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란이의 고백


초란이란 이름을 가지 분은 최근에 페이스북을 통하여 알게 된 분입니다. 
물론 여기에서는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초란이란 분은 금년 25살이고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제 글이 너무 안 올라 간 것은 페이스북을 통하여 제보를 받던 도중에 묘한 소문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입니다. 
무슨 카페에서 저에게 제보를 하게 되면 협박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증거를 대면 인정할 부분이 있으면 인정을 하겠으니 증거를 대라고 하여도 막무가내로 저를 협박 꾼으로 몰아 세웠습니다. 
그리고 <소라넷에서 잠산이란 필명으로 야설을 쓰고 있는 잠산입니다..제 야설의 대부분은 독자님들의 제조에 의하여 쓰여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쓴 야설의 거의 70%이상이 근친상간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쉬쉬 하고 있지만 엄청나게 많은 근친상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근친 고백이 아니;더라도 내용만 좋으면 얼마든지 야설이 될 수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는 님들처럼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페이스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하여 하고 있으며 그도 사무실이라 대화를 하는 도중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또 저에게 직접 상담을 하시는 분들께만 상담을 받았으며 협박이란 단어는 어불성설입니다. 판단은 여러분들께서 하실 일이라 판단합니다. 저에게 굳이 상당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단 본인께서 억지로 상담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이 저에 데하느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면 증거를 대라고 하세요. 그 증거가 확실하다면 저는 여러분들의 상담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직접 대화를 피하고 질문을 하시거니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올리시면 읽고 느낀 점을 저도 올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여 한 동안 페이스북을 하지 않다가 다시 열어보았더니 초란이란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올려놓고는 야설로 꾸며 달라고 하여 일인칭 형식으로 쓰게 된 것임을 사전에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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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란이예요. 
나이는 방년 25세이고 지금은 중견 기업에서 착실하게 근무를 하고 있죠. 
그런데 저에게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하였고 또 못 할 것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속앓이를 하기에는 버거웠고 또 버거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야설작가라는 분의 페이스북 주소를 알게 되어서 이렇게 푸념 아닌 푸념으로 제 속앓이의 일부분이라도 해서하려고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먼저 우리 집의 가족 구성원을 말씀을 드릴게요. 
지금 오십대 중반을 넘어선 아빠와 저보다 5살이 많아 30살이라는 혼기에 찬 큰오빠하고 저보다 2살이 많은 작은오빠와 그리고 딸인 제가 우리 집의 전체 구성원이랍니다. 
엄마가 어디갔냐고요? 
엄마! 
저는 엄마라는 단어를 그년에게 붙여주고 싶은 마음은 손톱 밑의 때만큼도 없답니다. 
어린 나이 탓에 직접 본 것도 아니라 들은 이야기인데 제 나이 4살이 되던 해에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노총각하고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했다더군요. 
겨우 4살 먹은 어린 딸을 내버려두고 노총각하고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한 년에게 어떻게 지고지순한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어요. 
그년에게는 년이라는 단어가 제일 적당하잖아요. 
흥~! 꼴에 야반도주를 하고도 두 아들과 딸이 제가 보고 싶었던지 몇 년 후에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큰오빠의 학교로 찾아 왔다가는 한 승질하는 큰오빠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수모를 당하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눈이 맞았던 노총각이 다른 아가씨와 눈이 맞아버려 버림을 받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큰오빠의 힘을 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였다가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수모를 당하고는 변두리 다방에서 레지로 일하다가는 시골의 티켓 다방을 전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입니다. 


다시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 아빠는 주야 교대로 근무를 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어쩜 그게 엄마라는 년이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노총각하고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게 만든 원인인지도 모를 일이죠. 
큰오빠의 말에 의하면 아빠가 야간 근무를 하는 주일이면 일주일에도 두 번 이상 저녁을 먹기만 하면 큰오빠더러 저와 작은 오빠를 보라고 하고는 노총각이 살던 방으로 가서 거의 자정이 될 무렵이 되어야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공부보다는 놀기에 급급하였고 또 남자들이다 보니 레슬링이 주된 놀이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보채면 귀저기를 만져보고 오줌을 눴다 싶으면 두 오빤 저를 눕혀놓고 귀저기를 갈아주면서 제 보지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만졌다고 했습니다. 
거기다가 엄마라는 년이 노총각하고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고 보니 오빠가 학교에서 파하기만 하면 집으로 와서 저를 상대로 놀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는 저는 학교에 들어갔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부터는 저도 두 오빠들과 레슬링을 하는 것이 최고의 놀이였습니다. 
