구석 먼지에 찌든 이불 위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열이 나서 펄펄 끓고 있었고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목소리는 쉬어서 말도 제대로 하질 못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두식이에게 국밥을 말아서 몇 숟가락 먹이고 나서 시장 약국에서 약을 지어와 먹여주고는 가게로 돌아와 저녁 장사를 마치고 깨끗한 수건 몇 개를 물에 적셔서 들고 얼른 다시 두식이에게 찾아갔습니다.

 

 

 

찬 수건으로 두식이의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열이 나는 몸을 식혀 주려고 윗옷을 벗기고 온몸을 찬 수건으로 문질러 주었습니다.

 

 

 

두식이의 눈가에 젖어드는 눈물.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두식이의 눈물을 보고 나는 두식이를 안아주었습니다. 불쌍한 녀석.

 

 

 

“두식아, 힘들지?”

 

 

 

내 말에 두식이는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더 꼬옥 두식이를 안아 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두식이의 그 마음에 내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날 밤 나는 가게로 돌아오지 않고 두식이 옆에 누워 두식이를 끌어안고 그 찬 바람 이는 창고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다 깨어진 창문으로 휘휘 들어오는 찬바람을 내가 다 막아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쪼무라기 걸벵이 아이들은 이미 초저녁에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찢어진 담요를 끌어다 덮고 자고 있었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두식이를 품 안에 끌어안고 자다가 손으로 두식이의 이마를 짚어 보았습니다. 열은 다행이도 다 내린 것 같았고 낮에 심하게 하던 기침도 많이 가라 앉은 듯 숨을 고르게 쉬며 내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옆에 자고 있는 두식이의 손을 끌어다가 내 젖가슴 속에 넣어주었습니다. 두식이는 자고 있는 듯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두식아, 자니? 자아, 만져 봐바.”

 

 

 

난 두식이가 안 자고 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 젖가슴 위에 집어 넣은 두식이의 손을 내 손으로 붙잡고 두식이가 맘껏 이 년의 그나마 쓸모 있을 것 같은 젖가슴을 주무르도록 해주었습니다.

 

 

 

처음엔 자는 척하던 두식이는 주물주물 내 젖가슴을 주물렀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두식이의 다른 한쪽 손을 끌어다가 내 팬티 속 사타구니 사이에 넣어 주었습니다.

 

 

 

“너 안 자는구나? 여기도 만져볼래?”

 

 

 

두식이는 한 손으로 내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다른 손으로는 내 보지를 주무르다가 손가락 하나를 보지 구멍으로 쑤우욱 집어 넣었습니다.

 

 

 

“너 여자 보지구멍 처음 만져보니?”

 

 

 

두식이는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우리 두식이, 아줌마 보지에 자지 넣어볼래?”

 

 

 

두식이는 고개를 두 번이나 빠르게 끄덕끄덕 거렸습니다.

 

 

 

“그럼 이렇게 해 봐바”

 

 

 

나는 두식이를 똑바로 누이고 두식이의 바지를 벗겨 내렸습니다. 그리고 팬티를 벗기고 나니 빳빳하게 치솟은 두식이의 자지가 천장을 향해 꼿꼿이 치솟아 올라와 있는 것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가로등 불에 실루엣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젖은 수건으로 두식이의 자지 구석구석을 다 닦아내어주고 그 녀석의 꽤나 볼품 있게 큰 자지를 손으로 거머쥐었습니다. 서 너 번 손으로 꼭 잡고 위 아래로 흔들어 준 다음에 창고 안의 다른 조무래기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지 살펴 보면서 두식이의 자지를 입에 물었습니다.

 

 

 

그 전에도 다른 아이들의 자지를 입으로 수도 없이 빨아준 적이 있었지만 두식이의 자지는 그 크기가 어른 자지이상으로 크고 우람해서 입 속에 들어온 두식이의 자지는 내 입을 꽉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나는 8년 전 이미 저승으로 간 우리 아들이 다시 살아온 것처럼 정성껏 두식이 녀석의 자지를 빨아주었습니다. 동그란 귀두 대가리를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고 쭉쭉 입 속으로 빨아주다가 자지 밑둥아래까지 완전히 좆대를 내 목구멍 속으로 넘겨서 빨아주었습니다.

