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초대 - 4부

- 초대 4 -







강원도로 오는 고속도로 차안에서 내내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린아이처럼 재잘댔다



예정에 없던 여행이라 그런지 더욱 들뜨고 그런마음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것 같았다



사무실에선 회의를 간단히 마치고 손님과 아파트 현장을 가본후 강원도로 갈것이라고 하고 자료를 받아



그녀와함께 곧장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 뭐라고 불러야..... >



< 은주예요...강은주.....은주라고 부르셔야죠.....킥킥 >



< 그래도 클라이언트 이름을 함부로 부를순 없죠....미국에서 이름은? >



< 제시카였는데...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괜찮으니까 그냥 이름 부르세요....이실장님 >



그녀의 남편은 우리나라 꽤 큰그룹의 부장이었다



미국 제5공장설립차 건너간지 4년째 되었고 이제 완성단계에 들어서서 귀국하는것으로 얘기했다



그녀보다 8살이나 많고 일밖에 모르는 단순고지식형이라 사는내내 별 재미없어



둘간의 부부정은 별로라고 까지 얘기하는 그녀의 눈에는 떨어져 있는 남편과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짜증내는 얼굴 같았다



< 실장님은 몇살이세요? 전 서른네살인데... >



< 아....서른일곱입니다....세살 많네요...은주.....씨보다.... >



< 그럼 오빠라고 해도 되겠네요? 전 언니만 있지 오빠가 없거든요...그래도....돼죠? >



< 오빠라.....훗훗....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는데...하하 >



이후로 그녀는 내가 휴대전화 통화할때를 빼곤 강원도에 도착할때까지 거의 혼자 재잘거렸다



어릴적 아버지가 큰사업을 하다 잘못돼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던 얘기, 언니소개팅에 같이 나갔다가



상대남자가 언니보다 자기를 더 좋아해서 난감했다는 얘기, 결혼할때 하기싫어 도망가려다



아버지한테 밤새 혼났다는 얘기,



처음 미국생활하는데 남들이 세컨드로 오해받았다는 얘기...



타고난 성격이 활발해서인지 지루하지않게 재미있게 말하는 모습이 귀엽게도 느껴졌다



아침시간이라 차가 안막혀서 그리 오래걸리지 않아 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 은주씨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왔네요....저쪽으로 돌면 현장이고 이쪽으로 가면 바닷가에 호텔이 있으니까



우선 호텔로 가셔서 좀 쉬세요...전 오후 늦게나 들어올겁니다.....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정도면 끝나니까



천천히 바닷가에 나가 포구도 들러보세요... >



호텔에 내려 그녀와함께 로비로 들어서자 야릇한 흥분이 감돈다



몸매나 얼굴, 지적인 행동, 어디하나 빠질대 없는 그녀와 단둘이 호텔에 들어온다.....



남들이 보면 꽤나 부러워하겠지....



객실을 두개 잡았다



하나는 회사 법인카드로 결재하면 되지만 두개까지는 곤란하기에 현금으로 내면 되겠지 했는데



그녀가 뜻밖에 말을 했다



< 이호텔 VIP 카드 있어요.....남편회사 계열호텔이라 년4회 공짜예요...공짜 후훗.. >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카드를 내보이며 그런걱정 말라는투로 말하곤 앞장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같은층이니까...객실 두개중에 내가보고 맘에 드는걸로 제방할께요...그래도 되죠? >



< 숙박비를 해결해 주실텐데....그정도는 당연한거 아닙니까? 킥킥 >



나란히 붙어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바닷가가 더 잘들어오는 왼쪽방을 선택했고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 전 지금 나갔다 올께요.....일단 피곤할텐데 좀 쉬시고요....차가 필요하시면 데스크에 전화하세요...



내 드릴겁니다 >



<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실장님 오시기까진 아무데도 안나갈래요... >



현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문득 그녀가 한말을 되씹어서 생각해봤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말.....내가 가기까지 아무데도 안나가고 나만 기다리겠다는.....마치 신혼부부가



하는말 같이 느껴져 기분이 이상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박이사님이 감리사와 뭔가를 의논중이었고 난 현장을 둘러본뒤 그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시내로 나갔다



음식을 주문한뒤 현장얘기를 하고 있는중에 그녀에게서 문자멧세지가 들어왔다



[ 오빠! 제생각하면서 점심 맛있게 드세요^^ ]



푸훗! 느낌이 새로왔다



총각 시절엔 휴대폰이라는게 없어서 아내하곤 이런 문자한번 주고받지 못했는데 처음만난 여인에게서



이런 애정어린 멧세지를 받게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그만큼 그동안 너무나도 일밖에 모르며 지내온 내자신이 후회되었다



