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하늘이 - 단편11장

[11] .... 대화의 시작은 <공통영역>에서









우리 학교에는 물리 선생님이 바뀌었다.

새로 오신 정애란 선생님으로 여자분이신데 얼굴은 예쁜 편이다.

작고 갸름한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을 걸쳤는데,

그 안경이 얼마나 큰 지 얼굴을 보면 안경 밖에는 안보일 정도이다.

키는 평균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고, 옷도 그렇게 야하게 입지 않는다.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말도 시원스럽게 잘한다.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수업을 하다가 개념을 설명할 때에는 자주 열을 받는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정애란 선생님이 열을 받는지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었다.



정애란 선생님 이전의 물리 선생님은 남자였는데 그 분도 재미있게 수업을 하셔서

우리에게 인기가 꽤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수업내용 말고 다른 얘기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고

그 대신에 <공부해오기> 숙제를 많이 내주는 편이었다.

우리는 방송수업을 듣거나 참고서를 공부해서 내용을 이해했어야만 했다.



나중에 정애란 선생님은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그래서 앞부분을 워낙 부실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뒷부분에서 수업이 안될

정도라면서 열을 받아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정애란 성생님이 나를 상담실로 불렀다.









정애란선생님 : 모의고사 점수랑 내신 점수가 똑같이 높은 이유를 알고 싶어요.



나 : 열공에 빡공까지 다 하니까요 ... 헤헤~



정애란선생님 :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 공부방법을 알고 싶은데 ....



나 : 비법은 없어요.

먼저 개념정리를 하고 나서 문제집에 있는 문제들을 풀고,

나중에는 그 단원에서 출제된 모의고사나 수증문제까지 같이 풀었어요.



정애란선생님 : 그런 문제까지 풀려면 모두 다 이해가 돼요?



나 : 다는 안되죠.



정애란선생님 : 그럴 때는 어떻게 했어요? ... .그게 궁금한데 ....



나 : 수능이나 모의고사는 EBS 에 올라와있는 해설강의를 듣고,

문제집에 있는 고난도 문제는 해설집을 펴놓고 공부하고 .....



정애란선생님 : 그러니까 학교에서 선생님께 따로 질문을 하거나 한 적은 ......?



나 : 없습니다.



정애란선생님 : 수학도 거의 비슷하던데 .....



나 : 수학도 같은 방법으로 ....



정애란선생님 : 학원이나 과외는?



나 : 전혀 ....



정애란선생님 : 그럼 공부는 주로 어디서 해요?



나: 평일에는 학교 끝나면 집에 가서 조금 더 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저희 동네에 한마음도서관이라고 있는데 .....



정애란선생님 : [끄덕끄덕} .....

참나~ ...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

그렇다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서 얼마 있다가 하나여고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이 수학여행을 일본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독도와 다른 정치적인 문제들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은 사이가 안좋아져서 제주도로 바뀌었다고 했다.



하늘이는 학교에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수학 여행에 가서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제주도에는 지금까지 여러 번

가 본 적이 있어서 관심도 별로 없다고 했다.

하늘이는 차라리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했다.



하늘이 엄마는 처음에는 하늘이의 고집스런 결정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나중에는 하늘이가 하겠다는 대로 하게 두었다.

그래서 학기 초에 수학여행 신청을 할 때 하늘이는 아예 신청 하지를 않았다.







하늘 : 나한테는 수학여행이라는 것을 갈 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아서 ....



나 : 그래도 고교시절의 추억일텐데 ....



하늘 : 매일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또 그것을 어떻게 해보려고 발버둥치는

이것이 내 솔직한 고교시절이야.

수학여행으로 이 시간을 미화시킬 필요 없어.



나 : 공부는 공부지만 노는 것도 ......



하늘 : 어차피 가도 짜여진 일정에 따라서 피곤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

그런 것을 여행이라고 몇십만원씩 내고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 같아 ....









하늘이가 수학여행을 가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것을 은수도 알았다.

은수도 가지 않겠다고 했으나 은수의 엄마는 은수의 생각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희나 은수는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연희 : 우리가 하늘이랑 정호한테 예쁜 선물 사다 줄 테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나 : 선물? .... 미리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잘 갔다 오세요~!!!



은수 : 공부는 별로일 것 같고 ... 흠 ....

