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차장 - 5부 1장

박 차장 5-1





이제 영업3팀에서 준비한 이벤트가 일주일 앞으로 닥아왔다. 장우를 비롯한 팀원들은 이벤트 막바지 준비를 위해 눈코틀새 없이 움직였다.



“이번 이벤트로 피날레를 장식할꺼야.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주자고. 그리고 이벤트 다음 날인 금요일은 모두 휴가 처리할 거니까. 휴가원들 미리 내도록.”



“우리 팀 모두요?”



“그래. 배수진이다. 목표 달성 못하면 휴가원이 아니라 사직서가 될꺼야.”



“엑스터시팀 안무는 어때요? 차장님.”



“응…조금 변경했어. 엑스터시팀은 쇼 처음 부분하고 나중 부분 모두 2개의 댄스쇼를 맡기로 했어.”



“그 사람들 의욕이 대단하던데요.”



“그래, 너무 의욕적이어서 일 내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야.”



“안 대리가 이벤트 홀 맡고 있으니까, 엑스터시팀의 장은주씨랑 오늘 최종적으로 조명하고 음악하고 시간하고 결정지어.”



“알겠습니다요~”



“뭐가 그리 기분 좋아서 싱글벙글이냐? 안 대리.”



“제가 영어로 안 마디 올릴까요?”



“영어로? 그래 읆조려봐~ 멋있게.”



“yesterday she didn’t, today she does.”



“음~, 음~, 음~ 좋아! 좋아!”



“저 남자들 음흉스럽게 웃느거 봐요. 고 대리님…하여간 남자들이란 단순무식형이라니깐요.”



“그러게”



“여보세요?”



전화를 쥔 정 대리의 미간이 순간 찡그려졌다.



“단순무식 대장님”



“?”



“대장은 여기 하나쟎아요?”



“나?”



“그래요. 차장님이요. 죤나 왔어요. 죤나 받아보세요.”



정 대리가 돌려준 전화는 시부야의 지영에게서 온 전화였다. 정 대리 눈치를 살피려했더니 정 대리는 다이어리를 들고 이미 사무실 문을 성큼성큼 나서고 있었다.



“여보세요?”



“…”



“토요일 안될까요? 오늘 한참 바쁠텐데.”



“…”



“알겠어요. 그럼 오늘 식당 끝나는 시간에 갈께요.”



“…”



“그럼, 7시에 뵐께요. 네. 그럼.”



“차장님!, 차장님도 이제 마음 좀 정해요. 많지도 않은 여자 가지고 왔다갔다 하지 말고.”



“시끄럽다. 니들이 내 맘을 알아? 난 yesterday she did, today she does. 다.”





장우는 퇴근 후, 지영과 만나기로 한 강남의 카페로 나갔다. 먼저 장우를 기다리고 있던 지영이 손을 흔들더니 자리를 일어났다.



“장우씨, 차 가지고 왔어요?”



“네, 바로 앞에 주차시켰어요. 몸집이 작아서 어디든 주차가 되거든요.”



“그럼, 저랑 어디 좀 가요.”



“그러죠. 뭐. 어디로 모실까요?”



“미사리요.”



“미사리…알겠습니다.”



차가 88대로로 들어서자 지영이 허리를 차 시트 깊게 파 묻으면서 장우에게 물어봤다.



“장우씨, 혹씨 옛날에 성대 앞에 있던 촛불잔치라는 카페 알아요?”



“알지요. 우리 나이에 서울에서 대학 다녔던 사람 중에 거기 모르는 사람 있겠어요?”



“장우씨도 가봤구나~”



“저도…가 봤지요.”



“그럼 촛불 끄고 뽀뽀도 해봤겠네요.”



“아이고…지영씨도…너무 오래되서 기억도 안나요. 그러는 지영씨는요?”



“저요? 제 여자 친구들하고 갔었어요. 사전답사로. 호호호.”



“사전답사면…사후확인도 하셨겠네요. 하하하.”



“그랬으면 좋았는데…답사로만 끝났어요. 꼭 거기서 뽀뽀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지금 가는 곳이 촛불잔치에요.”



“미사리에도 그런게 있었나요?”



“오늘 잡지책에서 봤어요. 미사리에 있다고. 그리고 오늘 장우씨랑 꼭 같이 가고 싶었거든요.”



“네…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제가 살아있는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습니까? 살아있어도 이렇게 미인의 소원을.”