은주 그녀도 자신의 남편이 일밖에 모르는것에 대해 저리도 푸념이 많은걸 보면 내아내도 참 어지간히



잘 버티고 참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 전 지금 먹으러 왔는데 어쩌나..식사하셔야죠? ]



[ 커피를 두잔 마셨더니 생각이 없어요..제걱정마시고 열심히 일하세요^^ ]



그때부터 난 아내를 호텔방에 두고 온것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안절부절하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무실 창문을 통해 현장을 내려다 보며 담배를 한대 피니까 박이사님이 등뒤에서 불렀다



< 자네....안색이 안좋아 보이는군...많이 피곤해보여.....담배도 자주 안피면서 ...일찍 들어가 쉬지 그러나... >



< 아닙니다 이사님....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저보다도 이사님이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사장님도 안계신데... >



< 나? 이사람보게...자네보다 건강할걸세...하하핫...그나저나 아까도 사장님과 통화했는데 하루빨리 자네를



대표이사 자리에 앉히고 싶어하시는데.... >



< 이사님.....사장님은 며칠안에 반드시 훌훌털고 나오실겁니다.....부탁이니 제발 그런말씀은 말아주세요... >



< 나도 그러길 바라네만....나이가 들어서 힘들거야....암튼 준비하게 >



< ........................... >



< 피곤한 사람한테 괜한말을 했나보군....K호텔에 있을거지? 일찍 들어가 좀 쉬게...감리사도 막 들어갔어 >



< 이사님은..... >



< 난 서울로 가야될걸세....사장님이 또 찾으셔...허허...영감탱이가 심심하니까 자꾸 나만 불러...허허허 >



한바탕 호탕하게 웃으시곤 밖에있는 기사한테 서울로 가자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사님이 탄차가 미끄러지듯이 현장을 떠나고 나도 내차로 가서 시동을 켰다



[ 지금 갑니다..로비로 내려오실래요? 회 사줄께요 ]



악세레다를 밟으면서 은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 정말요? 얼른 나갈께요..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호텔 로비에 도착해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담배를 두대째 피우니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오래 기다리셨죠? 아잉...여자는 시간이 좀 걸리잖아요...미리 전화하시지...호호 >



파란색 블라우스와 흰색 반바지를 입고 파란색 샌들을 신고 갈색의 굵은 웨이브 머리는



뒤로 살짝묶어 더욱 산뜻해 보였다



손으로 입을 살짝 가렸지만 예의 맑은 웃음과 환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웠다...내가 진짜 아침부터 저여자하고 사무실에서 얘기하고 두시간에 걸쳐



드라이브를 하고 호텔에서 마주하고 있는지 내눈이 의심스러웠다



< 우와....진짜 은주씨 맞아요? 몰라봤어요... 멋지군요 >



< 피이....몰라요...그렇담 아깐 별로였단 말이네요? 흥 >



그녀는 새침떼기의 모습을 하며 토라진듯 고개를 살짝 돌리곤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 별로라뇨....아깐 정숙한 귀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지금은 생기발랄한 대학 초년생의



싱그러운 모습이라서요... >



< 둘다 좋았다는 얘기 맞죠? 음.....그렇담 봐드리죠...헤헤 >



내말에 기분이 나아졌는지 처음부터 토라진척 한건지 그녀는 금방 원래의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 결혼전에 와보고 처음이예요...바닷가도 그렇고 포구도 그렇고...어마! 저 고기좀 봐요...아직 살아있나바.. >



< 은주씬 미국 어디서 사셨어요? >



< 미국얘기 재미없어요...어머머 오빠 저것좀봐요...머리를 잘랐는데도 뻐끔거려....무서워.... >



그녀는 마치 남의 얘기 하듯이 미국얘기를 의도적으로 피해가는듯 했다



나는 어느덧 자연스럽게 은주란 이름을 불렀고 그녀는 나에게 오빠라고 서슴없이 대했다



우리는 시끌거리는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횟집에 들어갔다



< 어서오세요...2층으로 올라가세요~ >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여자가 흔히있는 남녀 데이트족으로 생각 했는지 2층에서도 제일 구석진방으로 안내했다



< 소주 먹을래요....오빠도 술먹을줄 알죠? >



회가 들어오고 어느정도 상이 차려지자 그녀가 술을 찾았다



< 소주 독한데...괜찮아요? >



< 학교 다닐때 지혜랑 어지간히 먹고 다녔어요...호호...항상 지혜가 이기긴 했지만요... >



< 그럼 나보다 쎄겠네요.....난 서너잔이면 취하는데...푸훗~ >



갑자기 술먹고 취해 실수한 사건이 생각났다



대학때 밤새 술먹고 친구네 집에서 둘다 발가벗고잤는데 깨어보니 그녀석 엉덩이에 내 아랫도리를



바싹 붙히고 엉겨붙어 자고있었던 것이다



누가봤으면 영락없이 동성애라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런생각을 하며 피식웃고있는데 그녀가 놀란 눈으로 빼꼼히 내게 물었다