둘이서 깔끔한 Love Story 하나 만들어낼 것 같네~ .. 호호호~



하늘 : 어머머~ ..... 얘가~!!?



은수 : 아무튼 우리가 실시간으로 중계방송 해 줄 꺼니까 ......







이렇게 걔네들 셋이 휴게실에서 만나면 아무래도 화제는 수학여행이었다.



그러나 수학여행보다는 중간고사가 먼저였으므로 일단은 공부를 해야 했다.

세 명의 여학생들에게는 작년처럼 이해에도 시험공부란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그래도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나서 처음 있는 내신 시험이므로 걔네들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를 했다.

얘네들은 학교에서 하는 야간 자율학습도 빼고 도서관에 와서 공부를 했다.

주말에는 모두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서 졸지도 않고 정말로 <열공>을 했다.









연희 : 이렇게 시험때 반짝 공부한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



은수 : 하늘이처럼 주말마다 오든가 아니면 매일 오든가 했어야 했는데 ....







얘네들은 문과라서 과학은 하지 않으므로 이제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국어나

영어 텍스트 중에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내용, 또 수학 이었다.



시험은 우리 학교가 하나여고보다 1 주일 빨랐다.

내가 시험을 치는 그 주에 나는 집과 학교만을 오갔을 뿐 도서관에는 가지 않았다.



그 대신 하늘이가 도서관에서 우리 집에 들러서 나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시험 치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밤에 은수가 자기 전에 카톡을 보내주었다.







[은수톡] : 오늘 잘 쳤지? ....

아마도 내 생각 하면서 쳤으면 올백일거야~!!

또 안보이네 ..... 그러니까 또 보고 싶쟈나~!??







아침에 일어나면 또 은수의 톡이 와있다.



[은수톡] : 오늘도 은수 생각하면서 올백 맞으세요~!!?







시험 마지막 날 아침에는







[은수톡] : 시험 잘 치고 있지 ?

오늘은 네가 시험 끝나니까 저녁에 우리 집에서 만날까?







나는 시험이 모두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승호가 카톡을 보내왔지만 씹고 오후 내내 잠을 잤다.



저녁 때에는 나는 은수네 집 앞으로 가서 은수를 만났다.

은수와 나는 함께 시내로 은수의 수학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

은수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캐리어, 바지, 모자, 선글래스 등이었다.







은수 : 우리 둘이 각자 따로따로 물건을 사지 말고

이 번에 내가 사면 나중에 네가 갈 때 너도 같이 쓰자.



나 : 네 바지를 나랑 같이 입자고?



은수 : 에이~ .. 그건 쫌 아니고 ... 호호~



나 : 시험 끝나고 사도 되는 것 아냐?



은수 : 네가 오늘 시간이 많쟈나? .... 호호~

또 지금 나한테 기분 전환도 필요하고 ....







은수도 이제는 제법 귀엽고 사랑스럽다.

요새는 은수랑 같이 있을 대에는 하늘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하늘이는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많이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은수는 약간 덤벙대고 또 실수를 저지른다.

은수에게는 이런 점들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다음 주에는 하늘이네 학교의 중간고사였다.

내가 학교 마치고 도서관으로 가면 얘네들이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하늘이는 작년보다는 점수가 확실히 올라서 등급도 꽤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은수나 연희의 분위기는 약간 살벌한 것 같아서 점수를 물어보면 안될 것 같았다.









이렇게 중간고사 시험이 모두 끝나자

그 동안 의무적이었던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것이 폐지되었다.



매일 9시까지 남아서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없어지고,

그 대신에 하고 싶은 학생들만 신청해서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당연히 신청하지 않았다.



이것은 하늘이나 승호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서울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다 같이 없앤 것 같았다.



아마도 어른들이 이제는 세상을 바로 보려고 마음을 먹었나보다.











그래서 나는 하늘이랑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은수나 연희도 도서관에 자주 왔다.











한번은 토요일 오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나에게 정애란 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정애란 선생님 : 지금도 도서관에서 공부중인가요?



나 : 예



정애란 선생님 : 한 시간 정도 후에 내가 도서관으로 갈께요.







그런데 정말로 정애란 선생님은 저녁 무렵에 도서관으로 와서 나를 휴게실로 불러냈다.

무릎 위쪽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치마와 흰 와이셔츠에 옅은 갈색의 니트를 걸친

정애란 선생님은 역시 커다란 안경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내가 공부하는 참고서와 문제집 그리고 내가 정리하는 공책을 들고 나오라고 했다.