엄마 없이 그도 일주일씩 야간근무만 하는 아빠가 밤에 직장에 나가게 되면 밤을 우리 삼 남매의 세상이었습니다. 
엄마가 집에 있다고 하여도 삼 남매가 학교에서 파하고 집으로 와서는 엄마 눈을 피하여 갖가지 놀이를 하는 판국에 엄마라는 존재가 없다보니 집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고 놀아도 못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삼 남매의 놀이는 점점 진화를 하여 갔습니다. 
레슬링에 저의 주장에 의하여 소꿉놀이가 포함이 되었고 그 소꿉놀이도 진화를 하여 엄마아빠 놀이가 포함이 되었습니다. 
엄마야 당연히 제 몫이지만 아빠 역할은 제 기분에 따라 변하였습니다. 
지금 생각을 하여도 기가 찰 노릇은 엄마아빠 놀아가 포함이 된 소꿉놀이 가운데에는 엄마라는 년과 눈이 맞아 엄마를 꼬드겨서 야반도주를 한 노총각이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두 오빠 중이 한 명이 제 남편 역할을 하게 되면 나머지 오빠는 아주 자연스럽게 노총각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을 아빠인 한 오빠가 주간 근무를 하기 시작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아빠 역할을 맡은 오빠는 야간근무가 되고 그렇게 되면 저는 노총각 역할을 맡은 오빠하고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기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진화가 거듭되어 제가 초등학교 이학년 때에는 생각지도 못 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큰오빠가 제 아빠 아니 남편이 되고 작은 오빠가 노총각 역할을 맡은 날이었습니다. 
소꿉놀이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노총각 역할의 작은오빠가 제 곁에 앉아서 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는가 싶더니 제 치마 밑으로 손을 넣었고 그걸 본 큰오빠가 손을 빼라고 고함을 치자 작은오빠는 그 노총각 삼촌이 엄마에게 이렇게 했다면서 손을 빼지 않았고 그러자 큰오빠는 작은오빠에게 손찌검을 함으로서 소꿉놀이는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소꿉놀이는 우리들 놀이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몇 칠 후 작은오빠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이미 중학생이 되어서 성에 대하여서는 약간이나마 지식을 가졌던 큰오빠가 저를 곁에 앉히고 작은오빠가 하였던 것처럼 제 치마 밑으로 손을 넣는가 싶더니 팬티 위로 제 보지를 주물렀습니다. 
간지럽다고 하였으나 큰오빠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계속 만졌고 그러자 간지러움이 사라짐과 동시에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큰오빠는 아예 손을 팬티 안에 넣고 제 보지를 주무르면서 절대 비밀로 하여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저의 근친상간의 서막이 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레슬링 놀이는 물론이고 소꿉놀이까지 사라지자 작은오빠는 집에서 놀기보다는 밖으로 돌며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였고 그렇게 작은오빠가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큰오빠는 아예 노골적으로 저더러 팬티를 벗게 하고는 눈으로 보아가면서 보지를 주물렀고 이학년 말경에는 큰오빠는 자신의 고추 아니 좆을 보여주고는 흔들라고 시키면서 보지를 주물렀습니다. 
그리고 제 보지에서 당시의 어린 저의 입장에서는 왜 나오는지 모르는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오빠는 제가 흥분을 한 것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오빠의 좆을 빨고 흔들어서 오빠 말대로 좆 물이라는 것을 나오게 만들었고 처음에는 쓰고 역겨워서 혼아 났지만 점점 길들여지면서 오빠의 좆 물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삼키게 되었고 오빠도 제 보지를 빨아주면 저는 거철게 숨을 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큰오빠와 저만의 은밀한 놀이를 하면서도 시간을 흘렀고 제가 오학년이 되고 얼마 안 가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라는 년이 있었더라면 기본적인 상식을 가르쳐주었겠지만 아빠와 두 오빠 사이에서 살아온 저에게는 성에 대한 상식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날도 학교에서 파하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밑이 따뜻하게 느껴졌고 뭔가가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놀란 나머지 팬티를 봤더니 거기에는 놀랍게도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습니다. 