 

 

 

자지를 입 속에서 쭈우욱 훑어내어 꺼내어 보니 회색빛 가로등 불빛에 반짝반짝거리면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치마를 들춰 올리고 두식이 위로 올라가 가랑이를 벌리고 오줌을 누듯이 쪼구려 앉아 내 가운데 갈라진 보지살 속으로 두식이의 자지를 밀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짚고 두식이가 내 젖가슴을 잘 주무를 수 있도록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위 아래로 흔들어댔습니다.

 

 

 

나는 달빛 아래 방아를 찧는 새색시처럼 엉덩이로 철썩쿵 철썩쿵 방아를 찍어내려 두식이 자지를 보지에 박아주었고 크고 우람한 두식이의 자지는 내 찢어진 보지 속을 들락거리며 찌걱찌걱 소리를 냈습니다.

 

 

 

두식이의 자지 끝이 내 뱃속 저 깊숙이까지 쳐 박히도록 보지를 박아대었습니다. 그러면서 두식이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증오와 미움이 조금이라도 녹아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한참을 박은 뒤에 두식이가 사정을 하고 난 것 같아서 나는 보지에서 자지를 뽑아낸 다음 수건으로 두식이 자지를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두식이 옆에 나란히 누워서 젖가슴을 다 드러내어 두식이에게 만지도록 해주고 치마 속으로도 한손을 넣어주었습니다.

 

 

 

“두식아, 앞으론 나한테 엄마라고 그래.”

 

 

 

두식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걸벵이 짓 그만하고 재활원으로 들어가렴.”

 

 

 

그날 밤 두식이는 아무런 대답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두식이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나한테 찾아와 밥을 얻어 먹어도 예전처럼 행패는 부리지 않았습니다. 돈을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식이는 매일 밤이면 밤마다 나에게 찾아와 내 보지를 탐했습니다. 한번 길을 내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을 했는지 매일 밤 우리 가게는 두식이의 독차지로 다른 아이들은 가게에 얼씬도 못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매번 밤마다 일을 마치고 내가 두식이에게 재활원이야기를 꺼내면 버럭 소리를 지를 뿐이었고 다만 두식이는 나의 몸을 탐하는 일에만 점점 더 열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나를 자기 마누라인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못난 국밥집 엄마를 그렇게 원하고 있었고 사랑 한번 받으려고 늘 가게 앞을 기웃기웃 거렸지만 두식이가 거의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다른 아이들을 내?아 버렸습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아예 양동이에 국밥을 말아 시장 어귀 공터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거기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용돈을 나누어 주고 그때 그때 마다 상황이 되면 한 녀석씩 불러서 공중화장실에 가서 내가 아이들 자지도 빨아주고 내 보지에 박을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두식이 녀석의 성적인 행동은 거의 변태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얻었는지 포르노 사진집을 가지고 와서 그 포르노 사진에 나온 대로 그대로 온갖 변태적인 자세로 섹스를 하자고 요구를 했고 성행위를 하면서 오줌을 갈기는 짓이나 때론 나를 묶어 놓고 때리는 짓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난 두식이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이 몸둥아리는 쓰레기 보다 못 한 몸둥아린데 무엇인들 못 해주겠나 싶어서 두식이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었지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언젠가 두식이가 내 맘을 알아주고 변할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그렇게 온갖 변태적인 짓을 다 당하고도 두식이에게 걸벵이 짓 그만하고 재활원에 들어가 보라는 설득을 항상 했습니다.

 

 

 

그런 두식이의 행패가 한 달 두 달 세 달 계속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두식이가 가게 앞에서 안 보이고 어딘가 간 것 같기에 멀찌감치에서 서성대던 아이를 하나 불러 얼른 국밥 한 그릇 먹이고 보내려 했습니다.

 

 

 

12살 먹은 성현이라는 아인데 그 동네 거지 아이들 중에는 제일 어린 아이였지만, 곱고 귀한 집 아이처럼 생긴 녀석이 나를 늘 “엄마, 엄마”하며 너무나 잘 따르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얼른 밥 한 그릇 먹이고 천 원짜리 한 장 손에 쥐어주고 보내려는데 그날따라 이 아이가 “엄마, 나 딱 한번만 얼른 엄마하고 하면 안 돼?”하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몇 달 동안 두식이가 나를 붙잡고 안 놔주는 통에 아이들이 모두들 나한테 한번&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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