선생님은 마치 검사라도 하듯이 일일이 살펴보고 나서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정애란 선생님 : 맛있게 먹어요.

열공하는 것을 내가 방해했으니까 내가 쏠께요~





나 : 감사합니다~!!





정애란 선생님 : 맞아~!!!

이렇게 공부하는데 그 점수가 안나오면 오히려 정상이 아닌 거야~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거의 비슷해요.

정호는 과와나 학원에 다니지 않는 것이 좀 특이할 뿐이네.





나 : 걱정 많이 하셨어요?





정애란선생님 : 상위권의 학생들에게는 성적을 유지시켜야 하고,

중하위권의 학생들은 성적을 오르게 해야 할 책임이 나한테는 있어요.

내 앞에 하시던 그 선생님께서 벌려놓은 이 판국을 내가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 지를

몰라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





나 : 저는 제 공부를 제가 하고 있으니까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





정애란선생님 : 정호가 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내가 그거를 방해할 생각은 없어요.

그 대신에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학교에 가져와서 나한테 물어보세요.

아니면 나한테 문자를 보내서 무슨 책 몇페이지 어디를 모르겠다고 미리 말하면

그 다음날 나랑 같이 해봐요.





나: 예, 감사합니다.





정애란선생님 : 이 해에 물리1 이 잘 끝나면 희망자들을 모아서 겨울 방학때

물리2 해 볼 생각인데 정호도 할래요?





나 : 물리 2 는 어렵기도 하고 양도 많을 텐데요 ....

우리 학교에서 누가 하려고 하기는 할까요?





정애란선생님 : 아무튼 연말에 봅시다~

정호는 수학을 탄탄하게 하고 있으니까 충분해요.







선생님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하늘이랑 은수가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나를 보자 휴게실로 불러냈다.







하늘 : 그 여자 누구야?



나 : 학교 물리선생님



은수 : 엄청 예쁘던데? …. 왜 왔대?



나 : 물리 2 할거냐고



하늘 : 왜 학교에서 물어보지 않고?



나 : 왜 그러는 거야? ......

나는 주로 나 혼자 공부하는데 어떻게 공부하나 보려고 오신 거야.



은수 : 이상하쟈나?

너무 예쁜 여선생님이 주말에 제자가 공부하는 도서관에 나타나다니 ....



하늘 : 알고보니까 별 것도 아니구만 ... 은수 너 쫌 오바하지마~!!







하늘이는 은수를 나무래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하나 여고의 수학여행은 4박 5일 이었고, 월요일에 출발해서 금요일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관광버스를 타고 학교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가서 제주도까지는 여객선을

타고 간다고 했다.





출발하기 전날 일요일에도 연희와 은수는 하늘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연희는 물건도 사고 또 짐을 싸야한다고 오후에 들어갔고

하늘이는 연희가 물건을 사러 가는 데에 같이 간다고 연희와 같이 나갔다.





은수는 저녁 9시까지 공부하고 나와 같이 도서관을 나와서 이제 집에 가면 자기는

내일 떠날 짐을 싸야 한다고 했다.



골목길에 접어들자 은수는 내 손을 잡았다.

나도 은수를 당겨서 안았다.







은수 : 아무리 바빠도 너한테 키스는 해주고 가야지~!!







우리는 걸음을 멈춰 서서 키스했다.

나는 은수의 허리를 당겨서 안았고 은수는 나에게로 몸을 부딪쳐왔다.







은수 : 사랑하는 자기랑 일주일 동안을 떨어져있어야 하네 ......







은수는 내 팔을 잡고 계속 걸었다.

걸을 때마다 내 팔에 은수의 몸이 부딪쳐왔다.

나는 은수네 집 밑에까지 데려다 주고 잘 갔다 와서 보자고 말했다.

은수는 내 입술에 뽀뽀를 하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은수네 집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주시는 과일을 먹고 씻고 책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려고

전화기를 켰다.





은수로부터 카톡이 들어와 있었다.







[은수톡] : 휴우~ ...... 이제 짐 다 꾸렸다.

자기도 이제 곧 잘꺼지? ..... 내 꿈 꾸고 잘자~





[내톡] : 여행 떠날 생각에 잠이 오기는 와? .... 잘 자요~





[은수톡] :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 너 보고 싶어서 가기 싫다.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가지 말까?

