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잖은 남편 땜에 딸까지 상납한..... - 단편

전 40대 초반의 가정주부입니다.

일찍이 결혼을 하여 큰딸애가 벌써 여상에 다니고 그 밑에 남자아이도 올해 중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후~후!

아마 5~7년 후면 사위를 보고 손자도 볼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일직 결혼을 하였냐 구요?

이 미친년이 남정네를 자 못 만나서 그렇게 일찍 결혼을 하였답니다.

17년 전의 일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아지랑이가 막 피어 날 무렵이었습니다.

전라도의 바닷가가 고향인 저는 부산의 작은 직장에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봄을 많이 타는 저는 하루 결근 계를 내고 쉬기로 하였습니다.

막상 쉰다고 생각을 하고 방바닥에 등을 눕히고 있자니 고향의 바닷가가 눈에 선 하였습니다.

그래 바닷가 구경이나 가자 하고 자취방을 나와 부산 근교(당시에는 김해)포구로 나왔습니다.

딱 한 척의 배만 포구를 지키고 있고 나머지 배는 파손이 되어 뭇으로 올라와 있어서 저는

그 한 척의 배 위에 올라가 먼 바다를 보고 갈매기와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내 배에서 뭐 해?"하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 작업복을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냥 심심해서 바다 구경 한당께요"하자

"나 작업 나가니 내려와"하기에

"나도 고향에서 배타고 아버지랑 고기잡이 많이 다녔당께"하고 웃자

"같이 가자고?"하기에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 옷 다 버린다 아이가"하고 투박하게 말하기에

"작업복 할 만 한 것 없다요?"하고 묻자 기관실로 가더니 허름한 옷을 하나 주고 앞치마도 주고

"그 밑에 어창에서 갈아 입으이소"하고 웃고는 배를 후진시키더니 뱃머리를 돌려 바다로 나가자

저는 어창으로 내려가 그 남자가 준 옷으로 갈아입고 앞치마도 걸쳤습니다.

"어, 영판 여자 어부네요"하며 저를 본 그 남자는 웃었습니다.

"진짜 그렁교?"하고 경상도 말투로 말하자

"아가씨는 전라도 말이 어울립니더"하고 웃기에

"알았당게요"하고 그 남자의 옆에 서서 바닷내음에 취하여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나간당가요?"하고 묻자

"한 30분 나가면 내가 어제 쳐 놓은 그물 나옵니더"하기에

"그럼 빨리 나오 겠당께"하고 웃자

"그물이 한 두 개라야 말이지"하기에

"몇 개랑가요?"하고 묻자

"5개 건지고 5개 새로 놓심더"하기에

"요즘 많이 잡힌당가요?"하자

"어제는 빈배로 왔심더"하기에

"그러면 제가 타서 부정 타면 어쩐 당가요?"하자

"모르죠 아가씨가 재수 있게 할 란지 압니꺼"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제도 빈배였다는데 오늘도 빈배로 온다면 다 내 책임이라는 강박관념이 생겼습니다.

"아가씨는 고향이 어딘교?"하고 묻기에

"전라도 강진 마량이라께라"하자

"아~전에 낚시를 한번 갔는데....."하고 말을 흐리기에

"진짜랑가요?"하자

"마량 앞에 고금도에 갔었심더"하고 웃더니

"저기 부표 보이지예?"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부표를 가리키기에 얼른 긴 장대에 고리가 달린 것을 잡자

"정말로 배 타긴 탔네"하고 웃었습니다.

배가 부표 가까이 가자 장대로 부표를 잡아 올리자 그 남자는 배를 세우고 저에게 오더니

그물을 같이 당기기 시작하였는데 한참을 당기자 고기가 보였습니다.

"고기다"하고 소리치자

"아가씨가 재수 좋은 아가씨 갔네예"하며 웃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었던 어창의 옆에 있는 어창의 뚜껑을 열고는

"살려야 제 값 받심더"하기에 저는 고기를 정성스럽게 그물에서 때어서 어창에 넣었습니다.

정말 제가 재수가 있는 여자였던지 고기는 줄줄이 그물에 걸려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기를 그물에서 때어내어 어창으로 던졌습니다.

"굴을 따랴 조개를 따랴 서산 갯마을....."제 입에서는 연신 흥이나 노래가 나왔습니다.

첫 그물에서 만 무려 50마리가 넘는 도다리가 잡혔습니다.

"허~오늘 아가씨 일당 많이 줘야 겠심더?"하고 말하기에

"공짜로 배 태워 주신 것으로 일당은 된당께요"하고 웃자 그 남자도 따라 웃으며 두 번째 그물을 당겼습니다.