놀란 저는 큰오빠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던 큰오빠가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큰오빠 손에는 패드가 들려있었고 패드를 채워준 오빠는 저더러 어른이 되어 가는 증거라고 하면서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하게 되는 것이고 그걸 생리라고 한다고 자상하게 일러주어 저를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결정적인 근친상간의 향연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마침 작은오빠가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고 또 아빠는 야간근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그 누구도 간섭을 하는 사람이 없는 큰오빠와 저 뿐이었던 것입니다.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초란아 너 어른이 빨리 되고 싶니?”아빠가 야간근무를 위하여 출근을 하고 난 후인 느지막하게 학교에서 돌아온 큰오빠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지더니 제 어깨를 잡으며 물었습니다. 
“에게~! 겨우 초등학교 오학년이 어떻게 어른이 돼?”하고 묻자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하면 넌 어른이 되는 거야, 할래?”하고 묻기에 
“재밌는 거야?”하고 의아해 하며 묻자 
“처음 몇 칠은 별로 재미는 없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재밌어 져”하기에 
“어떻게 하는데?”하고 묻자 
“볼래?”하고는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어머머 저게 뭐래?”오빠가 켠 컴퓨터의 모니터는 저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벌거벗은 동양 여자로 보이는 여자의 보지에 빨고 흔들었던 오빠의 좆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굵고 긴 좆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밌지? 저렇게 해야 여자도 어른 대접을 받는 거야”큰오빠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제 치마 안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팬티 안으로 손을 넣고 평소처럼 제 보지를 주물럭거렸습니다. 
“어른들은 모두가 저렇게 하는 거야?”그렇게 묻는 제 손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오빠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손을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그럼! 초란아 우리도 저렇게 하자 어때?”오빠가 공알을(클리토리스를 그렇게 말하였음)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자극을 주며 물었습니다. 
“저렇게 하면 좋은 거야?”오빠가 제 보지를 빨아 줄 때처럼 스피커를 통하여 들려나오는 여자의 거친 숨소리와 신음을 들으며 묻자 
“초란아 넌 내가 네 여기를 빨아 줄 때 저 여자처럼 거칠게 숨을 쉬며 신음을 할 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렇게 하였니?”되레 오빠가 저의 약점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하고 말을 흐리자 
“저렇게 해 보기 싫니?”다시 물었습니다. 
“아프지 않아?”묻고 있는 저 보지에서는 이미 흥건하게 물을 쏟아내고 있었기에 가식적으로 물은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처음 할 때하고 몇 칠은 아플 거야. 하지만 몇 칠이 지나면 너도 저 여자처럼 할 걸”자신의 보지에 좆을 박고 빼고 박기를 반복하는 남자 목에 매달려 신음을 하는 모니터 속의 여자를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죽을 만큼 아파?”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큰오빠를 보며 묻자 
“죽을 만큼은 아니야”하기에 
“그럼 해”하고는 제 스스로 치마를 벗고 큰오빠가 바지를 벗고 상의를 벗는 동안 팬티를 벗으며 이미 딱딱해 진 큰오빠의 좆을 보며 방바닥에 누워서 이미 흘러내린 물을 손바닥으로 보지둔덕 전체에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어때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오빠가 제 몸 위에 몸을 포개고는 딱딱해진 좆으로 보지 금에 대고 상하로 문지르며 물었습니다. 
“응 그건 많이 했잖아?”하고 말하자 
“하긴 좆 물도 쌌었지”하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제가 생리를 하기 전까지 일주일이면 한두 번 정도 좆을 보지에 대고 문지르면서 좆을 손에 잡고 흔들었다가는 좆 물이 나올 무렵이 되면 좆을 어느 부분인지는 그때는 몰랐지만 어느 부분에 대고 좆 물을 쌌으며 그 좆 물의 일부분이 보지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수차례 느꼈었기 때문입니다. 
좆을 보지구멍에 박지만 않았다 뿐이지 이미 좆 물을 보지구멍으로 받았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리하고 보지에 힘을 빼”오빠의 좆이 평소처럼 좆 물을 쌌던 부분으로 생각이 되는 곳에 고정을 시키며 말하였습니다. 
“이렇게?”온 몸의 힘을 모조리 빼며 말하자 
“좋았어! 아파서 고함이라도 치며 이웃에서 무슨 일이라도 났나 하고 올지 모르니 입도 막아”하기에 
“응”하고 대답을 함과 동시에 입을 앙다물며 그도 부족하여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간다! 에잇!”오빠가 나직하게 고함을 침과 동시에 
“악! 오빠 아파”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만 참아”하고는 마구 좆을 제 보지구멍에 박을 채 흔들었습니다. 