그럼 5일 동안 너랑 같이 있을 수 있는데 ....



[내톡] : 갔다가 와서 또 보면 되지.

안가면 결석으로 처리하니까 안될 것 같은데 ....









원래 우리 학교에서는 휴대전화기를 꺼놓는 것이 규칙이다.





나는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전화기를 꺼놓는다.

점심시간에만 켜놓고 그리고는 수업이 끝나면 다시 켠다.









월요일 점심시간에 전화기를 켰을 때 은수에게서 톡이 들어와있었다.





[은수톡] : 버스가 인천으로 출발했다.

이제 정말 가는 기분이다.





[은수톡] : 이제 인천에 도착해서 점심 먹으러 간다.

저기 항구에 우리가 탈 배가 보이거든 .... 엄청 크다.

배에 타면 배멀미를 안해야 할텐데 걱정스럽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전화기를 켰을 때에도 은수의 카톡이 들어와 있었다.









[은수톡] : 오후에는 인천에서 놀다가 저녁때 배에 타고 출발한단다.

나는 별로 놀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





[은수톡] : 이제 배에 탔다.

나는 피곤해서 자고싶은데 .....

아마도 잠을 안재우고 놀자고 할 것 같네.





[은수톡] : 오늘 사진이랑 동영상 많이 찍었어.

나중에 보여줄게요~

그 대신에 자기 힘내라고 사진 몇 장은 보내줄게~









나는 은수가 보내준 사진들을 보았다.

버스 안에서, 인천에서 그리고 배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은수는 엄청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도서관에 도착하자 하늘이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늘 : 오래 만에 혼자서 공부하려니까 엄청 지루해.



나 : 연희나 은수한테 연락 안 와?



하늘 : 많이 와~!! ....... 카톡도 오고 사진도 오고 ....



나 : 같이 가지 않은 것 ...... 후회 안 해?



하늘 : 나는 자기랑 공부할 건데 ..... 내가 왜 후회를 해?











우리 엄마가 퇴근하실 시간에 맞추어서 우리는 저녁에 우리 집으로 갔다.

엄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시다가 우리를 맞아주셨다.

하늘이는 거실로 들어오더니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하늘 : 마음도 꿀꿀하고 ....... 함 쳐봐도 되나요?



우리 엄마 : 응~







그 피아노 위에는 내가 연주하던 악보가 놓여있었다.

하늘이는 그 악보를 넘겨보다가 ......







하늘 : Au Bord De La Riviere



나 : 아항~ .... 강가에서







하늘이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하늘이는 이 곡을 전혀 다르게 매우 부드럽고 조용하게 연주했다.

하늘이는 단 하나의 액센트도, 스타카토도 사용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눈을 감고 하늘이의 연주를 끝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늘이의 연주가 끝났다.

엄마와 나는 조용히 손뼉을 쳤다.







우리엄마 : 지금껏 내가 들어본 연주들 중에서 하늘이가 연주하는 것이 가장 부드럽네.





우리엄마 : 이런 연주는 뉴에이지풍인데 ... 꼭 전혀 다른 곡 같아~

따로 어디서 배운 적이 있어?





하늘 : 원래 <리챠드 클라이더만>님의 연주는 주로 제임스라스트 팝 오케스트라와

협연이쟈나요.

그래서 이 곡에는 특히 드럼이랑 일렉트릭이 들어가요.

그래서인지 음 하나하나를 연주하는 것이 매우 강렬해요.

저는 혼자서 하니까~ ..... 음들을 끊지 않고 많이 이었어요.





나 : 그분의 강가에는 바람이 엄청 세게 불고

하늘이네 강가에는 바람 한점 없이 조용한 것 아냐?



하늘 & 우리엄마 : 말 되네 .. .호호호~











엄마는 하늘이를 바라보시면서 <한 곡 더 부탁해> 라고 하시는 듯이 턱짓을 하셨다.

하늘이는 Autumn Leaves 를 펼쳤다.

그 악보는 Linda Gentille 님의 연주버전인데

그 분은 뉴에이지에서 <모차르트> 라고 불리우는 분이다.

우리엄마는 하늘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우리엄마 : 이 곡을 연주하겠다는거야?



하늘 : 이 곡은 정호 네가 하면 안돼?