그 그물에서는 더 많은 고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고기를 때어 어창에 넣으며 수를 헤아리다 포기를 하고 때어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5개의 그물을 다 건지고 고기를 때어낸 어창을 보니 많은 고기들이 있었습니다.

"야~호!"하고 만세를 외치자 그 남자도 다라 만세를 부르더니 저를 끌어안고 배 위에서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갑자기 제 입에 입을 맞추더니 급기야는 키스로 들어갔습니다.

"이러지 말랑께"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그 우악스런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다리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아가씨 나랑 삽시더?"하기에 놀라

"아저씨 아니당가요?"하고 묻자

"이 아가씨가 총각 혼사 길 망칠라고 하나"하더니 어창의 뚜껑을 닿고는 저를 끌어안고 그 위에 눕혔습니다.

"아가씨 니 빠구리 해 봤나?"하며 바지를 내리기에

"전라도에서 학교 다닌 사람 치고 빠구리 안 한 사람 없을 것이 랑께요"하고 몸을 움츠리자

"뭐?"하고 놀라더니

"정말로 씹 해봤단 말잉교?"하기에 얼굴을 붉히며

"전라도에서는 학교 땡땡이 치는 것을 빠구리라 한당께"하자

"아~!"하더니 제 옷을 마구 벗겼습니다.

"하지 말랑께라"하고 애원을 하였으나 그 남자는 제 옷을 다 벗기고 자기의 팬티도 벗고는

"여기서는 오고 갈 때도 없심더"하고 힌 치아를 들어 내고 웃더니 제 위에 덮쳤습니다.

그 남자의 좆이 제 몸에 닿자 저는 마치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습니다.

그 남자는 마구 키스를 하며 좆을 제 보지에 비비더니 손을 내려보지 뚜껑을 벌리더니 좆을 끼우자

"악!하는 신음과 함께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나더니 배가 무척 불러왔습니다.

"아가씨 아다라시였네"하묘 웃더니 제 아픔도 외면하고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야~이거 무는 것이 직이네"하고는 빠르게 펌프질을 하더니 좆물을 제 보지 안 깊숙이 쌌습니다.

그 남자는 다 싸자 좆을 제 보지 안에서 빼더니 바닷물을 퍼 올려 씻고는

"아가씨는 저기 맹물로 씻어라"하고 물통을 가리켰으나 설음과 아픔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었습니다.

이십 여 년을 고이 간직한 제 처녀성이 그 남자에게 우악스럽게 더럽혀 진 것입니다.

한참을 울다가

"그물도 다 쳤고 인자 나갑니더"하기에 정신을 차리고 피와 좆물로 얼룩진 보지와 허벅지를 씻고 옷을 입었습니다.

"욜로 온나"하는 말에 저는 마치 자석에 끌리 듯이 그 남자의 옆으로 갔습니다.

"니 내하고 살자"하는 말에

"나 아직 어리당께요"하자

"괘 안타"하며 저를 끌어당겨 안고는 배를 몰았습니다.

포구에 도착을 하자 그 남자는 공중전화를 하더니 조금 후에 활어 운반 차가 왔습니다.

기사가 뛰어내리더니 큰 광주리를 가지고 와서 저를 보고는

"누고?"하고 묻자 그 남자는 태연스럽게

"내 색시아잉교"하자

"진짜가?"하자

"니 말해라, 내 색시 맞제?"하기에 고개를 숙이자

"문디 새끼 횡재했네"하고는 어창을 열더니 보고는

"마누라 예쁘고 어린 여자 구하디 고기도 억수로 많이 잡았네"하고 웃자

"빨리 고기나 푸이소"하고는 둘이서 고기를 건져내었습니다.

"아재요! 아재 자가용 쫌 빌여주이소"하자 활어 차를 몰고 온 남자가

"와?"하고 묻자

"우리 각시 짐 가져 올라고요"하며 저를 보았습니다.

"안 된당께요. 공장에도 말해야 하고 엄니 아부지께도 말해야 한당께요"하자

"그라모 일다 우리 집하고 느그 집하고 알아놓자, 알겠제?"하기에 고개를 끄덕여 승낙을 하였습니다.

그 남자의 집에 가자 그 남자의 부모님들이 무척 좋아하시며 당장에 보따리를 싸 오라고 하였으나

몇 일의 말미를 얻어 공장에 사표도 쓰고 또 시골의 부모님에게는 같이 가서 인사를 드리기로 하고

자취방으로와 또다시 그 남자는 저에게 격렬한 섹스를 하고는 갔습니다.