“응”하고 대답을 하고 저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통증을 감수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천천히 함락이 되어가고 있던 저의 처녀성은 일순간에 큰오빠의 좆에 의하여 함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보자 그러니가 하나 둘......”그리고 한참을 펌프질하더니 펌프질을 멈추고는 손가락을 꼽으며 혼잣말을 하기에 
“왜?”통증을 참으며 의아스러운 눈으로 큰오빠를 올려다보며 묻자 
“바보야 겨우 초등학교 오학년인 네가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냐?”하고는 다시 손가락을 꼽았다 펴기를 반복하더니 
“사흘 후 생리를 하겠구나. 그럼 오늘은 안전 해”하고는 환하게 웃더니 다시 펌프질을 하였고 
“으~~~~~”하는 신음과 함께 통증으로 시달리던 제 보지구멍은 더한 통증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뜨거운 느낌이 들었고 저는 큰오빠가 좆 물을 진짜로 보지구멍 안에 싸고 있음을 인식하였습니다. 
첫날이었지만 큰오빠는 제가 아파하는 것과는 달리 거의 연달아서 제 보지구멍을 공략하였고 네 번의 야욕을 채운 후에 씻으라고 하였을 때 겨우 본 제 보지는 퉁퉁 부은 것이 평소의 보지와는 판이하게 달랐고 거기다가 처녀막이 터진 흔적인 검붉은 피와 섞인 오빠의 좆 물로 인하여 벌려보지 않고서는 보지의 갈라진 금이 어딘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자신의 만족을 만끽하고는 좆을 보지구멍에서 빼면서 저더러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고 하던 말에 통증도 잊고 욕실로 가서 씻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날의 전부라고 생각한 저의 생각은 착오에 불과하였습니다. 
씻고 나서 거실로 갔더니 알몸의 오빠는 때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고 저더러 알몸인 채로 있게 하더니 밥을 먹고는 저더러 설거지를 하라기 하였더니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에 손의 물기를 닦으려고 하는 순간 저의 곁으로 다시 오더니 싱크대를 잡고 엎드리라고는 하고서는 엎드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 엉덩이를 한 손으로 다시 좆을 제 보지구멍에 박고는 다시 펌프질을 하여 좆 물을 쌌으며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자다 말고 다시 하기를 거듭하였고 새벽에도 하였으며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하기 직전에도 하고는 저더러 아프다고 학교에 연락을 하고는 학교에 가지 말고 쉬라고 하고는 등교를 하였으며 그러자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픈 척을 하였으며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아빠가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으나 아프다고 하며 그대로 누워 잤습니다. 


그리고 작은오빠가 수학여행에서 다녀온 날까지 큰오빠와 단둘이 함께 있을 때는 무조건 알몸으로 지내야 하였고 벌리라고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벌려주고는 좆 물을 보지구멍으로 받아 들여야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된 큰오빠와 저 사이의 근친상간은 작은오빠와 아빠의 눈을 피하여 수시로 이루어졌고 하교를 하기만 하면 저는 항상 노팬티차림으로 있어야 하였으며 어디서 어떻게 구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쳇말로 좆 마개가 있는 날이면 좆 마개 안에 쌌지만 그렇지 않고 위험한 날이면 보지구멍에 평소처럼 박고 펌프질을 하였다가 좆 물이 나올 무렵이 되면 으레 좆을 제 입을 벌리게 하고는 입안에 싸고는 삼키라고 하였습니다. 
큰오빠가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고 제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 이미 저는 젖 맛을 알게 되었고 오르가즘도 느끼게 되었으며 작은오빠나 아빠가 없으면 대입 준비로 공부를 하고 있은 큰오빠를 졸라 제 스스로가 먼저 하자고 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저로 하여금 또 다른 근친상간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큰오빠의 학력을 떨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우리가 사는 곳의 대학에 진학을 하지 못 하도록 만들어버렸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서 그도 무려 두 시간이나 소요되는 대학에 직학을 하게 만들어버렸고 처음에는 통학을 하였으나 너무 힘들다고 하여 아빠가 큰오빠가 다니는 대학 인근에 자취방을 얻어줌으로서 큰오빠와 저의 빠구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나 가능하게 하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중학교 삼학년이었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아침에 작은오빠가 등교를 하면서 분명하게 등교를 하면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늦을지 모른다면 저더러 일직 저녁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당시에는 토요일도 등교를 하였음) 
그리고 학교에서 큰오빠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집에 있으니 가급적이면 일찍 들어오라고 말입니다. 