나 : 저 곡은 아르페지오가 너무 심해서 나는 몇 번 하다가 포기했거든~



하늘 : 음 ......



우리엄마 : 이 옛날 구닥다리 곡을 너희가 연주한다고? ...... .신기하네~!!



나 : 그 곡은 재즈계에서는 완전 탑일껄요~?!!







우리엄마 : 이 노래는 원래 라는 샹송이었어요.

<랑데부> 라는 발레를 위해 만든 발레곡이었어요.

그런데 이브몽땅님이 <밤의 문>이라는 영화에서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이 노래가 이브몽땅님의 노래가 되다시피 해요.

나중에는 노랫말이 영어로 번역되고 이 노래의 이름이 라고 널리 알려졌어.

그리고나서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600 명도 넘는 가수들이 부른 재즈곡이야 ....

Les Feuilles Mortes 라는 말은 나무에서 떨어져서 죽어버린 잎사귀들을 말하지만

Autumn Leaves 는 가을날의 나뭇잎이쟈나?

이것 역시 나무에서 떨어진 낙옆을 말해요.





나 : Linda Gentille 님의 연주는 분위기가 그 노래랑은 완전 달라요.



하늘 : 아무래도 뉴에이지니까.....





우리엄마 : 뉴에이지 음악가들은 드럼이라는 악기를 빼고 연주하쟈나요.

그럼 피아노 연주도 달라져야겠죠.

아마도 Linda Gentille 님의 생각이 그런 것 같은데 ...





나 : 곡은 좋은데 ..... .노래는 이미 우리 세대와는 좀 .....

노랫말을 보면 그 <이브몽땅>님 부인의 죽음이 떠오르던데요.



하늘 : 제가 불어는 몰라서 스킵하고 영어버전으로 봤는데 ....

노랫말이 정호는 왜 싫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참 좋던데요. .....

여기에도 적혀있네요.





우리엄마 : 맞아요. .....

이브몽땅님은 영화배우 시몬 시뇨레님과 결혼해요.

그런데 영화배우와 가수였던 이브몽땅님을 이 부인께서 평화 운동가로 변화시켜요.

나중에 그의 아내분께서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분은 더 이상 노래는 부르지 않았어요.









하늘이가 연주를 시작했다.

이 연주버전은 아르페지오가 너무너무 화려해서 멜로디를 덮어서 아예 감추는 것 같디.

그 만큼 왼손과 오른손의 연주가 쉽지 않다.



마치 눈이 내리듯 수많은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 모습을

또 땅에 떨어진 수많은 낙엽들이 바람에 뒹굴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습들을

하늘이의 손가락은 건반을 오르내리면서 현란하게 그려내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연주이다.

나는 예전에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은 포기했었다.

지난 날 쇼팽이 너무 어려워서 클래식을 아예 중단해버린 것을 후회했었다.





그러나 하늘이는 화려하게 마지막까지 해냈다.

나와 우리 엄마는 또 손뼉을 쳐주었다.







이제 우리 엄마는 우리를 식탁으로 부르셨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엄마 : 너무 공부만 열심히 해도

하늘이 말처럼 삭막해질 수가 있어요.

내 생각에 둘이서 이렇게 피아노 연주도 하고

또 음악 얘기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





나 : 우리는 많이 모르니까 ....



하늘 : 어머님께서 도와주시면 .....



우리엄마 : 나도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것들이라서 .....



하늘 : 그래도요.



우리엄마 : 작곡하신 분, 지휘하고 연주하시는 분 그리고 듣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영혼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에 쓰이는 언어가 음악이라고 해요.



하늘 : 음악이 영혼의 언어라고요 ....



우리엄마 : 영혼이 대화를 잃고 살면 우리의 영혼은 피폐해져요.

이것을 우리는 삭막하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



하늘 :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마음이 심난해요.

오늘은 공부가 더 이상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아요.



우리엄마 : 수학여행 탓인가?

아니면 너무 오래만에 피아노를 연주해서 그러나?







우리 엄마의 말씀대로 우리는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이 아닐 때에는

학교와 도서관만을 오가는 일정에다가 음악을 추가하기로 했다.



우리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우리 집 아니면 하늘이네 집에서

주로 하늘이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는 듣고

또 우리 엄마는 몇 가지 얘기를 해주시고 ....

또 하늘이는 시험 끝나는 주말에는 최소한 영화 한편은

극장에서든지 집에서든지 꼭 볼 것도 넣자고 했다.

