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갚는 두여자 - 1부

은혜갚는 두여자(1)

야설은 야설일뿐 현실과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간혹 야설을 사실과 혼동하는 분들이 계신듯한데 정말 넋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정신좀 차려주세여.

동네가 산 비탈이다 보니 해만 떨어지면 칠흑같은 어둠이 세상을 감춰 버린다.
사는 꼴이 어렵워 사람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눈에도 힘이 풀려있다.
어쩌다 양복이라도 걸친 사람이 동네를 지나갈라치면 멀쩡한 사람이 여긴 왜 왔나 신기한 듯 수근거릴 정도로 힘겹게 사는 동네가 이곳이다.

몇 안되는 사람이 출세랍시고 시내회사에 다니는걸 자랑으로 여기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산 아랫동네에 가서 근근이 파출부나 청소부를 하면서 연명하는 사람들만이 모여사는 동네라면 설명이 될라나?

몇일 전 새로 이사온 부부가 있다.
장롱이며 가재도구가 쌈박한걸 이삿짐으로 갖고 온걸 보면 한땐 잘나가던 집구석 같아 보인 탓에 호들갑 떨며 이사온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동네사람들이 많았다.
필경 사업을 말아먹었던지 큰돈을 날려버리곤 쪼그라져 이곳까지 흘러들었을텐데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어찌 처분하려고 대책없이 옮겨왔는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집에 딸려온 복실복실 납짝 통통한 개 한 마리가 낑낑대며 꼬리를 쳐 대는게 아마 지 눈에도 어설픈 이동네가 싫었나 보다.
사실 이동네에서의 개의 위치를 굳이 밝힌다면 복날 동네 사람들이 잔치 한판 어렵게 벌릴 때 빠지지 않는 음식 재료에 불과한 것을 저놈이 알기라도 할란가?

이 동네 개들을 다 살펴보면 알겠지만 똥개 아닌 개를 키우는 집이 어디 있는지 눈씻어 찾아도 어려울꺼다.

잡아봐야 겨우 한그릇 반 나올까 말까할 쬐끄만 놈을 힐긋보며 입맛 다시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필경 이사턱낸다며 한바탕 잡을 똥개치곤 넘 작아서 누구 코에 붙힐까 하는 서운한 맘에 저넘 잡으면 한점 얻어 먹을 생각이 앞서 있는게 뻔하다.

이동넨 전기값도 아까워 어둠이 짙어지기 전엔 집집마다 겨우 등 하나만 켜놓고 있다가 힘든일 다녀온 사람이나 들어와야 겨우 등 하나 더 밝히는 정도라서 초저녁만 되면 오히려 더욱 어둡고 동네에는 한기마져 드는 곳이지만 그집은 유난히 환한 빛이 밤새도록 새나와서 그나마 어둔 동네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다.

이사 온지 몇일이 지나도록 문간 출입을 본 사람이 없었다며 동네 사람들은 버르장머리 정말 없는 집구석이라고 수근대는걸 보면 상실한 마음이 커서 바깥출입이 엄두가 안나는가 보다 이해도 되지만 궁금한 구석이 없는것도 아니다.

이사하던 날 그집 머릿수를 대충 헤어려 보니 세식군가 하던데 웬만하면 다 큰 딸이라도 학교라든지 직장에 다닐만도 한데 동네 근처엔 얼씬도 않지만 밥뎅이 먹구 사는게 사람 사는 당연한 이치라면 벌써 몇일째 시장통에 발걸음도 없는 아낙을 보면 그집 식구들은 참은커녕 끼니도 거르고 있는게 뻔하다.

동네 반장일을 하고 있지만 들여온 짐짝이 어마어마 했던 집을 차마 허술한 차림으로 반장임네 하며 기침할 수도 없고 궁금증이 증폭되는 이웃을 외면한채 계속 반장 행세를 유지하기도 짖은 일이라서 목하 한참을 고민하다 동반장 활동비중 만원을 뚝 떼어 박카스 한박스를 사들고 문을 뚜드려 본다.