친구들이 놀다가라고 하였지만 빠구리의 맛을 이미 알아버린 저에게 참고 기다렸던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은 저를 애들과 놀지 못 하게 하고 집으로 곧장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집으로 가자마자 교복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큰오빠의 좆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한 번의 좆 물을 받았을 때만 하여도 아무 일은 없었습니다. 
교복을 벗고 알몸으로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큰오빠도 완전히 알몸이 되고 저도 알몸이 되어서 이 차전을 벌렸습니다. 
그런데 열린 방문 밖에서 작은오빠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종용히 하라는 사인을 주면서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닙니까. 
놀랐지만 작은오빠의 사인도 있고 하며 모른 척하고 큰오빠와 거의 무의미한 빠구리를 하였지만 큰오빠는 만족을 하며 끝을 내었습니다. 
작은오빠는 이내 지리를 피하였고 이튿날인 일요일 아침에도 월요일에 보자는 귓속말만 남기고 집을 나갔습니다. 


이튿날인 월요일부터 아빠는 야간근무였고 작은오빠는 전화로 일직 집으로 아라는 말만 하고 끊었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교를 하기 무섭게 집으로 갔습니다. 
작은오빠는 하교를 하지 않은 상태였고 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작은오빠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하교 중 노팬티차림 기다려>라는 문자가 다시 왔습니다. 
성질이 고약하기로 소문이 난 작은오빠에게 혼이 나지 않기 위하여 시키는 대로 노팬티차람으로 떨면서 기다렸습니다. 


“후후후 나도 모르게 형하고만 즐겼단 말이지?”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지며 제 곁으로 왔습니다. 
“미안해 작은오빠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야”하고 말하자 
“언제부터 시작을 했지?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알지? 친구들 모조리 불러들여 기차놀이 할 거니까?”생각치도 못 한 말이 오빠 입에서 나왔습니다. 
동네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여자애가 자기 남자 친구를 배신하고 양다리를 걸쳤다가 발각이 되어서 동네 선후배 가리지 않고 불러 모아 윤간 즉 속된 말로 기차놀이를 하였고 기차놀이를 당한 계집애는 무단가출하여 지금도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기에 작은오빠 입에서 나온 가차놀이란 단어는 무섭기만 하였습니다. 


“초....초등학교 오학년 때부터......”하고 말을 흐리자 
“호~오래도 붙어먹었군. 어디 얼마나 쑤셨는지 구경이나 하자”치마를 들어 올리며 말하더니 
“많이도 쑤셔대었군, 이렇게 가무잡잡한 것을 보니 말이다. 그렇지?”하고 다시 묻기에 
“조금 많아 하긴 했어”하고 말하자 
좋아 그럼 묻겠다. 앞으로 언지든지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먹게 할 것이지?“하기에 
“응 언제든지 하고 싶으면 말 해”하고 말하자 
“좋아 그럼 내 바지 내리고 한 번 빨아 봐. 형 좆도 빨아 봤지?”하기에 
“응 빨아도 보고 먹기도 했어”하고는 작은오빠 바지를 내리고는 작은오빠 앞에 꿇어앉아서 작은오빠의 좆을 빨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또 다른 근친상간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주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아빠의 눈을 피하여 작은 오빠의 좆을 아니 좆 물을 보지구멍 내지는 입안으로 받아들여야 하였고 주말이면 큰오빠의 좆 물을 그렇게 받아들이다가도 큰오빠가 친구라도 만나러 가면 씻는다고 씻었지만 큰오빠의 좆 물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을 제 보지구멍에 작은오빠는 기회다 싶었던지 펌프질을 하여 싸는 통에 주말이면 제 보지구멍에서는 두 오빠의 좆 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당시에는 큰오빠가 피임약을 사주었기에 복용을 하였음) 


2년 후 작은오빠도 전문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 년을 다니다가 군대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주중에는 아빠와 저만이 집에 있었습니다. 


“아빠 학교에 어머머”그날은 아빠가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었기에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무심결에 아빠의 방문을 열고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어......초란이구나“아빠가 황급하게 제가 아침에 벗어서 세탁기 안에 넣어두었던 제 팬티를 뒤로 감추며 말하였습니다. 
아빠는 제 팬티를 이용하여 자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 도와줘”무근 생각에서 그렇게 말하였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제 나이 네 살 때 엄마라는 년이 세 들어 살던 노총각하고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한 이후로 줄 곳 성욕을 풀기 위하여 딸딸이를 쳤다는 생각을 하자 가여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뭐? 아니 뭐라고?”아빠가 토끼눈을 하고 저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가만있어”교복을 입은 체 아빠 앞에 엎드렸고 이불로 덮여진 아랫도리를 들어나게 하고는 아빠의 좆을 잡고 빨고 흔들었습니다. 