우리 엄마는 또 대찬성이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늘이가 <너무 삭막하다>고 투덜거리기 때문에 ......



그러니까 나는 하늘이랑 공부도 같이 하고

쉬는 시간에는 음악도 같이하고 .....

이렇게 해서 하늘이는 우리 엄마를 등에 업는 것 같았다.













다음날도 도서관에서 우리 집으로 갔다.





엄마께서는 거실에서 TV 를 보고 계셨다.



안드레아 보첼리 (Andrea Bocelli)와 사라 브라이트만 (Sarah Brightman) 두 분이

콘서트장에서 Canto Della Terra (대지의 찬가) 를 부르고 있는 라이브였다.









나 : 이 노래는 워낙 자주 들어서 .....





하늘 : 그래도 또 보세요.

나 이하늘은 자기한테 태양이라는 사실을 언제라도 잊지마~!! ... 호호호~





우리엄마 : 저런 크로스오버나 팝페라도 훌륭하쟈나?





하늘 : 클래식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

같은 노래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서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나: 클래식도 누가 지휘하느냐에 다라 다르쟈나?





하늘 : 우리 불쌍한 고2 들은 누가 지휘해주죠?





우리엄마 : 인생에는 지휘자가 따로 없지.

인생이라는 곡은 혼자서 연주해야하는 독주쟈나?

서투르거나 훌륭하거나 ..... 자기 인생의 지휘자는 자기 자신이야.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협연>하는 것이고 ...





하늘 : 그래도 우리는 아직 어리니까요.





우리엄마 :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배워야죠.





하늘 : 세대가 달라졌쟈나요.





우리엄마 : 그렇긴 해.

옛날에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에는 주로 라디오나 전축에서 그 음악에 대한

상상을 하면서 들었거든.

요새는 저런 콘서트나 아니면 영상이 있는 음악을 들으니까 귀로 들으면서

동시에 눈으로 봐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상상을 할 수 없는 문제점도 있어.

우리는 글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을 많이 했었고 .....





하늘 :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는 세대와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세대네요.





나 : 우리는 눈으로 보아야지만 이해하는 세대 .....

이제는 시나 소설들도 사진들을 넣어서 만화처럼 만들쟈나요.



하늘 : 그러니까 어른들이 하는 말은 따분하게 들리고 금방 짜증스럽고 ....





우리엄마 : 옛날에는 세대차이라는 말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내용이나 방법의 차이였어.

그런데 이제는 그것만이 아냐.

우리 사이에 있는 이 세대차이를 감히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





하늘 : 저는 어머님이랑 세대차이가 있다는 것을 못 느끼겠는데요?



나 : 하늘이는 쫌 둔한 건가? ..... 나는 느끼는데 ..... ㅋㅋㅋ





우리엄마 : 결국은 어른이 어른이라는 카리스마를 내세우려고 하고

애들은 그 카리스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하늘 : 어머님은 저희가 존경할 만큼 멋지시쟈나요?

어머님의 카리스마는 저희가 인정할래야 인정할 수 밖에 없는걸요?



나 : 오늘은 아부가 쫌 심하네 ....



하늘 : 아부가 아냐~!! ......

우리 엄마랑은 완전 다르시쟈나?

우리 엄마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나는 일단 먼저 짜증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야.

그것은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는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겠어?





우리엄마 : 그러니까 너희들은 명심하세요.

우리 어른들이 너희들이랑 대화를 하려면

탁자에 음료수 한 컵을 놓고 마주앉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우리 어른들도 너희들이 아는 것을 부지런히 공부해서 같이 알아야 해.

그렇게 해서 두 세대 사이에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을 만들어야 해.

그 <공통의 영역>이 없이는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대화이거나

아니면 억압 또는 강요된 대화일 것 같아.





하늘 : 그러니까 어머님께서는 그런 <공통의 영역>을 많이 갖고 계신 것이

어머님의 장점이고 카리스마라고 저는 생각해요.





우리엄마 : 하늘이랑은 그게 자연스럽게 되는데 정호랑은 전혀 안돼.

그래서 나는 정호랑 말을 잘 안해 ..... 호호호~



하늘 : 정호가 쫌 삭막하고 무식해서 .... ㅋㅋㅋ



나 : 오늘은 내가 많이 억울한 날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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