바로 그 남자가 지금의 남편입니다.

3일 후 저는 남편의 집으로 와 사림을 살고 같이 고기를 잡다가 여름에 태풍이 부는 시기에

뱃속에 아기를 잉태하여 시골로가 부모님에게 승낙을 받고 그 해 가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몇 년 전만 해도 무척 저와 가족을 위하여 헌신을 하였는데 밤이면 거의 매일 섹스를 하며

"니는 진짜로 섹스 머신이다"하고 놀려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즐기며 섹스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입에 술을 대더니 처음에는 장난

삼아 하던 놀음이었는데 잃고 오자 화도 나고 오기도 나 묵인하였으나 남편은 점점 그 늪으로 빠져들더니

급기야는 고기잡이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날마다 노름방에서 술과 노름으로 보내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어촌이라는 곳이 양식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돈은 매일 만지는 곳입니다.

태풍이 안 분 다음에는......

100원 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어도 아이들도 그 것을 줍지 안을 정도로 돈은 풍족한 곳이 어촌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노름방에서 살다 시피 하자 하는 수 없이 저 혼자서 고기잡이를 나가야 하였습니다.

혼자 그것도 여자가 혼자서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은 여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생각을 한 것이 친정 동네에 같이 살다가 같은 부산에 내려와 사업을 한답시고 하다가

부도를 내고 간혹 우리 남편에게 매형 매형하며 찾아와 밥술이나 얻어먹고 다니던 저보다 6살이나 어린

한철이라는 동생뻘이 있으면 일당을 주고 우리 집에서 기숙을 시키면 되겠다는 마음에 연락을 하자

한철이는 부리나케 달려와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히 승낙을 하여서 같이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으나 부도가 나자 그의 아내는 봇짐을 싸 혼자서 살다보니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몇 일 같이 일을 하다보니 손발도 척척 맞고 고기도 많이 잡혔습니다.

그러던 지난 정월 대보름 바로 전날 우리는 평소처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예상대로 고기는 많이 잡혔습니다.

고급 횟감인 열기가 마치 꽃이 핀 것처럼 그물코마다 걸려있었습니다.

양식이 불가능한 열기는 엄청나게 비싼 값에 경매가 이루어지는 최고급 어종입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고기를 그물에서 때어 어창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처음 처녀를 빼앗긴 날이 생각이나 얼굴을 붉히는데 한철이가

"누님 무슨 생각하시기에 얼굴이 붉어져요?"하기에

"아... 아무 것도 아니야"하고 고기를 어창으로 던지자

"매형 날마다 노름방에 사느라고 누님 밤이면 허전하죠?"하기에

"이제 만성이 되었어"하고 웃자

"나도 마누라 년 도망가고 단 한번도 섹스 못했수"하기에 놀라

"너! 누나 앞에서 막말하지마"하자

"누님하고 나 피가 섞였수 살이 섞였수?"하기에

"그래도 그런 말하지 마"하고 눈을 흘기자 제 곁으로 오더니 힘주어 안으며

"같은 처지에 즐깁시다"하기에 놀라

"너 이럼 매형에게 이른다"하였으나 더 힘주어 안더니 키스를 하였습니다.

거의 2년을 굶었던 끝인지라 저의 신념은 단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 어느 누구와도 섹스를 하지 안겠다는 저만의 다짐이.....

한철이는 때를 놓치지 않고 가슴과 보지 둔덕을 만지고 주무르며 집중적으로 골략을 하였습니다.

"아~몰라"하며 외면하고 한철이의 목을 끌어안자

"누님, 몹시 밝히네요?"하기에

"이렇게 하는데 안 밝히면 석녀지....."하고 말을 흐리자

"이제 우리 같이 즐기며 삽시다"하고는 앞치마를 끄르고는 바지와 팬티를 벗기기에

"여기는 바람이 불어 추우니 저 뒤로 가자"하고는 기관실 옆으로가 눕자 한철이도 따라와 옷을 벗고는

"이제부터 누님 보지는 내 보지다"하고 바다를 향하여 소리치고는 제 몸에 몸을 포개고 좆을 보지에 박았습니다.

"아~이 맛이야"하고 웃자

"아~그래요 씹 맛이 바로 이 맛이지"하고는 펌프질을 시작하였습니다.

