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당하는 여자 - 3부

"부르르르르르릉, 끼익"
"덜컥"

뱃속을 울릴 정도로 중저음으로 낮게 깔리는 엔진소리가 들렸고, 이내 차가 멈추는 듯 싶더니 차문이 열리는 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성경이는 눈을 떴다.

"아~ 깜박 잠들었었구나"
"그런데 누가 왔나?"
"혹시 조금 전의 그 차소리는 나를 여기 가두어 놓은 사람이 타고 온 차일까?"

드디어 자신을 여기에 가두어둔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성경이는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며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날 여기에 가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 건달같은 덩치에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사람일거야
어쩌면 키도 작고 빼빼해가지고 얼굴도 음흉하게 생긴 변태일지도 몰라
아니야, 누군진 몰라도 나한테 원한이나 흑심을 품고 있는 내가 아는 사람일 가능성도 충분해

성경이는 지금 차에서 내린 사람이 누구일까에 대해 갖가지로 추측을 해보았다.
저벅저벅하는 구두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현관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두소리를 들어보니 남자인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기 겁났지만, 용기를 내어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가는 눈을 뜨고 올려다본 남자는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누구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성경이는 실눈을 뜬채 남자를 바라보았고, 생각외로 깔끔한 외모에 젊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멀쩡하게 생겼는걸?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이런 짓을...

성경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쥐죽은듯이 옆으로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자고 있는건가?
"좀 안되보이긴 하지만 자는 모습도 예쁘군"
"흐흐흐"

소름끼치도록 음흉한 남자의 웃음소리에 성경이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거실 한가운데의 봉으로 가더니 줄의 고리가 튼튼하게 잘 채워져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남자는 그 옆에 오줌이 흥건히 젖어 있는 바닥을 발견하였고, 그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물그릇 있는 곳으로 다가가선 물이 어느정도 비워져있는 것을 보고는 아까와 같은 께름칙한 목소리로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개처럼 엎드려서 물을 마시고 아무데나 오줌을 질질 싸댄 모양이군"
"수치스럽지도 않았던 모양이지? 좀 도도할 줄 알았었는데 실망이군 역시 훌륭한 암캐가 될 자질이 있어, 하하하"

수치스러운 얘기를 들으면서 성경이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수치스럽지 않았다고? 내가?
누가 거기다 싸고 싶어서 싼 줄 알아? 내가 얼마나 수치스러웠는데

성경이의 눈에는 수치스러움과 동시에 억울한 마음이 더해져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전 암캐라고 했는데 그건 무슨 뜻이지?
분명 날 보고 하는 소리같았는데, 내가 암캐?
머가 먼지 하나도 모르겠어

성경이는 그의 말뜻을 해석해보려 노력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득 아까 본 포르노속의 여자가 떠올랐다.

맞아, 그 여자도 나처럼 목에 개목걸이가 걸린채, 개처럼 정원을 기어다니고 심지어는 개집에까지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어
그렇다면 이 남자도 나를 그렇게 하려고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을 하자 성경이는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또 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성진이는 바닥에 붙어있는 그릇을 분리시켜 물을 비워내고는 깨끗하고 차가운 새 물을 다시 담아와 그릇을 원위치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티브이의 전원을 켜서 고정된 채널을 풀고는 쇼파에 앉아 여자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잤길래 아직까지 자는거야?
기다리기도 지루하군, 한 번 깨워볼까?

성진이는 그녀옆으로 다가가 발로 툭툭 그녀의 옆구리를 찼다.
성경이는 어떻게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일어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묻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운 나머지 자꾸만 자는 척을 하게 되었다.
성진이는 여자가 일어나지 않자 조금 짜증이 났는지 무릎을 굽혀 여자의 얼굴앞에 앉아 사정없이 뺨을 한 대 갈겼다.

"야이 개년아, 주인님이 오셨으면 엉덩이라도 흔들며 반겨야지, 쳐 자고 있어?"
"이런 썅!"

성경이는 갑작스런 따귀에 정신이 멍해지면서 더 자는 척을 했다가는 얼마나 더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크크, 이제야 일어나는군. 정신이 드나?"

".........."

"대답이 없군, 더 맞을까? 앙?"

".....아...... 아니요"

"그래 그럼 얼른얼른 대답을 했어야지, 크크크"

"살려주세요 제발요 흑흑"

"살려달라고? 내가 언제 널 죽인다고 했나?"

"아저씨 부탁이에요 제발 저 좀 살려... 아니 나가게 해줘요 흐흑"

"크크크"

"나가게 해달라고?"

"네 원하는건 머든지 다 드릴테니 제발 여기서 절 내보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아저씨"

"니가 여기 왜 있는지는 알고있나?"

"잘 모르겠어요... 그치만 너무 무서워요. 제발 보내주세요"

"안됐지만 넌 여길 나갈 수 없어.. 넌 늙어 쓸모없어질때까진 이 집에서 나와 함께 살아야하거든, 흐흐흐"

"싫어요. 제발 보내주세요"

"지금은 내가 얌전히 니 얘기에 대답해주겠지만, 한 번만 더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거나 그딴 소리 하면 그떈 정말 각오하라고 알겠어?"

라며 성진이는 크게 호통을 쳤다.
남자의 호통에 움찔한 성경이는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결심했다.

"저 그럼 왜 내가 이 곳에 있는거죠?"
"당신이 날 여기 데려온건가요?"

