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더러 맏며느리 상이래요  

저더러 맏며느리 상이래요              img #1
영화 [어벤져스]
 
“한국에 있을 땐 뭐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면 나는 별 주저함 없이 “성인사이트 운영자였어요.”라고 대답한다.

자칫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나 사이버 매춘업계의 포주쯤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있는 건 그래 봤자 곧이 곧 대로 믿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길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은 나 같이 생긴 얼굴이 ‘성인사이트 운영자’였다고 하면 그냥, 커피전문점 사장이 자신을 ‘물장사’라 칭하는 것과 같은 맥락쯤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받아들일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내가 했던 일에 대해 당당한 척(?) 할 수 있는 거다.

맏며느리 같이 후덕한 인상의 여자들이 오히려 남자들을 잘 꼬시고, 성적인 에너지가 왕성하고, 끼도 많다는 사실을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콧날이 둥그렇고 피부가 하얗고, 눈썹이 진하지 않아 화장을 해도 그리 인상이 강해 보이지 않은 얼굴, 이른바 수수한 얼굴의 여자들이 얻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

이지적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남자들은 보호본능을 발휘하고, 순수하고 평범해 보이는 여자가 성적으로 과감한 모습을 보이면 그 매력에 압도되기 쉽다. 극적 반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주위에 남자 꽤나 후린다는 여자들을 보면 대부분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수수한 인상이거나, 세상 때가 묻지 않았을 것만 같은 청순한 얼굴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녀의 평범함에 남자들은 무장해제되고 좀 더 편하게 혹은 조심스럽게 접근 할 수 있으며, 알면 알수록 새록새록 발견하게 되는 의외의 매력에 폭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숨은 작업의 귀재’들 중에는 남자들의 단순한 편견과 반전의 타이밍을 이용할 줄 아는 평범하게 생긴 여자들이 많다.

반면, 콧날이 오똑하고 눈매가 고양이처럼 살짝 치켜 올라간 이른바 야하게 생긴 여자들이 의외로 순진하고 남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들은 쉽게 ‘정중한 구애’가 아닌 ‘껄떡거림’의 대상이 된다.

수수하게 생긴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으면 ‘의외의 과감함’ 이지만, 야하게 생긴 여자가 치마를 짧게 입으면 ‘천박하다’라거나 ‘쉬운 여자’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수수하게 생긴 여자의 ‘오늘 밤 나랑 잘래요?’는 상대방의 영화적인 상상을 자극하며 아련한 인상마저 줄 수 있지만, 야하게 생긴 여자의 ‘나랑 잘래요?’는 (다소 과장하자면) ‘하룻밤에 얼만데?’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래서 야하게 생긴 여자들은 매사가 조심스럽고 남녀 관계에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눈꼬리가 매섭고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옛날 영화배우 ‘강리나’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내 친구 중에 하나는 이런 편견의 대표적인 희생자다. 독실한 크리스찬이고 집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요즘 보기 드문 처자’였던 그녀. 얼굴도 몸매도 아주 예쁜 편이었던 그녀가 서른이 넘도록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의외였다.

집에서 조용히 쉬겠다는 그녀를 억지로 나오게 해 클럽으로 끌고 갔던 날. 춤도 추지 않고 한 쪽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심하게 작업을 걸어대는 남자들을 보며 나는 그녀의 불행(?) 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한 마디로 ‘다 알면서 왜 그래? 선수끼리…’였다. 유독 자신에게 쉽게 반말을 해대는 그들에게 그녀는 또 한번 상처를 받았고, ‘남자는 다 여자를 어떻게든 자빠뜨려 보려고 혈안이 된 짐승 같은 존재들’이라는 믿음만 더욱 굳건해 진 채 무도회장을 나갔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다’는 속담이 ‘생긴 대로 논다’는 경구보다 진실에 가깝다. 알면서 모르는 건지 몰라서 모르는 건지… 얌전한 고양이들에게 홀딱 홀딱 잘도 넘어가는 남자들을 보며, 나는 때로 통쾌하기도, 속 터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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