"누님 보지 제법 쫄깃쫄깃 한데"하기에

"한철이 좆도 좋아"하고 화답을 하자

"씹 탱이 년 지금 어느 놈하고 붙어서 씹하는지...."하기에

"도망 간 년 잊어"하자

"그 년도 무척 씹을 좋아했는데...."하고 말을 흐리기에

"나 죽을 때까지 우리 곁에서 살면서 나랑 즐겨"하자

"좋아요"하고는 펌프질의 속도를 올리자

"아~악 미치겠어 여보 나 죽어, 아 막 올라, 막 오른단 말이야"하고 소리치자 한철이는 빙그레 웃으며

"막 올려요, 막"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 그 동안 못 올린 것 다 올릴 거야, 아~또 오른다 올라, 미치겠어, 여보 나 죽어"하자

"그래 배에 타면 내가 여보고 집에 가면 매형이 여보다"하며 웃었습니다.

"마음대로 해! 아~악 막 오른다 미치겠어 나 살려줘"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한철이는 나이답게 힘이 남아 돌아갔습니다.

마치 삼삼 칠 박수를 치듯이 강약을 조절하며 멋진 펌프질은 연속되었습니다.

"아~악, 못살겠어 나 죽어"하는 소리는 바람을 타고 바다로 퍼졌습니다.

"누님 나도 미치게 좋아"하고 웃었습니다.

바람 소리에 질퍽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들렸습니다.

한참을 펌프질하던 한철이는

"누님 안에 싸도 돼요?"하고 묻기에

"마음대로 해, 아~또 오른다"하는 순간 한철이의 뜨거운 좆물이 보지를 적시고 있었습니다.

"아~좋아"하고 말하자 한철이는 저의 입을 틀어 막고 긴 키스를 하며 나머지 좆물을 보지에 쌌습니다.

다 싸자

"누님 내 좆 한번 빨아 줘"하기에

"한번도 안 빨았는데...."하고 말을 흐리자

"그럼 한번 빨아 봐요"하고 좆을 빼서 입에 들이밀기에 하는 수가 없이 빨았습니다.

비릿하고 쓴맛에 구토가 나오려고 하였으나 한철이가 혹시 삐지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빨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빨아주자 수구려 들던 한철이의 좆이 다시 생기를 찾자

"누님 한 번 더 합시다"하고는 배의 핸들을 잡게 하고 뒤에서기에 뒷 치기를 하려는 구나 하는 마음으로 엎드리자

한철이가 제 생각과 같이 뒤에서 보지에 좆을 들이밀고 한참을 펌프질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철이의 좆이 제 보지에서 빠지기에 놀라 한철이의 좆을 잡으려고 하자

"누님은 가만있어요"하기에 뒤돌아보며 웃자 좆을 이상하게 엉덩이 사이로 비비더니 갑자기 좆을 똥코에 박았습니다.

"악! 거긴 아니야"하고 소리치자

"가만있으라니까요"하고는 천천히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한철이가 하는 대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픔의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우리 배에서 남편에게 처음 보지 구멍도 났고 이제는 한철이에게 같은 배에서 똥코도 펑크나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아픔의 통증은 살아지고 또 다른 쾌감이 온 몸에 엄습하였습니다.

"이건 아니야, 왜 이렇지"하고 한철이를 고개를 돌려보고 말하자

"이제 맛 알겠죠?"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이상해"하고 얼굴을 찌푸리자

"진짜 섹스는 바로 이 것이죠"하며 웃었습니다.

저는 한철이의 쑤시는 동작에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우리는 서로 즐기며 섹스를 하다가 한철이가 제 똥코에 좆물을 뿌림으로서

첫날의 섹스는 대 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리는 배만 타면 먼저 섹스를 하고 나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예 집을 비우기 일수라 지난 7일 밤 큰딸과 아들이 자는 것을 확인을 하고

한철이의 방으로 들어가 즐겼습니다.

신음도 지르며.....

그런데 자고 있을 큰딸이 문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딸은 놀라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미란이 봤는데 어쩌지"하고 한철이에게 말하자

"가서 일단 달래어 보고 안 되면 최후의 방법을 쓰죠"하기에 옷을 입고 딸애의 방으로 갔습니다.

"나가 보기 실어"하고 소리치기에

"내 이야기 한번만 들어라 미란아"하자

"좋아 그 잘난 변명 한번만 듣지"하기에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한단다"하자

"나도 그 정도는 알아"하기에

"그런데 너희 아빠는 날마다 노름이나하고 술이나 마시지 엄마를 한번도 안 안아주니까...."하고 말을 흐리자

"나도 그 것은 이해는 해 하지만 집에서 그러는 것은 이해 못해"하고는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럼 내가 이 집에서 떠나지"하자

"어서 한철이 외삼촌 쫓아내고 아빠에게 용서 빌어"하기에

"너희 아빠가 용서하실 분이냐?"하고 묻자

"그래도 해"하기에

"좋아, 그럼 이달 만 한철이 외삼촌 집에 있게 하고 보내자,그리고 그 때까지는 아빠에게 비밀 지키고"하자

"좋아"하고는 엎드려 울었습니다.