"그래, 내가 널 이곳에 데려왔지, 흐흐"
"근데 그 당신이라는 말 듣기가 좀 거북하군"
"앞으로 나에 대한 호칭은 별도의 지시가 없는 이상 모조건 주인님이다 알겠나"

"......."

"대답이 없군, 알겠나?"

남자는 약간 톤을 높여 다그쳤고 성경이는 마지못해 "네" 라고 짧게 대답을 하였다.

"네?"
"대답이 짧군, 아직은 잘 모를테니 이번만큼은 용서해 주겠어"
"앞으론 무조건 네, 주인님이라고 대답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무서운 체벌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알겠어?"

"네, 주인님"

성경이는 대답을 하면서도 왜 주인님이라고 불러야하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고, 일단 남자의 말을 잘 듣는게 살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왜 제가 이 곳에 와있는거죠?"

"그 건 말이야 넌 내 암캐이기 때문이야"
"나는 너의 주인님이고 넌 내 애완견이니까 당연히 같이 있어야지 않겠어?"
"주인을 잃은 암캐의 최후는 유기견이 되어 길거리를 헤매다가 찾아오는 죽음뿐이라고... 그러니 내가 널 거두어준게지, 크크"

성경이는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까부터 암캐 암캐 그러는데 도대체 암캐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자신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논리적으로도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성경이는 다시 물었다.

"암캐라뇨, 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왜 제가 이 곳에 있어야하는지를 모르겠다구요"

"이해가 안되나?"

"그래요, 당신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뿐이라구요"

"짝!"

하는 소리와 함꼐 성경이의 눈에 별이 보였고, 왼쪽 뺨이 얼얼해졌다.
또 따귀를 맞은 것이다.

"아무리 개대가리라지만 머리가 너무 나쁘군"
"내가 분명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을텐데?"
"정말 혼나고 싶은게냐?"

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냈다.

"..........."
"흑흑"

성경이는 또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오늘 하루 사이에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 성경이는 서럽고 수치스럽고 두려운 온갖 감정이 뒤섞여 눈물만 나올뿐, 이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성경이는 다시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졌다.

"저~ 그런데 아까부터 암캐 암캐 그러시는데 대체 무슨 뜻인가요?"

"모르나?"
"이상하군, 난 니가 그릇에 담긴 물을 마시고 바닥에 오줌을 싸놓은 것을 보고는 천상 암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건......"

"머 좋아, 아무튼 암캐가 무엇인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고, 다른 궁금한 건 더 없나?"

"제가 여기에 왜 와있는거냐구요, 그거에 대해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어요"

"말하지 않았다고?"
"정말 멍청하군, 내가 말했잖아 난 주인님이고 넌 암캐라고"

"그게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훗, 너는 내 암캐가 되어야한다는 것 오직 이유는 그거 하나야"
"더 이상 같은 말로 날 귀찮게 만들지 마라"

".............."

성경이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질 수가 없었다.
저 남자의 말대로 내가 저 남자의 암캐라면 내가 목에 개목걸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옷이 벗겨져 있는 이유가...."

라며 성경이는 말끝을 흐렸다.

"크큭, 개가 사람의 옷을 입고 있는걸 본 적이 있나?"

"네?"

"넌 개새끼일뿐이야. 사람의 옷같은 건 너따위에겐 과분한거야..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내가 다 벗겨놓았지"

"........"

"하지만 주인님은 관대하시지"
"우리 암캐가 언제나 예쁜 모습을 할 수 있도록 너에게 브래지어만은 남겨준거야"
"난 나의 소중한 암캐의 가슴이 망가지는건 원치 않거든 크크"
"그리고 브래지어만 입고 있으면 웃기지 않겠어? 그래서 팬티도 그냥 입게 놔둔것 뿐이고, 하하하"

성경이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냥 어서 이 곳을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은 늦었어"
"주인님은 그만 위층에 올라가 잘테니, 너도 그만 자거라"

라는 말과 함께 성진이는 냉장고에서 빵 한 조각을 꺼내 암캐 옆에 대충 던져놓고는 거실의 불을 끄고 올라가버렸다.

"하루종일 굶어서 배가 고플테니 좀 먹어두라고"

성경이는 불이 꺼진 거실 한쪽에 엎드려 생각에 잠겼다.

정말 이 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걸까?
저 남자는 언제까지 날 여기 가두어 두려는 생각이지?

성경이의 눈은 어느덧 어둠에 적응이 되어 주위의 물체를 분간할 수 있게 되었고, 배가 고팠기에 아까 남자가 던져둔 빵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빵은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위치에 던져져있었고 성경이는 빵을 향해 기어갔다.

"철벅"

아~ 이게 뭐야... 이건 내 오줌이잖아

남자가 던지고 간 빵은 하필이면 아까 자신이 싸놓은 오줌위에 떨어져있던 것이었다.
아무리 자기오줌이라고 해도 오줌이 묻은 빵을 먹을 순 없었다.
먹을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만약 그 빵을 먹었다간 내일 남자는 분명 또 천상 암캐라고 놀려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배가 고팠지만, 성경이는 결국 빵을 먹지 않았고 그릇에 담긴 물을 핥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을 핥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물이 남아있었는데, 새 물로 갈아준 걸 보면 날 여기에 가둬두긴 했지만 그래도 자상한 사람인 것 같아

앗!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거지?
정신차려 김성경, 넌 지금 저 남자를 증오하고 있어야 한다구

성경이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었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물을 핥던 성경이는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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