< 오빠....왜 웃어요? 혹시.....응큼한 생각 ? >



< 허헛...응큼이라뇨....옛날 술먹고 실수한 생각이 나서요...하하하 >



그날 있었던 얘기를 해주니 박장대소 하며 자신도 지혜와 그런일이 있었다며 깔깔깔 웃는다



< 우리도 그날 얼마나 취했는지 지혜집에서 엎어져 잤거든요...물론 깨보니 우리도 알몸이었구요...



그런데...호호호...그걸 사모님이 보신거 있죠? 얼마나 웃겼겠어요.....사모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니들 사귀냐? 호호호 까르르르..... >



우리는 한참을 박수치며 식탁을 치며 웃어제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항상 품위를 잃지 않으며 소리를 내서 웃지 않을때는 언제나 눈으로 웃어보였다



그런 그녀가 점점 내게 가까워 지는 느낌이었다



< 그런데.....왜 친구 어머니한테 자꾸 사모님이라고 하세요? >



갑작스런 내질문에 당황 했는지 술을 한모금 들이키곤 천천히 말을 꺼냈다



< .........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벌리다 다 날리고 한때 사모님댁에서 일하셨어요.....



엄마는 주방일을 돕고 아버지는 사장님 운전기사일을 하셨구요.....그.....댁에서 그렇게 3년을 살았어요.....



그때부터.....전 사모님이라고 불렀어요.....엄마도.....아버지도.....그래서 입에 베었나보죠... >



< 그랬구나.....지혜씨는 언제 알게 됐구요?... >



< 물론 그때도 알고 지냈지만 거의 대화는 안했어요....학교도 틀리고....지혜가 더 아는체를 안하더라구요....



그러다가 같은 대학교를 가게 되었어요....그러다 술을 한잔하게 되었고 서로 호탕한 성격인지라



금방 친하게 지낼수 있게 되었구요.....2학년 올라갈때쯤 사장님이 아버지에게 작은 사업체하나를



맡기셨어요.....그때부터 우리는 독립을 했고 그 바탕으로 지금처럼 잘 살수있게 되었구요.....



아버지가 항상 고마워 하시죠... >



< 그랬군요.....역시 사장님 다워요..... >



< 사장님 쓰러지신후에 아버지는 날마다 새벽에 그댁에 가서 마당쓸고 풀뽑고.....연못청소하고.....



평소 사장님이 하시던 일을 하시죠...사모님께서 극구 말리시지만 아버지는 이까짓꺼는



사장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사장님이 직접 이일을 하실때까지



계속 하실거라며 떼를 쓰신대요....이것도 전부 어제 사모님께 들었어요...호호... >



< 사장님도 사장님이시지만 아버님도 아버님이십니다.....그런분이시기에 그런분을 만나셨겠죠..... >



진심이었다. 그렇게 평소 사장님은 남에게 베풀길 좋아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싶으면 자식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 그렇게 거두신 분이셨다



그러기에 박이사님도 평생을 같이한 친구분이시지만 회사내에 두분이 친구라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몇명밖에 없을정도로 공과사에 밝은 분이셨다



부끄러웠다. 그동안 사장님의 빈자리를 핑계로 바쁘게만 움직였지 사장님의 사소한 빈마음을 채우지 못한



내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빈 술잔에 술을 가득부어 단숨에 들이켰더니 그녀까 다소 놀란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 아버지도 실장님을 잘 아신대요.....굉장히 칭찬하시던데요... >



< 아버님처럼 훌륭하신 분께 칭찬들을만큼 잘한거 없습니다......은주씨 아버님을 한번 뵙고 싶군요... >



< 어머! 인사드릴려고요? 까르르르.....딸 달라고 떼쓰실려고요? 킥킥... >



< 네에? ........ 하하하하 >



사장님 사업체를 이어 받으셨다면 분명 나하고도 연관이 있는 업체일것이다



혹시 여지껏 부딛히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건 아닐까.....혹시 내가 그 어르신께 실수라도



하지 않은걸까....



가까이 보면서 칭찬을 할때는 잘못하는것도 한눈에 알아보셨을텐데....걱정이 밀려왔다



< 오빠! 우리 노래방 가요.......네? >



소주를 거의 한병다 비울때쯤 그녀가 분홍색으로 변한 자신의 볼을 토닥거리며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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