저는 한철이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자

"누님 그러면 마지막 방법을 씁시다"하기에

"무슨 방법?"하고 묻자

"내일 아침에 나 어창에 숨어 있을 태니 나 어디 볼일 보러 같다 하고 미림이 배에 태워요"하기에

"너 혹시 미림이를...."하고 말을 흐리자

"이 방법말고 다른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해요"하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저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잠을 설치다 한철이가

"누님, 저 볼일 보러 시내 나갑니다"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미림이를 회유하여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미림이 방에 들어갔습니다.

미림이는 언제 일어났는지 컴퓨터 앞에서 컴퓨터를 하다 제가 들어가자 황급히 끄기에

"미림이 일찍 일어났구나"하자

"응....그...그래요"하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엄마를 용서하지?"하고 묻자 단호하게

"한철이 외삼촌 나가면 아빠에게 용서 빌어"하고 말하기에 온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럼 오늘 엄마 따라 바다에 나가자"하고 할 수 없이 말하자

"한철이 외삼촌 새벽부터 뭔 일로 시내 가요?"하기에

"모르지 일자리 구하러 가는지...."하고 말하자

"그럼 같이 가요"하고는 일어서서 세면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서둘러서 아침을 먹고 딸애와 같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30여분을 달려 그물을 쳐 놓은 곳에 도착을 하여 배를 멈추고 딸애 몰래 어창 쪽을 보자 한철이가

슬그머니 어창을 빠져 나오더니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우리들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흐~흐~흐!"한철이가 딸애를 끌어안으며 이상한 웃음을 웃기에 놀라는 척하며

"아~니! 너 시내 간다며?"

"외삼촌 왜 이래요?"하는 저와 딸애의 말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엄마와 네가 섹스를 하는 것을 본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지"하기에 저는 한철이를 잡으며 말리는 척하고는

"한철아 이러면 안 돼"하고 말하자

"아빠에게 안 이를게 하지 마"하고 미림이가 애원을 하였으나 한철이는 미림이를 어창 위로

끌고 가 눕히고는 강제로 옷을 벗기며 턱으로 미림이의 팔을 잡으라는 듯한 사인을 주었으나 차마 하지 못하자

"딱!"하는 소리와 함께 미림이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외삼촌 때리지마"하고는 죽은 듯이 있자 한철이는 웃으며 옷을 벗겼습니다.

한철이가 옷을 벗기에 차마 딸애가 처녀성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가 없기에 기관실로 와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려야 할 비명 소리가 안 들려 이상하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한철이를 보니 이게 왠 일입니까?

미림이가 한철이의 등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미림이를 내려다보며

"너 처녀 아니 였니?"하고 묻자 미림이가 빙그레 웃으며

"엄마는.....요즘 처녀가 어디 있어?"하고는

"실은 내가 외삼촌을 좋아했는데 엄마랑 하는 것을 보고 외삼촌이 미워졌단 말이야"하며 웃었습니다.

"으~미림이 보지도 쫄깃쫄깃 한 것이 좋은데"한철이가 웃으며 말하자

"외삼촌 앞으로 엄마랑 나 골고루 사랑 할 거지?"하고 묻자

"그~럼 똑같이 사랑하지"하고는 저의 바지를 잡아당겼습니다.

저는 미림이에게는 무척 부끄러웠지만 한철이를 딸애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얼른 바지를 벗고 딸애 옆에 누웠습니다.

"외삼촌, 엄마에게 먼저 해요"하자 한철이는 저에게 건너와서 먼저 좆물을 싸 주고 미림이에게 올라가 싸 주었습니다.

그 후로 한철이는 아들이 친구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 외박을 하거나 하면 집에서 저와 딸애에게

동시에 섹스를 하여주고 아니면 세 명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 찬바람을 가르고 뜨거운 섹스로 한파를 이겨냅니다.

같잖은 남편 때문에 제 육신은 물론 딸애마저 한철이의 노리개로 전락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는 안 합니다.

한철이가 있었기에 우리 모녀는 즐겁게 살수가 있으니까요.

같잖은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제 자리로 올 때까지 한철이를 의지하며 살 것입니다.

즐거운 섹스를 같이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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