장우와 얘기를 주고 받는 지영의 얼굴 표정이며 말투가 오늘 따라 더 밝고 환한 것 같았다. 장우와 지영은 왼편에 펼쳐지는 한강의 야경을 보면서 미사리의 촛불잔치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예전에 유명했던 카페 이름을 쓴 것 처럼 카페의 내부에는 30대 후반 이상의 남녀들로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조그마한 원탁 가운데 타오르는 초가 카페 내부를 밝히는 유일한 조명이었다. 장우와 지영은 웨이터로부터 안내 받은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가 매뉴판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지영씨 뭐 드실래요?”



“돈까스요.”



“돈까스요? 우히히”



“왜요? 뭐가 웃겨요?"



"시부야의 사장님께서 돈까스요?”



“네. 그때, 여기 오면 돈까스 시킬려고 그랬어요.”



“그래요. 여기 돈까스 2개요.”



그들이 돈까스를 다 먹을 즈음, 스피커에서 ‘에레스뚜’ 가 흘러나왔다.



“지영씨, 이거 제가 합창으로 불렀던 노랩니다. 갓 입학해서.”



“호호호, 장우씨가 합창을요? 장우씨 노래 잘 불렀나요?”



“하하, 아니요. 노래 잘부르는거랑은 상관없었어요. 모두 불러야 했으니까. 이거 불렀을 때 제일 힘들었던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가사 외우는 거? 박자 맞추는 거?”



“아니에요. 반주 처음부터 노래 끝날 때까지 웃는 얼굴로 있는거요.”



“웃는 얼굴이 그렇게 어려웠어요?”



“네, 지금처럼 친절 교육이 있어서 웃는 거 연습하던 때도 아니었고…처음에는 얼굴 근육에 쥐나는 줄 알았어요. 그때 찍은 사진 보면 바보 같아요…”



“아니에요. 장우씨는 웃을 때 매력있어요.”



노래가 멈추고 조용하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손님 여러분, 지금부터 1분 동안 촛불을 끄도록 하겠습니다. 종소리가 울리면 촛대 옆에 있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초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정확히 1분 입니다. 1분 후에는 저희 웨이터들이 식탁을 돌아다니면서 다시 촛불을 켜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시간 못드려 죄송합니다.”



“땡”



지영이 촛불옆에 있는 작은 그릇 같은 것이 있는 도구를 집더니 촛불을 껐다.



“장우씨…뭐하고 계세요? 어서 제 옆에 와서 키쓰해 주세요.”



“네…지영씨…그럼.”



지영의 옆 자리로 자리를 옮긴 장우가 지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의자에 놓여있던 지영의 손이 어느샌가 장우의 목을 휘어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달콤한 혀가 장우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장우와 지영의 혀가 둘 사이에서 서로 얽혔다.



“땡!”



“촛불 시간이 끝났습니다. 여성분들은 남성분들의 얼굴에 묻어있는 루즈 자국을 확인하시고 이제부터 저희 직원들이 다시 촛불을 켜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운 1분이었다. 웨이터들이 자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조명이 은근하게 들어왔다. 조명으로 서로의 얼굴을 땐 장우와 지영이 겸연쩍게 서로를 바라봤다. 장우는 다시 제자리로 옮기려 하자 지영의 장우의 손을 잡았다.



“그냥 제 옆에 계세요.”



조금 있으니 웨이터가 그들의 탁자로 와서는 초를 다시 밝혔다. 웨이터가 지나가자 지영이 장우의 품안으로 몸을 기댔다.



“장우씨.”



“네, 지영씨.”



“저, 내일 일본으로 떠나요.”



“네? 일본으로요? 사업차 떠나는건가요?”



“아니요. 아주 떠나는거에요.”



“왜…라고 물어봐도 될까요?”



“일본에 남편하고 제 아이가 있어요. 하긴…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전에 토모상, 기요꼬짱 이라고 지영씨 이름인 아야미상과 함께 일본 이름들을 들을 것 같은데. 그럼 그 이름들이 지영씨의…”



“네, 그래요.”



“근데, 왜 갑자기…”



“부끄러운 얘기지만, 전 그 집안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 여자였어요. 본부인도 있었구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사람의 본부인이 죽었어요. 절 반대했던 그 사람의 부모님들도 지금은 안계시고…”



“그래요?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나요?”



“모르겠어요? 그때는 많이 사랑했는데, 그 사람을 아직 사랑하는지…하지만, 아이가 보고 싶어요. 절 꼭 닮았었거든요.”



“그렇군요…”



“떠나기 전에 장우씨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지영을 품 안에 안은 채로 두 사람의 시선이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봤다. 그들의 위로 ‘이글스’의 ‘데스페라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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