“초....초란아 아~으”아빠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신음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는 고개를 악간 돌려 아빠를 올려다보며 윙크를 하였습니다. 
“아주 능숙하구나, 해 봤었니?”하고 묻기에 
“.........”다시 윙크로 대답을 하자 
“이러면 안 되는데”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엎드리더니 제 엉덩이를 어루만지기에 
“아빠 바로 누워”하고는 다시 아빠 좆을 입으로 빨자 
“그.....그래”하며 눕기에 저는 몸을 돌려서 아빠 머리 쪽으로 하체를 돌렸고 그러자 아빠는 교복 치마를 들쳤고 팬티를 제키더니 손가락을 보지구멍에 쑤셔보고는 숫처녀가 아닌 것을 알고는 
“나도 빨아도 되겠니?”하기에 
“하고 싶은 대로 해”아빠의 좆에서 입을 때고 말하고는 다시 입으로 빨자 아빠도 팬티를 더 제키고 혀를 보지구멍에 대고 쑤시다가는 갑갑하여 제 스스로 일어나 아빠 몸 위에 앉은 체로 팬티를 벗고 다시 엎드려 빨자 아빠도 제 보지를 빨기 시작을 함으로서 저는 또 다른 근친상간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좆물을 사키자 마자 저는 그대로 아바 몸 위에 올라가 아빠의 좆을 잡고 제 보지구멍에 끼우고 펌프질을 하여 아바의 좆 물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된 큰오빠에 이어 작은오빠와의 근친상간은 아빠까지 연결이 되고 말았고 그리고 지금 제 나이 25살이 될 동안 수도 없이 많아 하다 보니 신음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큰오빠라는 단어도 나왔고 작은오빠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심지어 아빠라는 단어까지 나오게 되자 큰오빠나 작은오빠 그리고 아빠까지도 제가 세 사람하고 근친상간을 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누구 하나 질투를 하는 경우도 없이 서로 모른 척하고 수시로 빠구리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날은 세 사람의 좆 물을 모조리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고 철이 나면서 근친상간의 덧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른 남자 친구를 만들어서 빠구리를 해 봤었지만 아빠나 큰오빠 작은오빠하고 했을 때의 감흥과 오르가즘을 전혀 느끼기 어려워서 길게 간 경우가 없었고 또 아빠나 큰오빠 작은오빠를 배신하는 느낌이 들어서 다시 남자 친구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앞에서도 말을 하였듯이 30살이라는 혼기에 꽉 찼다고 생각하는(저만이)큰오빠도 저하고 같은 생각인지 여자 친구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있으면 이는 작은오빠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그건 큰오빠가 중학교 다닐 때 엄마라는 년이 큰오빠가 다니던 학교 앞으로 았다가 큰오빠에게 머리끄덩이를 잡은 이유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큰오빠하고 제가 빠구리까지는 하지 않던 상태였지만 큰오빠가 제 보지를 빨았고 저 역시 큰오빠의 좆을 빨고 흔들어서 좆 물을 먹든 시절이었었는데 엄마를 집으로 불러들이면 그런 짓을 하지 못 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고 심지어 아빠에게 이를 경우 쫓겨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큰오빠로 하여금 엄마라는 년의 머리끄덩이를 잡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저와 빠구리를 하기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서 이야기를 하였기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저는 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아빠나 큰오빠 작은오빠의 물받이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이야기 하고 끝을 내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는 대학 이학년 때의 일입니다. 
피임약으로 인하여 살이 찌자 두려운 나머지 아빠와 큰오빠 그리고 작은오빠 몰래 한 동안 피임약을 먹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덜컥 임신을 하였고 임신을 시킨 좆 물이 누구의 좆 물인지도 몰랐으며 세 사람 모르게 산부인과에 찾아가서 중절수술을 받았으며 그 후로 저는 진짜 좆 맛을 알게 되어 생리 중에도 콘돔을 끼게 하고는 세 사람의 좆을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둘째는 제 후장입니다. 
제 후장은 아빠가 제일 먼저 먹었고 또 유일하게 후장은 아빠에게만 주고 있습니다. 
저를 낳게 해 준 분이고 빠구리를 하게끔 두 오빠들을 낳게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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