찌그러진 대문 사이로 암만 들여다 봐도 대꾸도 없다.
용기를 내어 대문짝 밀치고 한발짝 들어가도 기척 없기는 마찬가지라 몇발자욱 앞자락에 있는 방문을 당겨봤다.

문이 힘없이 열리며 방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 쯤 나는 이불에 덮혀진 한무더기를 봐야했다.
덜컹 겁이나서 뒈집허 문닫고 뛰어나올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발을 신은채 방에 들어가선 이불을 들쳤다.

이불속엔 동반자살을 시도한 듯 세명이 엉켜붙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맘에 맥을 짚어보니 미약하나마 뜀박질이 느껴지고 가는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얼른 119에 신고라도 해야할 텐데 암만 봐도 전화때기 하나 없고 그렇다고 내 주제에 핸드폰이 있을 턱이 없어 문을 박차고 나와 골목밖 가게집 전화로 신고 전화를 했다.

곧 이어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쳐 세 사람을 엠브란스에 태워 어디론가 사라졌다.

뭔가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다.

일 없이 심심한 몇사람을 불러내 그들이 실려간 응급실을 알아내곤 병문안을 가야 했다.

이럴땐 동네 반장이고 뭐고 싫다.
낯짝 한번 제대로 본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쪼갠다는 것이 반장이 할 일이라면 누가 할까.
암튼 역할이 그런게 전부인걸 낸들 어쩔까 싶어 응급실을 찾아보니 다행이 딸내미와 아낙은 목숨을 건졌고 쥔장은 운명을 달리했다며 빨리 신고해서 인명을 그나마 구하게 됐다며 대기실에서 보초를 서던 구급대원이 고마워한다.

"허, 하필이면 이사와서 죽지?
그냥 살던데서 죽으면 아는 사람들도 많았을텐데, 문상이라도 북적델텐데..."

"그려말야. 동네에서 초상 치뤄져야 하남?"
"글씨, 내 통 사정을 모른께 이를 어쩐다냐?"
"아저씨, 살아난 사람들은 어찌 의식은 돌아왔나요?"
"쥐약을 물에타서 먹었더군요.
죽은 사람이 벌컥 다 마시고 산 사람들은 별로 안먹었는지 위세척 몇번 하니까 깨어났는데 아직 말은 못해요." 하얀 까운을 걸친 사내가 말했다.

"여봐, 반장!" 쭈글텅한 주름이 제법 많은 할배가 걱정하며 나를 부른다.
"왜여?"
"아, 동사무소에 얼랑 신고해서 이 사람들 장례 봐줘야제?"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앞을 지나며 문뜩 어찌 되었나 싶은 맘에 문고리를 딱딱 두드리며 인기척을 기다렸다.

야슬한 처녀가 문틈으로 훔치며 밖의 동정을 조심스레 살핀다.
"나, 반장여!!"
"네!!" 반장이란 소리에 반기며 대문을 삐걱 열어 제쳐준다.
"어때, 아부지 장산 치렀남?"
"네, 동사무소에서 화장까지 치러서 어제 강에 뿌렸어요."
"오라, 그 넘들이 애썼구먼."
"반장아저씨 엄마랑 제 목숨 구해줘서 고마워요." 하며 안쪽을 향해 뛰어들어간다.
"머라? 반장아저씨가 왔다구?" 빼꼼한 아낙이 맨발로 뛰쳐나오며 내 손을 잡아 끈다.
"감사해요. 감사해요.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냥 감사해요." 연신 거품을 물 듯이 감사하며 잡아 끈 손에 이끌려 몇일전 이불에 덮혔던 바로 그 자리에 덜커덕 주저 앉았다.

"순애야, 차 한잔 내와, 어서!!!"
"네, 엄마~"

야슬한 처녀 이름은 순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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