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 날 - 18부

그날은 기분이 하도 엉망이라 점심도 먹기 싫었다.

모두들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궁시렁 대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씨 .. 두고 보자.”



그녀도 없는 지금 나는 화풀이 할 것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장난 전화나 해 볼까?”



핸드폰을 빼서 아무데나 전화를 걸었다.



“네 우리 꽃집입니다.”



“왜 장의 차 가 안 오는 거야?!!”



딸깍..



그리고 다시 재 다이얼을 눌렀다.



“네 우리..”



“시체가 썩어가고 있다고!!”



딸깍..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다시 그 번호로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삐리리리리~~



어디선가 핸드폰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내 쪽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시선을 옮기던 나는 그녀의 자리에서 벨 소리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상 수납함 쪽 이었다.

나는 보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그녀의 책상 수납함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칠칠맞게 이런 거나 두고 다니고 말이야.”



삑~



“거기 세 놓는다고 하신 분 계시나요?”



“네? 새를 잡아요?”



“아뇨. 생활 정보지를 보니 세를 놓는다고 하셨더라고요. 그 분 지금 안 계신가요?”



나는 갑자기 심술이 났다.



“안 계시는데요?”



“그럼 좀 전해 주실래요? 그 집이 꼬옥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다른 분에게 주시지 말고 저에게 좀..”



“누가 세를 놓는다고 했어? 내 마누라가 헛소리를 한 것 같으니까. 이제 신경 끊으쇼. 글쎄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네? 마누라 요? 전화 받으시는 분은 분명히 여자 분 이신 것 같은데.”



“네 가 뭔데 시시콜콜 참견이야? 대패로 얼굴을 밀어 버리기 전에 빨리 전화 끊어!!”



삑~!!



뚜우...



그녀는 내 와일드함에 놀랐는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히히 고소하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안심할 수 가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수를 내서라도 몰려드는 파리 떼를 박멸해야 했다.



그녀는 나 만 의 것이니까.



두 마리 정도의 파리를 쫒고 나자 점심시간이 끝났다.



좋아. 이제부터는 나도 전면 전 이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최대한 힘 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현정 씨 맡긴 일은 어떻게 됐어?”



“여기...요.”



나는 힘 없이 그녀에게 서류를 넘겼다.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기운이 없어 보이네.”



“저 죽는데요.”



“뭐?”



그녀는 아주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내가 신경 쓰이지?



“점심 시간에 병원을 갔다 왔어요. 식욕부진 상태가 계속 되고 영 기운이 없어서요.”



“뭐래?”



“환경이 문제래요.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구질 구질 한 방에서 생활 하니까. 보통 사람보다 영양상태 나 건강상태가 나빠진 거래요.”



“암 같은 건 아니지?”



“암이 될 수 도 있데요.”



“그럼 아직 죽는 건 아니네?”



“하지만 이대로 그냥 자취를 한다면 전 분명히 암으로.. 흐흐흐흑!!”



나 참 내가 별 생쑈를 다하고 있다. 정말.



그녀는 내 말에도 별로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그럼 회사를 그만둬야 겠다.”



“네?”



“죽을 사람이 회사를 다녀서 뭐하게. 그냥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하는 것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길이 되지 않겠어?”



“팀장 님!!”



나를 놀리 듯 그녀는 웃었다.

나 참! 요즘 저 미소 많이 보네.

그녀는 그 이상 신경을 쓰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야속한 사람 내가 죽어 넘어져야 후회 할거야.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나에게는 정말 지겨운 하루였다.



“퇴근 시간이 됐습니다. 모두들 집에 갑시다!!”



동현 선배 가 먼저 운을 떼면서 소리 치자 주위에서 하나 둘 퇴근을 서둘렀다.

그녀도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일찍 퇴근 하려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 그럼 퇴근 들 하세요.”



마치 썰물이 빠지듯 순식간에 사무실이 비워졌다.

그녀는 막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던 참이었다.



“현정씨는 퇴근 안 해?”



“할 거에요!!”



나는 퉁명스럽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 문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자 그녀가 말했다.



“짐 옮기는 데 차 필요 해?”



“이사 갈 곳 도 정하지 않았는데 벌써 차씩이나..”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조만간에 나도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하니까 괜스레 나온 말인 듯 했다.



“이사 갈 곳도 정하지 않았다고? 그럼 나는 다른 룸메이트를 찾아 봐야 겠네?”



“네?!!”



나는 놀라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제 현정 씨 집에 가보고나서 이런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 집 정원도 있고 수영장도 있으니까 현정씨의 병이 더 빨리 나을 수 있을 거야.”



“팀장.. 님...”



훌쩍.



역시 나의 그녀였다.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다니. 나는 그녀의 품에 뛰어들어 실컷 응석을 부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19부에서 계속>



현정이로 인해 그녀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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